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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의 생태포럼 | 산불이 만드는 숲(중)

 

2025-1-3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산불이 지나간 숲은 산불 이전의 숲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합니다. 불에 탄 나무와 풀은 더 이상 숲의 바닥을 지켜 줄 수 없습니다. 숲의 바닥은 내리쬐는 태양과 쏟아지는 비, 세찬 바람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검은 재로 뒤덮인 숲의 바닥에 햇빛이 쏟아지면 빛을 흡수한 땅이 뜨겁게 달궈집니다. 이전의 축축하고 시원하던 숲의 바닥과는 전혀 다른 생태계입니다. 화학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산불에 의해 토양의 유기물이 연소됨으로써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됩니다. 기후변화는 가속화되고 숲은 더 산불에 취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식물이 필요로 하는 미량원소들 중 일부는 토양에 남아 생태계의 재생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미량원소들은 토양에 머물기 어려워집니다. 미량원소들은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 때마다 흙과 함께 쓸려 나갑니다. 숲의 토양은 대체로 산불 이전보다 척박해집니다. 숲의 바닥에서 살아가던 작은 쥐나 두더지 같은 동물들은 물론이고 딱정벌레, 지네, 노래기, 톡토기 등 토양소동물 또한 뜨거워진 토양에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작은 동물들의 서식지와 먹이를 제공해 주던 낙엽층 또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산불이 지나간 이후 많은 나무들이 죽고 일부 나무들만 살아남게 되므로 숲의 밀도가 낮아지고, 식물의 다양성 또한 낮아집니다. 초식동물과 곤충들은 식량과 은신처를 잃어버리고, 육식동물들은 먹이사슬이 끊어집니다.

산불이 지나간 숲은 토양의 온도와 습도, 바람의 세기, 숲의 밀도 등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산불은 숲을 민둥산으로 만들고, 천이(遷移, succession)의 시간표를 과거로 되돌립니다. 하지만 산불이 지나간 숲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천이가 시작됩니다. 이전에 생물군집이 없던 불모지에서 토양의 형성과 함께 천천히 이루어지는 천이를 1차천이라고 합니다. 산불 피해지처럼 이미 생물에 의해 점유된 적이 있던 공간에 교란이 발생한 이후 일어나는 천이를 2차천이라고 합니다. 보통 2차천이는 1차천이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됩니다. 산불이 지나간 뒤 다시 만들어지는 숲은 2차림(secondary forest)이라고 부릅니다. 2차림은 숲의 생태계가 회복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2차림의 초기에는 풀과 키 작은 나무, 키 큰 나무들 중에서 빛을 좋아하고 건조에 잘 견디면서 빠르게 자라는 개척종(開拓種; pioneer species)들이 먼저 자리를 잡습니다. 개척종들의 뿌리는 산불로 파괴된 토양을 다시 안정화시키고, 빗물과 바람에 의한 침식을 줄입니다. 개척종들이 떨어뜨리는 잎은 토양소동물들이 다시 숲의 바닥에 정착할 수 있는 먹이와 보금자리가 되어 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2차림은 천천히 다양성과 복잡성을 회복합니다. 산불이 난 지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소나무, 신갈나무, 아까시나무들은 2차림의 뼈대가 되어 주는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소나무와 아까시나무, 포플러류나 자작나무류처럼 생존에 많은 햇빛을 필요로 하는 양수(陽樹)들은 어두운 숲바닥에서 씨앗을 틔우기 어렵습니다. 어린 양수들이 자라기에 숲의 바닥은 빛이 모자란 생태계입니다. 하지만 산불로 키 큰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이 사라진 숲에서는 양수의 씨앗과 묘목에게도 기회가 주어집니다. 양수들은 척박한 토양을 견디며 빠르게 자라 비어 있는 숲의 하늘을 채웁니다. 다시 숲의 바닥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고, 축축해진 숲의 바닥에서는 숲의 뼈대가 될 졸참나무나 서어나무류와 같은 천이후기종, 극상종(極相種; climax species)들이 자리 잡을 준비를 합니다. 북미에서 자라는 방크스소나무는 산불이 발생한 후 뜨거운 열에 의해 솔방울이 열리면서 씨앗을 퍼뜨립니다. 산불이 나지 않는 해의 방크스소나무는 솔방울이 열리지 않고, 씨앗도 퍼뜨리지 않습니다. 씨앗을 퍼뜨려도 그늘에서는 살 수 없으니 산불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방크스소나무 씨앗의 전략입니다.

