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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특강ㅣ이유미 원장ㅣ풀과 나무와 정원으로 세상 읽기

 
 

풀과 나무와 정원으로 세상 읽기

     

안녕하세요, 이유미입니다. 여기 우리 분야에 교수님도 계시고 선배님들도 계시고, 언제나 정다운 해설가 선생님들 계시고, 갑자기 왜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제목을 받았어요. ‘야생화와 나무 그리고 정원’. 이거 관련 평생 일하고 살긴 했습니다. 제목을 ‘풀과 나무와 정원으로 세상 읽기’으로 약간 바꿨습니다. 그냥 아무 나무, 풀, 야생화라고 말하지만 식물은 크게 보면 풀과 나무이죠. 꽃은 꽃이 피는 기관입니다. 그중에 나무, 풀, 야생의 식물이 있고, 요즘 많이 팔고 만드는 어떤 품종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구분됩니다. 요즘 정원이 정말 핫합니다. 숲에서 식물 공부를 시작해서, 지금은 저에게 쏟아지는 업무 중에 굉장히 많은 게 정원 관련 일입니다. 그동안 이런 일이 연결돼서 산림청도 관심이 크고 열심히 하는 분야입니다. 이야기를 부탁한 분들은 주로 ‘내 마음의 들꽃 산책’ 같은 식물들 이야기를 원했는데, 오늘은 숲 분야 역사와 흐름과 미래, 식물 각각의 이야기, 정책보다는 소프트한 이야기로 그동안 해 온 일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름을 알면 깊어지는 세계


오늘 교정에 들어와서 정말 아름답게 자란 게 있길래 정말 좋았습니다. 혹시 이름 아세요? 여기 제 책 읽은 분이 있나 봅니다. 보통 목련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이건 뭘까요? 이게 목련이에요. 그러면 먼저 봤던 거는 뭘까요? 백목련이에요. 흰 꽃이면 백목련이 아니냐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무에 선과 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 스토리가 다르고, 각각 깊이도 다르고, 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도 배경과 내용과 특성이 다르듯, 나무들도 고유합니다. 실제 백목련은 우리나라 나무는 아니에요. 중국이 고향이죠. 목련이 우리나라 나무예요. 저는 숲속 식물을 종별로 공부한 사람이어서 전체를 보는 시선보다 이렇게 하나하나를 보는 게 익숙합니다. 많은 분들은 목련과 백목련을 잘 구별하지 못하지요. 그냥 흰 꽃이니까 백목련이지라고 생각하지만 원산지가 다른 거죠. 산지가 좋다, 나쁘다의 기준은 아닙니다만, 알 건 알아야 합니다. 이 백목련은 중국이 고향이고 저 목련은 우리나라 그냥 목련이에요. 누구나 정원 또는 공원에서 우리 봄 풍경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모르는 거죠. 나무 파는 데 가서 목련 주세요, 그러면 아마 다 백목련을 줄 거예요. 제주도 한라산 어리목 자락에서 진짜 자생하는 목련들이 피어 있습니다. 양묘도 돼 있어요. 조경수는 아주 드물겠지만 파는 것도 있죠. 그럼 우리 목련을 사려면 어떻게 할까요? 진짜 목련 주세요, 그럴까요? 불과 10년,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자생 목련을 원하면, ‘고부시 주세요’라고 일본말로 해야 알아듣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게 우리 실상이죠. 하나 더 하면, 요거는 뭘까요? 흔히들 ‘산목련’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산에 가서 보면, 보통 목련 종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지만, 잎이 나고 꽃이 피면서 정말 하얗고 주먹만 한 꽃이 굉장합니다. 저는 이 꽃나무를 매우 좋아했어요. 『우리나무 백가지』라는 책에도 이거 너무 좋다고 썼습니다. 태백산 자락을 오르다가, 발왕산 능선을 타다가 함박꽃나무를 만나면 정말 좋아요. 요즘에는 어디 가서 좋다는 말을 못해요. 예전에 북한의 국화는 진달래였는데, 이제 이 함박꽃나무가 국화가 돼었네요. 꽃나무, 나무, 풀에 정치가, 이념이,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조심스럽습니다.

봄에 피는 대표적인 목련만 봐도 나무가 가진 스토리와 색깔과 느낌과 고민들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본 기억이 별로 없고, 대강 목련, 대강 철쭉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정말 숲과 가까워지고 깊이 있게 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가 풀과 나무와 그들이 피우는 꽃과 열매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대강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목련, 백목련이 너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오늘 온 분들은 다 알지만, 혹시 아직 나무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올봄에는 꼭 백목련을 백목련으로, 목련을 목련으로 부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게 뭘까요? 여기 고수가 계시군요. 여쭤보면 보통 철쭉이라고 말합니다. 얘는 뭘까요? 진달래죠. 화전 부쳐 먹는 참꽃이라는 얘는 뭘까요? 철쭉. 얘가 그냥 철쭉이에요. 먼저 봤던 것은 우리나라 산철쭉이에요. 종종 철쭉제에 가봅니다. 소백산 철쭉제는 진짜 우리나라 철쭉을 피웁니다. 자생하는 산철쭉이 피는 일림산의 철쭉제는 산철쭉이 핍니다. 지금부터 우리나라 산에 가장 많이 피는, 가장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저 진분홍빛, 연분홍빛의 아름다운 꽃나무, 철쭉 세 가지도 정확히 이름을 불러주지 못합니다. 이름이 중요한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자연에 있는 생명의 존재들 가운데 주목하고 집중해서 구분하는 첫 단계가 이름이 아닐까요. 이처럼 하나하나 구분하면 정말 여러분이 보는 숲의 색깔이, 숲의 모습이 다르게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가을로 가겠습니다. 뭘까요? 보통 들국화라고 합니다만, 들국화는 도감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을에 피는, 산과 들의 국화과 식물들을 보통 들국화라고 하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산야와 숲에서 볼 수 있는 국화과 식물입니다. 쟤는 뭘까요? 산국입니다. 옛날에 어른들이 국화차를 마시고 국화주를 만들고 고아서 약을 만들고 비상약으로 썼습니다. 예전 처자들은 국화 꽃잎을 말려서 향수 대신 향낭이라는 꽃주머니를 차고 향기를 품으며 다녔습니다. 우리나라 야생의 국화가 산국이죠. 오른쪽 거는 뭘까요? 쑥부쟁이. 쑥을 하는 불쟁이 전설도 있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제 글이 한두 개 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식물이기도 해요. 얘는 뭘까요? 구절초예요. 구분하기 쉽잖아요. 물론 보라색 꽃 중에 쑥부쟁이도 있고 개미취도 있고 많지만, 대표적으로 가을 산길에서 걷다보면 산국의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 시선이 숲을 사랑하는 시작이 아닐까요.

안도현 선생님의 시예요. 안 시인이 여러분이나 저에게 한 얘기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에게 한 얘기입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을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이런 시선이 생겨나면, 숲과의 만남이, 색깔이, 깊이가 확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 오늘 강의에 가져왔습니다. 


봄,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봄이에요. 이때를 피천득 선생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21살 청신한 얼굴이다.’라고 하셨지요. 지금 막 봄인데, 이런 숲의 빛깔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작년 봄은 어떠셨어요? 온전하게 느끼고 보고 보내셨나요? 봄은 어떻게 갔을까? 이 시기가 지나가면 숲은 녹음이 우거지고 정말 열심히 광합성하며 살아가는 기간이 옵니다. 곧 가을이 올 거예요.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발현합니다. 불과 몇 달이 지났는데 숲의 색깔, 그 안에 피어난 풀과 나무들은 물론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세상이 펼쳐집니다. 저는 숲 안에서 식물을 공부하는 식물학자니까, 식물 얘기만 하지만 훨씬 다양한 곤충이나 미생물이 있습니다. 제 딸이 버섯의 미생물을 공부합니다. 이제 산에 가면 시선 처리가 어려워 죽겠어요. 봐야 할 게 많아서요. 숲을 전체로 봤지만, 이렇게 굉장히 다양하고 수많은 생명들이 그 안에 공존합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날이 춥고 비가 왔습니다. 정말 숲의 겨울은 얼고 단단하고 춥습니다만, 거꾸로 세상에서 가장 연하고 부드러운 새싹을 품고 있습니다. 저 동토의 땅, 얼음을 뚫고 나오는 게 새싹이죠. 저도 평생 식물을 공부했는데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무궁무진합니다. 이 생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이렇게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되지요.

