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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슬의 기후월령가 | 갈아엎고 새로이 싹틔우는, 청명

2025-04-03 배이슬

 

청명, 농사 새로 시작하기 좋은 때로 갈아엎고 싹트는 계절이다. 평소와 다른 기후로 혼란스러운 농부들이다. 3년 전부터는 모든 꽃이 함께 피고 있다. 목련과 개나리와 벚꽃과 진달래가 함께 피어난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꽃천지겠지만, 꽃이 하는 말을 들어가며 농사를 지어온 농부들에게는 혼란스러운 일이다. 청명, 씨앗의 힘을 믿고 묵은 것을 갈아엎고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이다.


배이슬 이든농장 농부 / 한국퍼머컬처네트워크 공동대표활동가 / 진안생태텃밭강사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사로 익힌 다름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농사를 알리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안전한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쓴다. 일터인 '이든농장'은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작은 농장이다. 논, 밭, 산이 조금씩 있고, 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작물들을 심고 키우고 먹는다. 씨앗을 받고, 퍼머컬처 숲밭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갈아엎기 좋은 때, 시작하기 좋은 때다

     

청명은 말 그대로 차츰 하늘이 맑아지는 때를 의미한다. 완연한 봄을 맞은 맑은 하늘 덕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 질퍽했던 흙이 말라 밭을 갈기에 적당한 때가 된다. 흙에 기대 농사를 오래오래 지으려면 어느 때에 밭을 갈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가는지에 따라 (아예 갈지 않거나) 그 밭의 생태계는 달라진다. 여러 해 트렉터로 로타리를 치며 갈아엎은 땅과 쟁기질 수준으로 옅게 갈아엎은 땅과 다년생 중심으로 심어 갈지 않은 숲밭의 흙은 각각 봄을 맞는 모양새가 다르다. 흙 속에 집을 지은 다양한 생명들 덕에 유기물이 풍부해지면 물을 머금는 정도도 다르고 비에 쓸려 나가는 일도 다르다.

그래서 어느 밭은 갈지 않고, 어느 밭은 갈아 농사를 짓고 있다. 갈아엎는 것도 때와 방법을 달리하는데 예를 들어 흙이 질 때 밭을 갈면 돌보다 단단해지고, 너무 가물고 뜨거울 때 갈면 밭 흙이 흩날리고 수분을 잃는다. 너무 이르게 갈면 외려 풀이 더 나고, 늦게 갈면 작물의 때를 놓친다.

논과 밭의 일부는 갈고 일부는 갈지 않는다. 갈지 않은 흙이 깊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사진_배이슬
논과 밭의 일부는 갈고 일부는 갈지 않는다. 갈지 않은 흙이 깊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사진_배이슬
갈지 않는 숲밭과 채종포는 일찍이 포슬거리고 유기물이 풍부하다. 갈이에 따라 흙의 생태계는 점점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사진_배이슬
갈지 않는 숲밭과 채종포는 일찍이 포슬거리고 유기물이 풍부하다. 갈이에 따라 흙의 생태계는 점점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사진_배이슬
작년 이맘때 무주 토종과수에서 분양받은 청실배나무를 심었다. 사진_배이슬
작년 이맘때 무주 토종과수에서 분양받은 청실배나무를 심었다. 사진_배이슬

청명 즈음에는 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았다. 겨울을 난 풀이 제법 싹을 냈고, 밭을 만든 뒤 씨를 뿌리기 전에 흙들이 자리를 잡기까지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맑아지니 무엇이든 시작하기 좋다. 청명의 봄기운은 무엇이든 길러내는 힘이 가득하다. 오죽하면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고 했을까. 할머니는 이맘때 아침에 심으면 일 년을 먹고 저녁때 심으면 겨울에 배곯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부지런을 떨어 기운찬 때에 알맞게 심고 지어야 풍족하게 먹고 산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하늘이 맑은 때 땅을 가는 일은 자분자분 씨가시를 챙기다 온몸을 써서 본격적으로 바깥 농사와 농살림의 일들이 늘어나는 때다.


청명의 날씨점


할머니는 절기마다 날씨로 한해를 점치고는 하셨다. 특정 날의 날씨로 그 해의 날씨나 농사를 점쳐 보는 것은 농부의 깊은 바램이기도 하고, 그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일종의 기후의 패턴에 기댄 것이기도 하다. 청명에 날씨가 맑으면 한해 농사가 잘되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농사가 어렵다고 하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역마다 다르게 풀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남쪽에서는 청명에 날이 맑으면 되려 농사가 어렵다고 점치기도 한단다. 생각해 보면 날이 맑아 농사가 잘된다는 것이 남쪽 지방에서는 더위가 더 이르게 오니 가뭄에 들고, 추운 지방에서는 추위가 일찍 물러나 작물의 생육기간이 늘어 농사가 풍족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모종이 부쩍부쩍 큰다. 따뜻하고 추운 시기라 모종 죽이기 쉽다. 일찍 열고 일찍 단디 닫아야 튼다. 사진_배이슬


맑은 하늘은 옛말인가


하늘이 맑아진다는 청명이지만 주변이 희뿌옇다. 황사며 미세먼지에 송화가루까지. 요즘 사람들에게 청명 즈음은 세차하기는 그른 때, 창문 열면 안 되는 때로 불리지 않을까. 그만큼 청명의 맑은 하늘은 아주 오래전의 일인가 싶다.

