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 밥상을 바꿀 오늘,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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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4일
- 2분 분량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식문화의 변화를 살펴본다. 지난 20년간 소비자물가지수의 대표품목 변화를 통해 건강 지향적, 외식 다변화, 편의성 중심의 먹거리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진희 2025-2-14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보리차, 경양식 비후가스, 자판기 커피
1980년부터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학창 시절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특히 집에서 밥을 먹거나, 외식하는 장면을 보면 일상과 특별한 기념일에서 내가 무엇을 누구와 함께 어디서 먹었는지, 장소와 느낌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나기도 한다. 날마다 큰 주전자로 끓이던 보리차, 중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경양식 집에서 먹었던 비후가스. 아마 부모님은 큰마음을 먹고 나를 데리고 가셨을 것이다.
학생회관을 집 삼아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에게 대학 생활 내내 자판기 커피는 벗이 되어 주었다. 친구들과 다른 대학 근처로 놀러가거나 미팅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피자나 파스타를 먹기도 했었는데, 먹는 법을 몰라 당황을 하기도 하고, 여러 번 먹어본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기도 했다.

너무 낯선 마라탕
어느덧 나는 대학생 딸 셋과 중학생 아들 하나를 둔 엄마가 되었는데, 나는 날마다 주전자로 보리차를 끓이지도 않고, 우리 집 아이들은 비후가스가 뭔지도 모른다. 자판기 커피는 존재만 알고 있을 뿐, 그걸 먹는 사람을 본 일도 없다. 피자나 파스타는 여러 먹거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고, 최근 몇 년 사이에 내게는 너무 낯선 마라탕은 이미 아이들에게는 짬봉처럼 가까운 음식이 되어 있다.
어릴 적 추억의 음식은 사라지고 있고, 내게 낯선 음식들은 아이들의 최애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드라마 속 식사 장면이 더욱 눈에 들어오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도 변해가므로, 식문화가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20년간의 식문화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소비자물가지수 조사의 대표품목들의 변화
지난 1962년 2월부터 매월, 통계청은 각 가정이 생활을 위해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알아보기 위해 소비자물가지수를 조사해 왔다. 그래서 소비자물가지수는 경제 상황과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파악하게 하는 대표적인 통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정부가 생활에 필요한 모든 품목의 물가지수를 조사할 수는 없으므로, 소비자물가지수는 대표품목을 정해 조사가 이루어진다.
2024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는 대표품목은 458개로 비주류음료, 의류 및 신발 등 지출목적별로 크게 12개 항목으로 분류된다. 지난 2000년 소비자물가지수의 대표품목은 516개 품목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의 대표품목 중 159개 품목은 삭제되었고, 103개의 신규 품목이 등장했다. 소비자물가지수의 품목 변화는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국민들의 소비형태가 변화됨을 의미한다.
꽁치, 액젓, 커피크림이 사라지고 현미, 블루베리, 삼각김밥이 신규로
음식의 삭제 품목과 신규 품목을 살펴보니, 식생활이 지난 20년간 어떻게 변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중 소비자물가지수 품목에서 삭제된 대표적인 품목은 팥, 꽁치, 가자미, 액젓, 커피크림, 보리차 등이고 새롭게 신규 폼목이 된 것은 현미, 파스타면, 게, 전복, 새우, 키위, 블루베리, 아몬드, 망고, 체리, 삼각김밥, 편의점 도시락 등이다. 음식 및 숙박 품목에서는 음식품목은 함박스테이크, 비후가스, 자판기 커피, 학교급식비가 삭제되고, 스파게티, 죽, 해물찜, 된장국, 생선회, 떡볶이, 쌀국수 등이 추가되었다. 내 또래의 학창 시절을 채우던 음식은 대표품목에서 삭제가 되었고, 지금 세대들이 즐기는 음식은 대표품목으로 포함되었다.
기후위기로 신선야채와 우리 과일이 사라질지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건강을 지향하는 소비행태로의 변화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신규대표품목의 변화는 건강지향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표품목의 변화를 통해 외식 산업의 다변화, 농산업의 변화, 양식어업의 증가, 식품산업의 변화, 편의성으로 포장된 경제적 약자의 주요 먹거리가 무엇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 기후위기가 계속되어 농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면 어쩌면 신선야채와 우리나라 과일이 대표품목에서 전면 삭제될 수도 있을 것이다. 5년 뒤, 10년 뒤, 지역과 지속가능성을 담고, 경제적 격차가 드러나지 않게 먹고 사는 일이 소비자물가지수로 반영되는 세상이 되도록, 농업과 먹거리 정책에 더욱 많은 시민이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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