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기자, 김동혁 영상기자 2024-04-26
대학에 다닐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내내 학생운동에 몸 담았다. 졸업 후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며 부천에 내려왔다가, 누군가 ‘저기 시흥 신천리라고 하는 곳에 가면 방값이 쌀 거야.’라고 해서 1988년 시흥으로 왔다. 환경운동과는 거리가 멀던 사람이 운명처럼 시흥에서 환경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수없는 좌절과 눈물 속에서도 30년을 꿋꿋하게 버텨온 것 같다. 시흥과 시화호 환경운동의 산증인이 되었다. 언제나 그의 왼쪽 가슴에는 검은머리물떼새의 뱃지가 있다. 시화호 지속가능파트너십 시화호환경문화센터 서정철 대표를 만나봤다.
소래산을 지키기 위해 시민 조직을 만들다
1995년, 시흥의 소래산과 부천의 성주산 사이에 8차선 외곽순환도로가 건설된다는 말을 들었다. 산마루를 절개하는 방식이었다. 환경운동에 대한 높은 차원의 이해나 신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소래산 인근의 주민으로서 소래산의 허리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환경 문제를 단순히 공해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정부 또한 환경에 대한 고려나 복원 인식 없이 개발만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전에 논의도 없고 주민 동의도 없었다. 일방적인 개발이 진행되곤 했다. 그런 현실에서 시흥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위원회를 구성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흥환경운동연합이 만들어졌고, 소래산을 지켜낼 수 있었다.
죽음의 시화호를 보고 분노하다
비슷한 시기에 시화호 물막이 공사가 있었다. 그것이 또 다른 각성의 계기였다. 정부는 농공생수 공급 목적으로 바다를 막아 시화호를 만들었다. 시화호를 만들어 2000만평의 간척지가 생겨났다. 애초에 이 간척지를 전제로 시화지구의 개발 계획이 세워졌다. 안타깝게도 정치인은 환경적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 사전 조사나 생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채로 만들어진 시화호는 이내 ‘죽음의 호수’가 되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호수’라는 말이 상징적인 의미라고만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본디 시화호가 있었던 군자만의 수질은 2~3ppm이었고, 시화호의 수질은 17.4ppm까지 올라갔다. 보통 수질은 5등급으로 평가된다. 쉽게 말해 군자만은 2등급의 수질 지역이었다. 인간이 어업을 하고 수영할 수 있는 정도가 2등급이라고 보면 된다. 5등급은 공업 용수로만 사용될 수 있는 정도의 수질이며, 그 밖은 등급 외로 분류된다. 등급 외의 물은 재생 불가능한 물이자 회복 불가능한, 어떠한 이용도 어려우며 생명이 살 수 없는 물이다. 17.4ppm의 시화호가 바로 등급 외의 수질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의 호수’는 말 그대로 그 어떤 생물도 살 수 없고 이용할 수도 없는 ‘죽음’을 뜻했다. 고작 간척지 땅을 얻기 위해 뻔한 결과가 예정되어 있음에도 개발을 추진한 것, 그러면서도 지역 주민과 어민의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모습에 분노했다. 그때부터 삶의 전부를 환경운동에 바쳤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주민과 함께 울고 구르고 부딪히고 일어서다
시흥환경운동연합이 구성된 이래로, 정말 많은 사건을 마주했다. 앞서 언급한 소래산 절개 반대 운동이나 시화호 복원 외에도 갯골 습지보호구역 지정, 오이도 선사유적지 보전 운동, 오이도 갯벌 매립 반대 운동과 같은 활동이 있었다. 그 수많은 활동을 거치면서 가장 힘들던 때가 주민들과 부딪혔을 때이다.
특히 시흥 갯골 습지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활동 당시가 떠오른다.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걱정하며 개발을 통해 얻을 경제적 이익을 옹호했다. 처음에는 주민과 시민단체의 뜻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환경은 누군가의 편을 들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공익과 공공선의 측면에서 논의될 뿐이다. 그래도 당시엔 주민들과 척을 졌다는 사실에 많이 괴로웠다. 어쩌면 주민들도 시민단체와 정부가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일방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자 했다. 갯골이 보호구역이 된다 해서 주민의 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주민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공청회를 이어 나갔다.
시화호 환경 복원을 위한 조력발전소 건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화호의 오염수를 방류하면 어업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어민들이 격렬히 반대했다. 어민들에게 ‘여러분의 동의 없이는 시화호의 오염수를 단 한 방울도 내보내지 않겠으니, 다만 처음부터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모든 회의를 공개하고,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모든 주민이 알도록 돌아다니며 설명했다. 결국 2011년, 시화호에 조력발전소가 세워졌다. 가장 힘들었던 일도 주민으로 인해서였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도 주민들로 인해서였다. 이런 결속력과 현장성이 가장 큰 힘이다. 부딪히고 깨지고 함께하는 과정 속에서 시흥과 시화호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이다.
거버넌스를 구축하다
시흥과 시화호의 환경운동이 갖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생태 지리적 가치이며, 남은 하나는 시민, 지자체, 정부, 전문가가 연대한 하나의 거버넌스가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대송습지, 갈대습지공원, 시화나래철새도래지, 누애섬풍력발전기, 조력발전소, 공룡알화석산지, 선사유적공원 등 시화권역 자체가 갖는 환경·생태·문화·사회·역사적 가치 또한 방대하다. 이런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앞으로는 시화 둘레길, 이름하여 시화나래길을 완성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주민들이 자연을 즐기고 공존할 수 있는 하나의 권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야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 시도도 줄어든다. 또 하나, 시화권역을 친환경 도시로 만들고자 한다. 조력발전소 자체가 탄소중립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도 하지만, 지금 시도하려 하는 것은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 해양 생태 정원 조성이다. 동시에 갯벌에 염생식물을 식재함으로써 탄소중립에 기여하려 한다. 물론 염생식물이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바는 적겠지만, 그런 활동 자체가 환경 교육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완전한 환경 복원은 없다
완전한 환경 복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언가 시작하면 끝도 있고 결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환경 문제는 끝이 없다. 현재의 삶과 미래의 문제가 전부 환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숙명과 같다. 쉼 없이 행동하고 실천해야 미래 세대가 존재할 수 있다. 시화호가 완전히 복원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잘못되었다. 끝없는 연대와 행동을 통해 시화호를 지켜나가야 한다. 환경에는 소유권이 없다.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전 인류가 공유해야 하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환경이 좋아지면, 그곳을 개발하고자 하는 또 다른 시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아무런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삶을 바꾸는 것은 개인의 주체적 삶에 대한 강제적 개입이나 다름없다. 이런 도전에 직면하는 것은 사람이며, 환경을 지키는 힘도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생태 감수성에 예민한 사람이 늘어났으면 한다. 행동과 실천이 부재한 자각은 의미가 없다. 이제 환경을 위한 실천을 습관화하고 체화하기 위한 고민이 깊어져야 할 때이다. 우연한 기회더라도, 우리는 모두 환경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 인연을 스스로의 힘으로 붙들고 보전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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