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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풍경ㅣ미국 그리고 우리의 80년대

 

2025-02-21

한국 80년대 운동권 역사, 1980년대 한국의 정치 흐름과 운동, 당시 미국에 대한 인식 변화의 역사를 조명하며, 현재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증오 문제로 이어지는 궤적을 탐구한다.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째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지난 번 칼럼 「종북세력을 찾아서」의 뒤를 이은 글 한 토막. 시간적으로 벌써 40년이 넘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1980년대가 현재의 우리를 주조(鑄造)한 일종의 틀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잊는 사실 중 하나가 우리가 현재 제6 공화국체제의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1987년 제9차 개헌국민투표를 통해 확립된 6공화국체제는 36년째 지속 중이다. 그리고 1980년대는 경제적으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와 자동차, 조선 등 현재 한국 산업의 태반을 형성한 시기인 동시에,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기에 출생한 베이비부머들이 대학을 다니고(공장에 다니거나) 사회로 진입하여 거대한 세대적 실체가 된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운동적 관점에서 보자면 80년대는 반정부운동, 내지는 반체제운동이 전면화된 시기였으며, 이른바 NL-PD논쟁을 통해 반미 혹은 반제국주의의 흐름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 칼럼에서 얘기한 대로 주사를 신봉하는 일군의 세력이 일정하게 운동권에 진입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의아했고, 그 파장이 현재까지 미치는 이 흐름의 가장 큰 몫은 바로 ‘미국’의 본질에 대한 충격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1. 80년 5월 광주, 전남도청


5월 광주항쟁이 한참이던 상황에서 당시 항쟁주체의 대변인 역할을 하던 윤상원은 외신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7함대가 오고 있고 그러면 군부가 물러날 것’이라고 얘기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기대를 그렇게 스스럼없이 나타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군다나 윤상원은 그냥 그런 지식분자가 아니라 전민노련이라는 전국적 반정부조직의 중앙위원이기도 했었는데. 결국 짧은 교섭이 결렬되고 무력진압 속에서 광주와 한국민주주의는 군홧발에 짓이겨졌다. 동시에 이 모든 사태의 배경으로 자리 잡은 미국에 대한 강렬한 인식의 전환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80년대 전반기에 부산과 광주에서 미국문화원이 점거되고, 방화된 사건들. 그리고 85년 전학련 삼민투(이 고색창연한 이름들!)에 의해 거행된 서울 미문화원점거투쟁 등 일련의 사건들은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강렬하게 현시(現示)했다. 그러니까 미국이 우방이자, 혈맹이며, 민주주의의 전범인 동시에 제국이며,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충실한 제국주의에 충실한 국가라는 사실. 우리가 아직 홀로 서지 못했다는 자각은 당시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논쟁 속에서 식민지 혹은 반(半)식민지형 자본주의국가라는 지점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NL-PD라는 일정한 흐름으로 분화하게 된다. 부연하자면, 이 투쟁을 주도했던 김민석과 신정훈은 현재 야당의 중진 국회의원이고, 함운경은 여당의 지역위원장이다. 그리고 그 분들은 전혀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1985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삼민투위 주도로 서울 지역 대학생 73명이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미국문화원에 들어가 농성하며, 미국이 광주학살의 책임을 지고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은 미문화원 건물 모습으로, 현재는 서울시청 을지로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_국가유산포털
1985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삼민투위 주도로 서울 지역 대학생 73명이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미국문화원에 들어가 농성하며, 미국이 광주학살의 책임을 지고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은 미문화원 건물 모습으로, 현재는 서울시청 을지로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_국가유산포털

#2. 86년 5월 서울의 여러 캠퍼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른바 NL세력이 등장했다. 공식적으로는 1985년 서울대의 김영환을 필두로 한 흐름이 대표적이지만, 사실 여러 갈래에서 다양한 NL세력이 이합집산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당시 ‘자민투’라는 이름으로 각 캠퍼스에 출현한 이 움직임들은 순식간에 학생운동의 주류를 장악했다.(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민민투였지만) 이렇게 된 이유를 굳이 뽑자면, 대략 세 가지가 뽑힌다. 첫째, 가장 명징한 반미주의를 전면화했다는 것. 둘째, 이른바 ‘품성론’(운동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선이 아니라 품성이라는)을 통해 분파주의의 폐해를 정면에서 논박했다는 것. 셋째, 당시 일종의 회피 대상이던 북한의 존재와 가치(?)를 드러냈다는 점.


