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4 황희정 기자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다
플라스틱은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소재로 가볍고, 저렴하고, 다재다능하다. 플라스틱(plastic)은 그리스어로 ‘쉽게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다’라는 의미의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따온 말이다.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플라스틱은 열과 압력을 가하면 다양한 모양으로 변형이 가능한 합성수지이다. 19세기 후반, 빌리아드(포켓볼)이나 피아노 키보드와 같은 고급 제품은 주로 코끼리 상아로 제작되었다. 상아는 내구성이 뛰어나고 미적 품질이 뛰어나 인기가 많았지만, 수요가 급증하면서 코끼리를 남획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당시 빌리아드의 유행으로 매년 수천 마리의 코끼리가 상아를 위해 사냥당했다. 1863년 뉴욕의 빌리아드 제조 회사는 상아를 대체할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1만달러의 상금을 내걸었다. 이 상금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최초의 플라스틱 발견을 촉진했다고 할 수 있다.
석유화학 기술이 가져온 플라스틱 산업
1862년 영국의 알렉산더 파크스(Alexander Parkes)는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인 파크신(Parkesine)을 개발했다. 이는 셀룰로이드의 초기 형태로, 식물 세포벽에서 추출한 천연 고분자 물질인 셀룰로스에 질산과 알코올을 혼합해 만든 것이다. 파크신은 단단하고 탄성이 있어 성형에 유리했으나 가격이 비싸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1907년 미국의 벨기에 출신 화학자 레오 베이클랜드(Leo Baekeland)는 인류 역사상 완전 합성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Bakelite)를 발명했다. 베이클랜드는 석탄 유래 물질인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고온 고압 상태에서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이 물질을 만들었다. 이 재료는 단단하고 내열성이 뛰어나 산업과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비전도성이라는 장점으로 전기 절연체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는 플라스틱이 금속과 천연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20세기 중반, 석유화학 기술의 발전은 플라스틱 산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플라스틱의 주원료인 폴리머(polymer)는 주로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얻어진다. 석유화학 산업은 플라스틱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군수용품에서 생활용품까지 스며든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군수 물자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금속과 목재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항공기 부품, 군복 버튼, 방수 천, 포장재 등에 플라스틱이 사용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 플라스틱 생산 기술은 소비재 시장으로 확장되었다. 1950년대부터는 포장 용기, 비닐봉투, 일회용 컵, 가전제품, 의류와 같은 일상용품으로 확대되며 플라스틱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현대 플라스틱은 성질과 용도가 더욱 다양화되었다. 열가소성 플라스틱(가열하면 형태를 바꿀 수 있는 플라스틱)과 열경화성 플라스틱(가열 후 고체화되어 형태 변경이 불가능한 플라스틱)이 개발되었으며, 각종 첨가제를 통해 내열성, 내화학성 등을 강화한 플라스틱이 등장했다. 플라스틱은 현대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꾼 핵심 소재이다. 의료기기,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플라스틱은 없어서는 안 될 소재로 자리 잡았다.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플라스틱 덕분에 소비재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이는 현대 소비사회의 기초를 형성했다. 플라스틱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은 곳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입는 옷, 바르는 화장품, 먹는 음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WWF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매주 약 5g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다고 한다.
획기적인 발명품에서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1950년대 200만톤에 불과하던 플라스틱 생산량은 2021년 약 3억6700만톤으로 증가했다. UNEP에 따르면, 2040년에는 현재의 2배에 달하는 7억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될 것으로 예측된다. 플라스틱 생산의 주요 원료는 석유와 천연가스로, 이는 석유 소비량의 약 8%를 차지한다. 플라스틱 생산은 연간 약 8억500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이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2%에 해당한다. 특히 플라스틱의 소각 과정에서 다량의 유독성 물질과 온실가스가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플라스틱은 분해되면서 유해 화학물질을 방출해 인간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은 매립지와 바다에 쌓이고, 매년 약 800만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된다. 지금까지 각국 정부와 기업이 내놓은 플라스틱 감축 약속을 모두 지킨다고 해도 연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의 양은 고작 7% 줄어드는 데 그칠 거라는 어두운 예측도 나온 바 있다.
플라스틱의 미래는 어디로?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기 위해 시작된 플라스틱은 오늘날 새로운 대체품을 요구받고 있다. 기존의 플라스틱이 초래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오 플라스틱과 같은 친환경 소재가 개발되고 있다. 바이오 플라스틱 중 하나인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옥수수, 사탕수수 등 천연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분해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친환경 플라스틱이 만능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생산 과정, 분해 메커니즘, 비용 등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의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자연 환경에서 분해되지 않고, 고온과 고습 같은 특정 조건이 갖춰진 산업적 퇴비화 시설에서만 분해되는 문제가 있다. 일부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분해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 조각을 남길 수도 있다. 또 생분해성이라는 라벨이 소비자들에게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죄책감을 줄이고 과소비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바이오 플라스틱의 원료 생산이 오히려 식량 안보 문제를 악화하고 탄소 발자국을 늘릴 수도 있다.
전 과정에서의 시스템적 변화가 요구된다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바이오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재활용 기술의 발전, 플라스틱 순환 경제 구축,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대체 소재 개발이 그 예이다. 예를 들어 폐기물을 다시 원료로 전환하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은 기존의 기계적 재활용의 한계를 보완하며, 반복적인 사용이 어려웠던 플라스틱의 재활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버섯 균사체나 해조류에서 추출한 자연 유래 소재를 활용한 혁신적인 플라스틱 대체품들도 주목받고 있다. 궁극적으로 플라스틱의 미래는 단순히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과 소비,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의 시스템적 변화에 달려 있다. 개인의 인식 변화와 기업, 정부의 협력이 모두 필요하다. 플라스틱 의존도를 줄이고 순환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우리 모두의 노력이 요구되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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