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정 기자 2024-12-13
오리를 모방한 파리의 기계오리
1739년 프랑스 파리, 루이 15세 궁정에는 오리 모양을 그대로 본뜬 기계오리가 있었다. 이 기계는 자크 드 보캉송이 만든 로봇으로 살아 있는 오리처럼 깃털을 고르고, 꽥꽥 소리를 내고, 곡식을 먹고, 물속에서 물장구를 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무대 위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대변까지 본다고 해서 프랑스 전국에서 구경을 올 만큼 유명한 구경거리였다는 기록도 있다. 훗날 이 오리의 배설물은 실제로 먹이를 소화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빵 부스러기를 푸른색으로 염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기계오리의 실제 제작도면은 남아있지 않지만, 날갯죽지 하나가 400개 이상의 부품으로 만들어졌고 한번 파손되면 고치는 데 4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보캉송은 기계오리 이외에도 탬버린 연주자 등과 같은 자동 기계를 제작했다. 이처럼 동서양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 오리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장치를 만들어 사용한 흔적이 있다. 6세기 후반 중국에서는 술 따르는 로봇이 있었고, 18세기 유럽의 모든 대도시에는 사람, 코끼리, 공작새 등을 닮게 설계한 자동 기계들이 있었다. 이러한 기계들은 인류가 생물을 모방해 만든 수많은 로봇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로봇들은 현대기술의 발전으로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사람을 모방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진화
로봇 연구의 궁극적 목표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에 있다고 이인식 교수는 설명한다. 사람과 유사한 외형과 기능을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 로봇 간의 상호작용을 위해 설계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주목받는다. 세계 최초의 사람 크기 휴머노이드 ‘와봇(와세다로봇)’을 개발한 사람은 일본 와세다대학교의 가토 이치로 교수다. 와세다 대학교은 카토의 사망 후에도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지속했다. 와세다의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라는 뜻의 와비안, WE-4R, WF-4가 대표적이다. 와비안은 걷고 춤춘다. WE-4R은 일곱 가지 감정과 오감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 WF-4는 악기도 연주한다.
혼다자동차도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했다. 혼다자동차는 10여 년에 걸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사람 실물 크기에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작했다. 1996년 공개된 혼다의 P2는 그 안에 실제 사람이 있는 것처럼 걸어 다닌다고 한다. 이 키 180cm에 무게 210kg의 로봇은 세계 최초로 사람의 보행을 구현해 냈다. 1997년에는 보다 개량된 P3를 개발했다. 우주비행사처럼 생긴 P3는 키 160cm에 무게 130kg으로 두 발로 걷기는 물론, 문을 여닫고 층계를 오르내릴 수 있었다. 2000년 11월에는 키 120cm에 무게 43kg의 ‘아시모’를 출시했다. 아시모는 평지가 아닌 곳에서도 사람처럼 균형을 잡고 걷고 춤도 출 수 있었다.
아시모 출시 시기 전자업체 소니도 SDR-3X라는 이름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발표했다. SDR-3X는 키 50cm에 무게 5kg의 애완용 로봇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인사도 하고, 춤도 추고, 스트레칭도 한다. 2003년 12월 소니는 큐리오를 선보인다. 큐리오는 1분에 14m를 달리고 넘어지면 혼자 일어난다. 100분의 4초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공중으로 뛰어오를 수도 있다.
일본의 다른 연구소에서도 여러 종류의 인간형 로봇들이 개발되고 있다. ‘디비’라 부르는 이 로봇의 목표는 사람의 팔이 가진 유연성과 능숙함을 재현할 수 있는 로봇 팔을 만드는 데 있다.
미국에서도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가 활발하다.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호주 출신 로드니 부룩스는 자신이 제안한 포섭 구조를 적용해 ‘코그’를 개발한다. 1986년 브룩스가 제안한 포섭 구조는 로봇의 뇌, 곧 중앙통제 장치가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는 전통적인 하향식 접근 방법을 철저히 거부한다. 전통적 로봇공학에서는 로봇이 걸을 때 뇌가 무릎이나 발목에 어떻게 구부려야 하는지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포섭 구조 로봇은 무릎이나 발목에 센서와 컴퓨터가 달려 있어 이런 조그마한 컴퓨터가 관절들에 움직임을 지시한다. 중앙통제 장치인 뇌는 무릎이나 발목의 움직임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코그를 개발하는 브룩스 교수의 인공지능연구실은 얼굴 로봇인 ‘키스멧’도 내놓았다. 높이 38cm의 키스멧은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을 이해한다. 자신의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드러낼 줄도 안다. 2009년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은 얼굴에 감정을 나타내는 로봇 ‘아이다’를 발표했다. 아이다는 영어로 감정을 지닌 지능형 주행 도우미(affective intelligent driving agent)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된 휴머노이드 로봇은 ‘센토’다. 199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김문석 박사가 개발한 센토는 사람 상체의 유연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한 인간형 로봇의 상체부다. 2001년 5월 카이스트의 양현승 교수는 국내 최초로 사람 몸통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했다. 남자 로봇인 ‘아미’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대화할 수 있다. 사람의 얼굴도 약 150명이나 기억이 가능하며, 가슴에 달린 스크린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2004년 12월 카이스트의 오준호 교수는 ‘휴보’를 내보였다. 두 발로 자유롭게 걷는 한국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2006년 5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여성 로봇인 ‘에버1’을 발표했다. 에버는 최초의 여성인 이브와 로봇의 합성어로, 같은 해 발표된 에버2는 가수로, 2008년에 발표된 에버3는 배우로 활동했다.