     

때론 큰 세계, 때론 아주 작은 세계

     

오늘 정원과 수목원을 이야기합니다. 정원과 수목원은 숲과 사람들이 만나는 중간에서 매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숲에 딱 들어가면 느끼는 기본 거리감이 있습니다. 그럴 때, 수목원과 정원이 초록을 삶에 담는 정말 좋은 수단이 아닐까요.

어떤 식물일까요? 원추리잖아요. 혹,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노고단에 올라가면 정말 이렇게 안개가 쫙 피었다가 지나갑니다. 그 안에 원추리가 착 피었습니다. 이 모습을 한번만 만나도 우리가 숲과 가까워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원추리는 망우초라는 별칭이 있어요. 근심을 잊을 만큼 아름답다는 뜻이죠. 이 원추리 하나에 집중하고 감탄하다 보면, 그 옆에 있는 기린초가 보이죠. 이웃하며 사는 아이들이 같이 보이고, 시선을 들면 지리산 자락이 보이고, 백두산과 백두대간 자락이 보입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때로 큰 세계, 때론 아주 작은 세계’가 나타납니다. 이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세계가 식물 하나에서 출발하는 게 자연의 세상인 것 같아요.

혹시 여기는 어딜까요. 중앙아시아 나라들, 우즈베키스탄, 카자스탄 등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을 쭉 잇는 줄거리 산맥이 티엔산산맥이라고 합니다. 하늘 천자를 써서 천산(天山)이라고 합니다. 여기 가는 게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여길 왜 가고 싶었냐면요. 요 앞에 보이는 꽃이 뭘까요? 야생 튤립이에요. 봄이면 온 세상이 형형색색의 튤립으로 펼쳐지는데, 개량된 수천 종의 튤립이 어디서 왔냐면, 몇 곳이 있는데 그 메인 산지 중 하나가 천산입니다. 정말 저런 데 가서 저 꽃을 보고 싶어요.

뿐만 아니라 티엔산에는 마늘, 파, 양파, 부추와 같은 알리움(allium) 그룹들도 야생 그대로 수없이 많이 자랍니다. 요즘 기후 온난화로 사과가 어디까지 자라느냐를 말합니다만, 실제 우리가 아는 모든 사과는 개량종입니다. 기후 위기나 수많은 병해충을 막을 목적으로 야생의 종을 찾는데, 야생의 풀과 사과나무의 고향이 바로 티엔산입니다. 이렇게 우리 옆 튤립에서 식물의 고향을 궁금하게 여기게 되고, 여러분의 시선을 다시 먼 티엔산에 보내게 합니다.

튤립에 관한 수많은 스토리들이 있습니다. 이게 작년에 국립세종수목원의 봄철 화단 모습입니다. 여러분 아마 아실 거예요. 이게 터키를 거쳐 네덜란드로 들어갔고 유럽에 퍼져서 튤립파동도 났습니다. 이 스토리는 많이 들어보셨죠? 경제학에서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튤립파동이 워낙 센세이션하니 이걸 소재로 영화도 나왔습니다. 티엔산 자락에서 시작한 야생의 튤립이 흐르고 흘러서 경제학 스토리, 문화 스토리, 예술이 되었습니다. 자연과 숲을 만나는 시선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노고단에 피어나는 원추리 하나에서 출발했지만 이렇게 무궁무진한 게 식물의 세상인 것 같습니다.

얘는 뭘까요? 백일홍입니다. 백일홍은 국화과 식물이고, 국화과 식물은 식물 그룹 중에서 상당히 진화했습니다. 왜냐하면 식물들이 아름다운 꽃을 만드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꽃가루받이 잘해서 씨앗을 맺어야 하는데 곤충들이 돕지요. 꽃 하나만 들고 열매 하나만 나면 너무 억울하니까, 꽃들을 모아 놓습니다. 꽃들을 모으는 게 옛날 생물 시간에 열심히 배웠던 꽃차례, 화서입니다. 꽃차례의 특징이 식물 집안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국화과도 이렇게 모였는데 이렇게 머리 모양의 꽃을 ‘두상화서’라고 합니다. 백일홍도 한 송이가 아니라 여기 하나하나가 다 꽃이에요. 수십 송이입니다. 이 꽃들이 왜 이렇게 생겼냐면, 곤충도 불러야지, 씨도 만들어야지 힘드니까 분업을 합니다. 가장자리에 있는 꽃들은 곤충을 부르고, 얘네들을 보고 오면 여기서 꽃가루받이 씨앗들이 맺히는 거죠. 이 안에 수많은 곤충들이 찾아옵니다. 어떻게 보면 꽃 한 송이에도 분업과 협업이 있고, 다른 종들과 공생이 있습니다. 수많은 세상이 꽃 한 송이에서 벌어집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무슨 사진일까요? 꽃가루예요. 꽃가루를 백배, 천배, 만배로 확대해 보면, 다시금 끝없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요. 자연의 세상은 정말 마이크로로 가면 갈수록 끝없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알고 있는 경험과 선입견에 갇힌 범주로 숲을 만나고 숲에 사는 식물을 접하기 때문에 매우 한정적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때론 긴 시간 때론 아주 짧은 시간, 가장 오래 사는 나무가 있습니다.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합니다. 함께 살던 수많은 생명들이 다 멸종했는데도 아직 살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용문사 은행나무도 천년 이상 현존하고 있습니다. 은행나무가 공룡과 함께 살았던 시절에도 존재했다는 걸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긴긴 시간, 우리는 100년도, 아니 20년 전도 기억 못하는데, 이 한 나무에 맺힌 세월이라니,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얘는 뭘까요? 은행나무는 암나무, 숫나무가 서로 마주 봐야 된다고 합니다. 식물은 암수가 한그루이기도 하고, 딴그루이기도 합니다. 한 꽃송이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기도 하는데, 얘는 아예 따로입니다. 얘는 암꽃이고 이렇게 생겼어요. 얘는 수꽃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제가 강의에서 꽃을 영어로 ‘플라워’라 그러잖아요. 해석하면 플라워는 속씨식물입니다. 피자 식물의 생식기관을 플라워라고 하고 나자식물의 꽃을 플라워라고 하면 안 됩니다. 영어 식물학 용어는 별도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꽃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해해 주세요. 여러 식물 자료들을 찾아보면 ‘웅성’, 무슨 배우체라는 굉장히 어려운 말을 씁니다. 말을 대체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수꽃, 암꽃으로 부르겠습니다.

봄철에 보면, 요렇게 생긴 은행나무 아래 자동차에는 송충이 비슷한 게 막 쏟아져 있습니다. 바로 은행나무의 수꽃 차례들입니다. 수꽃의 꽃가루가 여기에 닿죠. 그러면 수꽃의 꽃은 이제 화분이어서 꽃가루 식물이었다가 꼬리가 생깁니다. 더 이상 화분이라고 부르지 않고 정충이라고 그러는데 움직입니다. 이후 막 흘러흘러 움직이고 꼬리를 달고 여기까지 가서 난액을 만나 수분이 일어납니다. 긴긴 세월을 기다렸다 만났는데, 수분은 정말 찰나에 일어납니다. 그것이 가능해서 우리가 아는 은행을 맺을 수 있습니다. 한번 가름을 해보면, 은행나무 한 그루가 가진 그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큰 스펙트럼인지 놀랍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심으면 아주 오랫동안 가꾸고 숲을 기다려야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시로 변하고 아침과 저녁이 다릅니다. 그 어떤 찰나와도 같은 순간을 딱 담을 수 있어야 진짜 숲이 되고 자연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 봄볕 따뜻한 날 여기서 이만큼 열정적이지만, 우리가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가진 마음의 크기만큼, 시선의 한계만큼 머물러 있어서가 아닐까요. 오늘 제가 마음의 크기를 확대하는 데 일부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목원(식물원)과 정원, 공원이 다른 점은?

