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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호 | 대기과학자 | 과학적 사고와 책임 있는 정치가 필요한 시대

 

박성미 총괄 2024-02-08


사진 : planet03 DB

조천호박사는 대기과학자다. 기상학과를 졸업,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기상연구소의 예보연구실, 지구대기감시센터, 지구환경시스템연구과, 기후연구과를 거쳐 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30여 년 간 기후 변화와 함께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논쟁은 끝났다


기후 위기의 시대, 어떤 이는 기후 변화가 없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기후 변화는 있지만, 인류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있어온 자연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온실가스 배출이 문제이지만 인류에게는 놀라운 기술이 있고,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은 증거를 제시하고, 증거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여러 갈래 증거들의 일관성을 다룬다. 자신의 주장을 위해 증거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면 과학이 될 수 없다. 객관적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 논쟁은 과학계에서는 이미 끝났고 그 대응은 정치와 경제 영역으로 이동했다. 기후 변화는 자연적으로 일어난 부분이 있고 사람이 초래한 부분이 있다. ‘경제성장’이 유일한 가치였던 인류는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했고 지구 평균기온은 급상승했다. 기후 변화와 지구온난화란 단어는 기후 비상(climate emergency), 위기(crisis), 붕괴(breakdown)라는 표현으로 바뀌고 있고, 지구온난화 대신 지구 가열(global heating)로 표기하는 언론이 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를 부정하는 그룹은 기후 변화 회의론자(climate sceptic)에서 기후 변화 부정자(climate denier)로 부르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는 너무나 분명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별하기 위해 기후 변화보다는 ‘기후 위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외부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것은 태양 에너지 하나 밖에 없다. 그런데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지구는 지글지글 끓게 된다. 들어오는 에너지만큼 반드시 우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우리 사람들이 배출하거나 화석연료를 태워서 나온 온실가스가 우주로 나가려는 열을 못 나가게 붙잡고 있다. 현재 이 온실가스가 약 1초에 히로시마 원자폭탄 5개가 터지는 에너지를 우주로 못 나가게 한다. 하루에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약 43만 개의 원자폭탄이 터지는 양의 열이다. 이런 굉장한 열의 90% 이상을 바다가 흡수해서 빙하가 녹고 땅이 따뜻해진다. 실제로 대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열기는 약 2%밖에 되지 않는다. 바다가 흡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기후 위기는 크기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기후 위기의 본질은 예측 불허’이다. 과학자들은 데이터에 근거해 예측한다. 현재 인류는 예상치 못한 가뭄, 예상치 못한 폭우, 예상치 못한 한파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대를 산다. 1950년부터 최근까지 인구는 25억 명에서 80억 명으로 늘었고,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간 1도나 올랐다. 과거 빙하기에서 간빙기(interglacial period,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로, 비교적 기후가 따뜻한 시기)로 변하는 1만 년 동안, 지구 기온이 4도가 올랐던 데 비하면 속도가 25배까지 높아졌다. 예를 들면, 승용차가 시속 100㎞로 달리다가 갑자기 2,500㎞로 달리게 된 것이다. 속도가 엄청나다. 1도라고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기후의 변화는 크기보다 속도를 봐야 한다. 지난 100만 년 동안에는 빙하기와 간빙기는 10만 년 주기였다. 사람이 변화시킨 게 아니라 자연 스스로가 변한 속도다. 가장 빠르게 기온이 상승한 속도는 1000년에 1도다. 이 속도를 못 따라간 고산식물이나 양서류 등 약한 생물들이 차례차례 멸종해갔다. 이렇게 계속되면 생태계는 무너진다.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인류도 위험하다. 지구 온도 상승으로 동토가 줄면 그 땅에 묻혀 있던 바이러스들이 살아난다. 그러면 코로나19와 같은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우리를 다시 공격할 수 있다.


기후 위기는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했다


2001년도 IPCC 3차 보고서는 ‘지구의 기온 상승이 완전히 인간 활동 때문’이라고 명확히 했다. 과학계에서는 원인을 밝혔고 대응 체계를 굳혀나가는데, 아직 우리는 기후 위기를 눈앞의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이미 일어난 위험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것이다. 더욱이 지금껏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경험이 없다면 둔감할 수밖에 없다. 기후 위기는 언론의 역할, 교육의 역할, 정부의 역할에 따라 미리 이야기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막아낼 수 없다. 역으로 인간이 만약 보이지 않는 위험까지 미리 인식하고 해결한다면, 이것은 인류사적으로 굉장한 도약이다. 기후 위기는 단순히 폭염일수가 많아지고 가뭄이 들고 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극단적인 날씨가 많아진다는 사실은 ‘지구 조절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태양에너지로 온기를 보장하고 햇빛으로 광합성을 해서 모든 생태계가, 그리고 생태계에 의존한 80억 인구가 먹고 살고 있다. 식량은 기후에 의존해서 생산이 된다. 기온이 올라가 물이 부족해지고, 가뭄이 늘면 식량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생물 다양성이 붕괴되고, 해수면이 올라가고, 해양이 산성화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 먹거리와 관련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지금 당장은 관련 없어 보이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면, 돈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식량을 마음껏 수입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배출량이 아닌 누적량이 중요하다


