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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날 풍경ㅣ변곡점 앞에서

2025-04-03 최은

 

헌재 판결이 있기 하루 전. 제노사이드 10단계 중 한국은 정체성을 기반으로 파벌화된 정치세력이 전면화되지는 않았지만,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파세력의 정치 권력 장악 시도는 현실화되고 있다. 역사의 변곡점 앞에서 우리 공화국의 민주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발랄한 비판과 풍자에 손들어 주자.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째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역사적 지체는 다시 60일이 흘러야


이 글을 쓰는 시점은 4월 2일 밤이고, 아마도 릴리즈되는 시점은 4월 4일 12시가 될 것이다. 11시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역사적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거의 모든 민주시민과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8대0으로 인용이 결정되리라 확신한다. 모든 법리적, 상황적 신호가 이 결정을 가리키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미 한 달 전에 내려졌어야 할 결정이 지체되었다는 것. 이로 인해 우리 공동체가 겪은, 겪을 혼란이 상당하다는 것. 국제정세와 무역의 흐름이 요동치는 와중에 아무런 결정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 동시에 이런 역사적 지체가 다시 60일이 흘러야 겨우 해결될 수 있다는 것.


히틀러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 김일성의 서울 장악 후 3일


역사에서는 이런 식의 우연이 하나의 변곡점을 만들어서 이후 역사를 크게 변화시킨 적이 무수히 많다. 2차대전 초기 덩케르크(현지 발음은 됭케르크)에서 벌어진 철수작전(1940년 5월 26일~6월 4일)에서 40여 만 명의 연합군 병력을 성공적으로 이동시키는 데에는 히틀러의 전략적 판단 미스가 있었다. 아직도 전쟁사가들은 히틀러가 공격을 명령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논쟁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영원히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6월 28일 즈음에 서울을 장악한 김일성이 3일간 아무런 남진을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 역시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전략적 이유가 있었던 건지, 지나치게 여유를 부렸던 건지, 감기나 배탈이라도 걸려서 무슨 판단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다행히 히틀러는 패했고, 김일성은 다시 평양의 지배자라는 위치로 돌아갔다.


종족적 분노, 종교적 광기, 여성과 소수자 혐오


만약,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상상하기 싫지만) 기각이나 각하로 난다면, 그래서 내란수괴가 다시 복귀한다면, 음... 나는 비루한 필부로서 싸울 수밖에. 문제는 상식적인 결정이 내려지고, 다시 정상적인 헌정질서가 회복된다하더라도, 우리가 입은 내상이 치유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내란을 시도했고, 지지한 세력은 결코 호락호락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시 조직화하고, 선동하고, 비난하고, 가짜 뉴스와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보수세력을 장악하고, 그래서 다시 국가권력을 찬탈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은 그저 알콜에 찌든 정신 나간 인간의 광기를 가둔다면 깔끔하게 종료될 싸움이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종족적 분노와 종교적 광기와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반복 재생산될 것이다. 멀쩡한 국회의원이 ‘선관위를 중국인이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유튜브와 SNS에는 부정선거에 대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이 넘쳐 난다. ‘학생인권조례’는 게이문화를 확산하고, 미혼모를 양산하는 원흉이라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널려 있다. 10대와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하위 카운터컬쳐(대항문화)에서 성차별적인 밈이나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서사는 차고 넘친다. 제일 어이없는 것은 젊은 남성들끼리 서로 스스럼없이 하는 욕이 어느새 X발놈이 아니라 X발년이라는 사실이다.


바바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원제: How Civil Wars Start, 열린책들, 2025)
바바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원제: How Civil Wars Start, 열린책들, 2025)

"미국은 제노사이드 5단계인 조직화에 진입"


