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기후위기가 만든 산불, 산불이 만든 기후위기
- planetd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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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1 이담인 기자
2025년 3월, 초강풍과 극심한 가뭄 속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기후위기가 만든 악조건에서 확산된 재앙이었다. 산불은 이제 단순 자연재해가 아닌 복합적인 요소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인재다. 산불이 기후위기를 심화시키고, 기후위기가 산불을 불러온다. 이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산불은 앞으로 더 거대하고 강력해질 것이다.

2025년 3월 말, 전례 없는 규모의 산불이 대한민국 산림을 할퀴었다. 경상북도 의성과 경남 산청에서 시작된 산불은 초속 20m 이상의 강풍과 장기간 지속된 건조한 날씨를 타고 빠르게 전국으로 번졌다. 3월 14일 산청에서 처음 발화한 불씨는 22일 경북 의성에서 또 다른 화재와 맞물려 안동·청송·영덕·영양 등 여러 지역을 덮쳤다. 이 산불로 31명의 사망자(4월 2일 기준)가 발생하고, 3만 명 이상이 긴급 대피했으며, 주택 3천여 채가 전소되었다. 피해 면적은 4만8천 헥타르 이상으로 역대 최악을 경신했다. 산림청은 피해 규모, 산림 복구의 난이도, 문화재 피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2022년 강원 동해시와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했던 산불을 능가하는 대형 재난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번 산불의 직접적 원인은 벌초 중 라이터를 사용한 성묘객의 부주의로 파악된다. 그러나 작은 실수가 이처럼 전국을 휩쓴 재난으로 확대된 이유는 기후위기가 만든 위험한 조건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3월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의 30%에도 못미쳤고, 오랜 기간 지속된 고온건조 상태가 작은 불씨도 큰 산불로 번질 수 있는 최악의 기후 조건을 만들었다.
산불을 키운 주요 원인, 더 강력해진 서풍
2025년 대형 산불 확산의 직접적인 동력으로 작용한 강풍은 3월 25일 청송에서 순간풍속 초속 25.1m, 안동에서 19.7m를 기록하며 산불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의 배경에 있는 ‘남고북저’ 기압계, 즉 남쪽 고기압과 북쪽 저기압 사이에서 강한 서풍이 형성되는 구조를 지목했다. 이로 인해 태풍급 강풍이 형성되며 산불 확산 속도는 시간당 8.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봄철 서풍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면서 기압이 증가하고, 영동지역과 경상도는 급속도로 건조해진다. 그런데 최근 기후위기로 한반도 주변 바다가 따뜻해짐에 다라 남쪽 고기압이 강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보다 더 강력한 남고북저형 기압배치가 자주 발생하며 강한 서풍이 영동과 영남 지역에 강력한 산불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전 해'의 건조한 기후에 영향을 받는 산불
산불은 봄에만 일어나는 계절적 재난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산불 발생 시기와 강도가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폭염과 가뭄이 빈발하면서 초여름까지 산불이 이어지고, 가을과 겨울에도 건조한 날씨로 인해 산불이 증가하는 추세다. '산불 계절'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이 2025년 4월 2일 발표한 <2025년 3월 기후특성> 보도자료에 따르면, 3월 21일∼26일에 전국 평균기온은 14.2 ℃로 역대 가장 높았고,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상대습도가 평년 대비 15%p 이상 낮았으며, 고온 건조한 날씨에 강한 바람이 이어지면서 산불 발생과 확산이 쉬운 기상 조건이 형성되었다. 아래 그림은 한국의 최근 10년 간 3월 평균기온이 과거 대비 1.8℃ 이상 증가했고 상대습도는 3∼10% 감소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전남대학교 해양학과 연구팀이 2018년 발표한 「남한지역 봄철 산불과 동아시아 기후인자와의 상관성 연구」는 최근 35년간 남한 지역의 봄철 산불 발생 패턴과 동아시아 기후 인자 간의 상관관계를 정밀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남한 봄철 산불은 동아시아 지역의 기온, 강수량, 습도, 토양 수분, 바람 및 대기순환 등 복합적인 기후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산불 위험을 나타내는 대표 지수인 FWI(Fire Weather Index)가 높아지는 경향과 산불 발생 건수 간의 상관성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FWI 분석 결과, 남한 봄철 산불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패턴은 동중국 지역의 기온 상승과 한반도 및 일본 지역의 건조한 서풍 강화였다. 특히 전년도 겨울 초입에 한반도 인근 지역의 상대습도와 강수량이 감소해 토양이 건조해지면, 이듬해 봄철 산불 발생 위험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산불은 '그 해의 날씨'만이 아니라 '이전 해의 겨울 기후'에도 강하게 의존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봄철 강풍과 건조한 날씨를 산불의 주된 원인으로 봤지만, 이제는 계절을 넘나드는 기후 인자들의 누적 효과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산불 대응은 단기 기상예보만으로 한계가 있으며, 수주에서 수개월 전부터 영향을 미치는 기후 요인을 파악해 조기 예측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연중 재난이 된 산불의 대응 전략이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전반적으로 재정비돼야 한다.
