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석 2024-04-25
커피에 지배당한 나, 그리고 지구
피곤할 때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카페인 때문에 생긴 뇌의 착각이라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이미 몸이 커피에 길들여졌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당 1년에 커피 405잔을 마신다는 통계를 봤다. 하루에 한 잔 이상은 마신다는 말이다. 세계 평균치의 두 배 이상이다. 커피전문점은 말할 것도 없다. 치킨집이 더 많은 줄 알았는데 2023년에 커피전문점이 치킨집 숫자를 눌렀다. 이디야커피가 전국에 3005개, 메가커피가 1593개, 투썸플레이스가 1330개, 컴포즈커피가 1285개, 빽다방이 971개다.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다. 그런데 커피 인구가 지구를 파괴한다고 한다. 커피나무 심으려고 열대우림이 사라졌고, 거기 살던 수많은 동식물의 살 곳도 함께 사라졌다. 탄소중립선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탄소를 흡수하던 산림이 커피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니, 커피 마시는 게 불편하다.
커피만 연간 약 1억4000만톤의 탄소를 배출
커피는 농산물이라 탄소배출이 많지 않을 거라고 다들 생각한다. 아니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들어갈 커피가 커피 생산국에서 내 입에 닿기까지 탄소배출량은 엄청나다. 커피 재배에 쓰이는 화학비료를 생산하는 데 탄소가 배출되고, 커피를 수확하고 가공하는 데 기계를 돌려야 하니 탄소가 배출된다. 또 생산국에서 소비국으로 선박이나 항공기로 커피를 운송하면서도 탄소가 배출된다.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연구진은 커피의 재배, 수확, 가공, 수출까지 전 단계를 분석해 커피 1kg당 탄소가 15.3kg이 배출된다고 발표했다. 최고의 탄소배출 식품인 소고기(1kg당 27kg)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고, 치즈 1kg당 탄소배출량(13.5kg)과 비슷한 수치다. 한 해의 커피 생산량을 따져 보면 약 1억4000만톤의 탄소가 배출되는 셈이다. 이는 ‘고고밀도’(very high intensity) 탄소배출산업으로 분류되는, 매우 높은 수치다. 인간이 더 신선한 커피를 원하면 원할수록 배출량은 더 커진다. 신선한 커피를 위해 선박이 아니라 항공으로 운송하게 되면, 선박 이용보다 단위 거리당 100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헬스워싱에서 리얼헬스로
광고대행사에 근무했고 '브랜딩'에 관심이 많았다. '비타카페'는 2022년 12월에 R&D를 마치고 법인으로 설립됐다. 피로를 회복해 주는 척하는 헬스워싱도 싫지만, 몸에 안 좋은 걸 알아도 카페에 가면 커피 외에 주문할 게 마땅치 않다. 무엇보다 자연주의로 가는 시대 흐름에 커피는 이제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호식품이라 선택은 소비자 맘이다. 헬스워싱이 아닌 진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료를 만들고 싶었다. 이미 길들여진 커피나 콜라처럼 맛있게 마시되, 건강한 음료, 스타벅스나 코카콜라처럼 전 세계인이 100년 이상 즐기는 건강브랜드, 비타카페를 만들려고 한다.
비타민은 영양제 아닌 필수제
20세기 후반까지 인간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만 먹어도 생존에 지장이 없는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각기병이 발병하고 야맹증 환자가 속출했다. 의학적으로 몸에 무언가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질병들이었다. 그 무언가는 꼭 필요했다. 그래서 바이탈(vital, 생명에 필수적인 ), 아민(amine, 질소화합물 )이 합쳐져 비타민(vitami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질소화합물(amine)이 있든 없든,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유기화합물’을 비타민이라 부른다. 몸에 꼭 필요한 것이 발견될 때마다 A, B, C 등 알파벳이 붙여졌다. 처음에는 비타민A~K까지 있었다. 그러다가 의학적으로 밝혀져도 더 이상 관심이 없다. 비타민F, 비타민G, 비타민H, 비타민I 등이 그것이다. 비타민은 체내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음식을 통해 섭취하지 않으면 하루에 필요한 최소 양을 영양제라도 먹어서 바이탈 밸런스를 유지해야 한다. 최소한 하루에 꼭 필요한 양, 이것이 권장량이다. 비타카페는 하루에 필요한 최소 권장량의 100%를 넣었다.
