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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남행(南行) 수중 탐사 ⑥ 같지만 다른 이키노시마

 

2024-10-04 제종길


제종길 박사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해양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한국해양연구소에서 일했다. 2001년 대통령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바다포럼'과 '국회기후변화포럼'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환경기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했다. 2008년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만들었으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2010년 한국 생태관광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한국보호지역포럼 대표를 2014년까지 맡았다. 2014년 제13대 경기도 안산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끌었다. 2019년부터 2년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2021년에는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도시인숲 이사장과 수중환경과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숲의 도시』(2022), 『도시재생학습』(2018), 『도시 견문록』(2014), 『도시 발칙하게 상상하라』(2014), 『환경박사 제종길이 들려주는 바다와 생태이야기』(2007), 『우리바다 해양생물』(공저, 2002), 『이야기가 있는 제주바다』 (2002) 등이 있다.

 

이키노시마에는 우리를 반기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2009년 첫 방문 때에도 남해안의 한 섬을 방문한 것처럼 마음이 포근하고 둥글둥글한 그 자연이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주민들의 친절도 좋았고, 개발되지 않은 해안 풍경도 그만이었습니다. 최북단 산호초가 이 섬에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초청해 준 한·일 연구팀이 마냥 고마웠습니다. 이 연재도 그들로부터 받은 영감과 지식 그리고 이 특별한 인연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표현 중의 하나입니다. 그보다 10여 년 전에 대만에 가까운 일본 섬들 중 하나인 이시가키지마(石垣島) 산호초 연구에 초청해 준 과학자들도 같은 국립환경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이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그때 이바지하지 못한 제 몫을 해보려는 기원을 담기도 했습니다. 이번 이키노시마 방문에는 일정이 맞지 않아 동행한 다이버가 한 명뿐이어서, 수중 일과 겸업할 분야를 찾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태관광 분야와 합동 탐사를 하려고 두 명의 전문가에게 요청했습니다. 모두 네 명으로 팀을 꾸렸습니다.


여전히 쓰시마 서쪽과 동쪽의 해수온이 다를까?


여러 경로를 통해서 다이빙 가게를 찾았지만, 현지에는 없었고, 굳이 하려면 규슈의 후쿠오카(福岡)에서 동반해서 가야 하고, 다이빙하려는 장소에는 당시 산호초 보호를 위해 수중탐사를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다이빙은 포기했지만,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싶었습니다. 일단 섬에 있는 지인의 안내를 받기로 하고 떠났습니다. 쓰시마를 거치기보다 후쿠오카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가는 게 시간과 경비가 절약되었습니다. 두 섬—쓰시마와 이키노시마는 나가사키겐(長崎県)에 속해 있습니다. 규슈의 서쪽 해안지대와 쓰시마와 이키노시마 등 여러 섬을 포함하고 있는 겐(현県)입니다. 이제 우리는, 2001년에 발견된 이키노시마 산호초와 2012년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쓰시마의 산호초가 아주 오랫동안 존재했는데, 같은 조초산호의 산호초인지 그리고 그 생성 역사가 유사한지가 궁금해집니다.

앞의 연재 쓰시마 편에서 2013년의 8월 수온 30℃ 등온선이 섬의 서쪽 해안 인근에서부터 낮아지고, 이키노시마를 포함한 섬의 동쪽 해역은 다 같은 수온대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제종길의 박사학위 논문(1993)에서 대한해협 저층 평균 수온의 분포도 역시 쓰시마를 경계로 동서가 달랐습니다. 서쪽은 수온 구배(정도의 기울기)가 크고 확실하지만 동쪽은 없었습니다. 쓰시마난류의 특성이 미친 영향임을 배제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이 두 섬을 동해권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작 구배가 큰 서쪽 상황은 동해에서 내려오는 한류나 저층 냉수괴 확장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견해는 『한라일보』 연재에서 제주도 주변 해역이 이 두 섬과 다른 것에 대한 설명으로 약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구로사키 반도 남쪽 해안에 있는 산호초를 관찰하기 위해 캠프촌에서 카약을 빌려 창경으로 살펴보았다. 사진 민병근