거기다 길어진 세찬 바람은 전에 없던 큰 산불들로 이어졌다. 산불의 원인이야 다양하게 이야기하지만 이맘때 농촌에서 불을 놓는 일이 잦아지기도 했다. 밭에 남은 영농 부산물을 태우느라 불을 놓는 일이 늘어난 것은 거름을 만들지 않으면서다. 농사짓고 나온 고춧대, 옥수숫대, 넝쿨 마른 것들은 겨울 동안 가축을 먹이기도 하고, 중요한 거름거리가 되었다. 콩대나 깻대는 불땀이 좋아 겨울 동안 아궁이 불 지필 때 귀하게 쓰이는 불쏘시개다. 그렇게 거름으로 재로 밭에서 온 것들이 농사의 시작에 다시 밭으로 돌아가는 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달라진 생활상은 거름을 만들지도 겨울 동안 불을 지피지도 않게 되며, 화석연료가 대체한 탓에 농사짓고 나온 것들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산불조심 기간에는 더 자주 불을 피우지 말라고 방송도 하고, 요즘은 지자체에서 영농부산물 파쇄지원단 사업을 하기도 한다. 밭에 와서 남은 영농부산물들을 갈아 뿌려 준다.


그런데도 이맘때면 모락모락 검은 연기가 맑은 하늘을 덮는다.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은 거동이 불편할 만큼 나이가 드셨고, 깔았던 비닐들은 덕지덕지 흙이 붙어 뜰먹도 하기 힘들 만큼 무거워졌다. 그래서 대부분은 밭에 그대로 갈아버리거나, 밭 한 켠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비닐에 불을 놓는다. 외려 이맘때 밭 준비를 하며 불을 놓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비닐을 수거해 가는 업체나 공간이 있지만 어르신들이 밭마다 걷어 가져다 두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이전에 불을 놓던 것과는 전혀 다른 때에 다른 것을 태우는 것이다. 그렇게 맑은 하늘은 어디 가고 없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청명은 양력으로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이 되는 때라 하루 차이가 나거나 같은 때가 많다. 그래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같은 말이 있다. 별 차이가 없을 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청명과 한식은 날짜가 같아도 다른 날이다. 청명은 24절기 중 하나지만 한식은 설날, 추석, 단오와 함께 명절에 속한다. 바깥일도 많은데 한식 전에 할머니는 찰밥을 찌곤 하셨다. 왜 밥 놔두고 찰밥 찌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불 안 때고 밥해 먹는 때로 한식은 찬밥 먹는 날이라고 하셨다. 1년간 태운 불도 기운이 다해 새 불을 나라님이 내려준 때라고 했다. 바야흐로 땅도 불도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 바로 청명에 하나 한식에 하나 꼭 해야 할 일인 셈이다.


완두를 심었다. 추운 것을 잘 견디는것을 알면서도 매해 덮을까 놓을까 갈등한다. 완두가 손을 뻗을 즈음이면 땅맛이 들었다. 사진_배이슬


갈아엎고 싹트는 청명의 대지

     

생강나무, 산수유가 꽃피고 나면 목련이, 그다음에는 벚꽃이, 그러고 나면 조팝나무와 개나리가 순서를 기다리듯 피고 지던 때와 다르게 3년 전부터는 모든 꽃이 함께 피고 있다. 목련과 개나리와 벚꽃과 진달래가 함께 피어난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꽃천지겠지만, 꽃이 하는 말을 들어가며 농사를 지어온 농부들에게는 혼란스러운 일이다.

수선화 산수유가 꽃을 피운다. 전과 달리 모두 일제히 피고 지고 속이 아프다. 사진_배이슬


그럼에도 때를 맞춰 씨앗 받으려고 심어둔 배추는 꽃대를 올리고, 무와 당근도 제법 자랐다. 민들레도 지천으로 피고, 마늘도 이불을 걷은 뒤라 썽썽히 자태를 뽐낸다. 모종을 낸 것들도 본잎을 내고, 다음에 심길 씨앗들에 제 차례를 기다린다. 일찍 모종 낸 것들은 제법 본잎을 내는 시기지만 마음을 놓았다가는 찬바람 가득 얻어맞아 모종을 죽이기 쉬운 때이기도 하다.


씨 받으려고 모아 심어 둔 무릉배추가 꽃대를 올리고 있다. 사진_배이슬


모든 것이 그러하듯 어린것들이 품은 여림 뒤의 생명력으로 온실과 밭에 색을 입히는 때다. 겨울 난 풀들이 제철이라 민들레를 재고, 익모초를 뜯어 말렸다. 쓰디쓰기로 유명한 익모초가 이맘때는 여려 쓴맛이 없고, 연하고 맛이든 지칭개, 민들레, 토끼풀, 질경이까지 봄을 실컷 먹는다.


쓰디쓴 익모초가 덜 쓴 계절, 풀이 제철이다. 사진_배이슬


청명은 식목일과도 시기가 겹친다. 이 역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알맞은 기후였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의 기후에는 빠르게 더위가 오는 탓에 식목일에 심으면 조금 큰 과실수들은 일찍 가뭄을 타서 이보다 일찍 심는 게 알맞다.


지칭개, 민들레, 쑥, 냉이, 가시상추 지천에 먹을 게 많다. 풀이 제철이다. 사진_배이슬


청명에는 모종이 어설프고 씨가 늦어도 괜찮다. 금방 키워 내는 부지깽이도 싹틔우는 힘이 있는 때다. 그러니 잔뜩 겁먹고 동동거리기보다는 일단 시작하는 게 남는 장사다. 씨앗은 반드시 제 힘으로 씨앗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씨앗의 힘을 믿고 묵은 것, 다한 것을 갈아엎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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