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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식물에 대한 발견, 식물사회가 회복되어야

 

황희정 기자 2024-10-04



식물이 인간을 강력하게 키우다


원시시대에 인간은 야생의 식물을 먹으며 생존했다. 약 1만 년 전부터 인간은 사는 곳 주변에서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농업혁명'으로 인류사를 바꿔 놓았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양 이상의 잉여 농산물을 얻게 되었고, 이때부터 먹고사는 것 외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농업의 발전과 잉여 농산물은 폭발적 인구 증가를 가져왔다. 현재 인류는 약 150종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재배되는 농작물들은 크기가 커지고, 당도가 높아지고, 색이 선명해지고, 독성이 제거되었다. 떫고, 독성이 있으며, 곁가지가 많으며, 쉽게 종자가 흩어져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야생식물들의 유전자는 인간에 의해 변형되었다. 이렇게 변형된 식물은 인간의 관리 없이는 살아 남을 수 없다. 식물은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을 가장 강력한 종으로 만들어 준 존재다.


식물도 싸운다


식물은 소리를 내지도, 이동하지도 않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내주기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식물은 미생물, 동물, 인간 등 '관계'에서 능동적이다. 식물 주변에는 많은 미생물이 있다. 식물 표면에 사는 것도 있고, 잎이나 뿌리 안의 빈 곳에 사는 것도 있으며 식물세포 안에 살기도 한다. 식물이 서식하는 땅, 물, 공기 안에 사는 미생물도 있다. 이 모두를 ‘식물-미생물총’이라 부른다. 미생물총은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원생동물, 미세조류, 선충류 등으로 식물에게 이로운 것도, 해로운 것도 함께 존재한다. 미생물총은 물과 영양분 흡수를 도와 식물 생장을 촉진시키고 병균과 해충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한다. 그러나 미생물과의 공생으로 생겨나는 부작용이 있다. 미생물과의 공생을 위해 식물은 세포벽을 만드는데 이곳으로 병균도 침입하기 때문이다. 병균이 침입하면 공생을 위한 활동을 중지하고 방어에 집중한다. 병균이 식물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식물의 방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활성산소를 많이 만들어 병균을 죽이고, 병균이 침입한 부위의 식물세포까지 죽여 병균이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는 과민반응이 있다. 다른 방법은 독성 화합물질인 파이토알렉신을 합성해 식물 자신을 보호하고, 질병 관련 단백질을 합성해 침입한 병원체를 역으로 공격하는 방법이다. 식물의 주요 호르몬인 살리실산과 자스몬산의 합성을 촉진해 면역반응을 일으켜 식물의 다른 부위로 신호를 보내 추가적 병균의 침입을 막는 전신획득저항성을 일으키기도 한다. 병균 역시 식물에 침투하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개발한다. 보이지 않는 전투가 진행 중인 것이다. 식물은 식물끼리도 경쟁하고 싸운다. 식물이 살아가기 위한 빛과 물, 무기영양분, 곤충들은 제한된 자원이다. 식물 주변에 다른 식물이 많으면 받을 수 있을 전체 빛의 양이 감소하므로 부족한 빛을 얻기 위해 줄기를 길게 자라게 하는 ‘파이토크롬’을 생성한다. 땅속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타감작용물질을 뿌리에 분비해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협조하고 공동체를 이루다


식물들은 땅속에서 뿌리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뿌리를 통해 서로 정보와 영양분을 공유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균근균'이다. 식물 뿌리에 곰팡이가 들어와서 살아가는 구조를 ‘균근’이라고 하는데 ‘균근균’이란 식물의 뿌리에서 공생하는 곰팡이들이다. 곰팡이는 가는 균사를 만들며 자라는데 균사는 표면적이 넓어 땅속 곳곳의 물에 녹아 있는 질소염, 칼리, 인산 등의 무기 영양분을 흡수해 식물에게 제공한다. 식물은 균에게 탄수화물과 지방을 제공한다. 균근균의 균사는 여러 식물의 뿌리를 연결해 공동체를 형성하게 한다. 식물 공동체는 균사를 통해 다른 식물의 상처 신호나 병원균 신호를 공유하기도 하고, 다른 식물로 당을 보내주기도 한다. 식물은 종을 막론하고 많은 생물체와 공생해 왔다. 4억5000만 년 전부터 내생균근균이라는 곰팡이는 식물과의 공생을 통해 초기 육상식물의 생존을 도왔다. 미생물들은 흙 속에 있는 복잡한 물질을 분해해서 식물이 흡수 가능한 물질로 만들어 준다. 뿔이끼와 우산이끼, 물고사리과의 일종인 단백풀, 겉씨식물 중 소철류 등은 체내 공간에 '질소고정박테리아'가 함께 산다. '질소고정박테리아'는 식물에게 고정된 질소를 주고 그 대가로 당과 유기산, 질소고정을 위해 필요한 산소가 없는 환경을 제공받는다. 콩과식물은 뿌리혹이라는 특수한 조직을 만들어 박테리아가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이 뿌리혹에서 박테리아는 계속 자라고 분열하며 질소고정에 필요한 유전자들을 발현해 공생한다.식물공동체는 식물들이 만들어낸 최선의 생존법이다.


먹고 먹히며, 살아남고 살아가다


곤충과 동물은 식물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식물의 서식환경에 의해 생물체의 개체 종류와 개체 수가 정해진다. 그래서 식물은 지구 생태계를 이루는 기반이다. 식물과 관계가 깊은 동물은 곤충과 초식동물이다. 다양한 동물들이 식물을 이용하고 곤충의 50% 이상은 식물을 먹는다. 식물도 동물을 먹는다. 식충식물이 그 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의 75~80% 정도가 약 20만 종의 동물의 도움으로 번식을 하지만 피해를 받기도 한다. 식물은 곤충에 의해 파괴된 세포벽 안에서 방출된 물질을 알아내 방어기작를 작동시킨다. 물리적인 방어벽 치기, 곤충에 해로운 화학물질 분비, 방어용 단백질 분비 등을 다양한 전략이 있다. 방향성 화합물들을 방출시켜 곤충의 천적을 유도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식물은 번식을 위해 초식동물에게 종자가 들어있는 맛있는 과육을 제공하거나 동물의 몸에 종자를 붙여 멀리 퍼뜨리며 살아남는다. 하지만 자신을 먹으려 하는 초식동물을 막기 위해 독성 물질을 분비하거나, 초식동물이 갈 수 없는 험한 곳에 서식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식물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는 대안을 찾아야


식물과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공생관계를 맺어 왔다. 인간은 호흡으로 식물에게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주고, 식물은 인간에게 필요한 산소를 제공한다. 스스로 이동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식물들을 인간은 필요한 곳으로 이동시켰고 필요한 식물은 대량 재배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숲을 파괴해 왔고 무분별한 산림 벌채, 도시화를 향한 자연 훼손으로 기후위기를 초래했다. 이로 인해 식물들의 사회생활도 파괴되었다. 식물들은 공생하거나 자신을 방어하면서 살아남았다. 식물들이 지구의 다양한 종들과 어떻게 관계 맺어 왔는지 들여다 봐야 보고 식물의 종 다양성을 회복하는 새로운 생존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든 시도는 식물의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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