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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② 자연을 본떠 만든 물질

황희정 기자 2024-12-13

도마뱀붙이는 발바닥 작은 주름들에 있는 강모, 그리고 강모에 있는 나노 빨판으로 벽에 붙어 있을 수 있다. @pixabay

자연에서 본뜬 접착제


21세기 초반부터 생물영감, 생물모방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자연을 본떠 만든 물질들이 쏟아져 나왔다. 먼저 자연에서 본떠 만든 접착제들이 눈에 띈다. 도마뱀붙이는 게코라고도 부르는 동물인데, 이 생물의 발가락 바닥 작은 주름들은 뻣뻣한 털(강모)로 덮여 있다. 발바닥 한 개에 강모가 50만 개 정도 있고, 이 강모의 끝에는 잔가지가 100~1000개 나와 있다. 이 잔가지 끝부분은 오징어의 빨판처럼 뭉툭하게 생겼고, 지름은 200나노미터로 도마뱀붙이 한 마리는 이러한 나노 빨판을 약 10억 개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발바닥의 나노 빨판으로 도마뱀붙이는 천장에 매달려 다닐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켈라 오텀은 도마뱀붙이의 강모가 표면과 접촉할 때 작용하는 힘이 반데르발스 힘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반데르발스 힘은 분자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으로, 두 물체가 2나노미터 간격 이하로 접근할 때만 작용하는 힘을 일컫는다. 미국의 공학기술자 론 피어링은 이 도마뱀붙이의 강모를 모방한 나노 접착제를 만들었다. 이 나노 접착제는 인체에 해롭지 않으며, 의료용 패치, 전자기기 조립, 우주 탐사 조립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홍합은 물속에서도 표면에 강력히 붙어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비결은 홍합이 분비하는 특정 단백질, 특히 DOPA(3,4-디하이드록시페닐알라닌)라는 접착 단백질에 있다. 이 단백질은 산화 환원 반응을 통해 물에 젖은 환경에서도 강력한 결합을 형성한다. 홍합 접착 단백질은 표면의 물 분자를 제거하거나 기존의 화학 결합을 무너뜨리지 않고 새로운 결합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수중 로봇 부품 조립, 생체 조직 재생, 환경 복구 프로젝트에서의 수중 식물 접착에도 적용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담쟁이덩굴의 줄기 끝에는 지름 3밀리리터의 동그란 원반이 7~9개씩 달려 있고, 원반에는 지름 10~15마이크로미터, 길이 100~200마이크로미터의 뿌리털이 나와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의 토마스 스파크는 담쟁이덩굴 줄기 끝에 있는 뿌리털이 벽면에 파여 있는 미세함 홈으로 들어가 고리처럼 걸리고, 뿌리털 세포에서 접착성 액체가 분비되어 홈을 완전히 메우고 굳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담쟁이덩굴 줄기는 이런 방식으로 제 무게의 200만 배 정도나 강하게 담벼락을 붙잡을 수 있다. 미국 테네시대학교의 밍준 장은 이 뿌리털 세포에서 분비되는 접착성 액체 안의 나노 입자에 의해 접착력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밝혔다. 담쟁이덩굴의 접착력을 응용해 초경량이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접착제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외벽 보수, 건물 및 구조물 보강 등에 활용된다.

연잎 표면은 물을 배척하는 초소수성 표면으로 오염되지 않는다

자연의 생체를 모방한 기술들


연잎은 표면에 물과 먼지가 쉽게 달라붙지 않는 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자기정화 현상을 ‘연잎효과’라고 한다. 연잎처럼 표면에 작은 돌기가 많으면 물을 배척하는 초소수성 표면이 되어 물방울과 먼지의 접촉 면적이 급격히 감소해 씻겨 내려간다. 연잎효과는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때를 방지하는 자기정화 표면은 자주 청소해야 하는 생활용품에 유용할 것이다. 건축 외장재, 자동차 유리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나미브 사막에 서식하는 풍뎅이는 몸 표면에 독특한 돌기를 갖고 있어 안개로부터 물을 모을 수 있다. 나미브사막풍뎅이의 등에 있는 돌기 끄트머리는 친수성, 돌기 아래의 홈이나 등부분은 소수성이다. 안개 속 수증기가 돌기 끄트머리에 맺혀 무거워지면 흘러내리는데, 홈 부분은 소수성을 띄기 때문에 물방울이 풍뎅이의 입 안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 원리를 활용해 사막과 같은 물 부족 지역에서 물을 모으는 장치로 개발되고 있다.