물론 이런 위기는 우리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출간되어 화제가 된 바바라 F. 월터의 책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원제: How Civil Wars Start, 열린책들, 2025)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극우파 혹은 유사 파시즘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제노사이드 워치(Genocide Watch) 대표 그레고리 스탠턴이 제시한 ‘제노사이드의 10단계’(p216)라는 지표이다. 이 지표는 <분류-상징화-차별-비인간화-조직화-양극화-준비-박해-절멸-부정>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녀가 보기에 미국은 이미 5단계인 조직화 단계에 진입했다. 축약해서 말하자면, 정책과 이익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일반적인 민주정치의 선택 과정이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파벌화된 정치세력에 대한 복종과 동의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 미국의 경우, 인종적인 단층선을 따라 형성된 백인 종족주의가 이미 보수세력 내부에 강력히 안착하고 있다는 것. 특히 이 확산의 가장 큰 주범은, 경제적 양극화나 정치엘리티즘에 대한 일반적인 혐오 이상으로 SNS[페이스북과, X(구 트위터), 유튜브와 왓츠앱]기업들의 상업적인 욕망과 이에 따른 알고리즘이라는 것. 불행히도 선거 이전에 쓰인 그녀의 기대와 다르게, 트럼프는 당선되었고 최근의 ‘시그널게이트’에서 드러났듯 이미 미국의 국가권력 상층부의 전략적, 심리적 수준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유아기적이다.


한국은 정체성을 기반으로 파벌화된 정치세력이 전면화되지는 않았다


만약, 이 지표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내가 보기에 한국은 3단계 초입쯤으로 보인다. 이미 상징화 단계를 넘어서 차별로 진입하지 않았을까? 다만 다행히 한국은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파벌화된 정치세력이 아직 전면화되지 않았다는 점. 윤석열과 그를 옹위하는 세력들이 (준비가 덜 되었던 건지, 나이브했던 건지) 실패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시도가 한국에서 처음은 아니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대로, 1948년 정부수립 과정에서 이범석(소위 ‘족청’이라 불린 민족청년단)과 안호상(초대 문교부장관)은 국수주의 파시즘을 이승만정부에 불어넣었고,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박정희 정권은 ‘국민교육헌장’(일제의 황국서사를 카피한)을 내걸고, ‘이순신 프로젝트’(현충사와 성웅 이순신)를 전면화했었다. 다시 10년 후 80년대 초반의 전두환 정권에서 보안사의 3허씨(허화평, 허문도, 허삼수)를 주축으로 한 세력들은 3S(Sex, Spots, Screen)프로젝트와 함께 ‘국풍프로젝트’와 ‘독립기념관 건립’을 통해 비슷한 시도를 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시도는 전부 실패했다.


불행히도,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파세력의 정치 권력 장악 시도는 성공적


그들은 아주 무능하고 부패했거나, 지독하게 반민주주의적이었고, 반민족주의적이었기에 국민대중의 자발적인 동의와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극우파 세력이 이승만을 국부로, 박정희를 반신(半神)적인 존재로 모시고 정치 권력을 장악하려 시도하는 흐름은 역사적으로 네 번째 시도라 할 수 있다. 불행히도 이번 시도는 대단히 성공적이다. 변절한 왕년의 좌파들이 권력 곳곳에 포진해 있고, 극우 기독교 분파가 인력을 동원하며, 주술과 광기로 무장한 지도자와 ‘나라가 망해도 2번을 찍겠다’고 공언하는 파벌화된 정치세력이 일부 대중을 장악했다는 점에서 4차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이승만 현수막. 사진_planet03 DB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이승만 현수막. 사진_planet03 DB

4월 4일은 우리 공화국의 역사적 변곡점


그래서 4월 4일은 역사적 변곡점이 될 것이다. 우리 공화국이 헌정질서를 회복하고 민주주의 정체성을 유지할지, 저 극우파, 유사 파시즘세력이 내란과 혼란의 불구덩 속으로 우리를 몰고 갈 것인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전자에 동의한다면, 거리에서 한 손을 거들어 주시리라 믿는다.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특히 50대 이상의 지식분자들 특유의 엄숙주의와 가르치려는 본성은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 이미 운동의 주력은 80년대에 청춘을 바친 분들이 아니며, 사회과학이 아니라 발랄한 비판과 풍자여야 성공한다는 것. 특히나 중도파 혹은 별 생각이 없는 대중들(습관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싫어하는)에게 SNS이건, 어떤 수단이건 지루하게 논쟁하거나 가르치기보다는 즐거운 ‘매불쇼’나 ‘사장 남천동’ 링크를 걸어서 추천하는 편이 백번 낫다는 것.


부디, 이 글이 릴리즈되는 시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기를! 그래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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