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6
주체사상은 세계 철학계에서 변방에 불과하며, 이를 신봉했던 일군의 운동가들은 당시 군부 정권 하에서 있었던 일종의 소극이었다. 오늘날 이들을 잊지 못하고 가장 닮은 이들은 극보수세력, 즉 『애국세력』이라고 분석한다.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째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초현실적인 '엑스터시'에 빠졌나?
입춘(立春)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한겨울이다. 지난번 칼럼 '『애국세력』을 찾아서' 제하(題下)의 글 이후,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과 일련의 소동을 보면서 이른바 ‘애국세력’에 대한 내 생각도 다소 바뀌었다. 우연히, 혹은 개인적인 인연을 통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몇몇 분들의 면면과는 너무 다른 무논리와 무지성의 대환장 파티! 사회체제의 안녕을 담보하는 보수적 본성을 뛰어넘어, 사법부와 경찰을 적으로 돌리는 단호한 폭력성. 용산 일대(전쟁기념관에서 대통령관저에 이르는) 인도 한쪽에 놓인 수많은 화환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당집 안마당 같기도 하고, 수령이 죽고 나자 슬픔에 빠진 평양 거리 같기도 하고. 이 국면을 조종하는(본인은 그럴 군번이 아니라지만) 목사 전광훈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어떤 선을 훌쩍 뛰어넘어서 초현실적인 ‘엑스터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강사(이런 사람이 가르친 한국사라니!) 전한길의 경우엔 기본적인 팩트조차 틀린 얘기를 떠든다. 소위 ‘부정선거음모론’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실제 선거와 투개표 현장을 들여다보면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얘기라는 것을 단박에 알게 된다. 그분들이 알고 이런 식이라면, 사악한 것이고, 모르고 이런 식이라면 무지한 것이다.

『종북세력』이 암약하는 혼탁한 세상이란 분들에게
아마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 그러니까 뉴라이트로부터 아스팔트 보수에 이르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이른바 『종북세력』이 암약하는 혼탁한 세상이다. 북한의 지령을 받는 간첩이 포진한 야당과 언론과 유투버 세상. ‘주사파’가 지도하는 비밀스러운 조직의 음모로 이루어진 현대사. 이런 ‘악의 세력’에 맞선 성전(聖戰)! 뭐 이런 생각과 세계관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가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2년 히트작 ‘환상속의 그대’.
그래서 내가 이해하는 『종북세력』의 실체에 관한 얘기를 몇 차례 해볼까 한다. 부득이하게 옛날 얘기를 해야 되고, 아마도 몇몇 분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얘기라는 점을 깔고 들어주시기를.
주체사상은 변방의 북소리
가장 먼저 ‘주체사상’.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체사상(다르게는 사람 중심의 지도철학)은 신봉자에겐 외람되게도, 세계 철학사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는 변방의 북소리일 뿐이다. (아마 유일한 국제적 예외는 김일성과 친했다는 무가베정권의 짐바브웨 정도일까.)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을 강조하는 기본적인 논의에서 품성론과 수령론에 이르는 이 철학체계는 언뜻 초기 맑스 사상의 휴머니즘적 면모와 비슷해 보이지만, ‘철인왕의 통치’로 귀결되는 플라톤 정치철학의 변형에 불과하다. 남한에서 출간된 거의 유일한 연구서인 『한국의 변혁운동과 사상논쟁』(방인혁, 소나무, 2009)에 따르면, 60년대 이른바 ‘재건기’ 북한에서 펼쳐진 ‘천리마운동’(지도자 김일성이 한두 달씩 지방에 상주하며, 관료주의와 싸워 성과를 냈다는)의 성과를 반영한 사상으로 출발했다. 물론 이 사상을 전일적 지도체계화시킨 가장 큰 공은 황장엽에게 있다. 모스크바대학교 출신의 철학자 황장엽은 오랫동안 북한 노동당의 사상담당 비서로 일한 최고 엘리트였고, 우리가 기억하는 대로 1997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황장엽은 남한 망명 이후, 북한붕괴론과 반민주주의 담론

하지만, 주체사상에 관한 가장 정식화된 교재는 김정일이 1982년에 썼다는 「주체사상에 대하여」 그리고 1986년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하여」라는 논문이다. 80년대 중반, 열렬한 학생운동가였던 내가 주체사상을 접하면서 가장 주의 깊게 봤던 것도 약칭 ‘대하여’ 논문들이었다. 희한하게도 이 논문들에서 김정일은 한 사회과학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을 취한다. 알고 봤더니 그 사회과학자는 황장엽이었고. 그가 남한에 망명하여 2010년 죽을 때까지 했던 얘기들은 오늘날 극보수우파들이 좋아하는 ‘북한붕괴론’(절대로 북한을 지원하지 말아야 흡수통일할 수 있다는)과 ‘반민주주의 담론’(기본적인 시위,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들이었다.
요령부득 중언부언, 일종의 종교
8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주체사상의 세례를 경험한 기간은 기억하건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하여’ 논문을 보다가 지하에서 떠돌던 이른바 '주체총서'를 어찌어찌 구해서 읽어 본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요령부득’(要領不得)이었다. 앞에 했던 얘기를 중언부언하다가 뭐가 뭔지 모르겠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구석은 ‘수령론’이었는데, 무오류의 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으로 귀결되는 결론에서 이 사상은 일종의 종교이거나, 초대 문교부장관이었던 안호상의 ‘일민주의’, 혹은 70년대 유신체제를 떠받친 박종홍의 ‘한국적 민주주의’론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시간이 흘러서 9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체제를 설명하는 ‘백두혈통론’(백두산의 정기를 받은 김씨일가만이 통치할 수 있다는)까지 가면, 이건 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80년대 중반 주체사상 신봉 운동가들은, 당시 상황이 빚은 일종의 소극(笑劇)
문제는 이러한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일군의 운동가들이 80년대 중반에 적어도 학생운동의 주류를 일부 장악하고 학생대표조직(전대협에서 한총련에 이르는)에 영향을 끼친 바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극보수우파들(이중에는 이 당시 주체사상에 경도된 경험을 가진 분들도 많은데)은 여기에서부터 근거와 경험을 내세우며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이 분들의 생각 속에서 당시 이 사상의 싹을 품은 세대가 성장해서 정치와 언론계와 시민운동을 장악했고, 오늘날 『종북세력』이 넓고 깊은 뿌리를 뻗은 거대 세력이 되었다는데. 정말로 그러하다면, 대단한 북한에, 대단한 주체사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런 생각들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환상에 불과하다. 시쳇말로 쌍팔년도, 남한 체제가 폭압적인 파시즘에 기반한 군부정권이었을 때, 아직 김일성의 북한이 그럭저럭 버틸만 했을 때에 벌어진 일종의 소극(笑劇).
주체사상 신봉자를 잊지 못하고 가장 닮은 이들은, 『애국세력』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일군의 운동가들이 등장하고 세력을 확장한 것인가? 다음 칼럼에서 그 얘기를 할 것이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경제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되고, 민주주의 체제가 공고히 되면서 이 세력은 사실상 소멸했다. 아직까지 그들을 잊지 못하고, 그들을 가장 많이 닮았으며, 그들을 뛰어 넘어 법원과 경찰을 부수고 때리는 분들이 바로 극보수세력, 혹은 『애국세력』이다. 12.3 내란사태를 증언하는 국정원 차장 홍장원이 일갈한 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곳은 평양이고, 보위부다’는 말은 적절한 비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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