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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에너지원, 무엇을 선택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할지다

2025-04-15 김성희 기자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탈원전 vs 친원전’이라는 이념 대립에 갇혀 과학과 기술,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전략적 설계를 놓쳐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앞에 두고, 이제는 정치적 구호를 넘어 현실과 미래를 아우르는 에너지 시스템을 설계할 때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이다.



이분법을 넘어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략을 설계할 때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오랜 시간 ‘탈원전이냐, 친원전이냐’는 정치적 구호에 갇혀 이분법적 논쟁을 반복해 왔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급격히 흔들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식이 에너지 전환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구호나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과학과 기술, 그리고 시스템 설계에 기반한 복합적인 과제다. 결국,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탈원전이냐, 친원전이냐’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과 과학에 바탕을 둔 시스템의 재구성이며,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더는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이미 필요한 기술과 조건은 마련되어 있다. 이제 실행에 옮길 차례이다.


두 정권의 엇갈린 에너지 정책과 문제점


두 정부 에너지 기본계획 비교표. 사진 뉴스핌
두 정부 에너지 기본계획 비교표. 사진 뉴스핌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방향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양축으로 한 '에너지 전환'에 방점을 찍었다.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제한하는 한편,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과 대기오염 저감,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 구축을 위한 장기 전략의 일환이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 가격 급등 등 현실적 위기에 대응해 정책의 중심을 ‘에너지 안보’로 전환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포함해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하고, 중단됐던 원전의 계속 운영을 제시했다. 재생에너지 정책 역시 목표 비중을 조정하면서 태양광 일변도에서 벗어나 풍력, 수소, 암모니아 등으로 에너지원의 다변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두 정부 모두 각자의 전략에서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충분한 사회,기술적 합의 없이 선언적으로 추진하면서 논란과 갈등이 있었다. 무계획한 태양광 확대는 산림 훼손, 계통 연결 지연, 주민 반발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에너지 저장장치(ESS)나 수요반응 시스템 등 기반 인프라에 대한 준비가 미흡해 실행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반대로 윤석열 정부는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전략으로 회귀하면서 재생에너지 비중 축소가 기후 목표와 충돌했다. 풍력, 수소, 암모니아로의 에너지원 다변화를 언급하면서도 해당 기술의 제도적 기반이나 인프라 구축은 미흡했다. 원전 중심 회귀가 산업 논리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수용성, 폐기물 처리, 공론화 부족이라는 지역 주민과의 소통 문제도 안고 있다.

두 정부의 상반된 정책 노선은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경쟁력, 에너지 시장의 안정성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놓고 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한 셈이지만, 공통적으로 ‘기술 기반에 대한 전략적 설계’와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한 실행력’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에너지는 단지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기술·경제·사회적 합의의 총체라는 점에서 보다 통합적이고 과학 기반의 논의가 요구된다.


정권마다 흔들린 에너지 정책의 피해자는 현장과 시민


에너지 정책이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중될 경우, 그로 인한 부작용은 불가피하며, 결국 그 부담은 시민들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한전 전력 구입비가 폭증한 내용을 도표로 나타냈다. 사진 국회입법조사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한전 전력 구입비가 폭증한 내용을 도표로 나타냈다. 사진 국회입법조사처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탈원전’ 기조와 함께 전기요금 동결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맞물리면서, 장기적인 비용과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실제로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을 줄일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이 최대 40%까지 오를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이 보고서는 정책 결정에 반영되지 않은 채 묵살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후 한국전력은 연료비가 급등한 상황에서도 요금을 올리지 못한 채 수요를 감당해야 했고, 결국 2022년에는 영업손실이 32조 원에 달하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KEEI)이 2017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막대한 투자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발전 단가와 전기요금 상승은 피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전력요금 정책이 단순한 민생 안정 수단을 넘어, 자원 배분의 합리성과 경제 전반의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효과를 구조적으로,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석하는 ‘시스템 기반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강릉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사위 현장. 사진 환경운동연합
강릉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사위 현장. 사진 환경운동연합

한편,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안보와 원전 생태계 복원을 명분으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과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방안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성 확보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시민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릉과 삼척 지역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주민 건강권과 환경권 침해,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한다는 비판까지 더해졌다. 삼척 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는 맹방해변 해안 침식과 대기오염 문제를 유발하여 지역 주민들의 생명권도 위협했다. 강릉 안인화력발전소의 경우에도 여론조사에서 시민의 63.1%가 건설에 반대 입장을 보였으며, 이 발전소는 연간 약 15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돼 기후변화 대응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시민사회는 정부가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한 채, 지역사회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접근은 사회적 신뢰를 얻지 못한 채 갈등만 키우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과학과 정치가 손잡아야 할 문제


