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 지역전문가로 활동 중인 남상민 박사는 정치적 요인을 피해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것으로 에너지 협력을 제안했다
2024-11-08 황희정 기자
남상민은 멜버른대학교에서 에너지환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녹색연합 연대사업부장, 한양대학교 연구교수,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 UNESCAP(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환경담당관, UNESCAP 동북아사무소 부대표직을 지냈다. 현재 UNESCAP 환경개발국장이다. UNESCAP은 1947년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고, 지역 내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UNESCAP의 본부는 태국 방콕에 위치하며, 53개 회원국과 9개 준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 어젠다에 대한 국제협력 제도화 — 아태, 동북아 등 지역 간 협력 필요해
어릴 때부터 생명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다. 시골이었던 고향에서 가축들을 잡는 광경을 많이 보며 자랐다. 그 잔인하고 참혹한 장면을 보며 고기를 멀리하게 됐다. 대학 시절 어느 시위에 참여했다가 일주일 구류를 받아 유치장에서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읽게 됐는데, 여기서 생명윤리와 채식의 의미를 확인했다. 그때부터 환경운동가의 길을 걷게 됐다. 1980년대 말 고향인 경북 울진에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 방사능 노출 및 방사성 폐기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환경연합의 전신인 공해문제연구소에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1988년에 공해추방운동연합 창립회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박사 학위는 환경학과 국제관계를 연계해서 대기, 해양, 생태계 부문 지역환경협력의 제도화를 주제로 써서 받았다. 다양한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등에 관해 지구적 환경 의제의 국내 이행 및 국제 협력이 제도화되는 시기다. 아태지역, 동북아지역 등 (소)지역단위의 국가간 협력이 필요하다.
녹색연합 창립에 참여, ‘깃대종(Flagship Species)’을 국내에 처음 알려
대학생으로서 공해추방운동연합 활동을 하다가 졸업을 하면서 좀 더 연구와 연계되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녹색연합의 전신인 배달환경연구소에 1993년 공채 1기로 일을 시작했고, 녹색연합 창립을 준비했다. 90년대 초중반은 환경운동을 시민운동으로 확장해 가는 초기여서 다양한 생각을 다양한 형태로 실험했다. 개인적으로 ‘깃대종(Flagship Species)’ 살리기 운동을 통해 서식지 생태계 보호에 참여한 활동이 의미 있었다. 깃대종은 UNEP에서 작성한 ‘생물다양성국가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1993)’에서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한 방안으로 제시된 개념으로, 지역 생태계에서 특정한 생물종을 선정해 보전운동을 해 나간다면 궁극적으로 서식지 전체를 보존하게 되어 생태계 전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개념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하고 언론, 시민 캠페인으로 조직해서 정책으로 제도화하는 일을 했다.
첫 남북환경전문가 만남 성사시켜, 에너지 분야 남북 협력 가능해
1995년 첫 남북환경전문가 만남을 성사시킨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남북 환경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나 민간에서 남북환경회의를 모색했는데, 미국 노틸러스연구소, 태국 출라롱콘대학교 등을 방문해서 협력을 요청해서 남북 환경전문가들이 만나는 회의를 개최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UNESCAP에서도 북한기술협력 사업의 개발과 실행에 담당자 역할을 해 왔고, 북한의 SDGs 보고서 발간을 지원하게 되었다.
남북한의 기후변화협력은 양자협력뿐만 아니라 지역협력, 다자협력 차원에서 모색이 필요하고, 그게 현실적이다. 북한은 NDC와 SDGs 국가보고서(VNR)에서 '기후대응 관련 국내 정책 및 국제협력 의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북은 외부 지원 시 최대 52%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10개 부문에서 46개 세부 과제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고자 한다. SDGs를 이행하기 위해 기술위원회 및 다양한 이행 기구를 운영하고, 국제기구와 협력하며 발전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다자 틀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북은 재생에너지 기반의 '동북아 에너지 시스템 연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북과 중국은 수력 발전소를 공동 운영 중이며, 남북 간 에너지 협력을 통해 탄소 감축과 전력 보급의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산림 복원 및 해양보호구역 관리와 같은 '자연 기반 해법'이 강조되고 있고, 남북 간 '해양 보호 협력' 가능성도 있다. 국제협력의 규범과 절차를 활용해 '정치적 요인'을 피하면서도 효과적인 남북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동북아청정대기파트너십(NEACAP) 출범시켜
UNESCAP(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는 53개 회원국과 9개 준회원국이 경제, 환경, 사회개발, 무역, 교통, 에너지, 정보통신기술, 재난, 통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협력, 역량강화사업 등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협력틀을 만들고 사업을 진행한다. 지금 맡고 있는 환경협력 분야는 기후변화, 대기, 생태계, 해양환경, 지속가능 도시 등이며 각 분야에서 지역협력을 이뤄 간다. UNESCAP에서 일하면서 대기오염과 관련된 동북아지역, 아태지역의 협력체 출범에 애쓴 기억이 있다. 오랫동안 협의와 공동연구를 진행해 동북아청정대기파트너십(NEACAP)을 2018년 출범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아태지역 차원의 정부 간 협상을 진행해 지난 2022년 지역대기행동계획을 채택하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내가 공부하고 고민해 온 의제들을 국가 간 협력틀로 발전시켰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정부 간 협상 및 협력 과정은 항상 기대한 것보다 더딘 진전을 보이고, 지역정치적 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아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남북관계나 탄소중립 목표 도달에 '협력 주체의 다양화' 필요해
현재의 정치적 상황은 남북협력을 어렵게 하지만, 상황이 개선된다면 협력 주체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물론 중앙정부의 역할이 핵심적이지만, 이미 다양한 국제협력, 개발협력 경험을 축적해 나가고 있는 지방정부도 남북 협력을 해 나갈 수 있다. 이런 지방정부는 접경 지역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는 아태 지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협력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다. 대부분의 국가는 향후 30~40년 내에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속도와 규모는 아직 많이 더딘 상태다. 그 속도를 가속하기 위해서는 협력을 통해 정책, 기술개발과 실행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한 지역협력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남북간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다양한 주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