     

본격적인 주제로 가서 수목원과 정원, 공원이 다른 점이 뭘까요? 일단 먼저 수목원과 공원이 다른 점은 뭘까요? 나무와 풀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람들이 찾게 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거는 수목원입니다. 식물원은 얘기가 길어져서 수목원과 식물원을 유사 개념으로 보고, 나무에 집중해서 나무가 있는 곳이 수목원입니다. 우리나라는 수목원 중심으로 먼저 발달했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수목원이나 식물원은 같은 걸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 전제하에 수목원과 공원의 차이는 뭘까요? 세상에 공원이 많아도 수목원을 만드는 이유는 수목원에 있는 나무들은 매우 중요한 게 이력 관리가 됩니다. 그냥 아름답기 위해서 꽂아 두는 것은 공원입니다.

수목원, 식물원의 시작은 자원이 되거나 희귀한 것들입니다. 야생에는 굉장히 다양하고 수많은 식물들이 있는데, 자연 그대로 보존할 수 없고 귀한 자원이 되거나 사라져 가거나 의미 있어서 수집해서 모아 놓는 게 수목원의 첫 번째 기능입니다. 예쁜 건 나중이에요. 그래서 수목원 식물들은 어디서 어떻게 구한 소스인지, 주민등록증처럼 식물들이 관리됩니다. 어제 청장님께서도 수목원 진흥 계획을 말할 때 ‘멸종위기종은 살린다’고 했는데, 국립수목원은 이런 위기종을 잘 보존하고 그 유전자 소스를 갖추는 것입니다. 자연에서는 이미 없어져서 거꾸로 복원하기도 합니다.

실제 대표 사례가 풍란, 나도풍이 자생지에서는 다 캐가서 몇 년 전에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찾아보니 유전적으로는 수입한 대만산들만 있습니다. 어렵게 유전 분석해서 확보했던 걸로 다시 제주도 비자림에 복원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의 것을 모아 놓고 보니까 실제로 바이오 또는 정원 소재로 사람들이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식물을 자원으로서 정확하게 갖고 있는 곳이 식물원이니까, 식물 자원이 현대적으로 의학의 소재, 정원의 소재, 바이오의 소재로 이용됩니다. 수목원들이 그 역할을 하는 거죠.

실제로 미국의 암센터와 미국의 뉴욕 보태니컬 가든은 함께 일합니다. 왜냐하면 항암제로 쓸 신약을 개발하는 데 대부분의 소재가 식물이고, 그 식물 소재를 어디서 정확히 찾았냐면, 결국 그 파트너가 수목원, 식물원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그렇게 구한 원료로 정원 소재나 의약 바이오의 소재로 씁니다. 요즘 트렌드는 궁극적으로 자연의 식물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휴식을 주니, 단순히 보이고 보존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문화 교육으로, 문화와 예술로도 씁니다. 보존과 자원뿐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세계적 식물원, 수목원의 트랜드입니다. 정원 문화의 원천, 정원의 소재, 가드너 인력 양성, 기술 개발, 교육을 위해서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정원 모델들을 모아 놓는 게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정원 문화가 수목원을 기반하고 있어서입니다. 제가 수목원 홍보대사이기도 해서 말씀드립니다.

공원과 정원은 또 무슨 차이점이 있을까요? 왜 공원도 많은데 정원에 집중하는가요. 국립세종수목원의 열대온실은 IMF 당시 관광을 못가면 여기로 오시라는 기사가 크게 났었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여기 와서 사진 찍고 구경하며 좋아합니다. 나름 핫플레이스입니다.

실제로 뉴스에 가끔 나와요. ‘다윈난’이라는 식물인데 국립세종수목원에 있습니다. 이름이 왜 ‘다윈난’이냐면, 다윈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이 식물을 봤습니다. 이 식물은 꿀주머니가 30cm쯤으로 길어요. 수분하려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곤충의 주둥이가 이렇게 길어야 합니다. 다윈이 이 식물을 보고 진화론의 공생 관계를 착상하는 계기가 되었죠.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식물들이 있어요. 멸종된 줄 알았던 ‘울레미소나무’가 여러 해 전에 호주의 숲에서 다시 발견되었지요. 살아있는 공룡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굉장히 떠들썩한 식물들이 있습니다. 수목원에 있는 ‘신안새우난’이라는 식물인데, 제가 평생 우리나라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이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저도 자생지에서 못 봤어요. 비교적 최근에 신안에서 새로 발견된 신종입니다. 이런 의미 있는 식물들이 보존을 위해, 자원화를 위해, 교육을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목원들이 여럿이 있는데, 제가 평생 일했던 국립수목원이 우리나라 생물 다양성의 역사를 다시 쓴 곳이나 마찬가지죠. 거기에서 다른 국립수목원들이 탄생했고, 수목원 관련 법이 만들어졌죠. 여기서 그런 기초 작업을 했다면, 봉화 백두대간수목원도 있어요.

국립세종수목원은 도심 한복판에 있어요. 센트럴 파크가 미국 시민의 자랑거리잖아요. 국립세종수목원도 세종시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세종시는 환상, 도넛형 도시라고들 말합니다. 보통은 중앙에 도심에 있고 가장자리에서 자연으로 나가는데, 세종시는 가운데 자연이 있어요. 호수공원, 중앙공원,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풍부요롭게 하는 국립세종수목원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 전통정원을 비롯한 수많은 일들이 도시에 출현했어요. 보존도 있지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정원 문화 확산에 굉장한 주목을 받고 있어요.

기획 전시도 합니다. 정원을 더 가까이 하기 위해서 ‘정원 행복을 품다’란 주제 전시도 합니다. 계절마다 주제가 바뀌는데, 여러 주제들이 있어요. 보다 보면 직접 식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크리스마스 때는 이런 전시가 이뤄졌어요. 아주 재밌었죠. 조금만 도와주면 문화는 사진처럼 바뀝니다. 당시 주제가 ‘이상한 꽃나라 엘리스’였어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아시죠? 엘리스 주제로 정원을 만들어 놓았더니, 갑자기 엄마들이 아이들을 엘리스의 하얀 에이프런에 하늘색 원피스 입혀서 데려왔어요. 정말 요 하나를 만들어냈는데, 이 공간에서 식물들을 사진 찍으며 즐기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먼 도시에서 온 인플루언서 언니들이 옷 갈아입고 쫙 나와서 사진을 찍더라고요. 조금만 도와줘도 문화가 바뀝니다.

저는 이때가 제일 좋았는데, ‘가을 기분이 재즈다’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재즈를 중심에 두고 기획했어요. 잔디마당에서 재즈 공연도 열었어요. 선진국에 가면 선진국 국민들이 식물원, 수목원이나 공원에 누워 공연을 보잖아요. 그런 문화가 부러웠는데, 요 정도만 준비해도 국민들이 즐기고 쉬고 느끼잖아요. 정원을 매개로 말이예요.

