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을 위한 겨울 로컬미식문화여행의 하나로 '그 겨울 사과밭'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사과나무 전정을 경험하는데, 가지마다 햇볕이 고르게 비추도록 가지를 잘라 주는 일이다. 농부가 한해 과실이 잘 열도록 정성을 다하는 중요한 겨울철 일과이다.
박진희 2025-1-10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그 겨울 사과밭
몇해 전 장수군의 농촌 체험 관광 프로그램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콘셉트은 장수의 농업을 경험할 수 있는 계절별 ‘장수로 가는 로컬미식문화여행’으로 정했다. 장수군은 고랭지이고, 겨울이 춥고 길다. 농촌 자원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은 대부분 겨울에 진행되지 않는다. 겨울 농촌을 어떻게 경험해 볼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장수로 가는 로컬미식문화여행 겨울편을 크리스마스 시즌 여행으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장수는 놀길거리, 볼거리가 충분한 관광지로 성장해 온 지역이 아니다. 그러나 장수는 금강의 발원지이고 사과의 주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며, 농촌으로서의 정체성을 오래도록 간직해 왔다. 앞으로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겠지만 금강의 발원지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과의 주산지가 점점 이동한다고 해도,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경험과 연구로 주산지로서의 명성을 계속 이어갈 노력을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겨울에도 장수의 물과 사과가 갖는 의미를 해석하면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길 수 있도록 사과케이크 만들기, 수제맥주학교, 그리고 이름하여 ‘그 겨울 사과밭, 오 나의 사과나무’, 사과나무 전정 체험해 보기 등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사과나무 전정, 한해 농사가 달렸다
후지 품종 사과의 수확을 마치고 나면 사과 농사는 한숨 쉬어갈 것 같지만 사실 사과 농사의 시작은 한겨울 전정(剪定)부터이다. 겨울 로컬미식문화여행 참여자들은 베테랑 사과농부님들에게 지도를 받으며 모두 사과나무 전정에 도전했다. 사과농부가 전정을 일반인에게 맡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수 농사에 전정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사과농부들은 오래도록 사과 농사를 지었어도 전정 교육 받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전정을 더 잘하기 위해 해외연수를 다녀오기도 한다. 전정팀도 쉽게 구성하지 않는다. 전정 작업에 새로운 사람을 포함시키고, 우리 전정팀이라고 인정하는 일은 마치 기사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전정은 잘못하면 수확량의 차이가 심해지기도 하고, 나무의 수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그 중요한 일을 일반인이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건 한해 농사를 맡겨본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농부의 설명을 듣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정을 하고, 잘했는지를 묻고 안도하던 참여자들의 모습과 차분하게 사과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전정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확인하던 농부님들의 모습은 예배 시간처럼 경건했다.
전정을 잘하며 햇볕이 가지마다 고르다
모든 농사가 다 그렇겠지만 과수나무는 심는 시기,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 품종, 흙의 상태 등이 중요하다. 그리고 심겨져 과수나무로서의 좋은 성장을 하려면 적절한 생육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전정을 해야 한다. 사과나무는 위쪽 가지가 아래쪽 가지보다 잘 자라는 특성이 있다. 전정을 잘하면 햇볕이 가지마다 고르게 들어가 생육에 도움이 되며, 나무의 휴면기에 이루어지는 동계 전정은 가지의 생장이 강해진다. 가지는 자르기도 하고, 솎기도 한다. 가지솎기는 햇빛이 잘 투과되어 꽃눈 형성이 좋아지고, 과일의 품질이 향상된다. 사과 농사를 하기로 작정했다면 전정은 피해갈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추운 겨울 과수나무 전정과 한겨울 거리 응원봉
농사일을 직접 하거나, 농사일을 따라가다 보면 삼라만상의 진리가 숨어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추운 겨울 과수나무를 전정하는 농부들의 모습과 트랙터를 몰고 남태령을 넘던 농부들의 모습, 한겨울 거리에서 응원봉을 들고 이 겨울을 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모든 가지마다 햇볕이 가득 들기를 바라는 마음, 꽃눈이 좋고, 과일의 품질이 향상되기를 바라는 농부의 마음이 세상의 이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들판에 가득한 한겨울 사과나무와 가위를 든 농부들의 손을 바라보며, 더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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