대기오염과 기후위기가 맞물리는 반복적 재해

기후위기가 점점 더 많은 산불을 유발하고, 그 산불이 다시 대기를 오염시켜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순환의 고리'가 뚜렷해지는 추세다. 지난 2022년 3월, 강원도 동해시와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발생했던 산불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산불은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였으며, 213㎢의 산림을 213시간에 걸쳐 태우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한국기상산업기술원 산하 연구팀은 이 산불이 지역적 재난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의 기후와 대기질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산불 직후 지역의 기온이 상승했고 상대습도는 급격히 떨어졌으며 초미세먼지 농도는 평소의 24배로 치솟았다. 특히 산불 발생 시기(3월 4~5일)와 직후의 대기 흐름을 보면, 강한 서풍과 건조한 날씨, 고기압의 정체 등이 맞물리면서 연기와 오염물질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위성 영상 분석 결과, 산불로 발생한 연기 플룸(smoke plume)은 북동쪽 방향으로 빠르게 확산돼 강원 영동 지역은 물론 동해상까지 영향을 미쳤다.
산불은 다량의 온실가스와 초미세먼지를 방출하며 대기화학 조성 자체를 바꿔 놓는다. 2022년 울진-동해 산불 기간 중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약 103만 톤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서울시가 한 달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와 맞먹는 수준이다. 산불로 증가하는 이산화탄소, 메탄, 초미세먼지, 오존 등의 농도는 다음 재해의 조건을 마련한다. 이러한 순환적 구조 속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2차 재해의 증가다. 산불로 인한 대기오염은 호흡기 질환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오존과 미세먼지 상승으로 폭염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을 높인다. 이것이 또다시 산불 발생 조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산불과 기후위기가 서로의 재앙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탄소 흡수원을 없애 버리는 산불
산불은 산림의 탄소 흡수 능력마저 태워 버린다. 2022년 3월 울진-동해 산불이 탄소 흡수원이 파괴된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연구진은 이 산불로 소실된 산림의 탄소 저장량이 약 139만 톤(tC)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전체 산림 탄소 저장량(4억3천만 톤)의 약 0.3%를 단 10일간의 화재로 잃어 버렸다.
2020년 기준 한국 전체 산림의 탄소 저장량은 약 4억3221만 톤(tC)으로 추정되었다. 연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6%를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점점 더 강하고 빈번해지는 산불은 산림의 탄소 저장 능력을 위협하고 있다. 울진-동해 산불로 파괴된 산림 면적은 약 2만5천 헥타르에 이르며, 이 중 침엽수림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침엽수림의 단위면적당 탄소 저장량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산불에 취약하고 광범위하게 분포해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기 쉽다. 산불은 단기간에 수십 년간 축적된 산림의 탄소 저장 능력을 없애 산림 탄소 흡수 시스템에도 위협을 가한다. 산불로 인한 물리적 파괴로 식생의 활력과 다양성이 저하되어 산림의 탄소 흡수 효율 저하로 나타난다. 산불이 휩쓸고 간 토양은 구조가 망가져 식생 복원조차 어렵다.