물총새, 펠리컨, 거북복을 모방한 탈것들도 주목할 만하다. 물총새의 길고 끝이 뾰족한 부리에서 착안해 고속열차 소음 문제를 해결했다. 펠리컨의 부리 모양을 활용해 만든 콩코드 여객기도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여객기이지만, 공기 저항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비행기의 머리 부분을 가늘고 좁아지게 모양을 냈었다. 자동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는 거북복을 본떠 자동차를 설계했다. 거북복의 단단한 외피와 거북복 몸 전체로 만들어 내는 소용돌이로 수류의 저항을 줄이는 기술은 미래 자동차의 발전 방향을 예고했다.


거미줄은 강철보다 질기고 방탄복 소재보다 강하다. @pixabay

강력한 방어 소재: 거미줄과 전복 껍데기


거미줄은 보기에는 금방 끊어질 듯해도, 같은 무게로 견줄 때 강철보다 20배나 더 질기고, 방탄복 소재인 케블라(kevlar)보다 4배나 더 강하다. 또 나일론의 2배, 케블라의 8배로 더 늘어날 정도로 탄력적이다. 높은 온도에서 불안정하지 않고, 방수 기능이 있고, 인체에서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장점도 있다. 인공 거미줄이 대량으로 생산되면 매우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다. 인체에서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인공 각막과 인공 힘줄에서부터 화상을 입은 피부를 감싸거나 수술 부위를 봉합하고 심장의 판막이나 혈관의 둘레에 입히는 재료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인공 거미줄은 방탄복, 낙하산 등의 군사용품에도 널리 이용될 수 있다. 충격 흡수와 경량화에 최적화된 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전복 껍데기는 망치로 때려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단단하다. 전복 껍데기는 95%의 탄산칼슘과 5%의 점성 단백질로 이뤄진다. 탄산칼슘은 벽돌, 점성 단백질은 진흙의 역할을 하며, 이들은 나노미터 크기이다. 두께가 나노미터 크기인 탄산칼슘 벽돌이 번갈아 쌓여 있어 충격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분산하는 효과를 낸다. 이 벽돌 사이에는 10나노미터 이하의 얇은 단백질이 접착제 역할을 한다. 단백질이 진흙처럼 탄산칼슘 벽돌 사이의 틈을 메워 외부 충격을 견뎌 내는 것이다. 이 탄산칼슘과 단백질의 나노 복합재료인 전복 껍데기 구조를 모방해 방탄 소재가 개발되고 있다.


모기의 바늘은 사람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해서 모기의 흡혈을 돕는다. @pixabay

의료 분야의 활용: 모기와 흡혈동물


모기 바늘의 모양을 이용해 무통주사를 개발한 사례도 있다. 모기가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피를 빨아먹는다는 사실에 주목한 성과다. 일본의 의료기기 전문가는 모기 주둥이의 모양을 본떠 끝이 점점 가늘어지는 주삿바늘을 만들었고 이는 기존의 바늘보다 20% 작았다. 거머리, 십이지장충, 흡혈박쥐, 진드기 등의 흡혈동물에게서도 의료에 활용할 물질을 얻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흡혈동물은 숙주의 몸에서 피가 빨리 흘러나오도록 자극하고, 빨아들인 피가 빨리 응고하지 못하게 하는 화학물질을 갖고 있다. 이 흡혈동물의 화학물질을 이용해 신약 개발이 활발하다. 피가 응고하지 않게 막는 화학물질은 수요가 큰 약품이다. 뇌경색이나 심장마비는 피가 굳은 혈전이 혈관을 돌다가 막힌 것인데, 이 화학물질이 혈액을 굳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머리의 침에는 마취성분과 혈액의 응고를 막는 히루딘이 들어 있다. 제약 회사들은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조작해 히루딘을 대량 생산해 수술 직후 피가 굳는 것을 막는 약품으로 사용한다.


상어 지느러미 비늘의 미세 돌기들은 상어가 바다에서 빠르게 헤엄칠 수 있게 한다. @pixabay

소재와 디자인에서의 활용


솔방울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껍데기가 열리면서 씨앗이 튕겨져 나온다. 솔방울 껍데기는 외부가 축축할 경우 바깥층 물질이 안쪽 물질보다 더 빨리 물을 흡수해 부풀어 올라 솔방울이 닫힌다. 반면 기온이 올라가 껍데기가 건조해지면 바깥층 물질에서 수분이 빠져나가 구부러지며 솔방울이 열리게 된다. 솔방울의 이러한 바깥층과 안쪽 물질이 서로 다른 속도로 온도와 습도에 반응하는 특성을 모방해 옷이나 건설자재를 개발하고 있다. 영국의 생물모방 전문가 줄리언 빈센트는 솔방울을 본뜬 운동복을 만들었다. 옷에 날개처럼 펄럭이는 작은 천을 여러 개 달아 땀을 흘릴 때는 열려 피부가 서늘해지고, 땀이 말라 피부가 냉각되면 천들이 다시 닫힌다.

