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5 이담인 기자
우리나라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누구나 마트에서 손쉽게 생수를 산다. 그래서 물이 부족하다는 말을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 이미 ‘물 스트레스 국가’다. 산업은 더 많은 물을 요구하고, 기후는 더 불안정해졌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물은 ‘당연한 것’이 아닌 ‘사라질 수 있는 자원’이 된다.
한국인 물 펑펑 쓰고 있어, 세계 평균보다 2~3배 더 사용하고... 매년 증가
세계자원연구소(WRI)의 2023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가용 수자원 대비 실제 물 사용량은 40~50%로, 세계 평균(18%)의 두세 배 수준이다. 1인당 연간 가용 담수량이 약 1450㎥로, 국제 기준인 1700㎥ 이하다. 그래서 국제기구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은 명백한 '물 스트레스 국가'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물 사용량은 2023년 기준 304리터다. 500mL 생수 기준으로 608병에 해당한다. 이 수치는 샤워, 설거지, 세탁, 화장실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수돗물 기준 수치다. 한국 가정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평균 물 사용량은 192리터다. 독일은 120리터이며 덴마크는 113리터이고 일본은 237리터다. 한국인의 물 사용량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물 사용량은 인구, 생활환경, 기후, 수도 보급률, 절수기술 보급 등에 따라 달라진다. 2000년대 초반 대비 다소 감소했으나 여전히 OECD 평균을 웃돈다. 특히 여름철에는 냉방, 세탁, 샤워 증가로 물 소비가 늘어난다. 한국 정부는 생활용수 절약 캠페인과 절수형 기기 보급을 장려하고 있으나, 한국인의 물 사용량은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물 걱정 없는 나라로 착각하는 이유
대한민국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온다. 전국 상수도 보급률이 99%에 달해 거의 전 국민이 안정적인 물 공급을 누리고 있다. 정수장에서 깨끗하게 처리된 물은 수도관을 따라 각 가정과 공장으로 공급된다. 이처럼 물이 끊기지 않는 환경은 많은 한국인에게 “물 걱정 없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국의 댐과 저수지가 메말라 가고 있으며, 일부 농촌 지역은 여름철 가뭄 시 제한급수를 검토하거나 시행하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말부터 이어진 광주·전남 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환경부는 전국 25개 시군에서 급수 단계 상향을 검토했고, 일부 섬 지역에서는 제한급수가 시행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지금껏 물 부족 문제를 크게 체감하지 않았던 이유는 물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대규모 댐과 정수 시설, 고도의 수자원 관리 기술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필사적으로 유지해온 결과다.
한국인이 물부족을 못 느끼는 또 하나의 원인은 강수량이다. 연평균 강수량이 약 1,300mm로 세계 평균보다 높다. 여름 폭우나 홍수를 보면서 물이 풍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물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강수량의 60~70%가 여름철 7~8월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계절은 극심한 가뭄이 반복되는 나라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국토의 64%가 산지로 비가 와도 하천을 타고 바로 바다로 흘러가 저장되지 않는다. 홍수와 가뭄이 공존하는 나라다. 2023년 7월, 전북 군산에선 하루 동안 429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지만 같은 해 겨울, 광주·전남 지역은 227일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아 제한급수가 시행됐다.한 해 안에 물에 잠긴 도시와 메마른 도시가 공존했다. 수자원공사 등이 국민들에게 물부족국가라는 알리고 물 절약을 호소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반도체 등 산업 발전은 대규모 물 사용으로 유지되는 중
실제로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부터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기후에 시달려 왔다. 광복 이후 국가 주도의 대형 댐 건설과 상하수도 인프라 확충으로 물 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듯 보인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로 물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반도체, 정밀화학, 석유화학, 철강 등 고부가가치 산업은 대량의 용수를 필요로 한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기흥∙화성∙평택캠퍼스는 하루 약 27만 톤(2021년 기준)의 물을 사용하는데, 이는 인구 20만 명의 중소도시가 약 4일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산업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기업 유치도 쉽지 않다. 실제로 낙동강 수계 공업단지에서는 가뭄 시 물 부족으로 기업 가동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2022년 대구·경북 지역의 일부 댐 저수율이 50% 이하로 떨어지자, 중소기업들이 생산 일정을 조정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공업용수 공급이 제한됐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물 부족, 갈수록 심화
대한민국의 물 부족은 기후변화의 영향도 크다. 강수 패턴이 극단적으로 변화하면서 홍수와 가뭄이 동시에 빈번해지고 있다. 2022년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가뭄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광주와 전남은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까지 유례없는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기상 관측 사상 최장인 227.3일 동안의 가뭄으로 주요 댐 저수율이 30% 이하로 떨어졌다. 전남 일부 지역은 6개월 넘게 정상적 물 공급이 이루어지지 못해 제한 급수나 운반 급수를 시행했고, 많은 도민들이 심각한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2023년 6월 25일부터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강수량으로 홍수 재난이 발생하는 극단적 기상 패턴이 나타났다. 전라북도 군산에서는 2023년 7월 14일 하루 동안 429.4mm의 폭우가 쏟아져 1968년 기상 관측 이래 24시간 강수량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 기간 전국 평균 누적 강수량은 648.7mm로 역대 세 번째를 기록했다. 강수일수 대비 강수량은 하루 평균 30.6mm로 역대 1, 2위 기록보다 더 집중적인 폭우가 내렸다.
