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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동아시아 종과 횡 | 아시아태평양전쟁,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나?

 

2024-09-05


편집자 주

[동아시아 종과 횡]은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리스키하지만, 국외에서는 국제관계 연구에 최첨단 지역연구 대상이 되어버린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시간적으로 종단하고, 공간적으로 횡단하는 역사적 사건을 포함하여 현재적 의미를 가진 동아시아 각국 혹은 여러 나라에 걸친 다양한 주제들, 이를테면 한일 관계, 한미일 관계, 미일 관계, 미중 관계, 남북 관계, 양안 관계 등의 다양한 이슈들을 픽업하여 다루고자 한다.

 

송병권 / 상지대학교 교수


2011년 일본 토쿄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7년간 편사연구사로 일했고, 다음 7년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한국사연구소,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2020년에 상지대학교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현대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지역주의, 지정학, 경제사, 정치사상, 국제관계사를 주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현대 동아시아 지역주의: 한미일 관계를 중심으로』(2021), 『동아시아, 인식과 역사적 실재: 전시기에 대한 조명』(공편저, 2014), 『근대 한국의 소수와 외부, 정치성의 역사』(공저, 2017) 등이 있고, 번역서로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공역, 2020), 『GHQ: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2011) 등이 있다.

 

대동아공영권의 새로운 형태로, 아시아 국가들에 경제적 ‘진출’


지난 세기 일본의 침략전쟁은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표현되는 15년간에 걸친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패전한 일본은 연합국 특히 미국의 공격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전후 일본은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전후는 끝났다’라는 선언 속에서 경제와 정치 등 세계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고,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고도성장의 길을 걸었다. 전쟁으로 인한 상흔이 표면적으로 거의 보이지 않게 되자, 일본 국내에서는 전 시기에 외쳤던 ‘대동아전쟁’을 긍정하는 등 지난 전쟁에 대한 긍정론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대동아공영권’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경제적인 ‘진출’을 도모했다. 이 흐름을 보수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본 내셔널리즘의 고양을 추동했다.


1945년 9월 2일, 미국 미주리호에서 시게미쓰 마모루 일본 외무대신이 일본 정부를 대표해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은 제국의 성장에 따른 생존권의 확대였다는 해석


일본의 국가 발달 과정에서 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에 일본은 전쟁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발달 과정 속에서 필연적인 논리적 귀결로서 나타났다. 일본이 벌인 지난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여 자기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벌인 전쟁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으며, 이 전쟁은 일본 제국주의 성장에 따라 불가피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보통의 전쟁이었다는 해석들이 나타났다. 즉, 아시아태평양전쟁은 당시 일본 정부에 군국주의 세력이 아닌 그 어떤 정치 세력이 주도했더라도, 피할 수 없었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해석은 일본의 역사학계나 사회과학계에 널리 퍼져있는 해석이기도 하다. ‘가진 나라’인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당시의 국제정세 속에서 ‘가지지 못한 나라’인 일본이 생존권을 확보하려고 추구하는 한 제2차 세계대전은 회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서는 일본이 조선과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고, 남양군도를 위임통치령으로 확보하고, 이어서 만주와 중국으로 자신의 세력권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국가의 성장에 따른 생존권의 확대에 다름 아니라는 해석들이 그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1931년 만주사변 이전 수준에서 팽창정책을 멈췄어야 했다는 해석


이에 대해 일본 학계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어쩌면 회피할 수 있었을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이상주의적 노력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이 전쟁을 피하기 위한 어떤 선택지가 있었을까? 그 힌트를 패전 후 일본의 전후 재건 과정에서 연합국이 일본에 설정한 복구의 수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일본이 서구열강에 군사적으로 도전하기 이전 수준, 즉 1931년 만주사변 이전의 수준이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일본이 1931년 이전의 수준에서 더 이상의 팽창정책을 멈추었다면 전쟁을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대륙정책에서 추진했던 중국 침략, 남방정책의 귀결이었던 동남아시아 침략과 최종적으로 미일전쟁 등이 회피 가능했다면, 일본은 지난 전쟁에서 패하여 국토가 초토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이 아시아로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1930년대에 들어가 미국과의 경쟁과 대립보다는 국제협조를 통해 일본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려는 구상이 주류로 채택되었더라면, 일본은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았을 것이며, 온전히 인구와 국토를 보전하게 되었으므로,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1931년 이전에 일본은 이미 한반도와 타이완을 식민지로, 남양군도를 위임통치령으로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당시의 서구열강은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 일본인에게는 행복한 이 결말에 따르면 한반도는 여전히 식민지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당시의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었던 일본이 서구열강에 대해 아시아 인종 배척 문제를 제기한 주된 주창자였다는 사실을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이런 해석 속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이미지와 이미 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은 침략의 이미지 사이의 충돌 또한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를 독립시키고 우호관계를 형성해, 전쟁을 피해야 했다는 구상


