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기자 2024-04-11
2023년 12월 기준, 약 30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뜬장에 갇혀 산다. 180㎝의 성인 남성이 들어가기에도 작은 녹슨 뜬장 안에서 음식물 쓰레기와 개사료를 먹으며 하루 종일 철창에 머리를 부딪힌다. 이마와 발바닥의 상처는 곪아 진물 천지다. 그렇게 30년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 인간은 이들을 '사육곰'이라고 부른다. 사육곰들의 삶을 돌려주고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육곰의 행복을 위해, 2018년부터 시작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유서 깊은 곰 학살의 나라, 대한민국
1970년대 후반 일본, 동남아, 중국 등지에서 웅담 채취를 위해 수많은 반달가슴곰이 수입되었다. 1981년 정부는 농가 수입 증대를 위해 곰사육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마지막으로 밀렵된 곰의 사체에서 얻은 웅담을 정부가 직접 경매에 부치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1993년, 한국 정부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했다. 곰과 웅담의 상업적 수입이 3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금지되었다. 문제는 이미 사육되고 있는 곰들이었다. 웅담 채취만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환경을 갖출 이유가 없었다. 중성화 수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6년, 사육곰들은 좁은 뜬장 안에서 폭발적으로 번식했고 전국에 1300여 마리가 넘는 곰이 갇혀 있게 되었다.
웅담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채취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돌면서 사람들은 곰의 목을 매달거나 근육이완제를 사용해 곰의 웅담을 꺼냈다. 정부는 도살 방법에 대한 기준을 두지 않았고 관리, 감독조차 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국제보호종인 반달곰을 방치, 사육, 도살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포함한 국내 시민단체들이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2023년에 되서야 곰사육을 금지하는 ‘야생생물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사육곰을 어떻게 보호할 지에 대한 대책은 아직도 논의 중이다.
우리가 반달가슴곰에 대해 모르는 것들
사람들은 반달가슴곰이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는다고 알고 있다. 국제적으로 모든 반달가슴곰이 멸종위기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것은 한반도에 서식하는 '우수리 아종'뿐이다. 같은 종임에도 서식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계급이 나뉜 꼴이다. 곰은 유전학적으로도 해부학적으로도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완전한 야생동물이다. 자연환경에서 야생동물은 수많은 자극을 받으며 삶의 주체로서 살아간다.
뜬장 속의 곰은 다르다. 어떠한 자극도 없어 철창에 머리를 박는 것처럼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이걸 정형행동이라 부른다. 곰은 넓은 발바닥을 가진 동물이다. 인간처럼 발바닥을 땅에 딛는다. 뜬장의 철창을 딛으면 발바닥이 갈라진다. 근친 교배와 이종 교배로 기형으로 태어난 사육곰도 많다. 그러나 농장주 개인은 사육곰을 치료할 수도 없다. 곰이 있는 뜬장에 맨몸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뜬장의 다양한 정의 중에는 청소를 하지 않는 다는 것도 있다. 동물 우리를 치우려면 동물을 빼고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데, 사육곰이 뜬장에서 나올 때는 도살당할 때뿐이다. 그래서 뜬장이다. 청소할 필요도 없이 바닥으로 빠진 배설물만 치우면 된다.
누군가는 사육곰을 야생에 풀어주면 되지 않냐고 묻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불가능하다. 사육곰은 평생을 뜬장에서 살았기 때문에 야생에서 생존할 어떠한 능력도 습득하지 못했다. 주어진 음식물 쓰레기와 개사료만을 먹어온 곰을 야생에 풀어주는 것은 유기나 다름없다. 설령 사육곰이 야생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산이 아닌 민가로 내려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사육곰은 지리산 반달가슴곰과 아종이 달라 유전적 교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에 없는 것, ‘생츄어리’
현재 사육곰을 구조할 방법은 매입뿐이다. 법적으로 사육곰은 농장주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18마리의 사육곰을 구조했고 현재 13마리의 곰을 보호하고 있다. 구조된 곰들은 행동 풍부화를 위한 자극을 제공받고, 돌봄과 치료를 통해 조금 더 나은 삶을 영위 중이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생츄어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생츄어리(Sanctuary)란 ‘동물에게 어떤 쓰임도 부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다가 늙어 죽을 수 있도록 평생의 보호와 관리를 제공하는 시설’을 말한다. 베트남, 캄보디아, 미국 등 세계 곳곳에는 사육곰을 위한 생츄어리가 있지만, 대한민국에는 없다. 백 마리도 되지 않지만 구조된 곰 중 많은 수가 미국의 생츄어리로 보내졌다.
뜬장을 탈출한 곰이 쫓기다 죽임당하지 않도록, 남은 삶 동안 흙과 풀을 밟으며 자유롭게 뛸 수 있도록 생츄어리를 만들자. 정부는 곰사육 종식을 선언했고 곰 사육장은 2026년까지 유예 단계를 갖고 있다. 2026년 이후, 남아있는 곰들이 더 나은 삶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수많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 시민 사회는 아직 동물에게 복지를 제공할 주체가 부재다. 실제로 해외의 생츄어리들은 대부분 민간에서 운영한다. 시민 사회의 관심이 사육곰들의 삶을 결정한다.
‘귀엽지 않아서, 희귀하지 않아서’
유일이, 미자르, 알코르, 보금이, 유식이, 우투리, 봄바, 편안이, 라미, 푸실이, 어푸, 미남, 미소, 칠성, 칠롱, 소요, 덕이, 주영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구조한 18마리 사육곰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떤 곰은 너무 귀여워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어떤 곰은 토종이라는 이유로 복원되어 평생을 야생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육곰들을 그 자체의 개체로 바라보고 그들에게 이름과 새로운 삶을 부여했다. 더 많은 사육곰들이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어주길 바란다.
후원 문의: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https://projectmoonbear.org/
留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