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2024-10-18
박진희
로컬의 지속가능성 활동가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초록누리 협동조합의 이사장 역임
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 연재
도시 텃밭으로 수경재배가 소개되다니
15년 전 농촌으로 이주하고, 유기농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먹거리 정의(Food Justice)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먹거리가 정의롭다면 이런 활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을 보거나 만나본 적이 없었다. 취약계층의 먹거리 문제와 관련된 논문 외에 관련된 국내 자료를 잘 찾을 수가 없어서, 해외 자료와 해외 활동 사례를 찾아보며 혼자 공부를 했다. 주로 미국의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많았는데, 먹거리 정의를 표방하는 시민단체들은 먹거리는 인권의 한 영역이고 기본권이 되어야 하며,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좋은 음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먹거리 접근권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메시지 전달과 더불어 저소득층 밀집 거주 지역과 소위 우범 지역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텃밭을 만들고, 수확물을 나누고, 음식 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공동의 도시 텃밭 활동 외에도 개인이 자신의 거주지에서 할 수 있는 도시 텃밭 시스템도 소개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수경재배였다. 물이 순환하여 수경재배가 이루어지고 아래로 작은 연못처럼 통 안에 물고기가 몇 마리 아래 있었다. 당시에는 오직 땅에서의 농사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수경재배가 도시 텃밭 활동으로 소개되다니’ 하고 의아해 하며 그 시스템을 중요하게 인식하지는 않았다.
농사는 논이나 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 거두고, 먹는 과정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땅이 비옥해야 하므로 농부들에게 농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땅의 힘, 지력이라고 대답했다. 옥토를 만들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하고 적용해보고, 옥토를 만들기 위해 휴경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땅의 힘은 중요했다. 그런데 ‘수경재배가 자가 도시 텃밭의 활동으로 소개되다니!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소규모 시스템이라고 해도 식물공장의 최소화처럼 생각되었다.
수경재배와 물고기 양식의 결합, 아쿠아포닉스
그런데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으면서 농사에 필요한 환경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고민은 한편으로는 스마트농업으로 이어졌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생태적 관점에서의 퍼머컬쳐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확장으로, 그리고 퍼머컬쳐와 더불어 지속적인 물관리인 ’아쿠아컬쳐‘로, 식물 생산만이 아닌 수경재배와 물고기 양식의 결합인 ’아쿠아포닉스‘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다. 아쿠아컬쳐는 담수와 물 정화 시스템을 구축하여 최종적으로 농경 후 자연 정화 과정을 거친 물에서 수생 생물의 생태계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 ’아쿠아포닉스‘(또는 아쿠아포니)는 수경재배와 물고기 양식을 결합하는 것으로 물고기를 키우면서 동시에 배지를 통해 물이 공급 되도록 해 물 절약을 할 수 있고, 물고기 배설물이 비료가 되어 물고기와 식물이 균형을 이루는 생태계를 구성하며, 물은 정수 처리해 재이용하는 시스템이다. 십수년 전 먹거리 정의 해외 자료를 공부하며 내가 보았던 수경재배가 아쿠아닉스의 초기 모델이었던 셈이다. 아쿠아닉스는 물 절약 차원에서는 지속가능한 것으로 보여져도 수경재배, 생태계 구성이 가능할 수 있는 수종 선택, 수온의 관리가 자연의 힘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자연농업, 스마트농업, 퍼머컬쳐, 아쿠아컬쳐… '농업'을 재정의해보자
과학기술의 발전은 전통적인 농업의 개념에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 그러나 그 도전은 흙과 자연을 통한 농업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넘어서지 못해 왔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스마트농업을 미래형 농업으로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퍼머컬쳐와 아쿠아컬쳐는 다만 이상향이 아닐 것이다. 스마트농업과 아쿠아포닉스 역시 기후위기로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할 농업만은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로 일상의 혼돈이 오는 것만큼 생태적 관점과 능동적인 발전의 어느 사이에서 농민과 시민도 혼란스럽다. 이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건 농의 본질을 이어가면서도 시대에 맞게 농업을 재정의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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