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2024-08-23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뜨거운 한낮을 피하는 생존 기술
겨울, 농한기가 아닌 이상 농사는 주말도, 휴일도 없다. 귀농하고 바로 농사일을 시작했는데 주말도 휴일도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머리는 아는데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아 오래도록 애를 먹었다. 이웃 마을 농부들은 새벽같이 밭으로 나와 오전에 일을 하고 뜨거운 해가 들면 집으로 들어갔다. 시골살이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도시에서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의 삶이었고 어린 자녀들이 있는 터라 나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을 챙겨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면 오전 시간이 싹 사라졌다. 도시에 살 때 호텔리어였던 남편은 2교대 근무를 너무 오래했던 터라 새벽같이 일어나는 일이 몸에 익지 않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냥 우리 방식대로 하자고. 너무 일찍 나서려고 애쓰지 말자고” 이렇게 다짐을 하고 도시 출근 시간처럼 논으로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가면 뜨거운 한낮의 땡볕이 내내 우리를 따라 다녔다. 어느 뜨거운 여름, 낮 시간 내내 일하던 나는 더위를 먹어 짧은 시간의 기억이 사라지기도 했고, 낮에 비가림하우스에서 일을 하던 남편은 냉커피를 달고 살고 있었다. “아, 이래서, 새벽같이 들로 나가시는구나, 생체 시계를 바꿔야 하는구나!” 절실함이 밀려 왔다. 이른 아침부터의 농사일은 부지런해서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뜨거운 한낮을 피하는 농부의 생존 기술이었다.
온열질환이 작년보다 18% 증가
농사는 재해로부터 가장 위험한 일 중 하나다. 낫에 베거나, 농기계에 신체가 끼는 사고, 높은 곳에 달린 열매를 따다가 사다리나 농작업 차량에서 떨어지는 사고, 경운기나 트랙터에서 떨어지는 사고, 소에 몸이 받히는 사고, 농약에 중독되는 일. 줄줄이 열거할 수 있을 만큼 농사 일은 위험천만의 연속일 수 있다. 여기에 이제 온열질환이 더해졌다. 기후위기는 농부들의 온열질환 위험성을 심각하게 가중시키고 있다. 논에서, 밭에서, 특히 하우스 안에서 폭염은 농부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2019년 폭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수는 211명이다. 2023년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감시체계 운영 결과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환자수는 2818명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7월 기준 온열환자 질환수는 같은 시기 지난해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이 발견된 장소는 주로 야외작업장, 논, 밭과 길가였다.
낮 시간 비닐하우스 안, 섭씨 42도
지난달 경북 지역에서 밭일을 하던 50대 농부가 심정지 사고를 겪었다. 다행히 긴급출동한 119 덕분에 호흡을 되찾았다. 이 사건은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농사는 매우 위험한 온열질환 작업장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농부에게 폭염은 매우 위험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농사를 짓는 농부는 자유의지로 더위를 피해 쉴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농업노동자의 폭염 위험은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더욱 위험하다. 시민단체인 환경정의의 조사에 따르면 건설노동, 이동노동(라이더, 검침원), 그리고 농업노동이 대표적인 폭염 취약 노동이었다. 환경정의의 폭염 위험 노동의 사례조사 결과 농업노동자의 주요 작업장인 하우스 내 작업이 이루어질 경우 낮 시간의 비닐하우스 내 온도는 42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에 고용된 이주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 제63조 적용이 제외되는데 이로 인해 근로시간, 휴게, 휴일 적용을 받지 못해 폭염으로부터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권리 자체가 보장되지 못한다.
밥상 음식은 폭염을 감내한 결과
우리 밥상에 오르는 그 모든 음식은 숭고한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이며, 폭염을 감내한 결과이다. 농부와 농업노농자의 폭염으로부터의 쉴 권리, 온열질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기후위기는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농부와 농업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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