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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물 부족 시대의 유전자 혁신

최종 수정일: 3월 31일

2025-03-27 최민욱 기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외래 유전자 없이 작물의 유전자를 정밀하게 편집해, 빠르고 정확하게 가뭄저항성 작물을 만드는 핵심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는 상용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인도는 물 절약형 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규제 완화를 둘러싼 국제 논의도 본격화되며, 기술 혁신과 안전성·사회적 수용 사이의 균형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물 부족 시대, 유전자 편집은 식량 안보를 위한 생존 기술이 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를 정교하게 재설계하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물의 DNA를 정확히 편집해 원하는 형질을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도구다. 대표적으로 CRISPR-Cas9 시스템은 분자 가위처럼 작용해 표적 유전자 부위의 DNA를 절단하고, 세포 자체의 복구 기작을 통해 새로운 변이를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전자변형생물(GMO)과 구별된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크리스퍼(CRISPR)로 기존(본래의) 유전자를 살짝 조정하여 작물을 개량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래 유전자를 주입하는 GMO 방식과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정밀한 교정 덕분에 크리스퍼는 목표 염기서열만 변화시키고 나머지 게놈은 보존해 작물 고유의 유전적 다양성도 유지할 수 있다.


GMO와의 차별점 – 속도와 정확성


과거 GMO 육종은 무작위 돌연변이를 유발하거나 다른 생물 종의 유전자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예측하기 어려운 부수적 변화도 수반됐다. 반면 유전자 가위 기술은 사전에 설계된 유전자 서열만을 바꿔주므로, 더 빠른 개발 속도와 높은 정확성을 자랑한다. 예컨대 미국에서 개발된 고올레산 콩의 경우, 두 개의 지방산 합성 유전자를 크리스퍼로 비활성화해 올레산 함량을 80% 높이는 목표를 달성했다. 이처럼 동일한 결과를 얻는 데 전통 교배육종으로 수십 년 걸릴 작업을 유전자 편집으로 몇 년 만에 이뤄 낼 수 있다.



물 부족 시대의 유전자 혁신 - 첫 크리스퍼 가뭄내성 콩류 개발


학계에서는 가뭄 저항성과 관련된 주요 유전자를 속속 밝혀 내고 있다. 호주의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RMIT) 대학 연구팀은 일부 병아리콩 품종이 건조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잘 견디는 점에 주목해, 관련 유전자들을 크리스퍼로 편집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유전자 가위로 식물 자체의 유전자만 손봐도 내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크리스퍼 가뭄내성 콩을 개발했다. 특히 앞서 확인된 RVE7과 4CL 유전자를 제거한 변이체를 만들어 봤더니 식물이 가뭄에 극도로 민감해졌는데, 이는 이들 유전자가 원래 가뭄 저항성에 매우 중요함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법을 바탕으로 연구진은 가뭄 취약 품종에 해당 유전자를 강화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조절해 수분 스트레스에 강한 신품종 병아리콩을 개발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병아리콩은 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이번 크리스퍼 접근이 현장에 적용되면 물 부족 지역 식량안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뭄에 강한 벼 품종의 등장


물 부족이 심각한 아시아 지역에서 크리스퍼 기술로 물 절약형 작물 개발에 나선 사례가 있다. 인도는 유전자 편집으로 개발한 가뭄저항성 벼 품종을 2024년 말까지 실증 시험한 뒤, 2026년부터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인도 농업부 장관은 이 벼가 논농사의 물 이용 효율을 크게 개선해 강우량이 부족한 해에도 쌀 재배를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인도 최초의 유전자 가위 작물이 될 전망으로, 물 부족 사태에 대응하는 종자 혁신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부는 2022년부터 특정 유형의 유전자 편집 작물에 대해서는 기존 유전자 변형 작물(GM Crops)에 요구되던 까다로운 안정성 심사를 면제하는 규제 완화를 단행해 이러한 품종 개발을 뒷받침했다.


실제 상용화된 유전자 편집 작물들


유전자 가위로 개발된 작물들은 이미 일부 국가에서 상업 재배의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9년 크리스퍼 대두로 만든 고올레산 콩기름이 “Calyno™” 브랜드로 시장에 출시되어 식품 제조에 활용되었다. 이 대두는 외래 유전자 없이 자기 유전자를 교정한 첫 사례로, 건강한 식용유라는 소비자 가치도 인정받아 판매되었다. 일본에서는 2021년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토마토(시실리안 루즈 High GABA)가 가정용 모종 키트 형태로 보급된 데 이어 본격적인 상용 판매에 들어갔다. 이 토마토는 혈압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GABA 함량이 일반 토마토보다 4~5배 높게 개선된 품종이다. 또 미국에선 2023년 크리스퍼로 쓴맛을 제거한 겨자잎 채소(Conscious Greens)가 샐러드용으로 출시되어 북미 최초의 크리스퍼 식품이 되기도 했다. 비록 이러한 사례들은 물 절약형 작물은 아니지만, 유전자 가위 기술의 상업적 성공을 보여 주며 향후 가뭄저항성 작물의 시장 진출의 청신호이다.



