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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뒷날 풍경ㅣ투키디데스와 전쟁 애호가들 1

 

최은 2024-08-01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째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결말


십수 년 전에 존경하는 번역가인 故 천병희 선생(1939~2022)이 완역한 『펠로폰네소스전쟁사』(숲, 2011)를 읽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그 고전! 이전에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호기롭게 도전을 해본 것이다. 당연히 다 읽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끝까지 보는 데 1년 이상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수십 개의 도시국가들과 수백 명의 등장인물들이 내린 무수한 선택들이 엮어 내는 장대한 드라마라는 것이 내 인상이었다. 기원전 400년대 중기의 인물인 투키디데스(원 발음은 투퀴디데스에 가깝지만, 보통 투키디데스로 말하기에 이하 통일)가 아테네의 장군으로 뽑힌 게 기원전 424년이었다. 전투에서 스파르타에 패한 후, 반역죄와 함께 20년간 추방령을 선고받은 그가 대략 기원전 411년경까지 쓴 것으로 보이는 게 이 『펠로폰네소스전쟁사』이다.


물론 우리는 이 전쟁의 결말에 대해 알고 있다. 아테네가 졌고, 스파르타가 이겼다. 동맹도시들의 운명 역시 여기서 갈렸다. 그리고 전쟁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쟁투 속에 혼란에 빠진 그리스반도의 주인은 야만인 취급을 받던 마케도니아였고, 알렉산더의 대정복 이후 결국 헬레네세계는 로마제국의 변방이 되었다. 역사의 신은 그리스를 지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 의회 건물 앞 투키디데스 동상. ©Gerd Eichamn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Wien-Parlament-146-Thukydides-2008-gje.jpg)


미중갈등과 투키디데스의 함정


대략 2018년 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미중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초기엔 무역분쟁이었지만 트럼프행정부 당시, 산업정책 일반으로 확대되었고, 바이든행정부에 들어서는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군사적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아마도 현재 진행 중인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건, 카멀라 해리스가 당선되건 절대로 변하지 않을 두 가지는 친이스라엘 정책과 미중갈등일 것이다.(개인적으로 트럼프가 되지 않길 바라지만, 그가 되면 확실히 화끈한 지옥이 열리긴 할 것 같다)


투키디데스가 자꾸 소환되는 시점은 바로 이 미중갈등이라는 역사적 국면을 설명하면서부터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ies Trap)이란 사전적으로 ‘기존의 국제 질서를 주도하던 강대국이 약화되고 신흥 강대국이 등장할 때, 두 세력 사이의 패권 교체는 전쟁을 포함한 직접적인 충돌을 수반한다’는 주장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 등장한 개념이지만 이 용어가 대중화된 것은 그레이엄 앨리슨의 2012년 파이낸셜 타임즈 기고라고 한다.


미국의 학계와 언론계에서 첨예화되고 있는 미중갈등을 해석하는 기본 틀이 이것이다. 1985년 플라자합의(플라자호텔에서 모였다해서 붙혀진)를 통해 일본의 약진을 저지해버린 미국이 2010년대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때려눕히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압박을 가하는 국면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이다.


한국의 학계와 미디어, 유튜브 채널을 통해 널리 전파되는 이 주장이 정말 맞는지, 맞다면 그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정말 미국이 1위의 초강대국 지위를 계속 유지할 만큼 체력이 강한 건지, 중국이 계속된 부진과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댈지 어떨지 우리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정작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았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투키디데스는 정해진 결말을 향해 현실을 재구성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페리클레스를 강력히 지지했고, 아테네의 명분과 이익을 위해 전쟁을 강력히 옹호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투키디데스는 이러한 과정이 어떤 의도나 계획에 의하여 선험적으로 결론 내려진 것이 아니라, 무수한 선택과 오해가 쌓이면서 벌어졌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플라톤은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를 빌려 페리클레스를 비판한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정의 대표와 같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아테네예외주의—미국예외주의와 비견되는—의 강력한 주창자이기도 하다)


미국의 중국 디커플링은 진행 중


중국 전문가로 명성이 높고,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이철 박사가 쓴 두 권의 책은 이런 ‘투키디데스의 함정’론에 입각한 전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디커플링과 공급망 전쟁: 미중전쟁과 뉴노멀 그리고 위기의 대한민국』(처음북스, 2023) 『이미 시작된 전쟁: 북한은 왜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가』(페이지2북스, 2023) 이 책들에서 이철 박사는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고자 적극적인 디커플링(비동조화)정책을 펴게 된 연원과 과정을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이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이래 20여 년간, 세계 경제의 공급망 구조는 각지의 자원을 최대한 빨아들인 중국의 중간재 생산과 수출을 통해 구축되어 왔다. 하지만 2018년 트럼프행정부는 강력한 무역제재와 함께 이른바 ‘리쇼어링’(주요 제조업 기지를 국내로 재소환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국제질서를 재구축(뉴노멀)하고자 했다.


미중갈등과 한반도 전쟁 위기를 다룬, 이철 박사의 책들


2020년 이후 바이든행정부 역시 그 기조를 유지했다. 특히 반도체공급망과 관련해서 결코 기술적 우위를 내놓지 않겠다는 원칙을 강조하였고, TSMC와 삼성이 미국 내에 공장을 지을 것을 강권한 바 있다.(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뉴노멀정책에도 불구하고 디커플링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2024년의 미국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지만, 그 주요 생산품은 종이(달러로 표시되는)와 기름(오일과 가스)과 농산물(밀과 옥수수, 대두류)이다. 몇 안 되는 미제 산업을 대표하는 상업용 항공기시장에서 보잉은 에어버스에 밀려서 형편없이 추락하고 있다. 아이폰과 테슬라전기차는 여전히 중국에서 제조되고 있고, 비록 금 매입을 큰 폭으로 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채의 주요 매입자는 중국이다.(2024년 현재 1위는 일본으로 약 1조2천억 달러이며 중국은 약 8천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즉, 디커플링은 진행 중이지만, 아직 결정적인 국면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한반도에서 전쟁몽은 무책임하다


문제는 이런 생생한 현실인식의 결론이 엉뚱하게 한반도의 전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런 시나리오. 미중갈등 격화 → 완전한 디커플링 → 중국의 대만 침공 → 북한의 도발 → 미국, 일본의 참전 → 중국의 최종적인 패배와 한반도 통일이라는 환상의 시나리오다. 이런 역사적 전개가 가능한지, 정말 1위와 2위 국가들 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는 다음 편에 쓸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지점은 이런 식의 전쟁몽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이철 박사와 같은 경제전문가들, 일부 보수파 언론인과 평론가들, 중국과 북한 때리기로 조회수를 올리고 싶은 유튜버들은 정말 진지하게 전쟁을 생각하는 걸까? 우크라이나전쟁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분쟁에 더해 제3의 전선이 서태평양에서 펼쳐지는 것을 원하는 걸까?


다만 확실한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전쟁애호가들의 기대대로 형편없는 북한의 군사력을 쉽게 제압하고 북진을 감행하는 최선의 시나리오에서조차 우리는 엄청난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쌓아올린 이 모든 성과들, 소중한 사람들을 얼마나 잃고 기껏 통일한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나는 도저히 짐작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투키디데스는 개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전쟁이 뭔지 몰라 전쟁이 싫지 않은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권2, 8p) 우습게도 한국에선 늙은이들이나 외국영주권자, 혹은 병역기피자일수록 전쟁을 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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