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 2024-07-18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째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한 세기가 지나면, 인구는 13%로 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해보자. 국가의 소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가 된 저출생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지난 10여 년간 수백조의 돈(이라고 말하지만 따져보면 허수다)을 퍼붓고, 전문가와 정치가가 소리를 높이고, 철마다 이런저런 기구를 띄워 봤지만 결과는 합계 출산율 0.7 어스름이다.
절망적이게도 이 수치조차 바닥이 아니다. 2024년 연말까지 기대(?)하고 있는 합계 출산율 0.6으로 간단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자. 엄마, 아빠 100명씩 30세 200명의 모집단에서 60명이 출생한다. 모든 사람이 90세에 자연사하며, 성비가 1:1이라는 가정 하에, 30년 후 모두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18명의 신생아가 기록된다. 총인구는 30년 만에 200명에서 278명으로 증가한다. 이 시점이 피크다. 다시 30년이 지나고 다음 세대가 되면 새로 6명의 아이(올림해서)가 태어나고 총인구는 84명이 된다. 다시 30년 후, 2명의 아이(올림해서)가 태어나고 총인구는 26명이 된다. 한 세기가 지나지 않았지만 총인구가 모집단의 13%가 되는 셈이다. 물론 이 시나리오는 변화할 수 있다. 합계 출산율이 이상적인 2.1 이상으로 회복된다면,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해외에서 대량의 이민자가 유입된다면.
골든 타임은 지났다
모두가 알다시피, 2016년 즈음부터 합계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면서 이런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골든 타임이 지났다. 그동안 정말 많은 대책이 쏟아졌다. 난임여성과 노령임신을 지원하고, 출산 시 장려금을 지급하고, 아빠들에겐 육아휴직을 부여하고, 아이에겐 아동 수당을 지급하고, 집을 구할 경우 자녀를 둔 가정에게 우선권을 주는 등 온갖 지원책을 발표했다. 방송과 신문과 유튜브 등 수많은 매체를 통해, 국가와 민족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고취했다. 지난 1, 2년간 미중갈등과 기후위기를 제외하고 우리가 가장 많이 듣고 얘기했던 주제는 ‘저출생’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대책이 지리멸렬했다. 청년들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선택한 소수 중 많은 커플이 딩크족이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사방팔방 K-어쩔시고를 연발하며 국뽕에 찬 5175만의 한국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선진국, 대한민국의 속살
채부심이라는 유투브 채널로 잘 알려진 채상욱이 김정훈과 같이 쓴 『피크아웃 코리아』(2024)와 김현성 작가의 『자살하는 대한민국』(2024)은 1998년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한국식으로 이식되어 형성된 우리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그려 낸다. 지방 소멸, 부동산 폭등, 양극화, 저출생, OECD 최고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등등. 이런 자화상들은 무역 총계 1조 달러를 달성하고 1인당 GDP 3만5000달러를 상회하는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속살들이다.
선택과 집중, ‘인서울’ 시스템의 나비효과
예를 들어 채상욱이 제기하는 요인들 중 하나가 소위 ‘인서울’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대학교육 시스템의 이중화 현상으로 인한 나비효과이다. 나이브하게 표현하자면, 지방대학의 질 저하 및 지방 청년의 서울 유학 증가 → 지방 기업의 인력 수급 장애와 수도권 기업으로의 인력 집중 → 서울과 수도권의 20대 지방 출신 취업자 증가 → 지방 대비 주택 구입 부담 증가 → 결혼 연령 상향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이다. 당연히 이런 식의 연쇄적인 체인들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런 식의 사회적 시스템이 형성된 것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우리가 지난 30여 년간 구축해 온 이 시스템 아래서 선진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 역량을 특정 지역과 산업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 우리가 해 온 것은 정확히 이런 것이었다. 문제는 이 성공적인 시스템이 기대 이상으로 작동하면서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그 결과가 지역적으로는 극단적인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로 나타났고, 사회적으로 양극화, 자영업 붕괴, 저출생 구조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태리타월처럼, ‘실패자를 지워버리는’ 한국
나는 때때로 이런 현상을 ‘이태리타월’과 비교해 본다. 우리가 흔히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이 타월, 혹은 때수건은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만 존재한다. 외국인이 한국에 관광을 오면 반드시 경험해 볼 만한 특이한(혹은 극한의) 서비스가 되었다. 문제는 이 타올이 놔두거나 적당히 샤워를 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노폐물뿐만 아니라 피부에 존재하는 물질을 말 그대로 ‘박박’ 지워버린다는 점이다. 자영업을 하다가 절벽에 몰린 사람들(2023년 기준 91만여 자영업자가 폐업), 어떠한 연금 혜택에서도 제외된 90만여 명의 노인들, 도무지 통계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강남역과 서울역의 밤을 베개 삼은 노숙자들. 실패자들은 말 그대로 ‘지워진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청년들은 공포의 눈으로 바라본다.
분명히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과 잘 갖춰진 대중교통, 자존심을 굽힌다면 밥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경제 형편, 그럭저럭 쓸 만한 의료시스템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헬조선’을 운운하고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최대 수혜자들의 탈출구, 원정 출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많은 대책들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성공적인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연히 그 시스템을 상당한 수준에서 재조직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의 탈주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결론을 사회지도층(이런 게 존재한다고 가정하면)이나 인사이더들이 과연 모를까? 나는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이미 걸린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거나, 대안을 제기하는 순간 맞닥뜨릴 위험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중도파, 우파 지식층들은 그냥 상황이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소수가 된 좌파는 국가 혁신에 대해 더 이상 발언하지 않는다. 이 상황의 최대 수혜자(유일한 고출생 계층으로 믿어지는)인 상층 부류들은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추후에 나타날 공동체 붕괴에 대비해서 원정출산(2023년 기준 2000명을 돌파한)으로 대응하거나, 아예 해외 영주권 획득 쪽으로 간다.
우리 애가 나처럼 노비로 살아갈 거라면
나는 업무상 어쩔 수 없이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에 이르는 청년들과 자주 대화를 한다. 그들은 그래도 동년배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형편이 낫고, 사회활동에 적극적인 부류들이지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연애를 하고 결혼하는 걸 피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인생의 필수적인 코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는 남녀를 막론하고 일단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고 기억에 남는 대화는 아이를 갖고 키우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이라는 내 말에 대해, 한 30대 청년이 한 말이었다. “얘를 키우는 게 기쁨이긴 하겠지만, 그 애가 나처럼 노비로 살아갈 걸 생각하니까 자신이 없어요”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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