이것은 폴리네이터의 중요성을 주제로 했어요. 심지어는 바닷속이나 우주를 주제로 잡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신비한 마법의 식물사전’이라고 해서 마법사 해리포터에 나옵니다. 아이들은 모자 쓰고 돌아다닙니다. 마법사들이 이상한 것을 줘서 사람들을 치유하잖아요. 마법사들이 준 게 원래 뭐였겠습니까? 대부분은 식물 소재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을 꾸밉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저 식물 아세요? 막 꽥꽥거리면서 뿌리 뽑히면 소리 지르는 식물요. 잘 모르나요, 해리포터 안 보셨나 보네.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한 기획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죠.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생명은 뭘까요? 박현 원장님 강의 들으셨어요? 박현 원장님은 ‘미생물’이라고 말하는데, 눈에 보이는 존재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생명은 나무입니다. 몇 백 년이 된 나무가 있습니다. 미국의 브리스톨콘파인은 현재 6000살이 넘어요. 클론처럼 뿌리가 연결돼 있고 이렇게 위로 올라온 걸로 하면 그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아 있는 존재입니다. 캘리포니아 해안에 자이언트 세쿼이아도 100m가 넘게 자란 생명의 존재잖아요. 눈에 보이는 것 중 정말 대단한 존재가 바로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무의 시작은 뭘까요? 제가 좋아하는 유명한 소설, 『랩걸』이 있어요. 대목 중에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모든 것에는 씨앗이 있고, 씨앗은 어떤 한 과정의 결실이지만 그 수없이 긴 세월 동안 여러 유전 정보를 축적합니다. 씨앗은 이 모든 가능성을 그 작은 알에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씨앗은 과거이고 결실이자 미래입니다. 지금 복제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하지만, 결국 기후, 질병, 식량, 치유, 이 모든 것의 답은 씨앗에서 출발입니다. 세상에 가장 큰 존재, 가장 오래 산 존재는 커나가는 나무이며 풀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 어울리는 산야를 가지게 된 한국

     

예전에 국립수목원 있을 때 그 국립수목원에 있는 광릉숲이 대통령이 국민 식수 행사를 한 최초의 장소였어요. 당시에 <대한 뉴스>가 있었어요. 자료 사진을 보니까 1970년대 대통령께서, 이념과 사상을 다 제하고, 팩트만 보면 당시 대통령의 스피치가 인상에 남아요. ‘여러분 잘살고 싶으십니까?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는 지금 나무를 심어야 됩니다.’ 생각해보면 아직도 개발이냐 하지만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헐벗고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나무 심기를 해법으로 제시했어요. 실제로 지금 이 앞에 백목련이 피고 주변에 숲이 있고 공원이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잖아요. 당시는 한쪽이 흙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흙산이 있었습니다. 산은 헐벗었죠. 상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나무를 심다 보니까 숲길은 이어지고 지금은 멀리 가서 숲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숲이 가장 필요한 곳이 도시입니다. 미세먼지, 기후변화, 생활, 환경, 치유를 이유로 도시에 숲이 더 필요해졌습니다. 도시까지 숲을 확산한 것이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숲을 만드는 여러 수단 중에 ‘도시 숲’이 있고, 다음에 ‘정원’이 있고, 이 모든 것을 인큐베이팅하고 조사하는 ‘수목원’이 있습니다. 


탄소중립 시대, 정원의 역할

     

그런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확 바뀌었어요. 이렇게 가까이 식물을 두는 문화로까지 바뀐 거죠. 중심이 되었어요. 왜 도대체 그 코로나 같은 문제가 생길까요? 돌발해충 등 재앙처럼 올라오는 자연재해들이 요소로서, 종으로서 잠재해 있었는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지 않고, 사람 중심으로만 가서 발생한 문제입니다. 탄소중립, 생물 다양성 보존이 세계적인 화두입니다. 그 해법의 하나로 가까이에서 만나는 게 정원입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새로운 언택트 문화 산업이 생겼어요. 플랜테리어(plant+interior의 합성어)가 요즘 핫합니다. 유명한 공간은 다 플랜테리어가 된 곳이며 가장 앞선 인테리어라고들 합니다. 나아가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치유 방법 중에 ‘정원 치유’가 폭발적으로 인기가 있습니다. 숲 치유가 훌륭한 큰 개념이잖아요. 바로 옆에서 가꾸면서 치유받을 수 있는 정원 치유의 확장성은 진짜 엄청납니다. 비의료적 서비스로 치유가 나옵니다. 반려식물, 식물 집사를 아시죠? 식물 집사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생계형 산업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더현대백화점’이 여의도에 생겼죠. 백화점 중앙 전체가 정원이잖아요. 그 안에 명품관들을 세우면 수입이 얼마나 크겠어요. 하지만 과감하게 바꾸었습니다. 이런 게 가능한 시대이죠. 숲이 멀리서부터 들어오고 들어와서 바로 책상 옆이나 항상 다니는 공간까지 왔어요. 요즘은 경계가 없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가든 인 더 시티’가 아니라 ‘시티 인 더 가든’이란 말이 나왔지요.

엊그제 식물원 관련 자문회의로 화성시에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화성 보태니컬 가든’이 아니라 ‘보태니컬 가든 화성’을 만드는 거예요. 도시 전체를 보태니컬 가든으로 한다는 겁니다. 공원과 공원을 연결하고, 정원과 정원을 연결하고, 숲과 숲을 연결해서 도시 전체를 보태니컬 가든으로 만든다는 거죠. 지금 시대는 이를 요구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어요.

큰 변화가 있습니다. 처음 정원법을 만들 때, ‘부자들이 가꾸는 것에 무슨 정책이고 법이며 정원이냐’며 반대했어요. 근데 요즘 선풍적인 이유가 그냥 개인이지만 정원의 변화는 공공 영역, 퍼블릭으로 갑니다. 예를 들면 정원 치유 기능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지역을 도시 재생하는 것도 수단이 정원이 됩니다. 왜냐하면 공원과 정원의 굉장히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작은 공원이 정원이냐, 그렇지 않아요. 순천만정원처럼 큰 정원도 있잖아요. 정원의 개념에는 우리 산림청에서 법으로 정한 ‘수목원, 정원 진흥과 조성에 관한 정의’를 보면 정원에는 가꾸는 행위가 들어가요. 공원처럼 만들어서 조성해서 발화가 아니라 만드는 과정이 들어있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이뤄지고, 환경이 개선되고, 사람들이 치유됩니다. 그래서 정원의 확장성이 큽니다. 단순히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하게 하고, 마음을 변화하게 하고, 치유하게 하고, 문화를 변화하게 합니다. 산림청이 정원이란 화두까지 끌어안은 거는, 미래를 볼 때 엄청난 일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내용이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입니다. 실제로 정서적으로 아름다운 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바꿉니다. 옛날 정원을 가꾸는 게 나이 든 부모님들이었는데, 지금은 젊은 세대들이 트렌디하게 가꾸고, 반려식물 문화가 생겨서 새로운 문화들로 바뀌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단순히 예쁜 정원 하나가 만든 게 아니라 그 안에 치유, 문화, 예술, 복지 등 정원에 통섭의 개념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고 우리도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숲을 찾고 정원을 찾을까요. 많이 쓰이는 용어로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이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습니다. 산림청에서 생각하는 정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적 이슈가 있습니다. 기후변화, 사막화가 있고 거기에 더해 사회적 이슈인 전염병, 고용 생계 위기, 우울증 무기력증, 개인과 개인의 단절 문제, 디지털 중독에 따른 인간의 소외 등 여러 가지를 큰 정원서부터 반려식물처럼 책상 위에 작은 손바닥 정원까지 만들고 교감하고 가꿔 나갑니다. 정원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게, 숲과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잖아요. 좀 더 사람 쪽으로 한 발 나아가 손잡아주는 게 정원이 아닐까합니다.

