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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에너지 전환, 정책 수립 전에 용어부터 정리해야

2025-04-17 최민욱 기자

 

“신·재생에너지”는 석유경제의 대안에서 출발한 용어다


신·재생에너지(New and Renewable Energy)는 친환경·청정 에너지의 동의어가 아니었다. 재생 여부와 무관한, 석유 에너지에 가려 당시 시장에 없던 모든 비(非)전통 에너지 기술의 총칭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두 차례 발생한 석유 파동은 곧 전 세계의 에너지 위기였다. 이로 인해 각국 정부와 기업은 기존 석유 중심의 에너지 체계에서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된 것이다.


“Signs of the Energy Crisis,” May 1973, photographed by Frank Aleksandrowicz (ARC 550088)
“Signs of the Energy Crisis,” May 1973, photographed by Frank Aleksandrowicz (ARC 550088)

1981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UN "신·재생에너지 회의"(UN Conference on New and Renewable Sources of Energy)에서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가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전통적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new) 대체 자원을 발굴‑보급하자는 목표였다. 당시 ‘New’의 핵심은 에너지 안보(diversification)였다. 환경보다는 경제·산업 의제가 앞서 있던 1980년대 초 국제정치 상황을 반영했다. 기후·환경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와 기술 성숙도가 낮더라도 자국 여건에 맞는 가용한 기술이 우선순위였다. 오늘날 재생에너지로 분류되는 태양·풍력·소수력·바이오매스·지열 등 뿐만이 아니라 비(非)전통 화석 에너지인 타르샌드·오일셰일·피트(이탄)과 재래식 에너지인 장작·목탄·가축동력 또한 포함한다.


70~80년대를 거치며 산성비·사헬 사막화·오존홀·지구온난화 등 심각한 환경 이슈가 연이어 터졌다.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생겼다. 석유 에너지가 글로벌 경제에 치명적인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화석 에너지의 사용이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 환경의 불가역적 전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프레임으로 전환되었다. 환경 이슈가 대체 에너지 개발·보급의 주요 동기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1987년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 브룬틀란 보고서)는 ‘미래 세대의 필요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인 “지속가능 발전” 개념을 정의했다. 효율 향상 → 재생에너지 확대 → 화석연료 의존 감축으로 에너지 해법의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지속가능’은 곧 국제 규범이 됐다. 1992년 리우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의제 21”에는 국가 보고 의무에 ‘지속가능 에너지 체계’가 포함되었다. 석유의 대체 에너지원으로 논의되었던 비재생·비전통 화석 대체연료(타르샌드 등)와 재래식 에너지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테이블에서 배제되었다.


국제사회가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정의하면서 잣대는 한층 명확해졌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에너지원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합의다. 2015년 유엔 총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SDG 7은 △모두를 위한 현대적 에너지 접근 △재생에너지 비중의 대폭 확대 △에너지 효율 두 배 향상을 전 지구적 과제로 못 박았다.


재생에너지만을 다루는 첫 정부 간 기구도 같은 흐름에서 출범했다. 2009년 독일 본(Bonn)에서 열린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창립총회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단일 목표로 채택했다. 한국을 포함한 75개국이 정관에 서명했으며 IRENA가 해마다 발간하는 통계집은 태양광·풍력·수력·지열·바이오·해양 등 재생에너지 항목만을 집계한다. 화석 기반 대체연료는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정량적 근거도 제시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1년 「Net Zero by 2050」 로드맵에서 2050년 전 세계 전력의 90 % 이상을 태양광·풍력·수력·지열·바이오 등 재생에너지가 공급해야 1.5 °C 목표가 가능하다고 계산했다. 화석연료는 일부 공업 공정이나 탄소포집·저장 설비가 동반된 잔여 수요로만 한정된다.


이처럼 국제 규범·전문 기구·시나리오가 모두 ‘재생에너지’를 지속가능성의 유일한 해법으로 지목하면서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는 설 자리를 잃었다. 기술이 성숙하고 상업성이 확보된 현재, 태양·풍력 등은 더 이상 ‘신(新)’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담론의 주어도, 정책 목표도, 통계 카테고리도 결국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하나로 수렴되었다.


대체에너지에서 신·재생에너지로


한국 또한 전 세계를 강타한 석유 파동을 피하지 못했다. 정부는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1987년에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을 제정했다. 제정 목적은 에너지원의 다양화를 도모하여 국민경제 발전 및 국민생활 안정화였다.


대체에너지의 정의는 석유ㆍ석탄ㆍ원자력 또는 천연가스가 아닌 에너지인 태양에너지, 바이오에너지, 풍력에너지, 소수력에너지, 연료전지, 석탄액화ㆍ가스화, 해양에너지, 폐기물에너지 그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에너지였다. 1차·2차 에너지인지, 재생 혹은 화석기반 에너지원인지 고려되지 않았다. 당시 국제사회 기조처럼 가용한 에너지의 개발이 화두였다. 에너지 안보 및 공급 안정성이 가장 중요했다.


1997년,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기본협약(UNFCCC)이 발효됨에 따라 「대체에너지개발및이용·보급촉진법」으로 전부개정됐다. “이용·보급”이 법령명에 추가되었다. 법 제정 당시 기술개발 단계에 머물던 태양열·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상업화에 접어든 배경을 반영했다. 환경친화적인 대체에너지의 이용·보급을 촉진하기 위하여 대체에너지 기본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대체에너지 이용·보급의 촉진을 위한 시범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함을 목적으로 개정했다.


