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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① 자연을 본뜬 위대한 발명

 

황희정 기자 2024-12-13

신화 속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카루스의 날개는 인류가 새의 날개를 모방한 비행 기술을 시도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pixabay

생물영감(bioinspiration)과 생물모방(biomimicry)


인간이 발명한 많은 것들은 자연에서 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은 38억 년 동안 많은 어려움들을 지혜롭게 이겨 내고 살아남았다. 인간들이 이 지혜들을 빌려 발명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21세기 초반부터 이렇게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과학기술이 주목을 받았고, 이 신생 분야는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으로 대표된다. 먼저 생물영감은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생물체의 구조, 기능, 행동 등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나 해결책을 얻는 과정을 말한다. 즉 자연에서 수억 년 동안 진화된 생물학적 시스템을 인간의 기술, 디자인, 공학에 적용하려는 접근 방식이다. 예를 들어 바퀴벌레의 다리 구조를 연구해 험지에서도 이동 가능한 로봇을 설계한 것, 도마뱀붙이의 발바닥 접착 원리를 이용해 접착제를 개발하는 것, 상어 피부의 미세한 돌기를 모방해 물의 저항을 줄이는 수영복을 제작하는 것 등이 있다.

생물모방은 생물영감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개념이다. 자연의 설계와 원리를 실제로 모방해 기술, 제품,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생물모방은 자연 생태계가 제공하는 문제 해결 방법을 인간이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생물모방의 사례로는 바람에 쉽게 날리는 씨앗의 구조를 모방해 스프레이 기술을 향상시킨 것, 연꽃 잎의 방수성과 자기 청결성을 모방해 발수 코팅을 개발한 것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정리하면, 생물영감은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이고, 생물모방은 자연의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모방해 기술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분야는 자연 전체가 연구 대상이 되어 그 범위는 매우 깊고 넓다. 이인식 칼럼니스트는 이 분야가 생명공학, 생태학, 나노기술, 재료공학, 로봇공학, 인공 지능, 신경 공학, 집단지능, 건축학 등 첨단 과학기술의 핵심 분야가 거의 망라된다고 설명했다.


갈고리 모양의 씨앗에서 착안한 벨크로

생물모방의 상징 벨크로(Velcro)


벨크로는 자연에서 발견된 생물학적 원리를 모방해 개발된 가장 대표적인 생물모방 기술 중 하나다. 1940년대 후반 스위스의 전기 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이 발명했다. 벨크로는 그가 산책 중 자신의 옷과 개의 털에 갈고리 모양의 씨앗(우엉인지 도꼬마리인지 혹은 다른 것인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가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씨앗의 표면에 작은 갈고리 모양의 구조가 있음을 확인한 데에서 시작됐다. 벨크로라는 명칭은 프랑스어인 벨루르(Velour, 벨벳)과 크로셰(Crochet, 갈고리)의 합성어로 상품 명이었던 벨크로가 고유명사가 되었다. 벨크로의 한 면에는 씨앗에서 착안한 갈고리들이 달려 있고, 다른 한 면에는 고리들이 걸려 있어 이 두 면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게 하는 접착 장치다. 한국에선 흔히 찍찍이라고 부른다. 벨크로는 신발, 가방, 옷 등 의류에도 매우 많이 활용되고 있고, 의료 분야나 우주 산업, 스포츠 분야에서도 굉장히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벨크로는 반복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손상되지 않아 내구성이 뛰어나다. 빠르고 쉽게 탈부착이 가능해 편리한 것도 큰 장점이다. 벨크로는 상업적으로 굉장히 큰 성공을 거둬 생물을 본떠 발명한 제품 중 가장 많이 팔렸고, 생물모방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자연에서 발견된 간단한 원리가 기술적 혁신으로 이어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장수말벌과 박쥐에서 가져온 아이디어