전 세계적인 자연 트렌드는, 그 안에서 다양한 생명들이 인큐베이팅되고 만들어 나가는, 생물 다양성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냥 예쁜 꽃을 심는 공간이 더 이상 아니고 생태계가 순환하는 자연주의 정원입니다. 그 다음에 인간다움을 수행할 장소입니다. 제가 일하는 한수정(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나 산림청이 정원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거기다가 자연과 문화가 함께할 수 있어서 잠재력이 상당히 큽니다. 현황만 봐도 정말 인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 산림청이 너무너무 바빠요. 그래서 정원 담당 계가 과로 커졌습니다. 정원 도시로 가겠다는 지자체들이 엄청 늘고 있고, 정원 조례를 따로 만들기도 합니다. 국가정원이 현재 2개 곳이지만, 국가정원을 목표로 하는 지방정원이 늘고 있어요.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환경을 개선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산업까지 나아지니까요. 고급 문화 산업으로 훼손이 아니라 생태계를 회복하는 문화로 산림청이나 저희가 힘을 합쳐서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공간, 정원

     

정원은 생명의 공간으로 가야 합니다. 정원은 보기 좋고 예쁜 게 아닙니다. 팬데믹으로 국제정원심포지엄을 한국에서 개최하려다가 다들 오지 못해서, 영상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때 마이클 몬더라는 분이 있어요. 이 분은 ‘이든 프로젝트(Eden project)’를 만들었죠. 영국 콘월 지역 고령토 채석장을 생명의 공간으로 만들어서 지역과 상생하는 참여형 식물원으로 만들었지요. 우리나라도 자주 왔던 분이죠. 마이클 몬더가 ‘더 이상 영국 대부분의 공원과 정원은 좋은 예가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제가 수목원에서 일하면서 큐가든의 학문서 공부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영국을 따라갈까’를 고심했어요. 수목원, 식물원, 정원 문화, 정원 소재 등등 영국의 정원 문화들을 따라가기 위해, 기초 학문의 발달까지 배우려고 했지요. 그런데 이 분이 글쎄 더 이상 따라갈 예가 아니라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그 이유를 들어보니까, 아마 오늘 여기서 이 강연을 하는 이유와 같은 듯 합니다만, 자연을 통해서 도시의 안정과 회복이 돼야는데 지금까지 영국의 정원과 공원은 식물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소비하는 거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든스 바이더 베이(gardens by the bay)’해서 화려한 꽃들을 심잖아요. 봄이면 팬지와 페추니아를 가로화단에 심어요.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심었다가 없애고, 다시 봄에 페추니아 심고, 그거 다시 캐내고, 다시 겨울에는 꽃배추 심습니다. 이렇게 꽃을 개량해서 사람 보기 좋게 화려하게 만들어서 결실조차 보기 어려운 그런 소재를 계속 만듭니다. 식물은 생산자여서 다른 다양한 생명들이, 폴리네이터가 꽃가루받이를 도와주고, 서식처도 열어줍니다. 식물은 생명의 시작인데 지금껏 영국의 정원은 화려한 꽃, 화려한 눈요기로 자연을 소비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예가 아니라는 것이죠. 앞으로 정원은 재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분의 얘기로는 알록알록 현란한 패턴형 또는 다양한 코티지형 공원과 정원들을 ‘와일드 플라워 센터’로 바꾸라는 거죠.

와일드 플라워 센터? 우리도 야생화 정원을 만들다가 실패했어요. 그냥 산에 있는 식물을 갖고 와서 심으면 야생화 정원이 되는 게 아니죠. 산에 있는 여러 요소들이 정원으로 와서 잘 정착해야 합니다.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고 씨앗을 맺고 살아가게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의 서식지가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와일드 플라워 정원이 됩니다. 한 공간을 만들어 씨앗을 맺으면 그 씨앗으로 또 다른 와일드 플라워 정원을 만들게 됩니다. 이제 이렇게 가자는 것이지요. 외국에 폴리네이터 가든이 있습니다. 폴리네이터는 수분 매개자,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벌과 나비이죠.

제가 생명력이 넘치는,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는 정원에 꽂혀서 직원들에게 말합니다. 국립세종수목원 원장할 때입니다. 세종시 한복판에 있는데 ‘폴리네이터 가든’을 만들어야 된다고 했더니, 직원들이 예산이 없으니까 어디서 버려진 것들 주워다가 나비들을 위한 정원을 만들었어요. 나비들이 좋아하는 식이식물 심고, 생태를 쭉 연결해 보니까, 물도 필요하고, 쉴 때도 필요하고 어쩌고저쩌고해서 정말 만들었습니다. 놀랍게도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나비들이 찾아왔습니다.

저희도 국립수목원이니까 모니터링해야 되잖아요. 몇 달 사이 수십 종의 나비들이 찾아왔어요. 요만한 걸 만들었을 뿐인데요. 그중에는 충청도에서 처음 발견된 나비도 나타났습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말이죠. 저희가 이런 공간을 통해 조금만 도와주고 힘쓰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죠. 요즘은 신이 나서 ‘비-가든, 벌들을 위한 정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곤충 호텔도 짓고 난리입니다.

꿀벌들의 숲은 많이들 하잖아요. 왜 나주 배가 잘 무르고 옛날 같지 않은가? 폴리네이터가 제대로 없어서 곧 벌들이 필요하다고 얘기하잖아요. 전 세계적으로는 ‘자연주의 정원’이 유행합니다. 자연주의 정원을 만든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는 우리나라에서 국제 행사하면 자주 오는 분입니다. 정원을 다양한 숙군초들로 심으라고 합니다. 매년 1년 초 화려한 튤립 사다가 심어 왔죠. 국립세종수목원은 이제 야생 원종 튤립 중심으로 바꾸고 있어요. 지속가능하게 말입니다. 수입한 튤립들을 심고 버리고 심고가 아니라 다양한 식물들이 함께 살게 하는 것이죠. 이게 고급 기술입니다. 피고 지고, 가을에 마른 풀잎조차 아름답게 만드는 그런 고품격 ‘자연주의 정원’입니다. 이렇게 계속 가면, 이 공간은 눈요기용 화려한 정원이 아니라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정원으로 만들어지는 거죠.

피트 아우돌프 정원디자이너가 쓴 정원의 소재가 뭘까요? 네덜란드나 유럽에서 쓰던 소재를 우리 정원에 옮기면, 우리나라 자연주의 정원일까요? 초청해서 아우돌프의 강연을 들으면, 다양한 식물들을 함께 심고 수많은 식재 패턴을 만들어서 연중 아름답게 피고 진 모습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런 과정이 필요한 거죠. 그런 일들을 국립수목원, 산림청 중심으로 한 파트을 구성해서 지속가능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들어봤을 겁니다. 영국의 ‘체리 플라워쇼’, 아시죠? 우리나라가 요즘에 정원에 열정이 대단합니다. 첼시 플라워쇼 입장료가 몇 십 만원인데, 그걸 보려고 사람들이 늘어나니 영국행 전세기도 뜬대요. 이 쇼는 단순히 예쁜 정원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작가들이 소재를 만들고 상인들이 용품을 만드는 산업입니다. 황지해 작가가 2023년 첼시 플라워쇼에서 금상을 탔어요. 이전에도 상을 받은 분입니다. 산림청에서도 지원했어요. 황 작가가 찰스 왕과 포옹하는 사진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상을 받은 그 정원의 주제가 뭘까요? 약초 말리던 지리산의 옛 산촌의 모습이랍니다. 시냇물이 흐르고 다양한 약초가 피어나는 걸 보여주었어요. 전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그 섬세함에 놀랐다고 합니다. 현란하고 화려한 울긋불긋함이 아니라 지리산 산천의 한 계곡을 구현했지요. 이런 것이 곧 세계적인 흐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이 생명의 회복의 공간이라는 게 큰 트렌드입니다. 정원을 한다면 모두 뭘 만든다고 시설을 넣고 배치하고 길도 만들어 넣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 다 비워내는 게 정원이 되었죠.

지금 제게 전화 온 사람은 카타르에 가 있는 직원입니다. 카타르에서 세계 정원 박람회하는데, 거기에 한국 정원을 만들게 되었어요. 한국 정원 주제는 정선의 첩첩산중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산에 감동하는 게 바로 산자락이 첩첩으로 이어지며 색깔이 달라지며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산자락이 이어지고 이어지는 첩첩산중이잖아요. 그걸 주제로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병산서원의 만대루였는데, 물과 산이 있는 경관에 만대루를 모사해서 넣고, 만대루에서 그걸 조망하는 개념인데, 대상인 골드 메달을 탔어요. 그걸 자랑하려고 전화가 왔네요. 세계적인 것들이 진짜 우리 자연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랍니다.