기후위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국의 산불 대응 시스템
2025년 대형 산불 진화가 쉽지 않았던 또 하나의 원인으로, 산불 대응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현장 인력과 노후된 화재 진압 장비가 꼽히고 있다. 이번 산불의 진화 작업 초기에 투입된 ‘산불 예방 진화대’의 평균 연령은 61세였다. 이들은 대부분 일용직으로 고용돼 있어 전문성이 떨어졌고, 기본적인 방화복이나 특수 보호 장비도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 결국 지난 3월 22일 경북 산청에서 산불을 진화하던 산불 예방 진화대 3명이 불길에 갇혀 끝내 숨지는 비극적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의 산은 지형이 험준해 산불이 발생했을 경우 고성능 헬기를 이용한 진화가 중요하나, 인프라는 매우 취약하다. 3월 26일 의성 지역에서 진화 작업 중이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가 사망했다. 사고가 난 ‘시코르스키 S-76B’은 30년 가까이 사용한 노후된 기종으로 확인됐다. 헬기 노후화 뿐만 아니라 헬기 보유 수 자체가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다. 산림청 보유 헬기 50대 중 러시아제 8대는 전쟁 여파로 부품 수급이 끊겨 가동조차 못했고, 7대는 1980년대에 도입된 소형기로 대형 산불에 투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산불 진화에 투입된 헬기가 35대에 그치며 핵심 장비의 절반 이상이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야간 산불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치명적인 허점이다. 산림청이 야간 비행이 가능한 헬기를 보유하지 못해 해가 지는 순간 진화 작업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 사이 불길이 산림과 주택, 문화재를 덮쳤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산불 대응 예산은 수년째 정체되어 있고, 특히 기후위기를 반영한 연중 대응 시스템 구축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이런 상황은 지난 2022년 울진-동해 산불 당시에도 지적됐으나 구조적 개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산불이 반복될수록 피해의 구조도 고착화된다. 피해를 입는 지역은 산림이 밀집된 농촌 지역이며, 진화와 복구를 담당하는 인력은 고령자와 저소득층 중심이다. 반면 제도 개선과 정책 수립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단기 대응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후재난이 계층 간, 지역 간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기후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산불은 예방이 답, 탄소 감축이 최우선
산불 진화 장비의 숫자나 성능보다 중요한 것은 산불을 사전에 예측하고 차단하는 것이다. 한국 산불은 주로 인간의 실화가 발생의 시작점이다. 예방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면 대형 재난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형 산불 위험 지역에 설치된 열화상 카메라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인공지능 기반 예측 시스템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강풍, 고온, 저습이라는 조건이 반복되는 지금의 현실에서 기존 감시 체계로는 대형 산불의 조기 감지나 확산 경로 예측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산불 위험 지역을 포함한 전국 산지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드론 및 위성 정보를 활용한 인공지능 기반의 감시 구역을 설정하는 등 기존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산불을 예방하고 통제하는 기술적·정책적 전환이 시급하다.
무강수일수가 늘고 국지성 강수로 물의 순환이 불균형해지는 현상이 지속되면, 산림은 더 이상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탄소를 방출하는 배출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 산불이 생태계 회복력을 무너뜨리고 탄소 저장 능력을 파괴하고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산불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더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다. 획기적인 탄소 감축이 최선의 예방책이라는 인식이 우리나라 정책 전반에 반영돼야 한다.
기후위기와 산불의 악순환을 끊어 내자
2025년 대형 산불은 기후위기와 제도적 한계, 그리고 반복되는 인재(人災)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총체적 재난이었다. 산림은 기후위기를 막을 핵심 자원이면서도, 동시에 기후위기로부터 가장 큰 위협을 받는 존재다. 기후위기가 산불을 부르고, 산불은 기후위기를 악화시킨다.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산불은 오늘보다 내일 더 거센 모습으로 우리를 덮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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