하지만 이 흐름이 80년대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발전에 영향을 끼쳤는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부정적이다. 영화 『1987』이 보여주는 바, 6월 항쟁과 개헌, 그리고 6공화국의 형성은 야당과 종교, 시민단체의 주도하에 국민들의 두터운 지지하에 이루어진 평화적 전환이었기 때문이다.(비록 노태우가 당선되었지만) 여기에 정파로서 NL이(그리고 훗날의 PD들까지) 유의미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다만 학생운동 연합체로서 서총련-전대협이 군중을 동원하고 시위를 주도한 사실은 분명하지만.


당시 NL이라 부르는 세력의 스펙트럼은 꽤 넓었다. 위에 언급한 김영환을 중심으로 했던 흐름은 시작과 동시에 배모씨(김영환의 후배였지만, 안기부의 망원이었던)의 활약으로 일망타진되었고. 주체사상을 소개하고 진심으로 신봉했던 김영환은 후에 잠수함을 타고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을 만난 후에 돌아와서 완전히 전향해 버렸다. 주체사상과 관계없이, NL적 관점을 가지고 운동했던 분들도 흔했고, 개중엔 PD로 넘어 온 분들도 많았다(역으로 반대로 간 분들도 있었고)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정말 다양한 모색 속에서 진지하게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고민한 일군의 운동가들이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얻기 위해 싸운 시절들.


훗날, 자주파라 불리운 진보정당의 몇몇 인사들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도 그 시절이다. 지방 광역시에서 구청장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역임한 선배 운동가들이나 10여년 후에 ‘울산부부간첩단’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인사들의 젊은 날. 몇 번의 진지한 대화 속에서 인상적인 기억은 그 분들의 출중한 개인 능력이나 순수함과 별개로, 북한 체제를 바라보는 그 나이브함이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치러지던 시기에 열풍처럼 번졌던, ‘남북학생회담’(오라! 북으로 가자! 남으로)과 ‘북한바로알기운동’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현실정치(Real Politics)에서 NL은 주변화될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작가이자 평화주의자였던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이 스탈린의 소련을 단지 한 눈으로만 보았던 것, 그리고 소설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가 김일성의 북한을 그린 것처럼 현실은 언제나 이상을 배반하고 짓이긴다.


#3.1989년 6월 4일 천안문에서 1994년 7월 8일 평양까지


이 시기,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변질되고, 폭망한 이 시기에 한국의 변혁운동(혹은 반체제운동)은 최영미 시인의 표현에 따르면 ‘잔치를 끝냈다’. 그 대단했던 NL도, PD도, 주체사상을 신봉했건, 참고했건, 반대했건, 경멸했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종말을 고했다. 한국 자본주의의 위치는 완전히 올라섰고, 민주주의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궤도로 진입했다. 이후 30년간 우리의 생각과 사고의 틀은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과 급격한 AI 시대로의 전환 속에서, 지구 온난화와 기후위기 속에서 앞으로 달려나가지 않으면 뒤처지는 기호지세(騎虎之勢)에 놓여 있다.


2025년, 2월 한겨울 밤에 웃프게도 ‘종북’이 어쩌고 하는 이 상황은 초현실적이다. 하지만 이미 변해버린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노년층이나 일부 종교적 배경을 가진 분들과 별개로 오늘날 한국에서 파시즘에 가까운 일련의 흐름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젊은 20,30대 남성들 일부에서 발견되는 이 흐름들. 즉 반중, 여성 혐오, 사회적 소수자와 이슬람,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증오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기회의 문이 닫힐수록 이 증오는 눈덩이가 쌓이듯 차곡차곡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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