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미 총괄 2024-04-22
지난 2024년 4월 15일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는 두 부처의 전략적 협업을 통해 공동으로 추진할 5개 사업(이하 ‘5대 협업과제’)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국토개발과 환경보전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서로 조화시키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과제들로 선정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보도자료의 제목은 국토의 경쟁력과 환경가치를 높인다.'이다. 5대 협업과제는 ①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신속 조성 ② 국토종합계획과 국가환경계획의 통합관리 ③ 개발제한구역 핵심 생태축 복원 ④ 지속가능한 해안권 개발과 생태관광 연계 운영 ⑤ 시화호 발전 전략 마스터플랜 수립 등이다. 국토부는 시화호의 마스터플랜에 대해 “환경오염 문제를 극복했으니, 이를 넘어서는 ‘시화호 2.0’ 전략을 짜려는 것”이라며 “두 부처가 힘을 합쳐 올해 말까지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였던 시화호의 재등장
경기 시흥·안산·화성시 등 3개 지방자치단체에 둘러싸인 시화호는 면적 56.5㎢(탄도호 7.6㎢ 포함), 저수용량 3억3200만톤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호수다. 이를 위해 건설된 12.7km 길이의 방조제로 인해 호수 북측에 11.87㎢, 남측에 97.09㎢의 간척지가 만들어졌다. 시화호는 그동안 실패한 국토개발 사업의 대명사였다. 당초 방조제를 건설해 조성된 인공호를 담수화해 주변 지역에 공업용수와 농업용수 등을 공급할 목적이었으나 1994년 조성 직후 ‘죽음의 호수’로 변했다. 정부는 2001년 담수화 계획을 포기하고, 오염수 정화에 1조원이 훌쩍 넘는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다시 시화호 일대에 주거와 산업, 관광·레저, 환경이 어우러진 융복합 거점도시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거론되며 정부가 언급조차 꺼려했던 시화호를 거론한 것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 계획에는 대규모 신도시 조성이 포함돼 있어 수도권 부동산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으로 시화호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시화지구 개발사업은 지역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업체를 위한 것이었다
시화호 조성사업은 서울 여의도의 58배 크기의 간척지를 확보할 수 있다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수질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최대 정책 실패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화호가 조성된 지역(시화지구)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복잡한 굴곡을 이루고, 썰물 때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서해안 바닷가 어촌마을이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2018년 발행한 보고서(‘시화호: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따르면 군자만으로 불리던 이곳은 조선 시대에 궁중 음식을 공급하던 임금을 위한 어장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등을 거치며 잊혀졌던 시화지구는 1970년대에 갑자기 주목받는다. 당시 농림부는 1975년부터 서남해안을 간척해 농지 등을 확보할 목적으로 ‘적지조사’를 실시한 뒤 시화지구를 우선 사업지로 선정한다. 1978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은 중동에 나가 있는 대형 건설장비들을 서해안 일대에 대대적으로 투입해 농경지, 축산단지, 농업단지 등을 일구는 국토 확장 사업을 추진하라고 지시하고, 1984년(https://policy.nl.go.kr/search/searchDetail.do?rec_key=SH1_UMO20140077471) 농어진흥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업 목적 간척사업을 위해 시화지구의 공유수면 매립을 추진했다. 당시 건설부(현 국토교통부)가 ‘해안매립 장기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같은 해 11월 사업에 제동을 걸지만 한 달 뒤인 1984년 12월 건설부는 시화지구 개발사업 추진 본격화를 선언한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중동 건설경기 침체가 있다. 1983년까지만 해도 100억 달러가 넘던 해외건설 수주액이 1984년부터 급락하고 국내 건설업체들의 돈줄이었던 중동 경제가 무너지면서 경영난에 시달리던 건설업계가 지원 요청을 한 것이다. 정부는 시화지구 개발에 눈을 돌리고 사업은 순식간에 처리된다. 사업 본격화 선언 다음 해인 1985년 8월 정부는 시화지구 개발을 우선 추진계획으로 확정하고, 1986년 7월엔 시행 방안을 확정한다.
그리고 바로 1987년 6월 바다를 막는 방조제 공사가 시작되며, 1994년 1월 완공된다. 정부는 시화지구 개발사업이 ‘동양 최대 간척사업’이고 ‘국토 확장의 꿈’을 실현하는 최고의 사업이라고 선전했다. 169㎢에 달하는 국토면적이 늘어나고 수도권 공장 1600여개를 유치해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고 고용 증대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방조제 축조로 매년 발생하는 약 1억8000만㎢의 담수를 이용해 인근 지역 91.2㎢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대단위 기계화 영농단지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보태졌다. 방조제를 활용해 아름다운 서해안 지역을 관광명소로 바꿔 낙후 지역의 경제와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덧붙여졌다. 인접한 안산시와 연계개발을 통해 1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단 배후도시를 조성해 수도권 도시 인구과밀 해소에도 기여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개발사업이었다.