주목해야 할 정원의 방향, 숲정원

     

두 번째 주목할 방향이 ‘숲정원’입니다. 숲정원은 어디에 막 공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오지에 절대적인 보존 숲이 있잖아요. 숲 가꾸기는 뚜렷하게 나무부터 가꿔야 합니다. 예산은 없죠. 아시다시피 나무를 빽빽하게 심잖아요. 그래야 나무가 쭉쭉 올라가니까요. 그러면 숲 가꾸기를 적절히 해야 합니다. 바닥까지 햇볕이 들어가야 나무도 건강하고 밑에 관목층, 초분층도 생깁니다. 초기에 빽빽하게 심은 걸 놔두면 꼭대기는 파랗지만 중간 아래는 죽은 공간이 됩니다. 그래서 빽빽하게 버려진 야산에 가서 공간 비워내기를 합니다. 이렇게 햇빛이 바닥까지 닿으면 수관도 퍼지고 관목층도 빛을 받고 땅속에 숨어 잠자던 매토 종자들을 깨워요. 보시듯이 비워내는 숲 가꾸기를 했습니다.

이거는 일본 데이터입니다. 숲 안이 그야말로 환상의 야생화 화원으로 바뀌었죠. 숲에다 심었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벤치 만든다고 돈 들이고 콘크리트 붓는 게 아니라 비워내면서 솎아낸 나무로 벤치 만들어 쉼터를 조성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 자기들끼리 또 다른 작은 정원이 생깁니다. 이렇게 생물 다양성이 풍성해지고 바닥까지 꽃을 피워내는 숲정원이 만들어집니다. 좋은 숲은 가만두고, 방치되어 헝클어진 숲은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사진을 매우 좋아합니다. 바람이 굉장하죠. ‘여기는 바람이에요’라고 말하지 말고, 이렇게 달아줍니다. 그럼 바람으로 살랑살랑 흔들리잖아요. 누구나 초록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지 않겠어요? 입구는 도와주고 쉬는 공간입니다. 실제로 영국 런던 한복판에 있습니다. ‘저관리형 숲정원’이죠. 오래된 침엽수들 안쪽에도 식물들이 함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저관리형 숲정원입니다. 봄이면 크로커스 향이 나고 깨알처럼 봄꽃들이 바닥에서 쫙 올라옵니다. 무르익은 봄에는 아젤리아 꽃이 핍니다. 숲이 우거지고 낙엽층이 생깁니다. 큰 에너지 투입 없이 이룬 숲이 됩니다.

숲정원 중에 자랑스러운 게 ‘광릉숲길’입니다. 광릉숲은 핵심 중 핵심입니다. 광릉숲만으로 1시간씩 일주일을 얘기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문제가 길은 좁은데 나무 때문에 길을 넓힐 수 없어요. 자동차 다니느라고 계속 다 죽어갑니다. 광릉숲이 포천과 남양주의 경계예요. 가까운 동네인데도 서로 왕래할 수 없어서 문화도, 정책도 달라졌어요. 옛날 분들은 광릉숲에 불이 나면 두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껐고, 수목원이나 광릉숲을 키우는데 두 동네 사람들이 함께 일도 했습니다. 지금도 거기 동네분들이 광릉숲에서 일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들어가기 어려워졌고, 숲 보려면 예약해야 되고, 외지 사람들이 많이 오가서 차로 막히니 지역에게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생물이 얼마나 중요한 숲이길래 우리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냐’는 생각도 하셨죠. 광릉숲에 길을 내려고 해도 못 내잖아요.

그래서 뭘 했냐 하면, 나무 한 개도 안 다치고 길 하나도 손대지 않고 숲과 숲을 이어서, 봉선사에서 수목원까지 걸어가는 길을 만들고 거기다가 공간별로 이름을 붙였어요. 이곳은 단풍이 제일 아름다운 ‘단풍 포천’이에요. 여기는 고사리가 제일 많은 ‘고사리 숲’이에요. 지나는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게 12경을 만들어 돕기만 했지요. 이 정도만 했습니다. 큰 나무도 어떻게든 비껴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문화가 바뀌었어요. 주민들 스스로 광릉숲 지킴이를 만들어서 손수 가꿨고, 다른 길로도 이어졌어요. 생각해 보면 이것도 숲정원의 하나입니다. 저는 광릉숲정원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소원했던 동네와 동네를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서 자연을 사랑하게 하는 경계가 되었습니다. 


품격 있고 아름답게 공간과 기능이 연결된 공간 


주목할 세 번째 방향입니다. 삶과 연계된 공간에 정원이 들어갑니다. 그걸 막해서 보여주면 안 되고, 품격 있고 아름답게 공간과 기능이 연결되도록 하면 훨씬 좋겠습니다. 혹시 어딘지 아세요? 숙박하는 리조트입니다. 정원이 있지요. 정원 끝 뒤쪽은 이렇게 생겼는데, 봉안당이에요. 봉안당에서 성묘해야 되잖아요. 평소에 가족들이 리조트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와서 정원도 산책하고 음악회도 듣고, 여러 프로그램을 즐깁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여기 봉안당에 모시는 거죠. 항상 성묘 와서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이 곳곳에 있는 것이죠. 엄청 비싼데 선풍적입니다.

여기도 한번 보시죠. 유명한 정원사 분이 한 것입니다. 외국 시골에 가면 저마다 고유한 풍경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 시골 풍경은 다 비닐하우스만 보인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우리 아름다운 농촌의 풍경을 알리고 싶었어요. 여기가 퇴촌에 있는데, 팬시하지요. 이게 비닐하우스입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정원입니다. 예전에 부모님이 농사짓던 공간, 그 공간을 다 정원으로 만들었어요. 너무너무 인기 있어서 하나 더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말 섬세하고 품격 있고 아름답습니다.

왜 명품은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앉아서 뭘 보면 나무 그늘이 보입니다. 섬세하게 주변 공간들을 만들었어요. 요즘 정원을 이렇게 가야 됩니다. ‘더현대갤러리’는 축구장 13개만큼 넓이를 이렇게 과감하게 간 거죠. 판매장 면적의 51%를 할애한 거니까요. 파격적이죠.

요즘에 웬만한 데 가면 다 있는 ‘식물형 카페’입니다. 옛날에 가든은 갈비집이잖아요. 요즘 가든은 카페입니다. 이게 트렌드입니다. 정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위기 '따라가기'가 아닌 선도해야 대세가 된다


  공공 쪽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 탄소중립,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을 붙이니 좀 진부하다고 느낍니다. 예산 따려면 다들 이런 말들을 씁니다. 하지만, 진정성 있게 ‘진짜 어떻게 바꾸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의무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선도를 해야 대세가 됩니다.

여기가 ‘빕스 온실 식물원(Phipps Conservatory and Botanical Gardens)인데 오래되어서 노후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식물원이었는데, 친환경으로 리모델링을 했어요. 온실하면 에너지를 많이 쓴다고 알잖아요. 여기는 에너지 하나도 안 쓰는 온실 경관 소재를 써서 모든 건물을 모듈화하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다 받아들여서 리모델링했어요. 이곳이 세계적으로 대표 사례가 되어서 아주 핫 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뭘 하려고 이렇게 열 발자국 앞서서 과감하게 도입,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립세종수목원에서 탄소중립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탄소 저감이 될까요? 소재는 이왕이면 탄소 축적량이 많은 걸 쓰면 되겠지요. 나무마다 뿌리마다 탄소 축적량이 달라요. 다음은 돌입니다. 돌은 탄소 발자국이 바닥에 가깝습니다. 다음은 빗물입니다. 이런 식으로 10가지 원칙을 세우고 맥락을 갖췄습니다. 실천하려는 분들에게 탄소중립 정원이 중요한 샘플이 되나 봅니다. 군부대에서도 견학을 옵니다.