엄격한 규제에 막힌 보급


유전자 가위 작물의 잠재력이 크지만, 각국의 법적·규제적 장벽이 기술 확산을 좌우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GMO에 대한 강한 규제와 여론의 거부감이 존재했다. 2018년 유럽사법재판소(ECJ)는 크리스퍼 등으로 개발된 작물도 GMO와 동일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해 논란을 낳았다. 이 결정으로 유전자 편집 작물도 일괄적으로 GMO 취급을 받게 되면서, 유럽 내 연구와 상용화가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업과 연구기관들은 엄격한 실험 승인 절차와 재배 금지로 인해 유럽을 떠나 해외에서 연구나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명확한 규제가 없어서 기술 도입이 지연되거나 사회적 수용성이 낮은 문제가 지적된다.


유럽의 규제 완화


최근 이러한 기류에 변화가 일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신유전기술(NGT) 규제 개정안을 내놓아, 자연교배나 돌연변이로도 얻을 수 있는 수준의 편집 작물은 GMO 규제를 면제하는 새 틀을 제안했다. 이 안에 따르면 외부 종의 유전자가 들어가지 않은 “Category 1” 유전자편집 식물은 안전성 심사나 특별 표시 없이 기존 작물처럼 취급될 수 있다. 2025년 3월 유럽 각국 정부 대표들은 이러한 방향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유럽의회와 최종 조율에 들어갔다. 만약 이 규제 완화가 확정되면, 대부분의 크리스퍼 작물은 EU 내에서 재배 금지 대상에서 풀려나며 종자 라벨에도 GMO 표시를 면하지 않아도 된다. 완화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은 “아주 작은 유전적 변화도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며 규제 면제가 성급하다고 비판한다.



GMO 친화 국가들의 전략


한편 미국, 캐나다, 브라질, 일본 등 GMO 규제가 비교적 완화된 국가들은 일찍부터 유전자 편집 기술에 개방적이다. 미국 농무부는 외래 유전자가 삽입되지 않은 작물에 대해서는 별도의 GMO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침을 밝혔고, 실제로 앞서 언급한 대두유와 채소 샐러드 등이 신속히 상용화될 수 있었다. 일본도 2019년 유전자편집식품에 대한 안전성 심사를 면제한다는 정책을 정립하여 세계 첫 크리스퍼 식품(토마토)의 출시를 허용했다. 영국은 EU 탈퇴 후 정밀육종법(Precision Breeding Act) 2023을 제정하여 유전자 가위로 개발된 식물·동물을 “정밀 육종 생물”로 분류, GMO 규제에서 대부분 제외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GMO 친화 정책을 채택한 나라들은 혁신 가속과 투자 유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크리스퍼 작물 스타트업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 덕분에 새로운 품종을 잇달아 선보이고, 일본도 민간 기업 주도로 어류·농산물 편집 종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해결 과제와 균형점


규제 완화 추세 속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우선 안전성 검증과 사회적 수용이다. 기업과 과학자들은 유전자 편집 작물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한 투명한 데이터 공개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비판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선 정부와 학계가 협력해 철저한 사전 평가와 사후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특허와 종자 주권 문제도 논의되고 있다. 유럽의 이번 규제안 토론 중에는 유전자 편집 작물에도 폭넓은 특허를 인정함으로써 종자 산업의 대기업 집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개발 비용을 보호하기 위한 지적재산권과 농민들의 종자 접근권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도상국이 기술 혜택을 받도록 국제적 기술 공유와 지원이 요구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회원국들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안전하게 도입할 수 있도록 지침과 협력 채널을 마련하고 있다.


물 부족 시대의 핵심 기술로 부상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이 심화됨에 따라 유전자 가위 기술은 미래 농업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뭄, 염분, 고온 등 환경 스트레스에 강한 작물을 신속히 육종하기 위해 크리스퍼 등의 첨단기술 활용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인도의 한 농업과학자는 “새로운 유전자편집 벼 품종은 물 사용 효율을 높여 기후 변동 속에서도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돕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기술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각국 연구진은 밀, 옥수수, 쌀, 콩 등 주요 곡물에서 내건성(耐乾性) 형질을 높이는 유전자들을 발굴하고 편집하는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뿌리 구조를 강화해 적은 물로도 잘 자라는 밀, 증산 작용을 억제해 물을 아끼는 옥수수, 염분이 남은 토양에서도 견디는 쌀 등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기술 혁신은 물 부족 시대의 식량 안보를 떠받치는 한 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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