2002년, 국제유가의 변동성과 기후협약의 강화로 오염유발 에너지 의존도 개선을 위해 대체에너지개발 및 보급을 보다 확대하는 것을 이유로 일부개정했다. 국가기관·지자체·정부투자기관 대상으로 대체에너지 의무화 대상을 정하고 설비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중질잔사유 가스화를 대체에너지 범주에 포함시켜 석유 정제 부산물을 대체에너지로 편입했다. 안보와 산업 보호 논리가 강하게 작동되었다.


2003년 일부개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이 목적조항에 삽입되었다. 개정이유서에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이 21세기 국제사회의 중심명제로 정착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이 법의 목적규정에 ´지속가능한 발전´개념을 새로이 명시하였으며, 대체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이 유한한 화석연료를 대신하고 온실가스배출을 감소시키기 위한 중요한 정책대안임을 분명히 했다. 경제·환경 균형이 법적 가치로 격상됐다. 대체에너지 보급을 기후·환경 정책과 연결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2004년, 「신에너지및재생에너지개발·이용·보급촉진법」으로 전부개정되었다. 다양한 에너지원의 개발 및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구조로의 전환 추진이 개정 이유였다. 이때 ‘신 에너지’와 ‘재생 에너지’라는 이원 구도가 등장했다. 다만 신ㆍ재생에너지를 구분하여 정의하지는 않았다.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변환시켜 이용하거나 햇빛ㆍ물ㆍ지열ㆍ강수ㆍ생물유기체 등을 포함하는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이용하는 에너지로 정의되었다. 조문에 따르면 신ㆍ재생에너지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변환한 에너지거나 재생에너지여야 한다. 연료전지, 수소에너지, 바이오가 아닌 폐기물 에너지의 경우 구분되지 않은 애매한 지위로 남게 되었다. 동시에 “수입 신·재생에너지의 적용 배제” 조항이 신설돼 선진국 기술의 국내시장 잠식을 막겠다는 산업 보호 논리가 명문화됐다.


2006년 일부개정을 통해 기후 거버넌스와의 정합성을 강화했다. 목적조항에 “온실가스 배출의 저감”을 삽입하고, 기본계획에 감축목표 설정을 의무화했다. 개정 이유로 UNFCCC에 대응하기 위함을 밝혔다.


2013년,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로 구분하여 정의했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 재생에너지 통계와의 합치를 위해서다.  “신에너지”의 정의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변환시켜 이용하거나 수소ㆍ산소 등의 화학 반응을 통하여 전기 또는 열을 이용하는 에너지이다. "재생에너지"의 정의는 햇빛ㆍ물ㆍ지열(地熱)ㆍ강수(降水)ㆍ생물유기체 등을 포함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이나 국제사회에서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 폐기물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정의했다. 또한 신ㆍ재생에너지 보급을 지속적으로 확산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석유정제업자 또는 석유수출입업자에 대하여 수송용연료에 일정비율 이상의 신ㆍ재생에너지 연료를 혼합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RFS: Renewable Fuel Standards)를 도입했다.


2019년, 재생에너지의 정의에서 비재생폐기물로부터 생산된 폐기물을 제외하였다.


잘못된 용어가 만든 불협화음


상이한 성격을 가진 "신에너지", "재생에너지" 두 에너지 체계가 "신재생에너지법"이라는 방을 같이 쓰고 있다. 2004년 에너지원의 개발 및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구조로의 전환 추진을 명목으로 "대체에너지"에서 "신ㆍ재생에너지"로 숙의 없이 이름만 바꾸어 벌어진 촌극이다. 1987~2003년까지의 "대체에너지법"까지는 괜찮았다.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가 석유ㆍ석탄ㆍ원자력의 대안인 것은 동일했기 때문이다. 대체 에너지의 필요성이 경제위기에서 탄소중립 환경보호로 프레임이 전환된 지금은 다르다. "신"에너지는 국제사회에서 바라보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인, 재생에너지와 거리가 멀다. 국제사회는 애초에 지속가능한 에너지라는 개념을 정의할 때부터 우리의 "신에너지"를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고려하지 않았다. 신에너지(New Energy)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와 완전히 분리되는 개념도 아니었다. 당시 태양에너지를 위시한 재생에너지는 모두 새로운 에너지였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이다. 우리가 번역해 사용하는 "신ㆍ재생에너지(New and Renewable Energy)"는 본래 대체 에너지(Alternative)의 대안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신에너지"는 국제 사회의 시선으로 봤을 때 "재생 에너지"와는 성격이 다르다. 연료전지는 에너지 설비를 뜻하고 수소 에너지는 에너지 이용기술인 2차 에너지원이다. 화석연료를 가스화 에너지는 기존 화석연료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거나 탄소포집 장치를 설치해 탄소발생량을 줄인 것이다. 때문에 국제사회는 우리가 정의한 "신에너지"의 경우 넷 제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과도적인 기술로 보며 활용은 하되,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끼워 주지는 않는 것이다.


용어와 개념의 혼탁은 정책ㆍ행정과 대중의 혼란을 가져온다.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법"에 의해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육성하고 통계 또한 겸용하는 경우가 잦다. 신에너지 보급 확대까지 재생에너지 보급 통계에 포함하기도 한다. 국제적인 흐름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우리 자료의 신뢰성 또한 저해하는 요인이다. 올바른 정의와 개념 구분 없이 쓰여진 법제 탓에 정부의 성향에 따라 정책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다. 재생에너지는 지속가능한 지구환경 보호라는 글로벌 의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만, 신에너지는 이보다 산업적 특성이 강하다. 신에너지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법으로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잘하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신에너지"를 위해 각방을 내어주자.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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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2일 전

재생에너지와 신에너지의 개념 구분을 잘 이해했습니다. 재생에너지와 신에너지는 다른 법으로 관리되어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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