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3
제종길 박사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해양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한국해양연구소에서 일했다. 2001년 대통령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바다포럼'과 '국회기후변화포럼'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환경기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했다. 2008년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만들었으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2010년 한국 생태관광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한국보호지역포럼 대표를 2014년까지 맡았다. 2014년 제13대 경기도 안산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끌었다. 2019년부터 2년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2021년에는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도시인숲 이사장과 수중환경과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숲의 도시』(2022), 『도시재생학습』(2018), 『도시 견문록』(2014), 『도시 발칙하게 상상하라』(2014), 『환경박사 제종길이 들려주는 바다와 생태이야기』(2007), 『우리바다 해양생물』(공저, 2002), 『이야기가 있는 제주바다』 (2002) 등이 있다.
산호초의 위기는 전복의 위기
재작년 겨울에 그동안 수집했던 전복 껍데기와 전복이 소재가 된 미술품을 가지고 ‘전복 전’을 열었습니다. ‘달팽이 전’, ‘조개 그림 전’에 이어 세 번째 전시였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여러 종류의 전복을 대하면서 전복 연구가 더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수중탐사에 동참했던 원로 다이버들에게도 자세한 이야기를 안 했지만, 여행의 숨은 목적에는 전복 표본 구하기가 있었습니다. 껍데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왜냐구요?” 오랜 연구 생활을 한 연구자로서 직감적으로 산호초의 위기가 전복의 위기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앞의 연재를 읽으신 독자들도 일부는 눈치를 챘을 겁니다. 열대 산호초가 수온 상승에 못 이겨 북상하면 전복의 서식지가 파탄이 나서지요. 우리 바다의 전복이 산호초보다 더한 걱정거리로 다가왔습니다. 전시회를 하는 동안 이러한 우려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복이 동아시아의 수산자원과 해양 문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양생물이고, 제주 바다가 몇 남지 않은 생산지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전복은 모두 다섯 종류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42년 일본인 학자들에 의한 글 ‘조선 근해에서의 전복의 분포(朝鮮 近海に於けるアハビの分布)’에서는 네 종을 언급하였는데 학명의 변화는 있으나, 참전복(Haliotis discus), 왕전복(H. madaka), 말전복(H. gigantea), 캄차카전복(H. kamtschatkana) 등입니다. 앞의 세 종은 한반도 남쪽 해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캄차카전복은 알래스카 연안을 비롯한 북태평양의 한류 종으로 북한 해역에 분포하는 이 종을 저자들이 확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현재 일본이나 한국의 패류 도감에는 캄차카전복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다섯 종류인가? 참전복은 두 아종―H. discus discus와 H. discus hannai로 나누고 있는데 유전적인 차이는 없고, 분포와 생태적 민감성에 차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두 나라의 도감이나 연구에서 두 아종을 나누어 쓰고 있어 그대로 따랐습니다. 후자의 아종은 상대적으로 수온이 낮은 곳에서 자라고 있어 ‘북방전복’이라 하고 전자는 그대로 참전복(어떤 이는 둥근전복이라 하는데, 북방전복을 둥근전복이라 하는 이도 있어 약간의 혼란이 있음)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다섯 종류가 됩니다.