"우리는 소설보다 과학을 택합니다."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가 내세운 구호의 하나이다. ​탈진실(Post-Truth) 시대에 접어들면서, 감정과 정치적 구호가 과학적 사실을 압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KOFST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내용에 따르면 에너지 정책과 같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정치의 협력이 필수적이나, 현실에서는 과학자와 정책결정자 간의 소통 부족, 시간적 차이, 문화적 요인 등으로 인해 협력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대부분이 수석과학고문(CSA) 제도와 과학기술 자문기구을 운영하고 있으나, 그 형태와 기능은 달랐다. 우리나라에도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 및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국가 CSA로 활동하고 있으나, 그 역할이 연구개발 예산의 사용 방향을 정하거나 대형 과학기술과제를 제안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과학이 국정 운영에 효과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자문기구의 역할을 강화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와 과학이 협력할 때,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과 일관성도 더해진다. 에너지 전환은 최소 5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할 장기적인 미래 설계이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의 전략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8.3%가 에너지 부문에서 발생하는 만큼, 에너지 전환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국들은 각국의 산업 구조와 에너지 자립도 등 현실을 반영해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탄소중립 정책을 수립하고, 중장기적인 전환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가 ‘트릴레마(Trilemma)’ 중 가장 우선순위 높은 과제로 떠오르면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탄소중립 흐름은 단기적으로 제동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과도기적 에너지원으로 다시 주목받았고, 여러 국가들은 일시적으로 화석연료 의존도를 높이는 정책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가는 2050년까지 비화석 연료 비중을 5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장기 방향성은 유지하고 있다.

탄소감축 현황과 비화석연료의 의존도 변화. 사진 주요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동향 및 시사점 연구보고서 발췌
탄소감축 현황과 비화석연료의 의존도 변화. 사진 주요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동향 및 시사점 연구보고서 발췌

중국은 국가적 역량을 모아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원자력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글로벌 공급망 내 주도권 확보를 노리고 있다. 프랑스는 자국 원전 기술력을 기반으로 수소 에너지를 미래 전략 산업으로 키우고 있으며, 원자력과 수소를 결합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은 낮은 에너지 자립도를 극복하기 위해 화력발전을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동시에 확대하는 에너지 믹스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병목으로 가장 널리 지적되는 문제는 '송전 인프라 부족'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은 2023년을 기점으로 대규모 전력망 확충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은 2023년 10월, 80억 달러 규모의 전력망 개선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독일은 그리드 투자 촉진을 위해 법을 개정해 수익률 상한을 최대 40%까지 올렸다. EU도 전력망 효율화와 확충을 위한 ‘전력망 행동계획(Grid Action Plan)’을 발표하며, 총 5840억 유로에 달하는 투자 필요성을 공식화했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조정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제 정세, 원자재 가격, 금리 등 경제·외교적 변수가 모두 얽혀 있는 복합적인 과제이며, 대부분의 국가는 ‘탄소중립’이라는 장기 목표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앞으로의 에너지 전환,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제 한국도 본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는 에너지 수요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구조적으로 높이고 있으며, 현재도 전체 에너지 공급의 80.3%, 전력 생산의 62.5%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탄소중립을 점진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특정 에너지원의 선택이 아니라,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설계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의 에너지 믹스 현황. 사진 주요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동향 및 시사점 연구보고서 발췌
한국의 에너지 믹스 현황. 사진 주요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동향 및 시사점 연구보고서 발췌

2023년 10월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92%가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으며, 86%는 기후위기 대응이 지상과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86%가 친환경적이고, 71%는 경제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나타낸다. 반면,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83%가 사고 예방이 불확실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79%는 핵폐기물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 달성에 이르기까지 재생에너지와 원전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및 원전 축소 응답이 55%로 과반이 넘는다. 이러한 결과는 국민들이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지지하면서도,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원자력과 화석연료의 병행 사용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2021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동일한 양의 CO₂를 감축하는 데 있어 원자력은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적은 발전량과 비용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를 토대로, "재생에너지 100%"와 같은 단일한 구호보다는 기술적 효율성과 경제적 현실을 함께 고려해 두 에너지원이 조화를 이루는 전략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강조한다.


국민 인식과 과학적 분석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나아가되, 그 과정에서 원전과 같은 과도기적 수단을 전략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설계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인가다.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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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2일 전

탈원전 이냐 친원전 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합의와 전략적설계의 문제라는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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