방조제 건설비 6천억, 다시 되살리는 비용 1조2천억원
방파제 조성이 끝나자마자 시화호의 수질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호숫물을 바다로 흘려보내기로 했지만 너무 많은 양의 오염물질이 유입되면서 방조제에 갇힌 호수물이 썩어 어패류와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죽음의 호수’가 된다. 죽은 조개들이 쌓여 조개무덤이 되고,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당황한 정부는 수질오염을 낮출 목적으로 1996년 4월 시화호 물 4000만톤을 바다로 흘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검은 물이 인근 지역 바다로 흘러드는 충격적 장면이 나오고 4월 25일 SBS가 이를 단독보도하면서 시화호는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감사원은 그해 11월 관계자 14명을 징계하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리고 1997년 연말, 대통령선거에서 시화호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대선에서 승리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듬해 1월 꾸려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시화호 문제를 경부고속철, 새만금사업 등과 함께 3대 부실사업으로 규정한다. 3년 뒤인 2001년 2월, 시화호 담수화 계획 완전 백지화를 선언한다.
시화호를 담수호로 만들어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계획은 포기하고, 해수를 유통시키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후 해수가 드나들면서 시화호는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현재는 생태계가 99% 복원됐다. 물고기들과 철새들도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투입된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민관기구인 ‘시화호관리위원회’가 2007년 작성한 ‘2단계 시화호 종합계획’에 따르면 1996~2011년까지 시화호 수질개선사업에 투입될 예산은 모두 1조2488억원이고, 2006년까지 5301억원이 사용됐다. 이후에도 시화호 관리에 투입되는 비용은 계속 늘어 2017년까지 1조5000억원을 초과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방조제 건설비가 6200억원이었으므로 복원에 들어간 비용은 2.5배가 된다.
정부의 마스터플랜, 시흥시, 화성시, 안산시의 미래 계획이 시화호에 몰려 있어
시화방조제에 조성된 조력발전소는 발전시설용량 25만4000Kw로 세계 최대 규모다. 시화호를 담수호에서 해수호로 전환한 뒤 방조제를 통과하는 해수의 조수간만차를 활용해 전기에너지를 얻고자 만들었다. 정부의 ‘시화호 발전 마스터플랜’은 방조제 건설 이후 육지가 된 지역의 신도시와 산단의 연계성과 자족성을 강화한다는 게 핵심이다. 현재 이들 지역에는 안산시화신도시, 반월시화국가산단, 시화 멀티테크노밸리(MTV), 송산그린시티가 있다. 정부의 판단에는 시화호 주변에 조성된 안산갈대습지, 시화호조력발전소, 대부도 마리나 시설, 화성 지질공원 등과 같은 다양한 관광자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마스터플랜에는 시화호를 둘러씬 시흥·화성·안산시 등이 추진하는 레저관광 사업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지자체는 각기 해양레저산업과 생태문화관광 산업의 메카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이미 내놓고 있다.
이 중 시흥시은 지난 2024년 2월 ‘2024 시호화의 해’를 선포하고, 50여개의 연중행사 계획을 발표했다. 시화호 거북섬 일대 32만여㎡에 2조6000여억원을 투입해 해양 레저관광 복합단지를 건설할 방침이다. 거북섬부터 서울대 시흥캠퍼스~오이도항~월곶항으로 이어지는 15km 구간에 레저와 관광, 의료, 첨단산업 등이 들어서는 한국형 골든 코스트를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화성시는 시화호 남단 송산면 일대 55.6㎢에 2030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는 송산그린시티 개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곳에 계획 인구 15만명을 수용할 5.7㎢ 규모의 택지와 총 사업비 4조6000억원 규모의 ‘화성 국제테마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다. 2019년 테마파크 사업자로 선정된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2월 공개한 마스터플랜을 통해 2029년 1차 개장, 2034년 완전 개장 계획을 밝혔다.
안산시는 시화호를 친환경적 친수공간으로 조성해 해양관광레저 거점으로 육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민간 자본을 유치해 시화호 방조제와 붙은 방아머리 일대에 대규모 마리나항만을 조성하는 게 핵심인데, 오는 6월 공모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또 시화호에 국내 최초의 순수 전기 유람선도 띄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18억원을 투입해 2층 구조에 길이 19m, 폭 6.5m, 탑승인원 40명, 총 중량 40톤 규모의 유람선을 이미 제작했다. 이 배는 시화호 일대가 개발되기 전 사리포구가 있던 안산천 하구에서 출발해 반달섬을 거쳐 시화호 방조제 안쪽 대부도 옛 방아머리선착장까지 이어지는 편도 21㎞의 뱃길로 운행될 예정이다.
실패를 기억하면서 시민과의 소통, 지구 생태와의 공존 공생을 놓치지 말아야
최대 국책사업의 실패 사례였던 시화호는 30년이라는 시간과 천문학적 비용을 통해 기적처럼 부활해 ‘생태계의 보고’, ‘환경 복원의 성공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시화호의 30년을 지켜온 사람들은 시민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시화호는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정부까지 나서서 기왕에 시화호의 마스터플랜이 나온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계획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획이 실현되는 전 과정에 실패의 기억을 상기해야 할 것이며, 시민과의 소통, 지구 생태와의 공생 공존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한편 2023년 2월 시화호를 중심으로 개발과 보전이 이뤄지고 있는 3개 자치단체(시흥ㆍ안산ㆍ화성)는 한국수자원공사와 '2024 시화호의 날 '을 선포식을 했다. 임병택 시흥시장은 “시화호는 시화호 권역뿐 아니라 국가 브랜드로 확장될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 곳인 만큼, 시화호 의제를 국가적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물론, ‘시화호 세계화’를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다 함께 힘을 모으자”라고 강조했다. 시흥시는 이번 선포식을 기점으로, 기념사업 추진을 본격화하고 각 기관과 지속적인 공조 체계를 구축해 시화호를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브랜드화하는 가치 확장에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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