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2월, 본지는 ‘세계의 기후 및 생태 관련 소송’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기후·생태 관련 법정 소송 사례 기사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2024년 한 해 동안 새롭게 등장했거나 주목받고 있는 소송 승소 사례가 등장했다. 후속 기사로 아시아를 포함한 해외 주요 동향을 싣는다.
2025-02-13 최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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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기후 생태 관련 소송, 약 3050건
컬럼비아 대학교 '사빈 기후변화법센터(Sabin Center for Climate Change Law)'가 운영하는 ‘기후변화 소송 데이터베이스(Climate Change Litigation Databases)’에는 1986년부터 2023년 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3050건의 기후·생태 관련 소송이 기록되어 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약 2130건으로 가장 많고, 뒤이어 호주(약 130건), 영국(약 100건), 독일(약 60건), 브라질(약 40건), 캐나다(약 35건), 한국(약 4건) 순으로 확인된다. 불가리아, 중국, 루마니아, 러시아, 핀란드, 태국, 튀르키예 등 총 59개국의 기후·생태 관련 소송이 확인된다.

기업 대상 소송 증가, ‘기후워싱’ 소송 70% 원고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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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정경대학(LSE) 그랜섬 연구소는 '2024년 기후변화 소송 동향 보고서(Global Trends in Climate Change Litigation 2024 Snapshot)'에서 기후소송이 정부와 기업의 기후 대응 책임을 묻는 데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후 관련 소송이 새로운 국가들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후소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약 230건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2023년 한 해에만 47건의 새로운 ‘기후워싱(Greenwashing)’ 소송이 추가되며, 기후워싱 소송은 총 140건을 넘어섰다. 이 중 70% 이상이 원고에게 유리한 판결로 끝났다.
주요 소송 유형 중 하나로는 ‘오염자 부담 소송’이 있다. 이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건 이상이 진행 중이다. 또 다른 유형인 ‘전환 리스크 소송’은 기업 이사와 임원의 기후 리스크 관리 책임을 묻는 내용으로, 최근 폴란드에서는 석탄 화력 발전소 투자 계획과 관련해 Enea의 주주들이 전직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기후소송이 점차 다양화되고 있으며, 기존 정부 정책의 도전뿐만 아니라 공공 참여를 저지하거나,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과 관련된 소송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기후변화 소송이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국제적인 기후 정책과 기업의 거버넌스 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하며, 앞으로도 소송은 더 전략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고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르웨이, 해상유전에 대한 정부 승인 무효화 판결
2024년 1월, 오슬로 지방법원은 그린피스 노르딕(Greenpeace Nordic)과 청년 환경단체 ‘Natur og Ungdom’(Young Friends of the Earth Norway)이 노르웨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3개 해상유전(Breidablikk, Yggdrasil, Tyrving)에 대한 정부 승인을 무효화했다.
법원은 “다운스트림(연소 과정)에서 발생할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위법 사유로 들었고, EU의 프로젝트 지침(Project Directive) 및 노르웨이 헌법, 아동권리협약까지 근거로 삼아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부 측은 즉시 항소했으며, 2024년 가을 항소심에서 일부 허가가 다시 유효 판결을 받았다. 2025년 대법원 최종 심리 및 유럽 사법 기구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 석유 개발에 탄소배출을 환경영향평가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
2024년 6월 영국 대법원은 ‘사라 핀치(Sarah Finch)’가 서리(Surrey) 지역 석유 개발 허가에 대해 제기한 소송에서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다운스트림 배출)을 환경영향평가에 포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에 대해 영국의 환경단체 ‘프렌즈 오브 디 어스(Friends of the Earth)’ 측은 “영국 내 신규 석유·가스 프로젝트를 억제할 물꼬를 텄다”라며 환영했다. 정부와 석유기업들은 본 판결의 적용 범위를 놓고 여전히 법리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의 ‘그린워싱’ 광고 금지
2024년 3월, 암스테르담 지방법원은 네덜란드 국적 항공사 KLM이 자사의 지속가능성 전략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홍보해 소비자를 오도하고 있다고 판단, 광고 일부를 금지했다.