열을 가두고 있는 온실가스는 미세 먼지처럼 없어지는 게 아니라 계속 누적이 된다. 공기 중에 일단 나오면 없어지지 않고 누적이 된다. 첫번째 기후협약인 교토의정서가 발표된 게 1998년이다. 그때부터 계산하면 지금 현재 약 31억 개의 원폭이 터지는 에너지가 우주로 가지 못하고 지구에 머물러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온실가스가 기후에 드러나려면 해양의 표면이 따뜻해져야 한다. 물이 데워지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지난해 호주에서 있었던 7개월의 가뭄은 현재 배출량에 따른 이산화탄소 농도의 반응이 아니라 이미 1980~1990년대 배출했던 농도의 반응이다. 유엔 산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오는 2030~2052년에 1.5도가 오른다고 발표했다. 현재 지구는 1년 0.02도씩 오르는데 이 추세라면 2040년쯤에 1.5도로 상승한다. 2도가 오르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니까 이걸 막으려고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내용이다. 현재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올랐는데 여기에 0. 5도가 더 올라가면 위험하다고 말한다. 위기는 10년이나 15년 후에 일어난다. 결국, 다음 세대는 위험이 누적된 지구를 물려받게 되어, 세대 간에도 정의롭지 못하다. 2도가 넘으면 '이상한 날씨'가 매일이 찾아온다. 생물 다양성이 붕괴하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어지면, 바다에서도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대대적인 식량난이 일어난다.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면 거주할 곳이 확 줄어든다. 난민 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다. 2도 이상이 되면, 지구는 회복력을 상실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전쟁이나 감염병은 위기의 끝이 있었다. 금융위기도, 코로나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회복되었다. 때로는 시행착오지만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회복력 상실은 끝이 없다는 의미다. 회복이 안 되는 위험 속에서 살아야 하는 위험이다. 그래서 2도를 넘기기 전에 이 문제를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한다.

 

자연 기반 해법을 말하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80억 명의 인류가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기후 위기의 본질이다.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대량의 에너지와 자원을 지구에서 가져다 썼고, 온실가스, 미세 먼지, 쓰레기를 만들었다. 지구는 에너지와 물질이 순환되어야 하는데, 한쪽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계속 고갈시키고, 다른 한쪽에서 쓰레기와 오염 먼지와 온실가스를 쌓는다면 자연의 법칙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자원은 순환해야 하고 에너지는 재생이 되어야 한다. 이런 세상을 구축해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상 데이터를 보면 지난 40년 동안 극단적인 날씨가 전 세계적으로 약 3배 이상 증가했다. 극단적인 날씨가 증가했다는 함은 결국 물이 부족하고 식량이 부족하고 인류의 생존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자연의 법칙이 무너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과거에도 인류를 위험에 빠지게 한 홍수나 가뭄이 있었다. 인류는 둑이나 저수지, 댐 건설 등 과학기술로 이를 극복해 왔다. 과거의 위험은 결핍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인류가 처함 방사능 위험, 감염병, 기후 위기는 결핍이 아닌 과잉에서 비롯한 위험이다. 근본적으로 다시 우리 삶의 방식과 생존의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

IPCC 6차 보고서는 ‘자연 기반 해법’을 강조한다. 현재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약 1/4를 육상의 식물들이 흡수하고 나머지 1/4를 해양에서 흡수한다. 실제로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절반 정도를 자연이 받아주고 있어서, 나머지 절반의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축적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육상과 해양이 온실가스를 흡수할 능력이 없다면 더 빨리 기후 위기를 겪게 되었을 것이다. 육상과 해양 덕에 기후 위기가 천천히 일어나고 있다. 사실 온실가스를 저장하는 능력은 식물보다 토양이 더 뛰어나다. 미생물이 탄소를 토양에 저장하는 걸 돕기 때문이다. 최근 과학자들이 갯벌을 다시 보려는 시도도 이런 이유다. 갯벌이 탄소를 보관하는 양은 어마어마하다. 자연생태계가 탄소를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는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을 자연 기반 해법이라고 본다. 더불어 사회 기반 해법도 고민해야 한다. 탄소 배출 과잉으로 기후 위기가 발생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 된다. 탄소세를 도입하고, 탄소 배출량에 따른 피해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배출을 스스로 줄이는 데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일회용품을 안 쓰고, 쓰레기를 줄이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중요하다. 이러면 좋은 사람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후 위기는 좋은 세상을 만들 때만이 해결 가능하다. 개인 차량을 모두 없애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효과는 수십 배가 된다는 점을 데이터가 없어도 알 것이다. 그러나 감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이 할 일은 기후 위기를 인식하고, 대응할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기후 위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회복 불가능한 위험까지 가기 전에 우리 세대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조성하는 일이다. 정부는 에너지 정책을 대전환해야 할 때다. 굉장히 중요한 전환의 시대이고, 우리 정부도 '2050 탄소중립(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되어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 선언'도 했다. 기후 위기는 성장 중심으로 살아온 인류에게 삶의 방식을 성찰할 시간을 주고 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게 기후 위기다. 지구는 유한하다. 우리 인간들은 지구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한히 매달리다가 지구의 물질적 유한성을 넘어버린 상황이 되었고 기후 위기가 발생했다. 기후 위기는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인간의 욕망이 마침내 파국을 불러온다고 말해준다. 지구의 물질적 유한성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인간적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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