쓰시마와 이키노시마의 산호초는 매우 유사하다


이키노시마 방문은 쓰시마 두 번째 방문 한 달 후인 9월에 이뤄졌습니다. 도착 다다음 날 아침에는 산호초가 있는 고노우라마치(郷ノ浦町)의 구로사키(黒崎) 반도 남쪽 해안에 있는 캠프촌인 이키데아이노무라(壱岐出会いの村)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기록에 있는 산호초 구역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촌장으로부터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듣고 카약을 빌려 창경(물속을 들여다보는 나무로 만든 사각형 통으로 한쪽에 유리가 달려 있음)으로 산호초를 관찰했습니다. 시야가 아주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내만이라 잔잔하고 산호초의 정상부가 수심 2m도 안 되어 산호초의 색과 형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갈색의 덩어리형 파비아(Favia, 일본명 키쿠메이시 キクメイシ) 속 중심의 산호초가 분명하게 있었고, 평균해수면으로부터 수심 약 10m까지 경사를 이루고 있음을 자료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경사면에서는 정상부와는 달리 에키노필리아(Echinophillia) 속 산호 등이 우점했습니다. 산호초는 암반에서 성장한 것이었습니다. 쓰시마나 이 섬의 산호초의 종 조성과 기본 구조가 같았습니다. 내만의 겨울철 수온 14°C 미만인 차고 흐린 물에서 살아온 산호초였습니다. 적어도 4000년 이상을 견디어 왔으니 안정된 생태 시스템을 갖춘 산호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진은 캠프촌으로부터 사용 허락을 받은 것으로 산호초의 정상부이다. 이키노시마의 오래된 다갈색의 덩어리형 산호초는 자료로 검토해보니 큰 차이가 없었다. 사진_이키데아이노무라 캠프촌

전복이 문화로 남아 있어


위 두 문단의 결론은 두 섬의 지리적 위치로 보면 환경적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산호초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어 해양환경 측면으로도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키노시마에서는 현지 주민의 안내로 전 해안을 둘러보고 어업인 대표와 지역 언론 기자들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형 해조류의 소실과 새로운 고수온에 적응하는 산호를 비롯한 저서생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수산물, 특히 전복류의 생산량 감소가 매우 크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식당 주인은 “소라와 전복이 많이 줄었는데 이젠 전복이 거의 보이지 않고 소라만 조금씩 잡힙니다. 온난화의 영향이 크겠지만 해저 모래 채취와 남획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섬의 어업협회 회장은 “20여 년 전부터 해조류가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전복 생산량도 줄었습니다. 수온이 28℃가 넘으면 해조류의 부착기가 썩기 시작합니다. 29℃가 넘으면 해조류가 확 주는데 그다음엔 가장 민감한 성게가 전멸합니다.”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40년 전, 전복 채취를 하는 어민들의 수입은 공무원들의 40배가 넘었으나 현재는 후계자를 못 구할 정도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을 골목 화단이나 식당 음식 등 곳곳에 전복이 있었습니다.


2009년 당시 이키에도칸(壱岐鄕土館)에서 촬영한 것으로 전복의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칼이나 긁개로 사용된 것으로 보였다. 이키에도칸은 2010년 ‘이키시 이키코쿠 뮤지엄(壱岐市立一支国博物館)’이 개관되면서 문을 닫았다. 사진_제종길

나가사키겐의 전복 자원량을 살펴봅시다. 이곳에서도 세 종이 주 어획 대상이었으며, 자원량을 다룰 때는 종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어획량은 1972년 859톤을 최고로 1998년 200여 톤으로 급감했고, 2008년에는 113톤을 기록했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100톤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요? 기록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감소 추세를 바꾸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지역별로 보면 2003년 자료이지만 쓰시마가 전체 어획량의 51%를 차지했고, 이키노시마가 10%였습니다. 두 섬의 상황을 살펴보면 전복의 바다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했습니다. 작년에 인터넷 잡지 『몬가베이(Mongabay)』에 실린 한 글에서는 온대 해역이 열대 산호초엔 희망(hope)이라고 했지만, 산호초의 성공적인 진출은 온대 해역의 생태계와 해양 문화 관점에서 본다면 절망과 다름없습니다.


이키코쿠 뮤지엄에 전시된 ‘스에키 다카미쓰(須惠器 高坏)’는 음식이나 제물을 담는 토기로 ‘카라카미 야요이(カラカミ弥生)’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전복이 제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야요이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이상이나 전인 시대로, 토기가 출토된 이키노시마 해안 지역은 당시에 어로나 교역에 종사한 집단이 살았던 유적지로 추측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온 유적에는 한반도와 관련한 유적이 많았다. 사진_제종길

이키노시마에도 조초산호가 정착 중


이키노시마를 비롯한 두 섬의 덩어리형 조초산호의 산호초도 이미 수온 상승의 위기를 겪었으므로 수온 상승이 이들의 확장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아열대와 열대 산호초들이 북상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하지만 이들의 유생들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고, 조초산호들이 아니더라도 돌산호들이 온대 해역의 해조숲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까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카오루 수기하라(薫 杉原) 등이 2014년 발표한 논문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따르면 아크로포라 속 조초산호들이 두 섬으로 진출하고 있고, 이미 쓰시마에는 이들의 분포 구역을 넓히고 있음을 수중탐사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러므로 이키노시마에서도 해안 여러 곳에 이들 산호가 정착하는 중일 것입니다. 섬에 만난 수산업 관계자들이 이 점을 증언했고, 그 위치까지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키노시마가 쓰시마와 다른 점은 전복이 2000년 이상 문화자원으로서 이어져 온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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