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8 최민욱 기자
AI 데이터센터가 서버 냉각을 위해 물을 대량 소비하면서 '물 먹는 하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물 스트레스 지역에 몰려 있는 센터들은 지역 공동체의 물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 700W 전력을 쓰는 AI칩 하나당 시간당 약 1리터의 물이 쓰이며, 향후 데이터센터의 물 사용량은 지금보다 6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AI의 '물 발자국'이 세계적 갈등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왜 물 먹는 하마가 되었을까?

대형 AI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양의 물을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때 필요한 설비와 반도체의 생산 과정에서 소비하는 물을 제외하더라도, 완성된 데이터센터의 AI를 작동할 때마다 물이 소비된다고 한다. 막대한 열을 내뿜는 AI칩을 식히기 위한 증발식 냉각 시스템 때문이다. 폭발적으로 확장하는 AI 생태계와 발맞춰 기하급수적으로 물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물이 있다면, 기후변화 물 부족시대에 물 사용량을 줄이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공중에 물을 뿌리는 증발식 냉각 시스템
대형 AI 데이터센터는 서버 온도를 제어하기 위해 증발식 냉각 시스템을 사용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거대한 냉각탑 혹은 증발식 냉각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서버에서 생기는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을 계속해서 증발시키는 원리다. 서버에서 나온 뜨거운 공기나 물이 냉각탑 안에서 물과 만나면, 물이 증발하면서 열을 흡수해 온도를 낮춘다. 이처럼 오픈 루프(open-loop) 냉각 방식을 쓰면, 증발된 물이 증기로 배출되므로 물이 ‘소비’되게 된다. 증발식 냉각이 선호되는 이유는 바로 에너지 효율성이다. 전통적인 공기조화 방식(에어컨)보다 훨씬 적은 전기로 열을 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증발식 냉각은 전력 소비를 줄이지만 물을 훨씬 많이 쓰고, 공기 냉각은 물을 쓰지 않지만 전력을 크게 더 쓴다. 이런 상충관계 때문에, 많은 데이터센터 운영자는 탄소발자국과 전기요금을 줄이기 위해 증발식 방식에 의존한다. Google은 물 냉각 사용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을 약 10% 절감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대규모 CO₂ 배출을 피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AI 기업들이 AI가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을 억제하기 위해 ‘전기 대신 물을 더 많이 쓰는’ 선택을 한 것이다.
AI 칩 하나가 전자레인지를 돌린다

증발식 냉각이 왜 그렇게 많은 물을 소모하는 걸까?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AI 가속 칩 중 하나로 꼽히는 엔비디아(NVIDIA)의 H100 칩을 예로 들어보자. 이 칩 한 개가 소모하는 전력, 즉 TDP(열 설계 전력)는 700W 수준이다. 이는 가정용 전자레인지를 돌릴 때와 비슷한 정도의 전력 소비량이다. 칩 두 개면 가정용 전기주전자를 사용하는 수준으로 열을 방출한다.
일반적인 증발식 냉각 시스템은 0.69kW의 열을 식히는 데 물 1리터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를 단순 계산해보면, 700W(0.7kW)에 가까운 열을 계속 식히려면 칩 한 개당 대략 1시간에 물 1리터씩 소비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데이터센터 환경은 더 복잡하지만, 이런 단순 수치만으로도 대규모 칩 운용 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이 가능하다.
시장 추정치를 보면,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 누적 출하된 H100 칩이 350만 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칩 하나가 1시간에 1리터씩 물을 먹는다고 가정하면, H100 단일 칩만으로도 전 세계에서 하루에 약 8.4만 톤의 물이 소모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500mL 생수 약 1억7천만 병에 해당한다. 물론 실제 데이터센터는 H100 칩 외에도 다양한 설비와 칩이 들어가니 물 사용량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물 스트레스 지역에 미치는 영향
가장 큰 문제는 이 물을 ‘어디서’ 끌어오느냐에 달려 있다. 많은 AI 데이터센터가 물이 풍부한 곳이 아닌, 가뭄이 심각한 지역이나 사막 인근, 물 스트레스 지역에 위치한다. 미국 데이터센터들은 미국 전체 유역의 90%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있으며, 약 20%의 센터가 중-고 위험의 물 스트레스 지역(특히 서부 지역)에 의존한다고 한다. 즉, 5곳 중 1곳은 농업·산업·주민 모두가 부족한 물을 놓고 경쟁하는 셈이다.

실제로 애리조나(피닉스와 인근 도시 메사·굿이어 등)는 전 세계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 집결지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지만, 10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센터가 뿜어내는 수증기는 곧 공동체의 물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오리건 중부의 경우 농민과 원주민 공동체가 구글의 물 사용에 크게 반발해 소송까지 벌였고, 상대적으로 물이 풍부하다고 여겨지는 중서부에서도 웨스트데모인시 전체 물의 6%를 마이크로소프트가 한 달 만에 사용하자 지역 공공 서비스에 압박이 가중됐다. 이에 따라 일부 지자체는 새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때 물 사용 절감 대책(예: 재활용수 사용, 고효율 냉각 기술 적용 등)을 제시하지 않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AI의 ‘물 발자국(water footprint)’은 결국 단순히 기업의 지속가능성 이슈를 넘어, 지역사회의 자원 배분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테크 기업 입장에서는 “절대량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명하지만, 소도시나 건조 지대에서는 이 규모가 지역 생존에 직결될 수 있어 갈등이 심화된다. 더욱이 오는 2027년이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 물 사용이 현재 대비 6배 이상 늘어, 연 최대 66억 m³(톤)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역갈등이 더 크게 번질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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