독자 중에는 “오분자기는 전복이 아닌가요?”라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물론 전복과에 속합니다. 오분자기와 마대오분자기, 두 종은 위 다섯 종류의 전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분자기류는 호흡공이 7∼9개인데 다른 전복류는 4∼5개입니다. 전복류에서 구멍 개수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형태 차입니다. 오분자기류는 크기가 작고 난류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주 바다에서 다산하였지만, 현재 남획으로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말전복과 왕전복은 한국과 일본해역 고유종
이 글에서는 크고 온대 해역에서 사는 종이라 판단하는 세 종—참전복, 왕전복, 말전복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들 종은 성체 껍데기 길이가 20cm가 넘으며, 살도 많고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어패류보다 귀하게 취급받았습니다. 적어도 여러 천 년 이상 주목받은 해양생물이었을 것입니다. 자개의 주재료기도 했고, 긁게나 칼의 대용으로, 접시로 쓰였으며, 약재이자 제례용으로도 이용되었습니다.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옛 지리서에서도 전복은 중요한 진상품이었고, 중국에까지 수출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세 종의 분포를 점으로 찍어 보면 참전복은 한국과 일본의 전 해안에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반면에 왕전복과 말전복은 제주도와 일부 남해안의 섬에서 보이는데 제주도를 제외한 곳에서의 출현은 어쩌다 소문만 들리는 정도입니다. 일본의 동해안에서는 규슈에서부터 도쿄의 동쪽 지바현의 보소반도(房総半島)와 그 바로 위쪽 현인 이바라키현까지이고, 일본의 서해안도 비슷한 위도까지로 보이며, 대마도와 이키노시마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두 종은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해역에서만 발견됩니다. 이런 종을 해역 고유종이라 합니다. 국제적으로 보호 대상 종이기도 합니다.
제주를 비롯한 온대 해역권이 왕전복과 말전복의 바다
참전복을 포함하여 세 종은 유전적으로 가까운데 참전복과 왕전복이 더 가깝고, 말전복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참전복은 왕전복에서 분리되어 환경에 적응하며 여러 해역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가정을 해 봅니다. 세 종의 분포해역이 구로시오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구로시오는 이바라키현 바로 위 현인 후쿠시마현에서 한류와 만나 태평양으로 우회해 나갑니다. 해양 문화학자들은 바로 여기까지를 ‘구로시오 문화권’으로 보고 있습니다. ‘히다카 우마시(日高 旺)’의 『구로시오의 문화지(黑潮の文化誌)』에서는 규슈부터 바로 이곳까지와 난세이제도(南西諸島, 규슈 남쪽에서 대만에 이르는 사쯔난제도와 류큐제도를 포함하는 남서 방향으로 늘어선 섬들)를 구분으로 문화권을 나누었습니다. 일본 서해안에서는 가나자와(金沢) 시 해안까지. 바로 온대 해역과 아열대 해역입니다. 경계는 규슈 남쪽입니다. 제주 바다를 비롯한 이 온대 해역권이 앞서 말한 가정이 맞다면, 두 종의 대형 전복—왕전복과 말전복의 바다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전복의 바다’라 합니다.
전복의 바다는 해녀들의 중심 활동권
해류는 생물들만 실어 나르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도 이 해류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한 해류가 움직이는 바다와 섬에는 공통의 특성을 가진 문화가 발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태평양에선 일반적인 해양의 문화 현상입니다. 다시 전복 이야기로 돌아와서 ‘전복의 바다’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던 두 종은 장엄한 크기와 빛깔을 가지고 있으며, 불로장생 묘약이자 신들도 즐겨 먹는다고 하여 중요한 제례나 공양에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전복들을 채취하는 전문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전복의 바다와 해녀들의 중심 활동권이 거의 일치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의 대마도, 이키노시마, 이즈반도에서 발견되는 구로시오와 연관된 해양 문화 중 하나입니다.
전복의 바다를 지키는 방법을 찾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온 상승은 산호초를 초토화하고 있으며, 살던 곳을 피해 북상하는 조초산호(돌산호라 해도 무방)들에 의해 해조류가 사는 암반이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연안에서는 전복들의 먹이가 되는 갈조류의 서식밀도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언론에서도 그 심각성을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해조류 전문가인 강정찬 박사에 따르면 제주도에서도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이나 수중 암반에서는 아직 감태 등이 잘 버티고 있는데 도시나 큰 마을 앞바다에서는 갈조류 군락을 이미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배출되는 유기물이 수온 상승의 피해를 가중한 것이라고 걱정해 봅니다. 제주도가 대마도와 이키노시마보다 갈조류가 아직 더 잘 버티는 이유와 전복의 바다를 지키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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