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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평화적으로 과감하게 '직접 행동'

 

이유경 기자 2024-06-11



     

그린피스(Greenpeace)는 1971년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설립된 국제환경단체다. 그린피스는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으며, 오로지 개인 기부와 독립적인 재정 지원으로 운영한다.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며, 외부 압력에 영향받지 않는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은 대중에게 신뢰성을 얻었다. 그린피스는 과학적 연구, 직접 행동, 대중 캠페인, 법적 대응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해 왔다. 초기부터 그린피스는 과감하고 눈에 띄는 직접 행동(direct action)으로 미디어와 전 세계의 주목을 끌어냈다. 1971년 알래스카의 암치트카 섬에서 미국의 핵실험을 막기 위해 항해했던 '그린피스 보트'가 그 시작이었다. 그린피스는 '피스(peace)'에서 드러나 듯이 비폭력적 저항이라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폭력적인 방법 대신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그린피스의 철학이다. 현재 그린피스는 전 세계 55개국 이상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국제적 네트워크는 글로벌 환경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며, 다양한 문화와 지역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린피스는 과학적 연구와 타당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린피스의 주장과 활동이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린피스는 자신들의 역사와 철학을 지켜오고 있으며 지구 보호의 국제적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Don't Make A Wave

암치트카 섬으로 들어가려는 그린피스의 낚시배, 그린피스 제공
1971년 암치트카 섬으로 들어가려는 그린피스 최초의 활동가들. 그린피스 제공

"Don't Make A Wave"는 그린피스의 초기 메세지 중 하나로, 그린피스의 설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71년 그린피스의 창립자들은 미국의 알래스카 암치트카 섬에서 계획된 핵실험을 막기 위해 항해를 계획했다. 이 항해의 목적은 핵실험이 가져올 파괴적인 결과를 세계에 알리고 이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Don't Make A Wave"는 핵실험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지진 위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파도의 메타포를 사용해, 핵실험이 자연과 인류에게 미칠 심각한 영향을 강조했다. 이 메시지를 바탕으로 "Don't Make A Wave Committee"가 조직되었고, 이는 후에 그린피스라는 이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행동으로 미 정부의 핵실험을 중단시켰고, 암치트카 섬 부근은 조류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Save the Whales

Rainbow Warrior 승무원이 "Save the Whales" 배너를 들고 있습니다. © 그린피스 / 장 폴 페레로
Rainbow Warrior 승무원이 "Save the Whales" 배너를 들고 있습니다. © 그린피스 / 장 폴 페레로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그린피스의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캠페인 중 하나다. 이 캠페인은 상업적 포경을 금지하고 고래 종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1970년대 초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상업적 포경이 성행하며 고래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많은 고래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우려가 높아졌다.1975년, 그린피스는 고래 보호를 위해 본격적으로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작은 보트를 타고 고래잡이 선박 앞에 서서 고래를 보호하려는 과감한 직접 행동을 보였다. 이들의 행동은 미디어에 의해 널리 보도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1971년 핵실험 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그린피스는 다양한 환경 보호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불법 고래잡이를 막는 일이다. 사진 그린피스
1971년 핵실험 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그린피스는 다양한 환경 보호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불법 고래잡이를 막는 일이다. 사진 그린피스

그린피스의 고래 보호 캠페인은 국제적인 공감과 지지를 얻었고, 1982년 국제포경위원회(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IWC)는 상업적 포경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1986년부터 시행되었으며, 상업적 포경으로부터 많은 고래 종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Save the Whales" 캠페인은 그린피스의 가장 성공적인 캠페인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환경 보호 운동의 상징적인 사례다. 이 캠페인은 고래 보호를 넘어서, 대중의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비폭력적 직접 행동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No Nukes