땅속에 있는 것은 바이오차(biochar)입니다. 나무가 탄소를 축적해서 땅속에 묻혀 있는 게 바이오차잖아요. 나중에 석탄이 됩니다. 이 과정을 사람이 도와 만듭니다. 탄소를 축적하면서 토양의 환경 조건을 매우 좋게 합니다.

저는 ‘정원 도시’에 주목합니다. 이 도시는 아직 없는 도시입니다. 해남이고 목포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매립 공사가 한창입니다. 여기가 ‘태양광 시설 정원’입니다. 여기는 에너지 투여 없이 태양광, 친환경 시설, 리조트, 길도 만듭니다. 토목 건축하는 분들의 도시를 만드는 개념은 뭘까요? 싹 정리하고 맨땅에 그림 그려서, 길부터 쫙 내는 게 기본 패턴이잖아요. 하지만 여기는 조경하는 분이 들어갔습니다. 하나도 다치지 않고 있는 길 그대로, 나무 그대로 해서 지금 이걸 만들고 있습니다. 태양광 스마트 시티입니다.

환경부에서 환경에듀센터 몇 천 억짜리를 짓는 데, 환경 시설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진짜로 친환경의 도시가 만들어집니다. 여기 도시들을 만드는 기본 개념은 정원입니다. ‘산이 곧 정원이다’라고 말합니다. 산이 정원이고 숲이 정원입니다. 곳곳에 정원을 만들고 연결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힐링에서 치유까지

     

또 하나 정원의 방향이 ‘치유 정원’입니다. 산림 치유도 있지만, 치유 목적으로 데이터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합니다. 치유 정원은 단순히 공간뿐 아니라 키우고 가꾸고 하는 과정, 다음에 그 산물인 식물로 인해서 좀 더 삶에 직접 다가갑니다. 주변에 치유들이 많은데, 해양 치유까지 있고 프로그램으로 한다고 합니다. 치유를 모니터하는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보통 모니터한다면 거부감이 느껴진대요. 그런데 정원 치유 프로그램이라면 다들 환영하며 참여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정원 워딩이 가지는 잠재력이 큽니다. 브랜드로 잘 키우고 다양하게 접근하면 발전할 분야가 아닐까요. 특히 나이 든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 시대에 더욱 필요합니다.

     

숲속 세상이 우리와 다른 점

     

산림청 47년 개청 이후 최초 어쩌고저쩌고하면 좀 민망합니다. 어떤 걸 경계하냐면 자꾸 고집이 생기고, 주장이 생기고, 틀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무들은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을 삽니다. 저 수백 년된 느티나무처럼 속이 비었는데도, 봄이면 저렇게 말랑말랑한 새순을 내주고 꽃을 피워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도 저렇게 말랑말랑한 느낌이 될까요. 앞으로 남은 시간과 삶을 이렇게 채워갈 수 있을까요.

숲은 ‘더불어 숲’입니다. 숲 강연하면, ‘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 쟤는 저렇게 대단해요.’라고 한참 이야기합니다. 봄에는 꼭 국립수목원에서 저 피나물 군락은 한번 꼭 만나보세요. 정말 장관입니다. 왜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키도 작을까요. 큰 나무가 가리기 전에 재빠르게 터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겨울 동안 움츠려 있다가 땅이 녹으면 식물들의 수많은 전략들이 나오고 치열합니다. 그럼에도 공간과 공간은 나눠지고 전체적으로 숲이라는 공간이 완성됩니다. 사람은 서로 경쟁하다가 보면 끝이 안 좋잖아요. 양쪽에 갈리고 극과 극으로 가잖아요. 숲은 어쨌든 열심히 치열하게 살지만 조화의 순간이 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생태학적 용어로 ‘크라운 샤이니스(crown shyness)’라고 하는데 경험해 보셨죠? 숲 좋아하시는 분들이니까, 숲에 가서 누우면 이렇게 수관이 보이잖아요. 나무들이 꾸불꾸불 조금이라도 빛을 더 보려고 이렇게 치열하게 살면서도, 결국 경계를 나누어 함께 모여서 하나의 숲을 이룹니다. 숲은 경쟁하지만 결국 서로서로 자리잡고 더불어 살아갑니다.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숲입니다.

봄철, 가을철에 사람들은 산으로 숲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단풍이 든다는 것은 식물의 입장에서 굉장히 어렵고 처절하고 긴장되는 시간입니다. 곧 닥쳐올 매서운 겨울 때문에 생장을 포기하고 구멍들은 다 차단합니다. 이로 인해 광합성이 사라지고 잠겼던 색소들이 발현해 단풍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우아한 척해도 불리하면 성질을 냅니다. 하지만 나무는 어려운 순간에도 저렇게 아름답게 발현하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식물이, 나무가, 풀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연은 정말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말 못하는 나무와 풀의 이야기

     

저 식물이 질경이잖아요. 산에서 길을 잃었다가 질경이를 만나면 길을 찾을 수 있는 거 아시죠? 질경이는 한자 이름으로 차전자(車前子)라고 부릅니다. 자동차 바퀴 앞에 떨어져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질경이가 자동차가 다니는 길바닥을 좋아할까요? 안 좋아합니다. 걔도 숲속이 좋겠죠. 그럼, 왜 길바닥에 사냐? 블루 오션인 거죠. 햇볕 가득한 길바닥이 경쟁도 없잖아요. 그렇지만 길바닥은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질경이가 변신을 합니다. 이렇게 밟히면 따라붙고, 씨앗이 떨어지면 씨앗은 수분을 머금어서 자랄 때까지 모았던 수분을 이용합니다. 사람들은 질경이가 사는 법을 보고 다이어트 식품을 만듭니다. 질경이 씨앗 차전자를 먹고 물을 마시면 씨앗이 수분을 흡수해서 배가 빵빵하게 부릅니다. 이 원리로 다이어트를 합니다.

담쟁이덩굴의 흡착판 사진입니다. 담쟁이덩굴이 담을 어떻게 타고 올라가느지는 한 10분 얘기해야 됩니다. 어쨌든 담에 잘 붙는 저 모습은 심전도할 때 같지요. 옆에 있는 거는 뭘까요? 벨크로라고 하는 일명 찍찍이입니다. 잘 붙어서 씨앗을 멀리 이동해 달라라고 꺼끌꺼끌합니다.

몇 년 전에 노벨의학상을 받은 중국 여성 과학자가 있었지요. 우리 개똥쑥을 갖고 받았어요. 우리가 옛날부터 개똥쑥은 약에 쓴다고 했잖아요. 막연히 아는 게 아니라 여러 힌트를 얻어서 현대 신의학으로, 항암제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국립수목원 있을 때 함께 일하던 곤충 박사님입니다. 당시 저 곤충 박사님한테 로봇 공학자가 찾아왔어요. 로봇 공학자는 카이스트에서 오셨는데, 첩보 로봇을 연구했지요. 가볍게 막 움직이는 뭘 만들려고 하니까 쇳덩어리로는 곤란했대요. 가만히 보니 곤충들은 얇은 날개로도 가볍게 빗속을 다녀요. 그렇게 로봇 공학자와 곤충학자가 곤충의 날개 구조를 나노 구조로 연구해서 로봇을 만들었어요. 로봇과 자연은 180도 다른데 말입니다. 무엇인가 풀어야 한다면, ‘막연히 좋고 힐링이고 아름답고’를 벗어나서 자연의 여러 요소를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도 좋겠어요.

저 금강초롱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종, 특산속입니다. 학명이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입니다. 나카이라는 일본 학자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자원을 조사한 동경대 교수입니다. 나카이 교수가 금강산에서 이 식물을 발견하고 한국에서 탐사를 도왔던 하나부사에게 식물 학명을 헌정했어요. 학명은 전 세계가 명명규약에 따라 짓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저 아름다운 우리나라 식물 하나에도 아픈 역사가 숨어 있지요.