동물을 모방한 로봇
동물로봇공학에서는 공룡, 긴팔원숭이, 뱀, 바닷가재, 참치 등과 같은 큰 동물에서부터 거미, 지네, 바퀴벌레, 호랑나비, 파리, 메뚜기 등과 같은 작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동물들을 모방해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생물영감, 생물모방이 이슈되기 한참 전인 1970년대 중반, 일본 도쿄공업대학교의 히로세 시게오 교수는 동물을 모방한 로봇을 개발했다. 그가 만든 로봇은 뱀 로봇으로, 뱀의 움직임을 연구해 땅 위를 구불거리며 움직이는 바퀴 달린 로봇을 개발했다. 비행로봇의 선구자인 미국의 폴 맥크레디는 1990년대 후반 절반 크기의 익룡을 본뜬 로봇을 만들었다. 생물학자 중 로봇공학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사람은 미국의 로버트 풀이다. 풀은 특히 다리가 많이 달린 절지동물에 주목했다.
절지동물은 지구상의 동물 중 가장 종류가 많다. 딱정벌레, 개미와 같은 곤충류, 거미나 전갈 등의 거미류, 게와 새우 등의 갑각류, 지네 따위의 다족류가 절지동물에 해당한다. 로봇공학자들은 절지동물의 다리를 움직이는 방법을 로봇에 응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많이 연구되는 것은 곤충의 걸음걸이다. 곤충은 다리의 움직임을 일괄적으로 제어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다. 각 다리의 제어장치가 제각기 독자적인 제어 메커니즘을 갖고 다리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그렇기에 곤충은 울퉁불퉁한 곳에서 자유자재로 걷거나 달리고 움직일 수 있다. 로봇 연구자들이 가장 모방하고 싶어하는 곤충은 미국바퀴라고 한다. 이 바퀴벌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곤충으로 초당 150cm의 속도로 달린다. 사람이 같은 속도를 내려면 시속 320km로 달려야 한다. 1984년부터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로드니 부룩스는 동물행동학을 로봇공학에 융합시켰다. 그는 포섭구조로 설계한 곤충로봇 ‘징기스’와 ‘아틸라’를 만들었다. 아틸라는 곤충 로봇의 걸작으로 꼽힌다. 1992년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는 거미처럼 8개의 다리가 달린 로봇 단테, 2004년 스탠퍼드대학교와 나사 기술자들은 거미처럼 생긴 로봇 리머를 선보였다. 이러한 곤충 로봇은 화성 탐사 등에 활용될 수 있다.
미국 해군이 개발하는 ‘에어리얼’은 게의 행동을 본떠 만든 수중 로봇이다. 에어리얼은 잠수부처럼 바닷속에서 기뢰를 찾는 임무를 수행한다. 2005년 10월 공개된 세계 최초의 물고기 로봇도 있다. 물고기 로봇은 해저 탐사, 기름 유출 탐지, 스파이 활동 등에 활용될 수 있다.
