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베트남은 왜 물부족 국가가 되었나
- planetdami
-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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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6 이담인 기자
메콩강이 흐르고 비도 많은 베트남이 뜻밖에도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기후변화와 중국의 상류 댐 개발, 수질 오염, 해수면 상승까지 겹치며 메콩 델타는 식수도, 농업용수도 위협받고 있다. 쌀 수출 강국인 베트남의 물 위기는 곧 세계 식량안보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지금은 지속가능성을 되살릴 마지막 기회다.
메콩강의 나라 베트남이 물 부족 국가?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해 중국과 인도차이나 반도를 가로지르는 메콩강은 총 길이 4020km로,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이다. ‘메콩강 대생활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메콩강 하류에 위치한 베트남은 ‘메콩 델타(Mekong Delta)’라 불리는 삼각주에 위치해 있어 토양이 기름지다. 여기에 적합한 기후가 더해져 베트남은 세계 5위의 쌀 생산국으로 발돋움했다. 메콩강이 지나가고 연간 평균 강수량도 1500~2500mm 정도로 풍부한 베트남은 놀랍게도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국제수자원협회(IWRA)는 1인당 연간 물 사용량이 4000㎥ 이하일 경우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하는데, 베트남의 1인당 연간 물 사용량이 3840㎥다.

산업 발달과 농업 의존으로 오염돼 버린 베트남의 물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고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샤워필터를 꼭 챙기라’는 조언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에는 한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는 데도 짙은 갈색으로 변한 샤워필터 인증 사진이 넘쳐 난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수질 오염과 싸워 왔다. 베트남 환경총국(VEA)에 따르면, 산업단지의 3곳 중 1곳은 폐수처리시설이 없거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섬유·식품가공·전자 제조업체들이 집중된 하노이·호찌민·하이퐁 등 대도시 인근 하천에서는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과 화학적 산소요구량(COD)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해 생물 서식이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도시 인프라도 문제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베트남 도시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의 70% 이상이 아무런 처리 없이 그대로 자연계로 유입된다고 지적했다. 하노이시의 하수도 보급률은 약 15%에 불과하며, 대부분 도시가 분리배수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베트남 농업의 핵심 생산지인 메콩 델타에서는 질소·인산염·농약 성분이 과다 검출되고 있다. 농민들이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비료와 농약이 빗물과 함께 강과 하천으로 흘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은 생계뿐만 아니라 마실 물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오염된 물로 인해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말라리아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베트남 내 질병의 약 80%를 차지한다.
해수면 상승이 야기한 경작지 염수 침투
특히 염수 침투는 메콩 델타 경작지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베트남 천연자연 및 환경부(MONRE)의 메콩 델타 기후변화 및 해수면 상승 시나리오에 따르면, RCP 4.5 조건에서 해수면은 2050년까지 23cm, 2100년까지 55cm 상승할 전망이다. 보다 심각한 RCP 8.5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 28cm, 2100년 77cm까지 해수면이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베트남 농업부는 메콩 델타가 침식으로 인해 연간 약 500ha의 토지를 상실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염수 침입이 작물 허용치의 4배인 리터당 4g까지 증가했다. 메콩 델타는 베트남 쌀 생산량의 약 50%, 수출의 90%를 차지하고 있어 경제적 손실이 심각하다. 베트남 정부는 염수 피해에 강한 고구마, 옥수수 등의 작물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축산업이나 수산양식 전환도 권장하고 있으나 인프라와 기술 부족으로 확산이 제한되고 있다.
메콩강 상류를 걸어 잠근 중국의 12개 댐
메콩강 유역 개발도 베트남의 물 부족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다. 중국은 1986년 샤오완댐을 시작으로 메콩강 상류(중국명 란창강)에 댐 개발을 본격화했다. 2024년 기준 총 12개의 댐이 건설되었다. 대부분은 윈난성 일대에 집중돼 있다.
댐 건설의 목적은 분명하다. 수자원 확보, 수력에너지 개발, 남중국해와 인도차이나 반도 지역을 연결하는 전략적 통제다. 그러나 이로 인해 발생하는 하류 지역의 피해는 중국이 감당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건설한 댐은 메콩강 하류에 위치한 국가들에겐 물을 잠그는 수문이나 다름없다.