어떻게 사느냐도 식물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민들레는 저렇게 가볍게 붙기도, 먹히기도 합니다. 바람에 얹을 만큼 스스로를 하찮게, 가볍게 해서 어디든 날아갑니다. 기록에 따르면 40km까지 간다고 합니다. 어떻게 사느냐, 그 방법들이 식물에 담겨 있습니다.

이제 봄이 오잖아요. 봄이 오는 숲에 가시면 나무마다 새순의 색깔이 연두색으로 같은 게 아니라 새순의 색깔이 단풍처럼 다 다른 것을 확인해 보셔요.

이것은 은방울꽃입니다. 은방울꽃을 보셨어요? 숲에서 잘 못보는 이유가 잎이 넓어서 꽃이 가려져 있어서입니다. 저런 걸 만나려면 멈춰서 쭈그리고 앉아 저 입을 싹 들춰보면 됩니다. 저는 정말 평생 식물을 봤어도 저 둥글 은방울꽃처럼 하얗고 예쁜 게 없어요. 보다 보면 아주 맑고 깨끗한 향기가 느껴지죠. 산에 가서 ‘공기 좋다’가 아니라 저 풀 안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서 죄다 들여다 봐야 합니다. 이런 시선이 필요하고 이름을 알면 더 즐겁습니다. 나무 심고 이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지요.

이거 이름 아세요? 생강나무입니다. 흔히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구별 못해요. 생강나무를 비비면 향기로 알게 됩니다. 생강나무의 별명이 뭔지 아시죠? 산동백, 울동백입니다. 정선아리랑과 김유정의 동백꽃은 빨간 동백이 아니라 이 꽃입니다. 아우라지 강 건너에 노란 생강나무 꽃이 하늘 하늘 피었다고 할 때, 생강나무가 산동백입니다. 씨앗과 열매로 기름을 짰거든요. 동백꽃이 안 자란 동네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짰거든요. 멀리서 아른아른 봄이 오면, 생강나무 꽃이 피면, 산동백꽃이 피면 작년에 종자 씨앗 따러 갔다가 본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이게 정선아리랑의 한 대목입니다. 노래와 가락과 맛에도 식물이 있지요.

저는 추억이 있습니다. 산에서 만난, 가장 노랗고 아름다운 단풍 아래로 제가 갔습니다. 저기 계신 김철민 박사님 포함해 4명이 대학원 개교기념일에 설악산을 종주했어요. 당시 산에 가서 조사만 하지 말고 나무를 보자고 했었지요. 그때 산자락에서 노랗게 너무 이쁜 나무들이 다 생강나무였어요. 당시 함께 갔던 사람 중에 지금도 저랑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말로 썸을 타던 시절이었지요. 지금도 어디를 가다가 생강나무를 보면,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던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지금도 노란 생강나무 단풍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나무 한 그루에도 향기가 있고 문화도 있고 문학도 있고 가락도 있고 맛도 있고 나의 추억이 있네요. 나무들이나 풀들과 공유할 게 많습니다.

오늘부터 뭘 하시겠어요? 여기 백목련도 아름다웠지만 붉은 계단 틈틈이 뽀리뱅이 새순, 또 섬세한 풀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고개를 숙이면 울망졸망 엄청나게 많습니다. 고개를 들어보세요. 대전이라면 튤립나무가 있어요. 튤립나무가 있었나? 진짜 튤립나무의 잎 꽃 한번 보시면 놀랄 것입니다. 매일 보던 가로수길에도 저런 꽃이 피고 저런 잎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윽한 단풍을 지나서 낙엽을 밟고 가로등 빛 사이로 잡히는 나뭇가지를 제대로 보시길 바랍니다.

식물을 만날 때는 오감을 열어야 합니다. 저는 눈으로 인상적인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봤지만, 탁탁 마음에 박히기 좋은 기억들은 다 향기를 느꼈을 때입니다. 쥐똥나무 향기가 얼마나 맑은지 아십니까. 녹색 바람을 타고, 나뭇가지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어떤지 아십니까. 오감을 열고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됩니다. 그런 공간을 좀 더 가까이 내 곁에 두고 만나는 곳이 바로 정원입니다. 정원의 방식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방치된 야산도 주목할 수 있고, 비워내도 정원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고유한 것들에 문화적 특성이 묻어 있습니다. 이렇게 이어져서 생물 다양성, 기후변화, 탄소중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생태축과 생물 다양성의 거점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 곁에서 사람은 걷고 느끼고 위로받고 치유받고 영감을 얻습니다. 그런 곳이 바로 숲이며, 좀 더 가까이 만나는 곳이 정원이 아닐까 합니다. 강의를 마칩니다. 

     


Q: 저는 올해 마흔이 조금 넘었습니다. 제 친구들도 프로필로 꽃사진을 많이 올립니다. 이제 식물에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원과 수목원의 영역을 이끌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전공으로 정하거나 국가 차원에서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시스템을 고민한 것이 있으면 짧게라도 말씀해 주세요. 


A: 대학에서는 좀 더 전문적인 데 관심을 갖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저희도 교과과정이나 아이들이 알맞은 시기에 정원을 접할 방법, 기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가 공공기관이어서 무료 교육도 있고 유료 교육도 있어요. 무료 교육만이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고등학교 학생들은 진로체험으로 유료화해서 보는 게 좋습니다. 학교 전체가 참여하기도 하는데 호응이 꽤 큽니다. 뜻을 갖은 분들이 했으면 합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서 국립세종수목원은 학교교육팀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교육청과 의논하고 진행도 합니다. 유아부터 어린이까지 프로그램들이 있으니, 관심 갖고 뜻 있는 분들과 함께했으면 합니다.

대학에 전공이 있는데, 전문적인 친구들을 위해 ‘수목원 전문가 과정’을 산림청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천리포수목원, 백두대간수목원, 신구대학이 운영을 합니다. 이 분야와 비슷한 산림, 임학, 원예, 조경, 또는 전혀 다른 분야인 대학생들이 꽤 긴 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고 나면 전문가로 트레이닝이 됩니다. 대학 진로도 이쪽 분야에 굉장히 많은 일자리가 있습니다. 올해 국립수목원 외에도 세종, 백두가 있고, 정원 쪽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담양에 정원문화원이 생기고, 새만금수목원이 생기고, 난대수목원도 생깁니다.

학교에서 정확하게 교육받은 게 생각보다 좀 적습니다. 그래서 그런 교육과정을 듣는 친구들을 바로 채용할 수는 없습니다. 공공기관이라서 채용은 완전히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하는데, 그 교육들로 훈련하고 인턴 프로그램을 체험한 친구들이 많이 됩니다. 요즘은 1기, 2기 출신들이 있습니다. 뜻을 둔 친구들이 시간을 할애해서 과정을 참여하면 훨씬 더 일하기 좋아집니다. 이렇게 전문가로서 일할 기회들은 마련되어 있습니다.

뭐든지 열려 있습니다. 담양에 정원문화원은 9월에 생겨요. 거기는 정원 전문, 시민정원사가 되는 게 1차적입니다. 숙박시설까지가 있어서 전문화된 관리들을 양성하는 과정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학교랑 매칭해도 좋고, 선생님들께 소개해도 좋습니다.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남도에 있는 정원문화원은 여러 단체가 모여 함께 개발하고 확산합니다. 그냥 만들어서 공급하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뜻이 있는 여러 단체들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행사나 문화 전시도 함께할 수 있도록 공공에서 문을 열고 있는 편입니다. 문 두들겨 주면 어떤 형태로든 함께할 수 있습니다.

새 역사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숲이 수목원으로 와서 정원까지 가고 있는 새로운 역사입니다. 외국은 오래전부터 그냥 가드닝하는 게 굳어서 문제입니다. 산림청에서 치유 정원을 만들 듯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할 때, 이렇게 정원이 확장기에 있을 때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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