여기에서 우리에게는 식민지 문제에 관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필요하게 된다. 일본이 국제협조주의를 견지하여 전쟁을 회피할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일본은 군사적으로 점령한 식민지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었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조선과 타이완 사람들의 저항에 직면해 있었다는 점은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이다. 일본이 회피해야 할 전쟁이 하나 더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는 소수에 불과했고, 결국 일본의 국가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았으나, 조선이나 타이완과 같은 식민지를 직접 점령하고 ‘경영’을 하는 것보다, 식민지를 독립시키고 이들 나라들과 정치적, 경제적인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일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구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들을 전개했던 일본인 중에는 식민지에 대한 동정이나 세계동포주의 등과 같은 이상주의자도 존재했었지만, 이러한 생각이 반드시 윤리적일 필요는 없었다. 당시 세계에서 이미 구식민지적 군사점령은 시대에 뒤쳐진 선택지였다. 군사점령은 그 통치비용뿐만 아니라, 식민지 해방운동 세력의 저항에 직면하여 이를 진압해야 할 부담이 막중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서구 열강은 오히려 식민지를 세력권 내의 독립국으로 두어 정치경제적 우호 세력으로 붙잡아 두는 것이 저비용 고효율적이라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고, 또한 세계 대공황 이후 아메리카, 유럽, 소련, 아시아 등 지역 단위로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에도 부담감이 적은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군사점령 상태를 유지하는 식민지도 존재했으나, 서구 열강은 자신의 식민지를 영연방과 같은 형식을 취할망정 독립시키거나, 독립을 약속하여 자신의 우호 세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었다는 점도 선택적이기는 하지만 또한 사실이었다. 만약에 일본이 조선에 대해 식민지 지배를 포기하고 조선인의 독립 욕구를 받아들여 이웃 국가로서 공존을 도모할 수 있었다면 전쟁을 완전히 회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44년 10월 미군이 제작해 한국 민간인들에게 뿌리려고 했던 선전 전단(Leaflet KA-1, 왼쪽), 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이 대만에 투하했던 선전 전단(Leaflet 2059, 오른쪽). 출처_OWI Pacific - Six Decades Ago (psywarrior.com)

미일 관계만이 아니라 한국, 타이완, 중국 등 아시아를 넣어서 보면


일본에서 전개된 ‘피할 수 없었던 전쟁’이나 ‘피할 수 있었던 전쟁’ 같은 전쟁관의 충돌 문제는 사실은 미일 관계에 국한된 논의라는 한계에 빠진다. 이 한계는 일본 내부에 초점을 맞추면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구 열강들과의 협조를 중시한 일본에서 국제파라고 불리는 그룹에 국한된 논의의 한계이기도 하다. 미일 관계에 더하여 한국, 타이완, 중국 등 아시아를 넣어서 위와 같은 논쟁을 전개하면, 새로운 또 다른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강대국 중심의 미일 양국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 단위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했는가라는 측면에서 분석해 본다면, 이 전쟁이 과연 회피 가능했는가, 회피할 수 없었는가라는 논쟁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대한 일본 학계의 논쟁을 살펴볼 수 있는 책들. 왼쪽은 『그럼에도 일본인은 ‘전쟁’을 선택했다それでも、日本人は「戦争」を選んだ』(카토 요고) 원서이고, 국내에서 『일본은 왜 점점 더 큰 전쟁으로 나아갔을까』로 번역되었다. 오른쪽은 『피할 수 있었던 전쟁: 1920년대, 일본의 선택避けられた戦争ー一九二〇年代・日本の選択』(유이 다이자부로)로 국내 미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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