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날 풍경ㅣ영화와 책으로 보는 극우파 이야기
- hpiri2
- 3월 21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일 전
2025-03-20 최은
드라마, 영화와 책을 통해 극우파와 파시즘 동조 세력들의 행동을 탐색한다. 미국 내전, 의회 음모,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다룬 픽션 작품들, 권위주의와 비교정치학 저술을 살피며, 파시즘으로 가는 네 가지 신호를 말한다.
최은 출판 기획자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은 노동계에서 시작했고, IT업계를 거쳐 몇 권의 책을 기획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째 야간 노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아스팔트 우파'가 극우파, 파시즘의 동조 세력이라면
이 글을 쓰는 3월 19일 저녁 시점까지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탄핵 여부에 대한 결정 기일조차 내놓지 않았다. 혼란은 지속되고 있고, 누구에게나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흐른다. 너무나 명확한 ‘실패한 내란 시도’를 옹호하고, 정상적인 법집행을 방해하고 겁박하는 자들이 넘쳐 난다. 태극기와 성조기와 트럼프 초상(아울러 일론 머스크 초상까지)을 흔드는 그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과 선동을 퍼뜨리고 있다. 스스로 ‘아스팔트 우파’라 하는 그들은 과연 탄핵이 인용되면 그냥 그렇게 사라질까? 그들은 우리 민주주의 공화국 정체(政體)안에서 용인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세력인가? 만약 그들이 극우파, 나아가 파시즘에 동조하는 세력이라면, 우리 사회는 그들을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디까지 관용해야 하는가?
오늘날, 극우파의 득세, 포퓰리즘의 확대, 심지어 파시즘의 징후는 맑스를 인용해 말하자면, 하나의 유령처럼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루한 얘기는 다음으로 넘기고 오늘은 가벼운 이야기 거리로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책 한 사발 올린다.
<시빌 워>, 우리에게 벌어질 뻔한 장면들
먼저 미국 얘기. 작년 말에 개봉한 영화 <시빌 워>(Civil War, 2024)에서 감독 알렉스 가랜드는 4개로 분열된 미국에서 진행되는 내전을 스펙타클하게 묘사한다. 극우파 파시스트 대통령이 지배하는 워싱턴에 대항해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지역 연합군(서부군)이 벌이는 원정길에 동참하는 기자의 시선으로 그려낸 미국 내전 영화. 감독은 구(舊) 유고연방이나 시리아에서 일어난 내전이 미국에서 일어난다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혹한 민간인 공습, 피아를 식별한 후 아무렇지 않게 벌이는 학살, 마지막으로 백악관 집무실 앞에서 벌이는 공방전까지. 어째 많이 본 듯 하기도 하고, 하마터면 우리에게 벌어질 뻔한 장면들 같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영화에서 미국의 내전은 종료되지 않는다. 남부는 플로리다 연합으로, 북서부는 신인민군으로 결집하고 마는데….

<제로 데이>, 국정을 바로 세운다는 음모
지난 달 개봉해서 꽤 화제가 된 넷플릭스의 <제로 데이>(Zero Day,2025)는 어떨까. 이 시리즈에서 전직 대통령이자 임박한 테러 공격을 조사할 책임을 부여받은 역할을 연기하는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는 자신의 딸이 엮인 음모를 밝혀낸다. 정계의 실세인 하원의장과 빅테크기업가가 주동이 된 이 음모의 주모자들이 밝힌 목표는 극단적인 정파대립으로 마비되는 국정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고, 그래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중도파(?)들이 모여서 경고하고 싶었다는 것(?). 여기에 러시아 스파이가 등장하고 위기를 이용해 한 몫을 챙기려는 금융자본이 개입하고….