소송을 제기한 단체는 네덜란드 기후환경단체 '화석연료해방 네덜란드(Fossielvrij NL)와 법률 대리인 클라이언트어스(ClientEarth)로, 이들은 KLM의 탄소상쇄 프로그램이나 지속가능항공연료(SAF) 홍보가 실질적 감축 계획과 거리가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원 판결 이후 KLM은 광고 문구를 수정했지만, 2025년 현재까지도 EU 내 ‘그린워싱’ 관련 규제가 계속 강화되고 있어 항공업계 전반에 파장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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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권재판소, 스위스 정부의 기후정책 사생활 침해 승소
‘KlimaSeniorinnen’이라 불리는 스위스 고령 여성단체가 제소해, 2024년 4월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스위스 정부의 기후정책 미비가 유럽인권조약 제8조(사생활·가정생활 보호권)를 침해한다고 봤다.
이는 국제 인권법 체계에서 기후보호 의무를 인정한 첫 판결이자,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무책임이 곧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공식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스위스 정부는 판결 후 추가 대책을 내놓지 않았고, 2025년 현재까지도 “판결 이행”을 둘러싼 내부·외부 갈등이 지속 중이다.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해양 오염시키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 인정
2024년 5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가 소도서국들의 요청으로 낸 자문 의견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은 해양오염에 해당하며,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국가들은 이를 줄일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비록 자문 의견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나, 해양온난화와 산성화가 심각해지는 현 시점에서 국가 차원의 실질적 감축 노력이 미흡하다면 국제해양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2025년 들어 소도서국들은 이 의견을 근거로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탄소 감축 주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하와이, 청소년 기후소송으로 '기후권' 훼손 주장 받아들여
하와이 청년 13명이 2022년에 낸 소송(Navahine v. Hawaii Department of Transportation)은 2024년 6월 합의로 마무리됐다. 원고 측은 “하와이 주 교통부의 배출 저감 노력이 헌법상 보호되는 안정적 기후권을 훼손한다”고 주장했고, 정부는 이를 인정하며 교통부문 온실가스 배출을 20년 내 대폭 감축하는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다. 올해 2025년 초까지 세부 이행 계획안이 발표되지 않아 일부 마찰이 있지만, 청소년 소송이 정책 전환을 직접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감축목표 약화로 인한 청소년 권리 침해 인정
온타리오 주정부가 2030년 감축 목표를 약화한 것이 청소년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고 제기된 소송에서, 2024년 10월 항소법원은 청소년 측 주장을 일부 수용하고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하급심의 기각 결정을 뒤집었다. 직접적인 정책 무효 판결까지 나아가진 않았지만, 2025년 현재 온타리오 주의회와 정부가 기후목표를 재조정하기 위해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코저스티스(Ecojustice) 등 단체들은 “청소년의 권리가 실질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라고 반응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신규 석탄발전 1500MW 불허
2024년 12월 4일, 북하우텡 고등법원은 정부가 발표한 석탄발전 1500MW 증설 계획이 헌법상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Cancel Coal’ 캠페인을 펼치는 아프리카 클라이밋 얼라이언스(African Climate Alliance) 등 청년·시민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어린이와 미래 세대 권리에 미치는 해악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하며 정부 계획을 전면 취소시켰다. 2025년 초 현재, 남아공 정부가 이 판결을 이행할지, 항소할지가 여전히 논란 거리다.
