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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③ 자연에서 배우는 건축

 

황희정 기자 2024-12-13

공룡의 등뼈도 건축에 영감을 주었다. @pxhere

동물을 본뜬 건축: 공룡 다리와 에덴 프로젝트


1917년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수학자인 다르시 톰슨(D'Arcy Thompson)은 『성장과 형태(On Growth and Form』를 펴냈다. 이 책에서 톰슨은 자연과 건축물의 공통점을 밝혀 둘의 연결 지점을 많이 언급했다. 톰슨은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의 강도를 달성하는 자연의 기하학적 원리’를 강조했다. 그는 자연이 최소의 물질을 사용해 최소의 에너지가 소요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음을 설명했다. 이러한 톰슨의 아이디어는 현대 건축과 디자인에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특히 『성장과 형태』 출간 이후 동물들의 골격은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감의 원천이었다. 영국의 건축가들은 공룡의 등뼈 그림을 보고 공룡 다리(Dinosaur Bridge)를 설계했고, 이 다리는 1988년 ‘미래의 다리’공모에서 상을 받았다. 스페인 출신의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바라는 특히 동물 골격 구조를 본뜬 작품을 많이 설계했다. 2001년 미국 위스콘신주의 밀워키에 설립된 미술박물관은 새의 날개와 고래의 꼬리가 표현되어 있다. 이 건물은 세계에서 생물을 본떠 만든 건물 중 가장 큰 규모로 추정된다.

벌집의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에덴 프로젝트의 돔 모습

에덴 프로젝트(Eden Project)도 자연의 생물학적 원리를 건축과 설계에 적용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에덴 프로젝트는 영국 콘월에 위치한 세계적인 생태 관광 명소로, 대규모 식물원과 환경 교육 시설을 겸한 복합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은 두 개의 거대한 돔 구조인 ‘바이옴’이다. 바이옴은 각각 열대우림과 지중해 기후를 재현하며, 다양한 식물과 생태계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공간이다. 바이옴 내부에는 1000종이 넘는 식물이 자란다. 돔의 구조는 바로 ‘벌집’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됐다. 가벼운 육각형 패턴의 강철 프레임과 투명한 ETFE 필름으로 제작됐다. 이 설계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의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내부 온도와 습도를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다.


거미집을 모방하다


거미집도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거미집은 가늘고 섬세한 실로 만들어졌지만, 매우 높은 강도와 유연성을 자랑한다. 거미줄은 균형 잡힌 장력을 이용해 넓은 공간을 덮으면서도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효율성을 이끌어 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금방 끊어질 것 같이 가느다랗지만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거미집의 구조를 본떠 설계한 건축가 중 대표적 인물은 독일의 프라이 오토다. 1967년 몬트리올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인 그의 서독 전시관 건물은 거미집을 가장 닮게 설계한 것으로 평가된다. 거미줄의 방수성과 질긴 특성은 건축 자재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 거미줄은 방탄복의 소재인 케블라 섬유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강도와 탄성을 자랑하는데, 이것의 핵심 비결은 거미줄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베타시트 구조에 있다고 밝혀졌다. 베타시트 구조는 단백질의 2차 구조 중 하나로, 폴리펩타이드 사슬이 평행하거나 반평행으로 배열되어 형성되는 구조로, 단백질의 안정성과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북극곰과 펭귄: 냉난방 시설의 생물모방


북극곰의 두꺼운 털과 피부 구조는 매우 효율적인 단열 효과를 제공한다. 북극곰의 피부는 검은색으로, 태양열을 효과적으로 흡수한다. 또한 그 피부 위를 덮고 있는, 속이 빈 두꺼운 털은 투명한 속성을 지녀서 햇빛을 굴절시키면서 내부로 열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들어온 열이 외부로 빠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단열 역할을 하며 극한의 추위에서도 생물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게 한다. 이 원리는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냉난방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적용된다. 남극의 펭귄에게도 이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펭귄이 깃털을 들어올리면 깃촉의 밑 부분에 있는 솜털 같은 실 덩어리가 수백만 개의 공기 주머니를 만드는데, 이 공기 주머니들이 매우 효율적인 절연 기능을 제공한다고 한다. 또한 펭귄의 군집 행동도 극한의 추위를 견디는 독특한 생존 전략인데, 남극의 황제펭귄은 혹독한 겨울 동안 군집을 이루며 서로의 몸을 밀착해 체온을 유지한다. 이 군집은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군집 내부와 외부의 열 균형을 유지하는 ‘열 순환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이 원리는 대규모 건물 설계에서 열 효율을 높이는 데 적용된다. 복합 건물이나 주거 단지에서 ‘클러스터 디자인’은 서로 가까이 배치된 구조물들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열 손실을 줄이고 내부 온도를 효율적으로 유지하도록 돕는다.