『미국을 노린 음모』, 파시스트인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극우파를 다룬 많은 책 중에서 드라마화된 작품이 꽤 있지만, 가장 기억나는 것은 위대한 소설가 필립 로스(Philip Roth, 1933~2018)가 쓴 『미국을 노린 음모』(The Plot Against America, 문학동네, 2023)와 동명의 드라마( HBO, 2020)이다. 이 대체역사소설이자 드라마에서 1940년 제 33대 미국대통령선거의 승자는 찰스 린드버그이고 내무부장관은 헨리 포드이다. 이제는 좀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보는 위인전에 등장하는 최초의 대서양 횡단비행을 감행한 영웅 찰스 린드버그는 노골적으로 히틀러를 찬양하고 나찌에 동조한 파시스트였다. 우리에게 포디즘이라는 산업공학적 혁신을 제공한 자동차산업가 헨리 포드 역시 지독한 반유대주의 음모론에 심취한 인사였고. 소설에선 린드버그가 독일 및 일본과 평화조약을 맺고 간섭하지 않기로 한 후, 유럽은 독일이 아시아는 일본이 장악한다. 미국 내에선 유대인이 거리에서 즉결처형당하고, 저항하는 유대인은 캐나다로 망명한다. 그러다 1942년 즈음에 린드버그가 실종되고, 루즈벨트가 다시 대권을 잡은 상태에서 진주만공습이 벌어진 후,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한다. 하지만 드라마판에서는 결말이 나지 않은 채, 대통령선거가 진행되는 장면에서 끝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파시즘으로 가는 네 가지 신호
필립 로스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책이 바로 극우파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냉철하게 파고 들어 큰 명성을 얻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공저, 어크로스, 2018)였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권위주의와 비교정치학을 강의하는 두 교수가 쓴 이 책은 분명히 린드버그를 닮은 트럼프의 등장과 극우파가 지배하기 시작한 미국 정치에 대한 하나의 전주곡이었다. 이 책에서 작가들은 전제주의 행동(아마도 극우파에서 노골적인 파시즘으로 가는 이정표)을 가리키는 네 가지 주요 신호를 제시한다. 첫째,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 둘째,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셋째,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넷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
극우파 혹은 반민주주의진영에 대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보이는 이 신호를 통해 트럼프의 미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우습다고 해야 할지, 섬뜩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2018년 시점에서 작가들은 트럼프체제가 어디로 갈지 시나리오를 세 개 제시한다. 하지만 그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낙마한 트럼프가 2025년에 다시 등장한다는 전망은 없었다. 그래서인가? 작가들은 다시 2권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어크로스, 2024)를 내게 된다.
오늘, 극단적인 사상들은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오늘날 이미 극단적인 사상들(극우파라 해야 할지, 유사 파시즘이라 해야 할지, 인종주의라 해야 할지)은 하나의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유럽에선 빅토르 오르반의 헝가리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의 폴란드가 대표적이지만, 이미 독일 총선에서 극우파 ‘독일대안당(AfD)’은 경제와 난민문제를 쟁점으로 2당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이탈리아에 뒤이어 프랑스 역시 극우파를 중심으로 정권이 구성될 것이다. 세계의 가장 큰 축인 미국과 유럽의 정치판은 이제껏 보지 못한 불안과 혼돈 속으로 나아간다. 물론 헌재의 인용 결정을 초조히 기다리는 우리만큼 불안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극우파 정치인들은 기후위기의 그 명백성을 부인한다
사족처럼 이 페이지를 통해 첨언하고 싶은 한 가지. 혹시라도 극우파를 비판하는 정치적 태도와 기후위기가 무슨 관계냐는 질문에 대해. 너무나 명백하게 위에 언급한 거의 모든 극우파 정권 혹은 정치인들(한국을 포함하여)은 기후위기에 대해 그 명백성을 부인한다. 당연히 대안으로서의 정책들(협정과 조직을 포함하여)에 대해 그들은 거부한다. 화석연료와 핵발전소는 어쩔 수 없고, 대안에너지체계는 비용 대비 효율이 의심스럽기에 채택할 수 없다는 입장이 그들의 보편적인 태도이다. 이렇게 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야 논외로 하더라도, 현실에서 기후위기의 거대한 벽이 된 그들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임박한 기후위기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 트럼프 2기의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전기차가 미국과 유럽의 거리에서 불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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