미국 몬태나주, ‘Held v. State of Montana’ 대법원까지 승소 확정
2023년 8월 1심에서 청소년들이 이겼던 이 사건은, 2024년 12월 18일 몬태나주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지지하면서 사실상 최종 승소로 굳어졌다. 주헌법상의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기후안정성까지 포함한다는 해석이 명문화됐고, 정부가 환경영향평가에서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조항은 위헌 판정이 확정됐다. 2025년 들어서도 미국 내 다른 주나 연방 차원에서 유사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청년 vs 일본 전력회사
일본은 헌법재판소 제도가 없기 때문에,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위헌소송보다는 전력회사나 화석연료 기업을 직접 피고로 삼는 전략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으로, 환경 NGO인 키코 네트워크(Kiko Network)가 지원하고 있는 2024년 8월 나고야재판소 소송을 들 수 있다. 해당 사건은 15세에서 26세 사이의 청년 16명이 도쿄전력을 비롯한 10개 전력회사를 상대로 제기했다. 원고 측 주장은 “이들 기업이 기후위기 시대에도 화석연료 의존 체계를 고수해, 파리협정 목표와 동떨어진 배출량을 유지함으로써 청년들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한 아사오카 미에 변호사는 2024년 한국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국가가 장기 감축 계획을 소홀히 해 미래 세대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 사실을 주목하며, 일본 전력회사들이 정부의 ‘2050 탄소중립’ 공언만 믿고 실제로는 구체적인 이행안을 마련하지 않는 점을 법정에서 부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소송은 일본 내 기후소송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기업이 파리협정 이상의 감축 목표와 이행책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대만, 어린이와 농민 vs 정부
2024년 2월, 대만 정부의 기후정책에 대해 헌법적 판단을 구하는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 헌법소원에는 어린이, 농민, 어부, 원주민 등 시민 13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원고는 대만 정부가 새로 제정한 《기후변화대응법》(氣候變遷因應法, CCRA)이 2030년 중기 감축 목표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환경부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한 점을 문제 삼았다. 원고 측은 이를 근거로 “정부가 ‘미래 세대와 취약계층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고, 국제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감축 의지로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면 헌법상 생존권·재산권·작업권이 침해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 헌법재판소가 2024년 8월 판결에서 “장기 로드맵 부재로 인해 미래 세대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있다”라고 본 사실을 적극 인용하며, 대만 역시 비슷한 헌법적 논리에 따라 정부가 구체적인 감축목표(예: 2030년 이후 중장기 계획)와 이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만의 소송 대리인단은 한국과 대만 모두 ‘헌법재판소 제도를 갖추고 있고, 산업구조 역시 탈탄소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공통점을 지적한다. 대만 정부가 이번 소송을 계기로 재생에너지 확대 및 탄소예산 도입 등 보다 실질적인 감축 정책을 도입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정부가 아직 명확한 후속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소송이 헌법 해석과 정부 정책 변화를 어디까지 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자수첩 | 글로벌 기후소송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 https://www.lse.ac.uk/granthaminstitute
기후변화와 환경정책 전반에 걸친 보고서와 정책 브리핑 자료를 발행하며, 매해 기후소송 관련 트렌드를 정리한 분석보고서도 꾸준히 내놓는다. 각국의 기후·환경 정책 흐름은 물론, 이를 둘러싼 소송 동향까지 폭넓게 파악할 수 있다. 영국·유럽 중심이지만 해외 사례도 다수 포괄한다.
컬럼비아 대학 사빈 기후변화법센터 https://climatecasechart.com
‘기후변화 소송 데이터베이스(Climate Change Litigation Databases)’를 운영해 세계 각국의 소송 사례를 연도별·쟁점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특정 국가나 기간을 지정해 소송 정보를 검색할 수 있으며, 소장·판결문 등 원문 자료로 이어지는 링크도 종종 제공된다. 연구 논문이나 기사 작성 시 직접 인용하기에 유용하다.
국내외 기후소송 및 정책 동향을 한국어로 정리·분석해 발행하고,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현황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소송 사례나 정부 정책을 다루는 자료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 해외 사례를 알기 어렵거나 영어 자료 접근이 힘들다면 이곳이 유용하다.
Climate in the Courts https://www.climateinthecourts.com
기후소송에 특화된 독립 온라인미디어로, 기후소송에 대한 소식과 분석을 공유한다. 최신 판례 동향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각 사건의 진행 단계와 쟁점 정리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소송 관계자 인터뷰 등 생생한 현장 자료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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