긴팔원숭이, 공룡과 같은 큰 동물의 행동을 본뜬 로봇 역시 연구된다. 일본의 브래키에이터3는 긴팔원숭이의 모션을 흉내낸 로봇이다. 2008년 미국에서 발표된 네 발로 걷는 로봇 빅도그는 몹집이 큰 개와 유사하다. 최대 160kg의 짐을 옮길 수 있고 장애물이 많은 환경에서도 이동이 가능하다. 미국에는 백악기 육식공룡인 트루돈을 모방한 ‘트루디’라는 이름의 공룡 로봇도 있다. 이 보행로봇은 박물관 안에서 관광객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소프트 로봇
서울대학교 조규진 교수는 소프트 로봇을 로봇 전체 혹은 일부가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구조로 대체되어 비정형 환경에서 생명체의 이동 및 상호작용의 원리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로봇이라고 정의했다. 소프트 로봇은 생물이 주변 환경에 움직여 순응하는 방법에 착안한다. 즉, 많은 소프트 로봇들은 자연계나 인간에게 있는 생물들의 구조적 특성에서 영감을 받고, 생물들의 움직임을 모방하도록 설계된다. 소프트 로봇은 유연하고 변형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 제작된다는 점도 기존의 딱딱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로봇과 차별성을 갖는다. 소프트 로봇은 부드럽고 신축성 있는 재료로 구성되어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거나 복잡한 환경에서 작업하기 적합한 유연성을 갖고 있다. 또한 부드러운 재질로 사람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에서도 부상을 줄일 수 있어 의료, 간호, 교육 등과 같은 분야에서 활용되기 좋다.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거나 기존의 구조물에 쉽게 적응할 수 있어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부드러운 재료는 마모되기 쉬워 기존 로봇에 비해 내구성이 낮을 수 있고, 부드러운 특성 때문에 특정 작업에서 정밀도가 떨어질 수 있다. 소프트로봇의 복잡한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떼지능 소프트웨어와 떼로봇 공학
떼지능 소프트웨어는 여러 로봇들이 협력해 집단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기술이다. 이는 개미나 벌 같은 군집 생물의 행동에서 영감을 받았다. 각각의 로봇은 간단한 명령만으로도 상호작용해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수의 작은 로봇이 협력해 구조물을 조립하거나, 재난 현장에서 동기화된 구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떼로봇 공학은 떼지능 소프트웨어의 응용으로, 대규모 협업이 필요한 작업에서 큰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 기술은 특정 로봇의 고장에도 전체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내구성을 제공하며, 로봇 공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에는 이러한 기술이 더욱 발전해, 인간과 로봇의 집단적 협력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식물을 모방한 로봇
식충식물인 파리지옥풀에서 착안해 만든 로봇도 있다. 파리지옥풀은 양쪽으로 벌어져 있는 두 개의 잎에 감각모가 있다. 이 감각모에 파리 같은 것이 닿으면 잎이 포개지며 닫힌다. 파리지옥풀의 잎 표면에 있는 샘에서는 곤충을 소화하는 붉은 수액이 분비된다. 파리지옥풀의 이파리처럼 빠른 속도로 모양을 바꿀 수 있는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 2011년 8월 미국 메인대학교 기계공학과의 모센 샤히푸는 파리지옥 로봇을 개발해 발표했다. 샤힌푸르는 이 파리지옥 로봇을 활용해 인공 근육을 연구한다. 파리지옥 로봇을 만든 물질을 안면이 마비된 환자의 손상 부위에 이식해 빠르게 모양을 바꿔 환자가 희망하는 표정을 나타낼 수 있는 것 등이다. 실제로 식충식물과 같이 파리를 잡는 로봇도 개발 중에 있다. 이 외에도 태양광을 흡수해 에너지를 얻는 식물형 로봇도 식물을 모방한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광합성을 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생존하는 식물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어, 식물과 마찬가지로 자가발전을 통해 작동하는 식물형 로봇은 지속가능한 발전에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
박테리아 로봇
박테리아를 모방하거나 실제 박테리아를 활용한 로봇은 나노 기술과 결합해 의료와 환경 정화 분야에서 큰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마이크로 로봇은 큰 로봇이 작업할 수 없는, 인간의 혈관 속과 같은 곳에서 활약할 수 있다.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질병을 치료하는 마이크로 로봇은 실제로 미국, 일본, 독일, 한국에서 활발하게 개발 중이다. 마이크로 로봇의 개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모터 부분이다. 로봇이 작아질수록 모터도 작아져야 하므로, 모터를 사용하지 않고 로봇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 활용되는 구동장치가 바로 박테리아다. 박테리아는 채찍 모양의 꼬리인 편모를 사용해 핏속에서 헤엄친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의 메틴 시티는 박사는 박테리아를 로봇에 결합한 박테리아봇을 선보였다. 이러한 기술은 생명 공학과 로봇 공학의 융합으로, 앞으로 의료 기술 혁신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박테리아 로봇과 같은 마이크로 로봇으로 오리가미 로봇도 있다. 오리가미는 종이접기라는 뜻으로, 종이접기 하듯 스스로 접고 움직이는 오리가미 로봇도 있다. 오리가미 원리를 적용한 로봇은 접거나 펼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통해 휴대성과 기능성을 모두 갖추게 된다. 오리가미 로봇은 나중에는 스스로 해체할 수도 있다. 소형화가 필수적인 우주 탐사나 의료와 같은 분야에서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주 탐사에서 오리가미 로봇은 발사체 내부의 제한된 공간을 최적화해 사용할 수 있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로봇은 스스로 펼쳐 탐사를 전개할 수 있다. 의료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초소형 오리가미 로봇이 접혀서 몸속에 삽입되고 특정 위치에서 펼쳐져 약물을 전달하거나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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