그린피스의 핵무기와 핵에너지 반대 운동을 상징하는 메세지로 1970년대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71년, 그린피스는 알래스카 암치트카 섬에서 계획된 미국의 핵실험을 반대하며 첫 번째 항해를 시작한 것이 "No Nukes" 운동의 시작이다. 1975년에는 프랑스가 남태평양의 무라로아 환초에서 핵실험을 계획하자,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섰고 반핵 운동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5년, 그린피스의 레인보우 워리어 호가 프랑스 비밀 요원들에 의해 폭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한 명의 활동가가 사망했으며, 국제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켜 "No Nukes" 캠페인에 대한 지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그린피스는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안전한 에너지 대안을 촉구하는 활동을 더욱 강화했다. 2000년대에는 독일,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탈핵 운동을 진행하며,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그린피스는 전 세계적으로 탈핵 운동을 촉구하며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No Nukes" 캠페인에는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초기 설립자들인 밥 헌터(Bob Hunter), 도로시 스토우(Dorothy Stowe), 어빙 스토우(Irving Stowe) 등의 활동가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 그린피스의 "No Nukes" 캠페인은 핵무기와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국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상징이다.   


Save the Arctic


그린피스가 2012년에 시작한 캠페인으로 북극의 급격한 온난화와 북극해에서의 석유 시추로 인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시작되었다. 북극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심하게 받는 지역 중 하나로, 빙하가 급속히 녹고 있었고 이로 인해 북극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었다. 특히 석유 시추는 환경 파괴를 더욱 가속화시킬 위험이 있었다. 2012년, 그린피스는 "Save the Arctic" 캠페인을 시작하며 북극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북극해에서 석유 시추를 진행 중인 석유 플랫폼에 올라가 항의하는 등의 직접 행동을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Save the Arctic" 캠페인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북극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수백만 명의 서명이 모였고, 국제 사회에서도 북극 보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이 캠페인은 북극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 보호의 균형을 찾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촉발시켰다. 그린피스의 지속적인 행동으로 석유 회사들이 북극해에서의 석유 시추 계획을 재고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Protect Our Forests


전 세계 숲과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그린피스의 상징적 메세지다. 불법 벌목과 산림 파괴를 막고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를 촉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산림 파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아마존 열대우림, 인도네시아의 열대림, 러시아의 원시림 등이 급격히 파괴되면서 지역 생태계 파과와 원주민의 삶에 큰 위협이 되었다. 1997년, 그린피스는 브라질에서 불법 벌목을 감시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브라질 정부는 불법 벌목 단속을 강화하고, 보호 구역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2003년에는 러시아 정부와 협력하여 시베리아 원시림의 대규모 보호 구역을 설정하는 데 성공했다. 2006년, 그린피스는 인도네시아의 팜유 플랜테이션 확장을 막기 위해 캠페인을 벌였고, 이로 인해 몇몇 주요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팜유 생산을 약속하게 되었다. "Protect Our Forests" 캠페인은 전 세계적으로 산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린피스의 활동으로 각 국가들에서 산림 보호 정책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원을 이용하도록 압박 받게 되었다. 이 캠페인은 또한 지역 공동체와 협력하여 원주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Biodiversity for Future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생물다양성협약(CBD)이 체결되면서 그린피스는 생물 다양성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린피스의 생물 다양성 보호 캠페인은 각 시대의 환경 문제와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라 다양한 구호와 초점을 통해 진행되었다. 1990년대는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이 국제적으로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다. 이 시기에 그린피스는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Biodiversity Matters"라는 구호를 사용했다.

2000년대 들어 기후 변화와 인간 활동으로 인해 많은 종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린피스는 멸종 위기종 보호에 초점을 맞추어 캠페인을 전개했다. "Save Our Species"라는 구호는 멸종 위기종을 보호하고 생물 다양성 보존의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이 구호는 특정 종의 보호를 통해 생태계 전체를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10년대에는 아마존, 보르네오, 콩고 등 주요 열대우림 지역의 파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열대우림은 많은 종의 서식지로서 생물 다양성 보존에 매우 중요하다. 그린피스는 이러한 열대우림 보호를 통해 생물 다양성을 지키고자 "Forests for Life"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구호는 숲이 생물 다양성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불법 벌목과 산림 파괴를 막기 위한 활동이 강조되었다. 2020년대는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위기가 더욱 심화된 시기로 미래 세대를 위한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고자 "Biodiversity for Future"를 사용했다. 각 시기마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환경 문제와 사회적 인식 변화에 맞춰 생물 다양성 보호 메세지로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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