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정 기자, 양성욱 영상기자 2024-04-10
김산하는 야생 영장류학자로, 생명다양성재단의 대표이자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제인구달연구소의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 한국지부장이다. 서울대학교 동물자원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생명과학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인도네시아 구눙할리문 국립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의 먹이 찾기 전략’을 연구해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로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태학자로서 자연과 동물을 과학적 방식으로 관찰하고 연구할 뿐 아니라 자신과 동료 과학자들의 연구를 더욱 설득력 있게 알리기 위해 생태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 영국 크랜필드대학교 디자인센터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동물에게 권리가 있는 이유』(2022, 공저), 『궁극의 질문들』(2021, 공저), 『살아있다는 건』(2020), 『습지주의자』(2019), 『김산하의 야생학교』(2016), 『비숲』(2015) 등이 있다.
동물에게 다가가는 최고의 접근법은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것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태어나기는 일본에서 태어났다가 한국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어서 스리랑카와 덴마크에서 살았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자연이 풍성한 나라들에 연이어 살다 보니 자연과 동물이 친숙했다. 더운 곳과 추운 곳을 둘 다 고향처럼 느낀다. 동물에게 언제나 끌렸다. 동물에게 다가가는 최고의 접근법은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동물자원학과로 들어갔는데 동물을 잡아먹는 과였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순수하게 동물을 연구하는 과가 없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동물행동학을 처음 전파한 최재천 교수님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셨다. 다루는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교수님 밑에서 야생 동물을 연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실내에서 침팬지를 연구했다. 좀 아쉬워서 아시아로 나가고 싶었다. 인도네시아는 개인적으로 경험이 있었다. 그곳에 연구가 안 된 종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가서 연구를 시작했다. 나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는 사람이다. 그냥 좋은 걸 하겠다는 마음 밖에 없었다. 동물행동학 중에 영장류학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다들 연구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문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야생 열대우림에 들어가 연구할 때는 어릴 적 꿈이 실현되는 느낌이었다. 처음 인도네시아에는 군 복무 대신 갔었다. 과거에 코이카 국제협력단의 협력 요원으로 해외에서 군 복무하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걸로 인도네시아와 연을 맺었다.
결국 그들이 우리에게 익숙해져야 한다
영장류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들이 우리에게 익숙해져야 한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동물들은 보통 도망간다. 영장류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다. 지겨움의 능력이다. 자바긴팔원숭이도 영장류이다 보니, 우리가 계속 쫓아다니면 지겨워한다. 우리에게 약간 무뎌진다. 우리에게서 막 도망가지 않을 때 관찰할 수 있다. 이걸 위해 죽어라 쫓아다녀야 한다. 8~9개월을 쫓아다녔는데, 세상에서 태어나 제일 힘든 시간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울퉁불퉁 험난한 정글에서 뛰어다니면서 무전기로 소통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자체에 대한 이끌림과, 지겨운 걸 절대 하지 못하겠다는 나의 고집이 이 길을 계속 탐구하게 만들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진짜 떨어지는 모습도 보고, 나무 위에서 똥을 싸서 함께한 어시스턴트가 똥 맞은 일 등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습지는 영감의 원천이다
책은 인간이 한 어떤 활동을 기록하고 표현하고 알리는, 가장 오래되고 제일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이란 표현해야 하고 남과 공유해야 하는 존재다. 혼자만 하면 너무 고독하고 의미가 없다. 그래서 책을 자꾸 쓴 것 같다. 가장 많이 팔리고 알려진 책은 『비숲』이지만, 나는 『습지주의자』라는 책에 더 애착이 간다. 습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실제로 습지의 생태계가 풍부하기도 하다. 습지는 물도 아니고 뭍도 아니다. 여기에는 일종의 문명 비판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는 고체적인 문명에 익숙하고 액체적인 것은 무서워한다. 그 둘이 섞여 있는 것을 가장 못 견딘다. 그래서 이걸 관리하고, 조정하려고 댐을 건설하고 보를 쌓는 행위들이 있어 왔다. 사람들은 습지에서 출현하는 생물들 역시 징그럽게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엄청 의지하고 있는 곳이 습지다. 물도 정화시키고, 많은 사람은 거기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습지는 과학적 차원, 인문학적 차원, 예술적 차원에서 너무 좋은 대상이자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리와일딩(Rewilding)으로 자연과 인간의 균형을 되찾다
요즘 리와일딩(Rewilding)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번역한다면 ‘재야생화’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다. 이미 실천적으로 많이 적용되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움직임이다. 한국이나 아시아에서는 움직임이 매우 약하다. 국내 도입을 위해 리와일딩을 대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9월에는 아시아 리와일딩 포럼도 조직 중에 있다. 다큐멘터리 촬영 차 싱가포르도 다녀왔다. 리와일딩은 야생동물을 위해 '개발을 멈춰야 한다'는 개념을 넘어선다. 인간이 갖가지 이유를 들어 없앴던 동물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운동이다. 가령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나 곰과 같은 종도 포함되어 있다. 리와일딩을 하는 이유는 야생동물들이 있고 없고가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수 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늑대가 있었다가 사라진 곳에 늑대를 복원하니, 숲 전체가 완전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상위 포식자뿐만 아니라 대형 초식동물인 들소, 코끼리 등도 생태적으로 기여도가 매우 크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됐다. 리와일딩은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수정하고 자연이 운영되는 순리대로 가게 하는 철학이 기본적으로 들어있다. 영미권이나 유럽에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책이 출간됐다. 자연을 리와일딩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 마음조차도 리와일딩해야 한다는 일종의 자기개발서들도 여러 권 출간이 될 정도로 대중화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균형이 완전히 망가진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회의감과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본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운명의 시대
한국의 탄소 배출 절대량은 지난 10년 동안 세계 10위권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 한국은 탄소 배출량 10위권 안에 있는 국가들 중 유일하게 작은 나라다. 석유 사용량도 10위 안에 든다. 반면 국제적인 지표인 기후 변화 대응 지수는 최하위권이다. 미국의 리서치센터에서 17개국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1위로 꼽았다. 어떤 지표를 봐도 한국에서 기후 위기와 관련된 것은 아무런 실천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은 그 어떤 가치도 추구하지 않는 나라가 됐다고 생각한다. 고삐 풀린 상태로 그냥 나아가는 것을 아무도 제어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지난 10개월 동안 지구의 날씨에 대한 기록이 있다. 전체 지구의 평균 온도를 내보니 가장 더운 최고 기록이 10개월째 연속 갱신되고 있다. 전 세계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묶자고 약속했지만, 이미 3월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그 이상 올라갔다. 전 세계적으로도 절망적인 상태인데 한국은 더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뭔가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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