생물모방의 또 다른 사례로는 장수말벌에서 영감을 받은 제지 기술과 박쥐의 초음파에서 영감을 얻은 음향 기술이 있다. 장수말벌은 나무 껍질을 씹어 섬유질을 추출하고 이를 자신의 침과 섞어 집을 만드는 독창적인 생존 방식을 갖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집은 가볍고 단단하고 뛰어난 단열성을 지닌다. 이를 본 프랑스의 곤충학자 르네앙투안 레오뮈르는 1719년경 장수말벌의 기술을 통해 나무로 종이를 만들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레오뮈르 본인이 직접 종이를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19세기 중반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해 나무 부스러기로 펄프를 얻는 기술을 발명했고, 인류는 나무 펄프로 종이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장수말벌의 집 생산 방식을 통해 얻은 이러한 구조적 지식은 오늘날 방음재, 단열재, 경량 건축 자재를 설계하는 데까지 응용되고 있다. 다만 종이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나무를 대량 벌목했고, 이로인해 생태계가 훼손되는 문제가 있다.

박쥐의 초음파에서 영감을 얻은 음향 기술도 우리가 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유용한 발명이다. 박쥐는 먹이를 찾거나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초음파를 이용하는 생물학적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박쥐의 능력을 발견한 건 18세기 이탈리아 생물학자인 라차로 스팔란차니다. 1794년 스팔란차니는 이런 박쥐의 능력이 박쥐의 청각에서 오는 것을 알아냈다. 박쥐는 콧구멍에서 나오는 초음파를 발사해 초음파가 주변 환경에 반사되어 돌아오면, 이를 분석해 거리와 크기, 물체의 형태까지 정확하게 파악한다. 이 원리는 현대 과학에서 초음파 센서, 의료용 초음파 기기의 개발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는 초음파를 이용해 인체 내부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술로 발전했다. 초음파 검사로 체세포보다 딱딱한 조직의 유무를 파악해 종양이나 암 등의 진단에 효과적이다. 물속의 물체를 탐지하는 수중 음파 탐지, 지형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초음파 기술이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템스터널공법에 아이디어를 준 좀조개의 모습 @flickr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비행기술과 템스터널공법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을 날기 위해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든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인간이 비행에 대해 꿈꿔 왔음을 상징한다. 이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로스의 아버지인 다이달로스는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날개를 만든 항공공학자라고 할 수 있다. 비행에 대한 꿈을 과학적으로 실현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인물은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그는 새의 날개와 꼬리 모습을 본떠 그린 비행기 설계도를 100여 개나 남겼다고 한다. 1889년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은 동생과 황새의 비상을 관찰해 원시적인 날개 기구를 만들었다. 이게 바로 최초의 글라이더다. 새의 날개가 공기를 가르고 상승력을 얻는 원리는 초기의 글라이더 설계에 반영되었고, 이는 현대 비행기의 기초가 됐다.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것은 그 유명한 미국의 라이트 형제다.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가 만든 300kg의 동력 비행기가 59초 동안 36미터 상공에서 250미터를 비행했다.

템스터널공법은 좀조개에서 영감을 받은 생물영감의 사례다. 좀조개는 나무를 파먹으며 터널을 형성하고, 동시에 터널 벽을 단단히 고정하는 분비물을 분출해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한다. 19세기 프랑스 출신의 영국 기술자 마크 브루넬은 이러한 좀조개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해 템스 터널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818년 터널링 실드라는 토목기계를 만들어 특허를 냈다. 이 기계는 강 아래나 지하수층이 있는 연안지반에 터널을 팔 때 사용한다. 갱부가 거대한 나사 잭을 이용해 연약지반을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 전면의 빈지문을 통해 땅을 파는 철제 보호 장치로, 여기서 빈지문은 널빈지로 된 문이다. 널빈지는 한 짝씩 끼웠다 떼었다 하는 문을 의미한다. 브루넬의 실드 공법은 현대 터널 공학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이 외에도 영국의 수정궁을 만드는 데 기술적 영감을 제공한 수련, 귀 모양을 본떠 만든 전화기 등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영감과 모방의 원천을 제공해 준 사례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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