상어의 피부구조를 활용한 전신수영복 개발도 대표적인 예다. 상어 지느러미 비늘에 있는 미세돌기들이 물과 충돌하며 생기는 작은 소용돌이가 상어 표면을 지나가는 큰 물줄기 흐름으로부터 상어 표면을 떼어 놓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상어 비늘이 일으키는 미세한 소용돌이는 표면 마찰력을 5% 줄여 상어가 빠른 속도로 물속을 헤엄칠 수 있게 한다. 이 미세한 돌기 구조를 전신 수영복에 응용해 마찰력을 줄이고 수영 선수들의 경쟁력을 높였다. 인공 상어 비늘은 비행기 날개에서도 활용된다. 이 외에도 벼룩이 높은 점프를, 잠자리가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할 수 있는 단백질인 레실린을 활용해, 탄성이 필요한 의료기기와 스포츠 장비에도 활용되고 있다.


모르포나비의 날개 표면에서 구조색 기능을 찾아볼 수 있다 @pixabay

첨단기술에 활용


1900년대에 자연에는 수백만 년 동안 몸에 지닌 나노 크기의 광결정 구조를 사용해 빛을 사용하는 생물들이 있음이 밝혀졌다. 남아프리카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나비들과 어두운 바다 밑바닥에 살고 있는 바다생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생물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게 하는 빛인, ‘훈색’이라 불리는 광특성을 갖고 있다. 훈색은 구조색에 의해 발생하는데, 구조색은 무지개처럼 색소가 섞이지 않은 무색의 물질이 색을 나타내는 현상을 일컫는다. 구조색을 나타내는 모르포나비는 사실 날개에는 아무 색소가 없지만 환한 푸른색을 띈다. 모르포나비의 날개 표면 비늘은 나노미터 크기의 독특한 구조로 푸른빛만 반사시키고 나머지 색은 모두 흡수하기 때문에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이런 나비의 구조색 기능을 흉내 내 만든 포르포텍스 등이 개발되었다. 오팔도 마찬가지로 구조색이라는 독특한 색상 원리를 갖고 있다. 모르포나비와 오팔의 독특한 색상 원리를 활용한 기술은 디스플레이와 페인트 산업에서 다양하게 응용된다.

거미불가사리와 해면은 자연계에서 매우 독특한 광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구조는 현대 광통신 기술에 큰 영감을 주었다. 거미불가사리의 팔에는 미세한 결정 구조가 있는데, 이것은 빛을 특정한 방향으로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이 구조는 빛의 파장을 조절하고 산란을 최소화해 빛이 손실 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원리는 고급 광섬유 설계에 사용되며,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이고 왜곡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해면은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사는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해면을 통과한 물은 깨끗해지기 때문에 일종의 정수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해면은 유리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수염으로 빛을 수집해 다른 해면에 반사한다. 해면의 수염은 거의 완벽한 광섬유다. 이를 모방해 우주 통신, 해저 광통신 시스템 등에서 활발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해면 유리섬유의 단백질을 활용하면 광통신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혹등고래 지느러미의 돌기들에서 풍력발전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pixabay

에너지 생성 아이디어를 착안하다


혹등고래에서 풍력발전을, 인공 나뭇잎에서 전기 생산을 하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먼저 혹등고래는 복잡한 노랫소리와 길고 가는 가슴 지느러미가 주요 특징이다. 혹등고래의 지느러미는 비행기 날개처럼 단면이 위로 볼록하며 혹처럼 생긴 돌기가 20여 개 있다. 이 지느러미의 돌기들이 소용돌이를 일으켜 혹등고래가 물속에서 오래 떠 있고, 느린 속도로도 잘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혹등고래의 지느러미를 본떠 풍력발전에 활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풍차는 바람이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면 작동하지 않는다. 풍력 터빈이 바람의 속도가 느릴 경우 지속적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풍력발전 터빈의 날개에 돌기를 달아 발전량을 연간 20%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식물이 광합성하는 원리를 활용해 인공 나뭇잎을 만들어 인공 광합성을 하려는 시도도 있다. 201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대니얼 노세라는 11월 4일 『사이언스』에 인공 나뭇잎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노세라의 인공 나뭇잎은 태양전지 표면에 코발트 촉매가 발라져 있는데, 태양전지가 햇빛을 받아 전기를 만들면 코발트 촉매는 이 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수소 이온을 만든다. 수소 이온은 결국 수소 기체라는 청정연료를 만들게 된다. 이 기술이 실현되면 인공 나뭇잎, 물, 햇볕을 갖고 누구나 전기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된다. 이처럼 우리 인류는 자연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발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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