위대한 흰개미 집단: 정교한 환기 시스템


흰개미 집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매우 정교한 건축물이다. 호주, 우간다, 코트디부아르, 나미비아 등의 초원에는 3미터 이상 솟아오른 진흙 구조물이 보이는데, 이게 바로 흰개미들이 쌓아 올린 둔덕이다. 흰개미들은 흙과 타액을 사용해 구조물을 쌓고, 이러한 구조는 자연스럽게 공기의 흐름을 유도해 내부 환경을 조절한다. 둔덕 안에 둥지는 미세한 터널과 통로로 이뤄져 있다. 둥지 안에서 흰개미 수만 마리는 엄청난 산소를 소비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열을 발생시킨다. 흰개미들이 질식해 죽지 않게 하면서, 연약한 피부가 마르지 않게 하려면 이산화탄소와 열을 둥지 밖으로 보내고 일정한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흰개미 집 상단의 큰 굴뚝과 같은 구조물은 내부 공기와 외부 공기의 대류 현상을 활용한 결과다. 이는 흰개미 군체의 떼지능이 가져온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떼지능은 개미, 벌, 새떼와 같은 집단적 행동을 보이는 생명체의 협력과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집단 지능을 일컫는다. 개별 구성원은 단순한 규칙을 따르지만, 집단 전체는 복잡하고 효율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떼지능은 오늘날 인공지능, 로봇 공학, 네트워크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짐바브웨 수도에 건설된 ‘이스트게이트 센터’는 흰개미 집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된 건축물이다. 짐바브웨 출생의 건축가 믹 피어스는 흰개미 집에서 영감을 얻어 이 건물을 설계했다. 이 건물은 냉난방 장치 없이 에너지 소비를 90% 줄이며 쾌적한 상태를 유지한다.


대나무집의 쓰임새


대나무는 빠르게 자라고 재생 가능하며, 가벼우면서도 높은 강도를 가진 건축 재료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대나무는 전통적인 주택 건물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친환경 건축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대나무는 섬유질 구조 덕분에 높은 인장 강도를 가져서 목재와 같은 다른 재료들보다 내구성이 뛰어나면서도 가벼운 건축 자재로 사용된다. 대나무로 지어진 집은 단열성과 통기성도 우수해 더운 기후에서 실내를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한 전통 가옥은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대나무는 내구성과 기능성 측면에서도 강철과 콘크리트에 견줄 만하다고 평가된다. 콜롬비아의 건축 대가 시몬 벨레스가 설계해 콜롬비아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대나무 건축물은 지진이 두 차례 일어나는 동안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나무가 땅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갔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대나무는 모듈화된 구조를 통해 빠르고 경제적으로 조립할 수 있어 임시 주택, 비상 재난 구조물, 고급 리조트 등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대나무는 세계 곳곳에서 빠르게 자라기 때문에 강철이나 콘크리트보다 경제적으로도 효율이 높다.


사막을 수풀로; 해수온실 기술과 태양열 발전 기술


영국의 발명가 찰리 파튼이 제안한 시워터그린하우스(seawater greenhouse)라는 해수온실 기술은 나미브 사막 딱정벌레의 물 포집 원리와 같은 생물모방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나미브 사막 딱정벌레는 극도의 건조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물 포집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딱정벌레의 등껍질 표면은 친수성 돌기와 소수성 배경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활용해 물을 포집한다. 딱정벌레 등껍질의 표면에는 작은 돌기들이 있어 수분을 응축하는 역할을 한다. 이 돌기들은 공기 중의 안개와 접촉하면 수분을 모으고 물방울을 형성한다. 반면 돌기 주변의 평평한 표면은 소수성 특성을 가진다. 이는 물방울이 딱정벌레의 등껍질 위로 쉽게 흘러내려 딱정벌레의 입으로 전달되도록 한다. 찰리 파튼은 여기서 해수온실 기술을 착안했다. 이 기술은 바닷물, 온실, 태양에너지를 활용해 신선한 물과 공기를 만들어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이다. 해수온실은 태양열을 사용해 바닷물을 증발시키고, 증발한 수증기를 냉각판에 응축시켜 담수로 바꾸는 것이다. 이 담수는 온실 내부의 농작물에 공급된다. 동시에 온실 구조 자체도 외부 열을 차단하면서 내부 온도를 낮춰 건조한 환경에서도 식물 생장이 가능한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이 기술은 전 지구적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해수온실의 위치를 선정할 때, 바닷물을 온실로 이동시키는 데 소요되는 에너지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사막에 나무를 심기 위한 대표적 케이스에는 ‘사하라 녹화 계획’이 있다. 이 녹화 계획에는 집광형 태양열 발전과 해수온실 기술이 결합되어 있다. 집광형 태양열 발전은 태양전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각도 조절이 가능한 반사판을 이용해 태양열을 탑 상부 집열기에 모아 그 열로 바닷물에서 수증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 수증기로는 재래식 증기 터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즉 집광형 태양열 발전으로는 햇빛으로 청정에너지로 만들고, 해수온실 기술로는 바닷물로 깨끗한 물과 시원한 공기를 만든다. 이 두 기술을 결합해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도 에너지를 만들고, 깨끗한 물을 얻고, 농작물과 수풀이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생태계를 본뜬 생물모방 도시를 만들다


중국의 동탄과 완주앙은 생물모방을 적용한 생태도시로,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의 상징적인 사례다. 이 도시는 영국의 도시계획 전문가 피터 헤드가 참여한 프로젝트로, 그는 재닌 베니어스(Janine M. Benyus)의 『생물모방』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 책에는 성숙한 생태계에서 유기체가 갖는 특성 열 가지가 서술되어 있다. △폐기물을 자원으로 활용 △서식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다양화하고 협동함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모으고 사용 △최대화보다 최적화 △물자절약 △서식지를 오염시키지 않음 △자원을 삭감하지 않음 △생물권과 균형 △정보활용 △토착산물구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베니어스가 제시한 이 유기체의 성공적인 생존을 위한 십계명을 피너 헤드는 중국의 생태도시 설계에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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