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기자 2024-04-25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에 둘러싸인 인공호수 시화호는 1994년 1월, 첫 완공 당시부터 '죽음의 호수'가 되었다. 30년이 되었다. 시화호는 본래 수질의 99%를 회복했고 시화지구는 관광, 생태, 문화, 환경교육의 핵심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환경은 전 지구적 문제이고 전국적 문제이다. 시화호의 30년의 역사를 통해 인간이 파괴하고 다시 인간이 복원하는 긴 시간을 들여다보면서, 환경 갈등이 있는 타 지역에 시화호의 역사가 전달되기를 바란다.
죽음의 호수
1977년, 늘어나는 수도권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경기도 서쪽 군자만 부근은 반월 특수구역으로 지정되고, 간척 사업이 진행되었다. 간척사업의 목적은 토지의 확장과 동시에 농지와 공업단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4년 1월 24일, 시화방조제가 완공되었다. 곧이어 시화호는 ‘죽음의 호수’가 되었다. 시화지구의 환경오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말 그대로 그 어떤 생명조차 시화호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죽은 조개 껍질이 땅으로 착각될 만큼 쌓여갔다. 시화지구 인근의 주민들은 이곳을 조개무덤이라 불렀다. 시화호 내에 유입되는 물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고, 공단의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담수화 과정에서 유입된 대부분의 물은 공단의 오폐수였다. 반월과 시화의 악취, 시화호는 그야말로 죽음의 호수였다.
시민들의 연대가 시작되다
1994년, 안산YMCA에서 ‘시화담수호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시화호의 검은 물과 그 위로 죽어가는 생명을 더는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일어섰다. 1996년 4월 25일, 시화호 수질오염 문제가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다. 전 국민의 이목이 시화호에 집중되었다. 환경부는 10년간 약 4500억원을 투자해 시화호 수질 개선을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수자원 공사는 오염된 담수호 물을 바깥으로 방류했고 주민과의 갈등이 불거졌다. 죽음의 호수, 시화호는 한국 환경 파괴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지역사회, 시민단체, 한국해양연구소(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연구원들, 인하대학교 등이 시화호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방조제를 철거하거나 담수화를 포기하라는 주장과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라는 주장이었다. 관련 정책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주장이 공론화되었다. 그러나 단위 단체 각각의 노력으로는 문제 해결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혼란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해결의 열쇠는 협력에 있었다. 그리고 시흥, 안산, 화성의 시민단체들이 시화호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가 시작되었다.
시민들의 거대 연대로 시화호 담수화가 철회되다
1999년 3월 ‘희망의 시화호 만들기 화성·시흥·안산 시민연대회의’가 조직되었다. 세 지역의 11개 단체가 연대했다. 이들은 곧바로 새로운 시화호 개발안을 구상했다. 본래 시화지구 개발 목적은 도시 공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시민들은 환경과 인간의 공생을 제안했다. 대한민국 환경 운동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었다. 난개발과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과 지역, 단체와 단체 간의 거대 연대가 만들어지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은 시화호 오염 문제 해결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단 것을 의미한다. 연대회의에서 제시한 ‘시화호 생태공원 조성을 위한 시민 계획안’에는 조력발전소 건설과 친환경 단지 조성이 포함되어 있었고, 수질 개선을 우선으로 하여 지역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원칙이 서있었다. 2000년 12월, 드디어 정부는 공식적으로 시화호 담수화를 포기했다. 시화호를 해수호로 관리하기로 확정된 것이다. 시화호는 해양수산부가 관리하는 특별 관리 해역이 되었다. 시화호 문제 해결의 일등 공신은 시민들의 연대였다.
민관합동 거버넌스를 실현하다
시화호에 해수가 유통되며 조금씩 수질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는 시화호 개발 초기의 방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화호종합이용계획안’을 발표했다. 연대회의와 지역 시민들은 발표된 계획안을 맹렬히 비판했고, 주요 언론 또한 시민들의 입장을 지지했다. 대대적인 비판에 직면한 정부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연대회의는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 수용’,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진행하는 토론과 합의 도출’, ‘논의 사항의 전면 공개’를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모두 수렴했다. 이에 따라 2004년 1월, ‘민관협의체 시화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최초로 설립되었다. 협의회의 분과위원장은 시민단체가 추천한 시민이, 각 분과의 간사는 개발 주체인 건설교통부나 한국수자원공사의 직원이 맡았다. 민관합동 거버넌스가 실현된 것이다. 민관 파트너십으로 시화호의 수질오염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환경 개선을 이루어낸다는 것은 타 지역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시화호에는 철새들이 돌아오고 있고, 물고기들이 돌아왔다. 그렇게 시화호는 살아있는 환경 교과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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