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김우성의 생태포럼 | 소금이 만드는 숲 

 

2024-12-19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추운 겨울입니다. 추위가 물러날 때까지 따뜻한 남쪽나라의 바닷가 숲에서 머물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울산은 한반도의 남동쪽 바닷가에 자리 잡은 도시입니다. 서울이나 수도권보다는 따뜻한 지역이지만 그래도 겨울은 춥습니다. 겨울의 바다는 차갑고 또 차갑습니다. 바닷바람은 매섭고, 파도는 거칠고, 초록색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해안선을 이루는 바위와 자갈밭, 모래사장에는 말라붙은 해조류나 메마른 풀, 덤불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해안선에서 조금 물러나면 소금기를 견디고 살아갈 수 있는 곰솔, 후박나무, 사스레피나무 등 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겨울의 바다는 여전히 삭막한 모습입니다. 

초록이 없는 겨울의 바다는 차고 삭막합니다.

따뜻한 열대지방의 바닷가 숲은 어떤 모습일까요? 열대지방에서는 바다와 맞닿은 곳까지 나무가 자랍니다. 심지어는 바닷물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도 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보통의 식물들은 바닷물에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식물은 삼투(滲透; osmosis) 현상의 원리에 따라 물을 흡수합니다. 삼투현상은 묽은 용액과 진한 용액이 반투막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져 있을 때 발생합니다. 용질이 반투막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반투막을 통과할 수 있는 용매가 농도가 더 진한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입니다. 농도가 낮은 쪽의 용매가 농도가 높은 쪽으로 이동해 용질을 희석시킴으로써 시간이 지나면 반투막 양쪽의 농도가 같아지게 됩니다.(소금물의 경우 용매는 물, 용질은 소금입니다.)

식물의 뿌리 털에서 일어나는 삼투현상을 들여다보면 세포벽이라는 반투막을 사이에 두고 뿌리털 세포 안을 채우고 있는 물과 양분의 농도가 토양 입자 사이에 있는 물의 농도보다 진합니다. 그러므로 토양 입자 사이에 있는 물은 자연스럽게 식물의 뿌리털 세포 안으로 흡수됩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리적 확산에 의한 현상이며, 식물은 물을 흡수하기 위해 아무런 에너지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식물의 뿌리를 둘러싼 물이 보통의 담수가 아니라 많은 양의 소금이 섞인 바닷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부엌에서 소금에 절인 채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분을 잃고 쪼글쪼글해지는 모습을 보셨나요? 바닷물은 식물의 뿌리털 안에 있는 물보다 농도가 더 높기 때문에 식물체 안에 있던 물이 빠져나와 농도가 높은 바닷물 쪽으로 이동합니다. 보통의 식물이 바닷물에 뿌리를 담그고 살아간다면 물이 풍부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막보다도 가혹한 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물을 빼앗기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무한에 가까운 물이 있는 것 같지만 그 물은 식물이 흡수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식물 안에 있던 물도 빼앗기게 됩니다. 풍요속의 빈곤입니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소금 때문에 말라죽는 염해(鹽害; salt damage)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대지방의 바닷가에 뿌리내린 식물들은 어떻게 말라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열대지방의 바닷가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식물들을 우리는 맹그로브(Mangrove)라고 부릅니다. 맹그로브는 주로 열대지방의 해안 또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의 짠물에서 살아가는 나무입니다. 맹그로브는 70~100여 종으로 구성돼 있는데, 조상이 되는 식물이 꽤 다양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수렴진화를 통해 다양한 식물들이 바닷가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바닷가는 빛과 양분이 충분한 서식지입니다. 다만 소금물이 너무 많은 것이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맹그로브들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바닷물에서 소금을 걸러 내고 물만 흡수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냈습니다. 소금 이외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물에 잠긴 진흙은 산소가 매우 부족한 토양입니다. 보통 식물의 뿌리라면 금새 썩어 버렸겠지만 맹그로브들은 땅 밖으로 튀어나온 호흡뿌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산소 부족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맹그로브들은 오랜 세월 적응과 진화를 반복함으로써 비로소 짠 물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숲을 만들었습니다. 

맹그로브 나무 중 일부는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뿌리를 뻗습니다.

맹그로브는 번식하는 방식도 재미있습니다. 가지 끝에 길쭉한 모양의 무거운 열매가 달려있다가 떨어지면서 엄마나무 아래의 진흙에 푹 박힙니다. 그대로 그 자리에서 싹을 틔워 어린 나무가 됩니다. 다른 종은 물에 잘 뜨는 열매를 만들어 해류를 타고 흘러간 뒤에 새로 정착한 바닷가의 진흙에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열매가 아니라 묘목을 떨어뜨리는 종도 있습니다. 이 맹그로브 종의 열매는 떨어지기 전에 새싹을 틔우고 뿌리가 자라 어린 나무의 모습을 갖춘 뒤에 비로소 엄마 나무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이처럼 맹그로브 나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금기 가득한 해안습지 위에서 숲을 만들어 갑니다. 

