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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ㅣ추석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노동자들

 

2024-09-20 김주환

김주환은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을 건설하는 데 함께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으로 IMF 구조조정 시련을 현장노동자들과 함께 겪었다. 이후 현장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 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을 거쳐 얼마 전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 임기를 마쳤다. 현재는 플랫폼노동 희망찾기,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등의 활동을 하며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노동기본권이 배제된 '비임금노무제공자'의 수는 847만명으로 전체 노동자 수의 1/3


농업사회에서 추석은 고된 노동의 결실인 수확을 축하하고 감사하며, 한해 동안 힘들었던 삶을 위로하는 장(場)이었다. 오늘에 와서는 지속해 온 노동에 주는 휴식(법정 유급휴식), 지속되어야 할 노동을 위한 위안(상여금), 그리고 노동의 책임을 다했음을 친족, 지인들과 확인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가족을 만나려는 긴 행렬이 도로와 철로를 가득 메운다. 그런데 이렇게 보편화된 추석이라는 축제의 장에 초대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이다. 국가는 노동기본권이 배제된 노동자를 ‘비임금노무제공자’라고 부른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이들의 수가 847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해서 전체 노동자의 1/3에 달한다.



올 추석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져


추석 당일 늦은 밤, 불빛이 꺼지지 않은 경기도 양주 옥정 중심상가에는 젊은 무리들과 가족들이 오가는 뒤로 상가 곳곳의 편의점과 벤치에 콜을 기다리는 대리운전기사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명절은 잘 보내고 계세요?”

“그냥 그렇죠, 뭐.”

기사들 사이로 비집고 앉으며 건넨 의례적 인사였지만 낮은 한숨과 함께 냉기 흐르는 반응에 움칫했다. 멋쩍은 분위기를 가로질러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라이더들은 좋겠네”라고 짧게 내뱉고서야 눈길을 주며 “추석에 라이더들은 배달료라도 오르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대리운전도 이전 명절 때는 대리비가 평소보다도 20~30%는 더 나왔고, 명절 팁이라고 건네는 고객들도 제법 있었다. 명절 밤거리를 지새는 고달픔과 외로움에 대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외진 상가촌 곳곳을 대리운전기사들이 채우고 있다. 이 풍경은 명절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온 대리운전기사 수에 비해 일감이 퍽 줄었음을 말해 준다. 대리운전 가격은 오히려 내려갔고 굳이 저렴하게 대리운전을 부르는 고객에게 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상황이 이렇게 변한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기 탓만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감은 갈수록 주는데 대리기사들은 늘어나니, 이 짓도 못해 먹겠다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이제 대리운전기사에게 밤거리를 함께 새우던 동료들은 경쟁자이고,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였던 배달 라이더들은 시샘의 대상일 뿐이다.


택배기사들의 과로사가 다시 급증하고 있어


얼마 전 '배달의민족'은 라이더들에게 지급되는 배달료를 일방적으로 1/3 이상을 삭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서 배달 주문이 줄어 그러나 하는 추측이 무색하게, 정작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7000억 원에 달했고 독일 모기업의 적자를 메꾸기 위해 4000억 원이나 배당했다. 코로나19 시기에 한 달 1200만 원의 수입을 올려 ‘생활의 달인’에 출연했던 라이더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얼마 전 기사와 ‘중국 배달왕’이 오토바이를 탄 채 돌연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연이은 과로사가 사회문제로 이슈화되어 사회적 합의를 거쳐 택배비를 인상한 것이 엊그제 일인데, 최근 택배기사들의 과로사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만난 웹툰작가에게 추석에 고향 가냐고 묻자, 마감을 맞추려면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며 다른 세상의 일이라며 핀잔을 들었다.


'비임금노무제공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올해 최저임금 심의 결과, 2025년인 내년의 최저임금은 1.7%로 결정되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10년 전 모든 정당이 내걸었던 공약인,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에 의미를 부여하기엔,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노동자’의 현실은 절박하다. 그런데 인상률과 별도로 최저임금 심의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흐름이 있었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하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노동기본권이 배제된 성문 밖 사람들이 생존권 보장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게 요구하다니. 생소해서 짧은 에피소드로 흐지부지될 것 같던 그들 주장이 파장을 일으켰다. 그들의 주장을 다루기조차 거부하던 위원회 위원장의 주장이 무색하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다룰 의무가 있다고 국가공무원이 실토를 했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에 대한 노동기본권의 배제를 당연히 여기던 노동체계에 돌을 던진 것이다. 결국 최저임금위원회가 현실 여건상 어렵다는 핑계를 대며 적용논의를 포기했음에도, 파장은 앞으로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약자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한다


집권 초기 노동귀족 때려잡기로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갔던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해 노동약자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호하겠다”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대표적 노동약자로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함께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를 호명했다. 또 노동약자보호법에는 “노동약자를 위한 표준계약서와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미조직 근로자의 권익 보호·증진을 위한 재정 지원 사업의 법적 근거가 담길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수혜 당사자가 될, 한 대리운전기사가 “노동약자 보호법은 ‘노조하지마, 당신들. 우리가 요만큼 해 줄 테니까, 노조 활동은 포기해’라고 사탕발림법을 하나 만드는 거”라고 말한다. 이에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던 처지에서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며, “노조하니까 반대하는 거냐?”라고 빈정대는 소리도 들린다.


산재보험 적용으로 ‘자발적 착취의 질주’가 드러나다


작년 7월부터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들에게도 반쪽짜리지만 산재보험이 확대 적용되고 있다. 실효성 논란은 별도로 정부가 발표하는 산재사고 다발 사업장의 지형이 변하는데, 건설과 중공업 등 전통적 사고다발 사업장을 밀어내고 배달의민족, 쿠팡 등 플랫폼 기업들이 선두를 다툰다. 산재보험을 적용하자마자, 어떤 보호장치도 없이 생계를 잇기 위해 위험을 담보로 ‘자발적 착취의 질주’를 하는 은폐되었던 플랫폼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죽음으로 향하는 질주는 멈춰야지, 진통제와 각성제를 처방할 일이 아니다. 스스로 안전과 생존을 지킬 수 있도록 배제되었던 노동기본권을 회복시켜야 한다.


노동약자를 비껴간 노동체계를 정상화하자


오늘의 플랫폼노동의 열악한 노동은 75년 전 대한민국 제헌의회에서 만든 헌법 32조에 따라 국가의 의무로서 최저임금 보장, 그리고 근로기준법 제47조 및 최저임금법 제5조에 따라 플랫폼노동자와 같이 노무를 제공하고 건당 보수를 받는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해야 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가 부러 부정하거나 애써 외면해 왔다. 가장 필요로 하는 노동자를 비껴간 노동체제를 정상화하는 것이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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