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7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째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트럼프가 당선되어도
나는 이 글을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속보를 들으며 쓰고 있다. 8년 전, 그의 당선이 던져 준 충격과 당혹감에 비하면 이번 그의 승리를 바라보는 느낌은 담담하다. 결국 ‘제국으로서의 미국’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 동부 WASP 엘리트의 리더쉽이 아니라 ‘비즈니스맨’으로서의 트럼프 체제가 강조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국제관계에서 세계와 우리에게 미칠 파장에 대한 염려가 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상태를 넘어서 강요된 타협으로 종료될지, 이미 상당 부분 ‘디커플링’된 미중관계가 좀 더 심각한 국면으로 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지난 2019년 2월과 6월, 베트남과 판문점에서 각각 회동을 가진 바 있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인연이 오늘날의 남북관계나 한반도의 운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물론 별로 기대는 되지 않는다. 둘 다 SHOW MAN으로서의 SHIP에 충실할 뿐)
북한은 주적으로서의 가치도 상실
오늘날 우리에게 북한은 더 이상 형제국가라거나 같은 민족이라는 감흥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처럼, 주적으로서의 강렬한 증오나 경쟁의식을 느끼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북한은 애증을 느끼게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귀찮은 이웃, 불편한 3세계 국가를 넘어서 박격포 포살(砲殺)과 쓰레기 풍선을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의 뚱땡이가 교주로 있는 사이비 종교단체처럼 여겨진다.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한반도 통일을 이루기 위한 플랜을 고민하지 않으며, 평화정착을 위해 필수적인 장치나 프로세스를 두어야 할 필요조차 과거처럼 느끼지 않는다. 남은 것은, 일종의 군사적 대응조치나 난민수용 문제 정도일 것이다.(탈북민을 관리하는 것, 여전히 남아 있는 대북 관련 관료기구의 수명 연장도 포함해서) 한마디로 이미 북한은 주적으로서의 가치도 상실한 하나의 문제일 뿐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30배 차이
물론, 이런 인식이 확산되는 데는 남북한 간의 경제적 격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인구 규모 2배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대략 5천2백만 대 2천7백만) 국가예산은 우리의 2%이고(2022년 기준 12조 내외), 교역 규모는 460배 정도로 벌어져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남한이 4725만원이고 북한은 159만원 정도로 대략 30배의 차이가 난다. 기껏해야 대구시 정도의 규모(2025년 11조 예산편성)를 가진 지독하게 가난한 국가가 우리의 이웃이고 형제국가다. 핵을 개발하고 위성을 쏘아 올리는 걸 보면, 용하다고 해야 할지, 기기괴괴(奇奇怪怪)하다고 해야 할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정도의 품격도 이제는
하지만, 이런 차이는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중년 이상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청년들은 잘 모르는) 해방 이후 북한에는 일본제국주의가 남겨 준 풍부한 전력과 탄전, 중공업 기반의 경제시스템이 있었지만, 남한에는 농업과 일부 경공업만이 존재했다. 수도 서울의 전력은 이북에서 끌어 쓰는 전기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그래서 북한이 전력을 일방적으로 끊는 순간, 러시아의 가스가 끊긴 독일과 같은 꼴이 되었다) 심지어 1953년, 한국 전쟁의 종전까지 미국이 가한 대규모 폭격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산업기반이 제로가 되었지만, 소련의 저렴한 에너지 공급과 특유의 사회주의 분업체제 속에서 1980년대 말까지 북한은 적어도 의식주의 기본적인 공급은 보장되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체제를 그들 식으로 ‘우리식 사회주의’라고 하든, ‘은둔형 김씨 왕조국가’라고 하든, 남한에게 그들은 주적으로서 증오를 불러일으키면서도,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할 형제이자 운명공동체였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 이후 연방제 혹은 연합제를 기반으로 한 통일 플랜이 (서로의 정치적 필요를 위해 끊임없이 재창조되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2000년 ‘6.15 공동선언’에 이르는 역사적 궤도의 기본 축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대북 경수로 지원 프로그램’이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이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우습게도 천박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명박정부의 ‘비핵 개방 3000’(핵 포기하면 4딸라 아닌 3천 딸라)이나,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떡 줄 사람이 누군지 모르거나, 소는 누가 키울지 모를)조차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의 품격이 있었다.
이미 2민족 2국가라는 전제로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윽고 이 모든 것은 과거이고, 빛바랜 기억일 뿐’이다. 김정은은 동생인 김여정의 입을 통해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1민족 2국가’라는 오랜 공통의 인식을 파기했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괴뢰국가라고 부르는 것보다 나은 걸 수도 있고, 헌법상의 영토에 관한 규정을 바꾼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일련의 사태가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이미 우리는(그리고 그들 역시) 한반도에 2민족 2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살고 있으며, 이것을 매우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런 언술이 반통일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겐 죄송한 얘기지만. 아마도 현빈과 손예진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류의 작품은 앞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작위로서 북한을 대하던 시절은 과거일 뿐
이런 전제를 깔고 북한 특수부대의 우크라이나 전쟁 투입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한 마디.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아마 북한은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에너지와 식량 그리고 +@(핵기술이거나 위성 관련 기술이거나)를 대가로 병력을 투입했을 것이다. 그들은 마치 우리가 50년 전에 베트남으로 파병해서 피 묻은 달러를 벌었던 것처럼(물론 자유세계를 지키려는 숭고한 의미도 있겠지만), 혹은 곤궁한 생계를 극복하기 위해 교황청의 경호병이 된 스위스인들이나, 대영제국의 기동부대가 된 구르카족처럼 용병으로 갔을 뿐이다. 그들의 파병이 남길 전쟁의 비극과 상흔(傷痕)과는 별개로,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적 지원을 넘어서 파병을 운운하는 자들은 제발 모여서든, 혼자서든 조용히 자원해서 가시길 바란다. 명토 박아 얘기하건대, 그 전쟁은 우리 전쟁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길을 담담히 나아갈 뿐이다. 우리 민주주의를 더 공고히 하고, 더 인간적이며 더 환경친화적인, 지속가능한 시장경제를 구축하는 것. 이 길만이 유일하다. 작위(作爲)로서 북한을 대하던 시절은 달콤했지만 씁쓸한 과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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