맹그로브 숲은 다양한 생물의 보금자리입니다. 맹그로브 숲은 바닷가에서 아주 빽빽하게 자랍니다. 바닷가의 환경은 지역마다 아주 다양합니다. 민물과 섞여 염도가 낮거나, 보통의 바다와 염도가 같거나, 건조로 인해 보통의 바다보다 더 높은 염도를 가진 곳도 있습니다. 유기물이 쌓이는 속도와 쌓인 양도 다릅니다. 파도의 세기와 태풍의 빈도도 천차만별입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땅에 적응해 살아가는 종들이다 보니 맹그로브 숲에는 각 지역마다 그곳의 환경에 최적화된 소수의 맹그로브 종만이 살아남습니다. 맹그로브 숲의 식물 다양성은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식물이 아닌 다른 분류군에 속하는 생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맹그로브 숲이 얼마나 소중한 서식지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맹그로브 숲은 다양한 동물들에게 서식지를 제공합니다. 게나 새우 같은 갑각류와 조개, 물고기들이 살아가고, 곤충과 조류, 포유류도 맹그로브 숲에서 살아갑니다. 개구리와 도마뱀이 있고, 홍살귀상어처럼 맹그로브 숲에서 살아가는 상어도 있습니다.

맹그로브 숲에서 큰 도마뱀이 머리를 내민 채 헤엄치고 있습니다.

맹그로브 숲은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 주는 소중한 울타리입니다. 맹그로브 숲속의 풍경은 아주 특이합니다. 맹그로브 나무들의 뿌리와 줄기는 빽빽하고 복잡하게 물의 안팎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물 아래 진흙에서부터 물 위까지 솟아오른 뿌리들도 여기저기 보입니다. 맹그로브 숲에서는 물의 흐름이 아주 느립니다. 고요한 맹그로브숲의 뿌리들은 평소에는 작은 생물들의 서식지 역할을 하다가 큰 태풍이나 쓰나미가 몰려올 때는 육상생태계를 지키는 방파제가 됩니다. 2004년 수마트라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인도양 14개국에 22만7898명의 인명피해를 입혔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자연재해였으며, 해안가의 많은 마을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새우 양식장 등을 만들기 위해 맹그로브 숲을 베어 낸 지역은 거대한 쓰나미에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반면 해안에 산호초와 맹그로브 숲이 잘 보전되어 있던 지역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맹그로브 숲이 잘 보전된 지역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맹그로브 숲을 관통한 파도는 없었으며 마치 밀물이 들어올 때처럼 자연스러운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유네스코에서는 매년 7월 26일을 ‘국제 맹그로브 생태계 보존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많은 연구자와 시민사회, 정치인과 주민들이 맹그로브 숲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 전 세계 맹그로브 숲 면적은 13만7600이며, 118개국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맹그로브 숲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해안을 개발하는 다양한 행위들로 인해 맹그로브 숲의 면적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습니다. 맹그로브 숲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새우 양식입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동남아산 얼룩새우(aka 블랙타이거새우)들은 대부분 맹그로브 숲을 베어 내고 만든 양식장에서 길러져 우리 식탁에 오릅니다. 탄소의 저장고, 생물의 서식지, 육상생태계를 지키는 방파제인 맹그로브 숲은 매일 조금씩 줄고 있습니다. 맹그로브 숲을 베어 내고 새우 양식장을 만들지 않아도 지역주민이 돈을 벌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야 맹그로브 숲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새우는 어쩌면 맹그로브 숲을 베어 낸 자리에 만든 양식장에서 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바닷가에는 맹그로브 숲이 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곰솔을 비롯해 내염성이 강한 몇몇 종의 나무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물론 맹그로브 숲처럼 바닷물에 직접 뿌리를 내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닷가의 언덕에 뿌리내림으로써 바닷바람과 태풍으로부터 바닷가 마을을 지키는 역할을 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닷가를 지키는 곰솔 숲의 미래도 꽤나 불투명합니다. 남부지방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소나무재선충병으로부터 곰솔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바닷가를 지키기 위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곰솔을 심는 것은 꽤나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오랜 세월 바닷가를 지켜온 곰솔 숲들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곰솔 숲은 탁 트인 바다의 풍경을 손님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카페 사장님들과 서식지 경쟁 중입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방파제인 곰솔 숲이 사라지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일까요? 방파제가 되어 주는 곰솔 숲 없이 온 몸으로 바람과 파도를 맞아야 하는 바닷가 건물들은 정말 괜찮을까요?

바닷가에는 더 많은 숲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곰솔을 심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뚜렷한 대안도 없습니다. 뜨겁고 건조하며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거센 바람이 부는 바닷가는 나무들이 뿌리내리기 힘든 곳입니다.

지구는 빠르게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바다의 온도 변화는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미 맹그로브 숲의 북방한계선은 북위 33도 38분까지 상승했습니다. 일본 규슈섬 남부지역에 해당하는 위도입니다. 제주도 남해안과도 비슷한 위도입니다. 사라져 가는 곰솔 숲을 새로 생겨날지 모르는 한국산 맹그로브 숲이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따뜻한 남쪽나라로 날아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싫어했던 겨울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꽤나 복잡합니다.

댓글 0개

Comments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