맛있게, 편하게, 재밌게
우리나라의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6조원이 넘는다. 일반약 시장 규모를 약 2조6000억 정도로 보면 엄청난 규모다. 영양제를 버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용 기한이 지난 영양제는 일단 개봉하면 버려야 한다. 쓰레기다. 약은 약국이나 보건소에 돌려줄 수 있지만, 영양제는 그냥 일반쓰레기다. 개봉 안 했어도 남을 주기는 쉽지 않다. 통계는 없지만 6조원 중에 얼마나 많은 영양제가 쓰레기로 사라지는지 알 수 없다. 집에 쌓인 영양제도 많을 것이다. 인간의 소비가 커질수록 탄소배출량은 늘고, 폐기물은 쌓여만 간다. 소비를 조절하고 나에게 꼭 필요한 만큼만 소비해야 한다.
영양제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이 뭘까? 매일 챙겨 주는 사람 없으면 까먹기 일쑤고, 알약이나 분말 형태여서 먹기 불편하고, 일단 맛도 없다. 비타카페는 모든 영양제를 맛있게 만들기로 했다. 알록달록 색깔을 넣어 먹고 싶게 만들었다. 파는 장소를 카페로 정했다. '영양제를 마시는 카페'의 시작이었다. 집에 쌓아 두고 쓰레기로 만들지 말고, 카페에서 커피처럼 한 잔씩 마시게 하고 싶었다. 맛을 보고 자신에게 맞으면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전 메뉴에 비타민은 필수다. 콜라겐을 추가하거나 카테킨, 커큐민 등의 영양소를 추가하면서 메뉴를 늘려나갔다. 원하면 포도당도 추가할 수 있게 했다. 마시는 잔도 눈금 쳐진 비커 잔에 용량을 맞춰 따라 주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현대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 고객들이 줄을 서며, 비타카페의 비비드한 칼라와 비커 잔에 마시는 행위를 즐거워했다. 출시 2년차에 접어들면서 해외에서 인스타를 통해 주문이 오더니, 해외총판권를 문의해 왔다. 지난 4월에 드디어 일본 나고야에 해외1호점을 오픈했다.
지구 건강, 나도 건강
최근에 파타고니아의 '1% For the planet 프로젝트'에 기업 등록을 했다. 매출의 1%를 지구 건강을 위해 쓰고 싶었다. 물론 비타카페는 막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턴어라운드를 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때 가서 한다는 것은 안 하겠다는 말과 같아 보였다. 일종의 다짐 같은 것이다. 성장과 이익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기업의 운명이지만, 무조건적인 성장의 시대는 이제 지난 것 같다. 성장과 이익을 고민할 때, 공존과 공생이 빠지면 건강하지 못한 기업이 될 것이다. 지구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다. 아무리 비타카페 마시면서 건강을 유지해도 지구가 건강하지 못하면, 인간은 건강할 수 없다. 2024년에는 '지구 건강, 나도 건강'을 슬로건으로 걸고 간다. 엔젤스헤이븐과 매년 'How I Walk' 기부 마라톤( http://angelshaven.or.kr/how-i-walk-3rd/)에 참여했다. 'How I Walk'는 사람마다 각자의 상황과 방법대로 다양한 걸음이 있음을 알리기 위한 엔젤스헤이븐에서 하는 장애인식 개선 캠페인이다. 비타카페는 지구의 위기에 인간의 건강만이 아니라 지구의 건강을 고민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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