이러한 극단적 가뭄과 홍수는 물의 총량과 별개로 물의 가용성과 관리 가능성을 떨어뜨려 물 부족 현상을 심화시킨다. 가뭄은 수자원 자체를 고갈시킨다. 짧은 시간에 집중된 폭우는 빗물 대부분이 하천을 통해 바다로 유실되어 저장되지 못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수량 조절이 어려워져 물 관리 시스템 전반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보이지 않는 물도 계산해야, 가상수와 물발자국
구운 소고기 한 점. 1인분 기준인 200g을 먹으면 그 고기를 생산하는 데 약 300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즉 500mL 생수병 6000개를 쏟아부은 셈이다. 이 물은 사료를 키우는 농장, 소를 사육하는 축사, 도축 및 가공 공장까지 모든 과정을 포함한 수치다. 문제는 이런 식량의 상당 부분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가상수(보이지 않는 물)를 수입하는 국가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농산물과 축산물 뒤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보이지 않는 물', 즉 가상수(virtual water)가 숨어 있다. 가상수는 제품 생산에 실제로 사용된 물의 총량을 의미하며, 여기에 물이 이동한 경로를 더해 '물발자국(water footprint)'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인간이 일상에서 소비하는 물 외에도 작물 생산과 가축 사육에 엄청난 물이 소비되는데, 한국은 곡물과 고기를 해외에서 수입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상수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2018년 기준 한국의 가상수 수입총량은 722억m³로, 세계 5위의 가상수 수입국이다. 가상수로 인해 한국은 겉보기에 물 부족이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위의 지표들은 한국의 수자원 자립률이 낮고 식량과 물 공급 모두를 외부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조는 기후위기, 국제 분쟁, 식량 가격 급등 등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국내 가상수 및 물발자국 산정 연구의 인용관계 동향 분석」(박성제 외, 2019)에서는 국내 물발자국 연구의 인용관계를 시각화해 주요 연구 간 흐름과 의존도를 분석했다. 현재 국내에서 물발자국 산정이 이루어진 축산물은 소·돼지·닭에 국한되며, 농산물도 쌀, 밀, 콩 등 주요 품목 위주로 제한되어 있다. 산정 기준이나 품목 분류도 연구자마다 달라 통합적 분석이나 비교가 어렵다. 특히 축산물 분야는 아직 국내 산정 모델이 정립되지 않아 외국의 사료 배합 비율이나 물 사용량 통계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발자국은 국가 물관리 전략 수립의 핵심 도구다. 국내 생산 농·축산물의 물발자국을 정밀하게 산정해야 식량·물 안보에 대한 정책적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현실 반영이 필요한 물 관리 정책
현재 한국 기상청의 가뭄 예·경보 시스템은 강수량 기준의 기상학적 가뭄지수(SPI)를 활용 중이다. 이 시스템은 실제 물 부족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지하수위나 저수량 등 실질적인 물의 양을 중심으로 하는 수문학적 가뭄지수(SGI)를 활용한 가뭄 진단 및 예방 방식이 더 현실적이다. 행정구역 중심의 가뭄 대응 체제를 소유역 중심 체제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 가뭄은 유역 단위로 발생하기 때문에 행정구역 중심 대응은 지역 간 협력을 저해해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
또한 대체수자원 관련 법제를 정비하여 지하댐, 해수담수화, 하수재 이용 시설 등에 대한 법적 기준과 운영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는 각 지자체 조례나 시행령에 의존하고 있어 설치 기준이나 운영 규정이 지역마다 다르고 일관성이 부족하다.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국가 차원의 표준화된 지침 마련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물 공급 중심에서 수요 관리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물 절약 기기 보급, 공공건물 중심 빗물이용시설 설치 의무화 등 수요 측면의 대책을 병행함으로써 물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낭비를 줄여야 한다. 제도적 개선은 법과 정책의 변화뿐 아니라 물을 바라보는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과 함께 이루어져야 진정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공유자산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물 안보' 시대
물은 '공공재'이자 '공유자산'이다.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자 산업, 식량, 기후위기까지 아우르는 국가적 전략 자원이다. 산업이 성장할수록 물 사용량이 증가하지만 자연이 제공할 수 있는 물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물 스트레스 국가'인 한국은 보이는 물과 보이지 않는 물 모두를 어떻게 확보하고 사용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물 안보'를 지키는 것이 국가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결정 짓는다.
기자수첩
가상수(virtual water)와 물발자국(water footprint)
가상수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상품 생산 또는 서비스 제공 등의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의 양을 의미한다. 반면 물발자국은 제품의 생산 및 유통부터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서 소비되는 물의 총량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벼를 재배하고 수확하는 데 사용되는 물은 가상수다. 수확한 벼를 도정, 건조해 유통하고 소비하며 폐기하기까지 드는 물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물발자국이다.
소유역
유역환경조사 및 수질모델링에 적합한 공간적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단위유역을 더 세분화한 소규모 유역을 말한다.

가뭄 장기화로 생활용수 부족이 우려되자, 주민들에게 제한급수 적응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2018년 경주시. 사진 데일리 대구경북 뉴스 http://www.dailydgnews.com/news/article.html?no=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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