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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 기후미식 그리고 발효

 

박진희 2024-08-23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발효식탁으로 여는 소셜 다이닝


지난 2022년 장수군에서 발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장수발효연구회’를 만들었다. 발효 연구회이니 장과 술을 담는 활동을 기본으로 하지만 활동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기후미식’과 ‘지속가능한 식문화’이다. 회원들은 모두 발효를 좋아하는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일부러 누가 이렇게 모이게라도 한 것처럼, 발효전문가, 발효지도사, 음식전문가, 환경교육박사, 지역공동체활동가, 교육활동가로 구성되어 있다. 장수발효연구회는 ‘지속가능한 기후미식 발효식탁’이라는 소셜 다이닝을 열기도 했고, 학교와 주민 모임을 찾아가는 발효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구를 구하는 고추장 담기’라는 어린이날 부스를 열기도 했다. 장수군에서 오래도록 장을 담아온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하고 장을 담아온 세월과 문화를 기록하기도 했다. 발효연구회는 왜 발효를 기후 문제, 기후미식을 활동의 목표로 삼았을까?



한 숟가락 가득 퍼 올린, 전통적인 발효식품 고추장. (출처_ 한국교육방송공사의 "한국기행 문화 여행 음식 내포 106 고추장")


‘맛의 방주’에 등재된 한국의 발효식품들

푸른콩장, 장흥돈차, 감홍로, 먹시감식초, 어간장, 어육장, 예산삭힌김치, 예산집장 ...


발효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 또는 그 결과물을 말한다.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술, 김치, 식초, 차 …. 먹고 산다는 건 어쩌면 발효로 시작해서 발효로 끝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날마다 우리가 밥상에서 만나는 발효는 생물다양성과 맛의 다양성에 기여한다. 제주도는 독새기콩이라는 푸른색 토종콩으로 장을 담는다. 제주의 푸른콩으로 담은 장은 멸종 위기에 처한 종자나 식재료를 지키고자 하는 국제슬로푸드협회의 지역음식문화유산 프로젝트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2024년 4월 기준 세계적으로는 161개국에서 6110여 종이, 한국에서는 112종이 맛의 방주에 등재되어 있는데 푸른콩장, 장흥돈차(고형차(덩이차)의 한 종류로 삼국 시대부터 근세까지 전남 장흥,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존재하던 전통 발효차), 감홍로(좁쌀 누룩과 멥쌀 고두밥으로 술을 빚어 증류, 숙성시킨 뒤 8가지 약재를 넣고 침출시켜 다시 1~5년을 숙성시켜 완성한 술), 먹시감식초(토종 먹시감을 홍시가 되기 전 수확하여 초산 발효 숙성한 식초), 어간장(멸치액젓과 콩메주로 만든 간장), 어육장(잘 말려 손질한 고기와 생선을 메주 사이에 켜켜이 넣고 소금물을 부어 밀봉한 후 1년간 발효시킨 전통 장), 예산삭힌김치(일반 김치와 달리 배추의 시래기를 사용해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마늘·파·새우젓만으로 맛을 내어 삭힌 예산 지역의 전통 김치), 예산집장(즙장(汁醬) 또는 채소를 많이 넣어 채장(菜醬)이라고도 불리는 예산 지역 양반가에서 주로 먹던 된장) 등 한국의 ‘맛의 방주’에는 발효식품이 많이 등재되어 있다. 이처럼 발효식품은 제주푸른콩, 먹시감과 같은 토종 종자를 지키며 생물다양성에 기여한다. 그리고 어육장, 어간장, 집장처럼 맛의 다양성에도 기여한다.


발효의 생활화는 탄소발자국을 줄인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발효 방법을 익히면 먹거리를 저장해 두고 오래 먹을 수 있다. 발효는 수확이 가능하지 않은 계절, 보관이 용이하지 않은 농산물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해 발전해 온 생활의 기술이다. 그리고 먹거리가 쏟아져 나올 때 농산물을 버리거나 밭에서 갈지 않고 발효식품으로 저장해 농산물 폐기를 막을 수 있고, 수급량을 조절할 수도 있다. 발효 기술을 익히면 화학첨가물이 사용된 기존 발효형 제품이 아닌 자연발효 식품으로 자립적 식탁을 꾸려나갈 수도 있다. 환경에 책임감 있는 태도로 식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을 기후미식이라고 한다. 생산, 제조, 소비 유통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식품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온실가스량의 21~27%를 차지한다. 2019년 기준 한국 식품시스템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112.1백만 톤CO2-eq*로, 우리나라 총 배출량의 약 16%에 해당한다. 자립적 발효 생활로 식품의 생산, 제조, 유통 과정에서 발생되는 탄소발자국만 줄이더라도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 발효를 생활화하는 일은 온실가스를 줄이고 환경에 책임 있는 식생활 태도인 기후미식일 수밖에 없다.




*CO2-eq(carbon dioxide equivalent): 이산화탄소 환산량. 다양한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등가의 이산화탄소의 양으로 환산한 것이며 ‘CO2e’라고도 한다.


*‘맛의 방주’ 등재 목록 https://www.slowfood.or.kr/blan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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