산불이 지나간 후에 진행되는 2차천이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빠릅니다.

주기적인 산불을 통해 오랫동안 구조를 유지하는 숲도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뮤어 우즈 국립공원(Muir Woods National Monument)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대림 생태계입니다. 이 숲의 구조는 주기적인 산불을 통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숲을 이루는 세쿼이아(Sequoia sempervirens)는 높이가 100m 이상 자라고, 1000년을 넘게 살아갑니다. 이 숲의 거대한 세쿼이아 껍질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에서 불탄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쿼이아의 두꺼운 껍질은 산불의 열기로부터 살아있는 조직인 형성층을 지킵니다. 산불에서 살아남은 세쿼이아들은 더 크게 자랍니다. 세쿼이아의 씨앗은 산불이 지나간 후 경쟁이 느슨해진 숲의 바닥에서 싹을 틔웁니다. 예전에는 세쿼이아 숲을 지키기 위해 산불을 철저하게 억제했지만, 최근 들어 통제할 수 있는 규모의 의도된 산불(prescribed burning)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숲의 관리지침에 반영되었습니다. 현재는 철저하게 통제되는 산불을 통해 덩굴식생과 두껍게 쌓인 낙엽층을 제거함으로써 세쿼이아 숲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태계의 유형에 따라 산불은 단순히 파괴적인 재난이 아니라 생태계의 유지와 재생을 위한 창조적 파괴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산불로 키 큰 나무들이 사라진 숲에서는 누군가에게 재난인 산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산불이 난 숲의 하늘에 맹금류들이 날아다닙니다. 황조롱이는 느긋하게 정지비행을 하며 검게 탄 숲의 바닥을 살핍니다. 이제 나무와 풀들이 사라졌으니, 작은 동물들이 몸을 숨길 곳이 사라졌습니다. 산불이 지나간 숲에서는 맹금류들의 사냥이 한결 수월해집니다. 초원에 불이 나면 불을 피하기 위해 온갖 곤충과 양서류, 파충류가 풀숲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커다란 황새들은 들불의 경계를 따라 걸어다니다가 뛰쳐나오는 작은 동물들을 손쉽게 사냥합니다. 산불로 키 큰 나무들이 죽고 나면 숲의 바닥에는 새롭게 자라는 키 작은 나무들과 신선한 풀이 있습니다. 사슴류의 초식동물들에게 새롭게 자라는 키 작은 나무들은 반가운 먹이입니다. 산불에 의해 수세가 약해지거나 죽은 나무를 찾아 알을 낳는 딱정벌레도 있습니다. 산불로 달라지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야 다음 세대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산불 피해지 위를 황조롱이가 낮게 날며 먹이를 찾습니다.

 적응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직접 불을 지르는 종들도 있습니다. 호주의 솔개(Milvus migrans)는 불을 지르는 새로 유명합니다. 넓은 호주 벌판 어딘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솔개는 불이 난 곳으로 날아갑니다. 불 붙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는 인근 초원으로 날아가 불 붙은 가지를 떨어뜨립니다. 그리고는 불이 난 초원에서 뛰쳐나오는 먹이들을 손쉽게 사냥합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산불을 일으키는 종이라는 편견을 깬 종, 호주의 솔개입니다.

동물만 불을 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불타는 식물도 있습니다. 지중해 인근에 서식하는 시스투스(Cistus) 속은 꽃이 아름다워 정원에서 키우기도 합니다. 일부 시스투스 종은 사람의 체온보다도 낮은 온도인 섭씨 35도에서 수액에 저절로 불이 붙습니다. 미리 씨앗을 떨어뜨려 두고는 온도가 적당히 올라가면 스스로 발화함으로써 주변의 식물들을 모두 태워버립니다. 발화하기 전 미리 떨어뜨려둔 씨앗은 경쟁이 사라진 공간에서 빛과 물, 양분을 독차지하면서 자랍니다. 

스스로 불을 일으킴으로써 주변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식물, 시스투스입니다.

산불은 인류의 역사보다도 오래 이어져 온 거대한 자연의 일부입니다. 누구에게는 거대한 재난이고,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합니다. 사회에 닥쳐온 거대한 위기는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당황하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는 주위를 살피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산불에 관한 이야기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에 산불 이후의 복원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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