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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외교전략, 연결과 협력

2025-04-17 김성희 기자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한국의 고립된 전력망과 기후위기, 에너지 안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고비사막의 태양광과 풍력, HVDC 송전기술, 동북아의 에너지 수요가 합쳐지면 새로운 에너지 지도가 열릴 수 있다. 기술은 준비됐고, 이제 연결의 차례다. 슈퍼 그리드는 정치적 결단과 신뢰 구축이 필요한 국제 협력의 과제다. 연결과 협력이 기후위기 시대의 진정한 에너지 안보다.



사진. 핀터레스트
사진. 핀터레스트

기술이 아니라 결단이 필요한 시점


동북아 슈퍼그리드 실현을 위해서는 제도적 안정성, 외교적 협력 구조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국제적 협력 없이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개의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전선을 넘는 상상력'과 '정치적 결단'이 함께 작동되어야 한다. 기술은 준비되어 있다. 이제 새로운 전환의 좌표를 설정할 때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한국은 준비되어 있는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의 에너지 정책 전환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일본은 원전 의존도를 낮추고, 대안 에너지원 확보를 절박하게 요구받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제시한 ‘아시아 슈퍼그리드(Asia Super Grid, ASG)’ 구상은 하나의 에너지 혁신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슈퍼그리드(Super Grid)"란 2개 이상의 국가가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전기를 국가 간 전력망을 통해 상호 공유하는 새로운 개념의 스마트그리드를 말한다. 원자력 발전, 화석연료보다 훨씬 저렴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저가 발전을 한 나라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필요한 국가에게 공급하자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전기판 실크로드'이다.

그의 구상은 단순히 한 국가의 전력 문제를 넘어서 몽골의 고비사막을 시작으로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까지 아우르는 초국가적 전력 연결망을 구축해, 각국이 재생에너지를 상호 공유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핵심은 초고압 직류 송전(HVDC) 기술을 활용한 전력망 통합이며, 이를 통해 국가 간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하고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이다​.

제8차 전력수급계획안에 제시된 동북아 슈퍼그리드 연계도. 사진 제8차 전력수급계획
제8차 전력수급계획안에 제시된 동북아 슈퍼그리드 연계도. 사진 제8차 전력수급계획

우리나라는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동북아 슈퍼그리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따라 러시아 극동지역 및 몽골 고비사막의 청정에너지를 동북아 국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제9차 전력수급계획에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2022년까지 한-중 사업화 착수와 한-일, 한-러 간 사업 타당성 조사 완료를 목표화했다. 그러나 10차 전력수급계획에는 해당 사업 추진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되어있지 않아 사실상 파기 되었다. 국내 자립형 에너지 시스템은 정치적 안정성과 단기 정책 추진력을 가지지만, 장기적인 효율성과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은 계통섬이다.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력수급의 불안정을 해소하려면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태양광 발전 잠재지 '고비사막'


태양광 발전소 모습. 사진 wix 미디어
태양광 발전소 모습. 사진 wix 미디어

‘영원히 파란 하늘의 땅’이라고 불리는 몽골은 국토의 모든 지역에서 1년 중 맑은 날이 300~330일을 차지하고 연간 평균 일조시간이 2250~3300시간으로 태양열 발전에 매우 우호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중 고비사막은 단지 지리적으로 넓은 면적뿐 아니라, 연간 3000시간 이상 맑은 날씨를 기록할 정도로 일사량이 풍부해 태양광 발전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이러한 고비사막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잠재력은 약 2만6000TWh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라도 둘러싸여 있고 다른 나라와 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전력망이 고립되어 있다. 경제 선진국이면서도 외부 전력 유입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에 자체 에너지 생산만으로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가 어렵고 해외 의존도가 97%에 달하는 에너지 다소비국가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고비사막과 연결된 슈퍼그리드가 갖는 전략적 의미는 크다.

현재 고비사막에 설치된 발전용량은 약 500기가와트(GW)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2년 말 미국의 전역의 발전소에서 생산된 발전용량(약 1100GW)의 절반의 규모에 해당한다. 인근 내몽골의 주요 고비 사막지역까지 포함하면 총 발전용량은 600GW에 달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전력의 절반 이상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다. 자원이 가진 간헐성에도 불구하고 평균 95% 이상의 이용 효율을 달성한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총 255개의 초대형 재생에너지 기지를 북서부 사막지대에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며, 재생에너지 허브로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전력을 대도시와 산업지대 등 주요 수요지로 실어 나르기 위한 대규모 송전선 건설 프로젝트도 2022년부터 본격화됐다.