상류에서 흐름이 인위적으로 조절되면서 메콩강 하류, 특히 베트남과 캄보디아 지역은 강 유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 건기에는 상류에서 물을 저장하고 우기에는 댐 방류로 급격한 수위 변동이 발생한다. 이것이 농업과 어업에 치명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2020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연구기관 Eyes on Earth와 Stimson Center는 위성 기반으로 메콩강 수량과 수위 변화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중국이 수자원을 상류에서 저장해 하류의 가뭄을 악화시켰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국제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침전물 감소다. 댐이 토사 흐름을 막으면서 메콩 델타의 비옥한 흙 공급이 중단됐다. 토양은 척박해지는 것과 더불어 해수 침입과 강 하구 침식도 진행 중이다. 쌀과 어류에 의존하던 지역 사회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2016년~2022년 사이 메콩 델타 지역 농촌 인구는 약 140만 명 감소했다. 세계은행은 메콩 델타의 쌀 생산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메콩강위원회(MRC) 협력의 한계
하류 4개국인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은 1995년 ‘메콩강위원회(MRC)’를 출범시키고, 메콩강 수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과 공동 관리를 목표로 협력하고 있다. 위원회는 매년 유량 측정, 수질 조사, 개발 평가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MRC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중국과 미얀마는 MRC의 ‘대화 상대국’일 뿐 정식 회원국이 아니다. 더군다나 MRC는 법적 구속력도 없고 상류국의 댐 방류 정보 공유도 의무사항이 아니다. 하류국은 수문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라고 요구해 왔지만 중국은 방류 이후에야 제한된 정보만 제공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외교 전략도 병행된다. 2009년 미국은 메콩강 하류 5개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과 함께 ‘하류 메콩 이니셔티브(LMI)’를 출범시켰다. 물 관리, 기후변화, 농업, 교육 협력을 포함한 포괄적 지역 개발 파트너십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은 위성 기반 유량 데이터 분석과 수문감시 기술을 지원하며 메콩강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중국은 자체 협의체인 ‘란창-메콩 협력체(LMC)’를 통해 6개국(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이 협의체를 통해 개발 자금과 인프라 기술을 제공하고 있으며, 하류국들은 ‘참여를 통한 영향력 확보’라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베트남은 LMC에서 수자원 공동 이익을 강조하고, 중국의 댐 운영 투명성 강화와 정보 공유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다만 더 이상의 공식 대응에는 소극적이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중국과의 협력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베트남의 대책은
베트남은 메콩 델타 지역의 수자원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베트남 정부는 2022년 7월 메콩 삼각주 개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베트남 남부건설계획연구에 따르면, 메콩 델타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생태적 접근과 수자원 관리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이 필요하다. 이에 자연을 개발·통제하기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적응형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제안했다.
2025년~2030년 시행 예정인 '메콩 삼각주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Mekong DPO)'는 베트남 교통부(MoT), 농업농촌개발부(MARD), 메콩 삼각주 13개 성·시와 협력하여 16개 하위 프로젝트부터 단계적으로 실행될 예정이다. 세계은행, UNDP,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자금과 기술력, 지자체 실행 역량의 격차로 인해 실효성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얼마 남지 않은 지속가능성 회복 골든 타임
베트남은 기후위기와 수자원 외교 갈등이라는 이중의 충격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한 농업 기반 붕괴는 베트남, 나아가 세계적인 식량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을 포함한 해안 저지대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의 직접적 피해에 가장 취약하다고 강조한다. 베트남의 물 부족 문제는 더 이상 베트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메콩강 유역에 위치한 국가들의 적극적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제사회의 기술 및 재정 지원, 기후 회복력 기반의 농업 시스템 전환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메콩 델타의 삶과 생태, 지구촌의 식량체계가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자수첩
삼각주
삼각주(三角洲, river delta)는 하천이 운반한 토사(土砂)와 같은 침전물이 하구에 오랜 시간 퇴적되어 형성된 지형이다. 주로 삼각형 모양을 띠는데, 그리스 문자 델타(Δ)와 유사해 '델타'라고도 불린다. 주로 유량이 많은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갈 때 생긴다.
삼각주 지역은 육지에서 운반된 영양분이 풍부한 물질이 퇴적되어 토양이 비옥하고 농업에 적합하다. 이 때문에 삼각주는 오래 전부터 농업 생산성과 인구 증가의 기반이 되어 인류 문명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생태학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다.
RCP 시나리오
RCP(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s, 대표농도경로) 시나리오는 미래 지구의 온실가스 농도 변화를 예측해 그에 따른 평균기온의 변화와 자연재해의 빈도 및 강도 등을 제시하는 보고서다. RCP 2.6 / RCP 4.5 / RCP 6.0 / RCP 8.5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온실가스 농도가 높은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의미한다. IPCC 6차 평가보고서에서는 RCP 대신 SSP(Shared Socioeconomic Pathways) 시나리오 체계를 병행·확대해 사용했다. SSP는 경제·사회·정치·기술 구조 변화까지 반영한 시나리오로 RCP보다 복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