HVDC 케이블 모습. 사진 대한전선
HVDC 케이블 모습. 사진 대한전선

장거리 송전의 핵심 해법 'HVDC' 기술


슈퍼그리드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기술적 기반은 단연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 초고압 직류송전)’이다. 기술의 발전이 꿈을 이룰 수 있게 한 것이다. HVDC 기술은 슈퍼그리드의 핵심이다. 직류(DC)는 장거리 송전 시 교류에 비해 손실이 적지만 고압 변전이 힘들어 전기를 멀리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송전 시 유연하게 전압을 바꿀 수 있는 교류(AC)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교류는 국가 간 송전을 어렵게 한다. 고층 송전탑에 두꺼운 케이블을 사용하게 되면 경제성이 떨어져 송전선을 땅에 매설하는 지중화가 필요한데, 교류 지중 케이블은 20km 한계다. 마침 직류는 전압을 높일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면서 원거리 전송이 가능해지게 됐다. 전자파, 전력 손실도 적다. 국격이 붙어 있는 국가들은 이러한 장점을 살려 예전부터 HVDC 광역 송전 시스템을 설계했고 이것이 슈퍼그리드로 발전했다. 


Viking Link 프로젝트 케이블 연결 지도. 사진 Viking link 홈페이지
Viking Link 프로젝트 케이블 연결 지도. 사진 Viking link 홈페이지

덴마크의 바람이 런던의 불빛을 밝히다


슈퍼그리드의 실현 가능성은 유럽의 선진 사례에서 이미 입증되고 있다. 북유럽은 '북해 슈퍼그리드'를 통해 해상풍력을 활용한 전력을 국가 간 실시간으로 교환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HVDC 기술이 중심 역할을 한다. 영국과 덴마크를 잇는 'Viking Link(바이킹 링크)' 는 총 길이 765km, 송전의 총 용량 1400MW에 달한다. 장거리인 경우는 초고압 직류(HVDC) 연계선으로 송전하고, 육상에서는 교류(AC) 전력으로 변환해 사용한다. 바이킹 링크 프로젝트는 2023년 말 본격 가동을 시작했으며, 양국 간 풍력·태양광 전력을 실시간으로 교환함으로써 재생에너지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있다. 덴마크의 잉여 풍력과 영국의 수요를 연결하는 이 시스템은 연간 약 6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였으며, 약 28만 대의 자동차를 도로에서 없앤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영국은 향후 10년간 약 5억 파운드의 전기요금 절감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전력시장 안정성과 소비자 요금 절감이라는 경제적 효과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단순한 기술적 연결을 넘어, 유럽 전체의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전략이 초국가적 협력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송전망은 이제 외교 전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에 대한 각국의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는 루블화 결제를 거부한 국가에 대해 가스 공급을 중단했고, 이는 폴란드·불가리아를 시작으로 독일·프랑스 등 주요국으로 확산되었다​. 유럽연합은 LNG 수입 다변화, 전력소비량 감축 의무 규제 등으로 대응했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각국의 입장이 상이해 합의 도출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리스크는 국가 간 전력망 연계 역시 외교·안보의 긴장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발트 에너지 독립의 날 행사 모습. 사진 아시아경제
발트 에너지 독립의 날 행사 모습. 사진 아시아경제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전력망 독립이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 중심의 IPS/UPS 전력망을 해제하고 2025년 2월, EU 전력망과 성공적으로 동기화되었다. 발트3국은 소련시절부터 러시아 전력망에 종속되어 있었다. 독립 이후에도 러시아 전력망에 남아있어 에너지 안보에 큰 위협이 되었고, 경제 발전에도 장애물이 되었었다. 이 사례는 단순한 기술적 분리가 아니라, 러시아의 에너지 지배력으로부터의 자주적 탈피이자 유럽과의 정치적 연대를 상징하는 조치였다. 에너지 인프라가 국경을 넘을수록, 송전망은 단순한 전력의 통로가 아니라 지정학적 영향력과 외교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작동하게 된다. 에너지 안보는 이제 더 이상 기술이나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정치와 안보 전략의 중심축이 된 것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위해서는 러시아, 중국, 북한 등과의 협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외교적 신뢰와 다자간 법·제도적 안전장치 없이는 에너지 협력이 오히려 국가 안보의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이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경제성만이 아니라, 정치·외교적 안정성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전략적 고려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연결이다


‘슈퍼그리드’는 단순한 전력 인프라를 넘는 개념이다. 이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불균형이라는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협력 모델이며, 동시에 국가 간 신뢰를 구축하는 정치·경제적 실험장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슈퍼그리드는 전략적 가치가 크다. 산업과 도시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전력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 반면, 풍력과 태양광 등 국내 재생에너지 자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재생에너지의 공급과 수요를 연결하는 초국경 전력망 구축이 필수적이다.

슈퍼그리드의 실현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협력 가능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해저 케이블보다 육상 전력망 연결이 경제성과 효율성 면에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고비사막이나 러시아 동부처럼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인접국에서 생산된 전력을 안정적으로 도입하려면, 남북을 잇는 육상 경로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에너지 협력은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국제적 당위 속에서 공동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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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2일 전

에너지안보와 슈퍼그리드로 표현되는 국제협력은 정교한 전략과 계획이 필요해 보입니다. 평화시에는 금상첨화이겠지만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긴장이 고조되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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