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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슬의 기후월령가 | 우수수수 녹은 눈 사이로 봄이 솟는, 우수

 

2025-02-21 배이슬


배이슬 이든농장 농부 / 한국퍼머컬처네트워크 공동대표활동가 / 진안생태텃밭강사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사로 익힌 다름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농사를 알리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안전한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쓴다. 일터인 '이든농장'은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작은 농장이다. 논, 밭, 산이 조금씩 있고, 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작물들을 심고 키우고 먹는다. 씨앗을 받고, 퍼머컬처 숲밭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추위야 여전하지만 ‘우수 뒤에 얼음 같다’는 말처럼, 우수가 곁에 오자 눈이 녹은 물들이 추적추적 땅을 적시기 시작한다. 차갑지만 그렇게 녹아든 물들이 땅속에 잠자던 씨앗들을 깨우는 시간이다. 입춘을 지나 우수에 들어서면 바람 곁에 봄이 묻어 있다고 하지만, 봄의 기운을 알아차리려면 눈을 크게 뜨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야 보일랑 말랑하다.


달의 시간 음력, 정월달 장 담그기


어려서부터 자연히 음력을 세고는 했다. 할머니가 종종 달력의 작은 글씨인 음력 날짜를 물으시며 농살림의 때를 챙기셨기에 음력이라는 말을 잘 모를 때도 날짜를 세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생일도 음력으로 지내고, 제삿날짜도 음력으로 챙겼다. 특히 작물의 심는 때를 가늠하실 때는 음력을 더 꼼꼼히 챙기셨는데, 해의 시간으로 매일매일의 날짜와 달리 달의 시간으로 챙기는 음력의 존재는 단순히 드러나는 그것 뒤에 밀접한 다른 세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달의 시간인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는 것을 보고 친구들은 할머니 같다고 얘기했지만, 설날도, 생일도 자연스레 음력으로 쇠어 와서 음력 정월달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해를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봄을 세우는 입춘을 지나 엄동설한이 살며시 녹아 톰방톰방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가장 중요시 챙기는 일은 장을 담는 일이다. 정확하게는 음력 정월달 손 없는 날이나 말날에 장을 담는다.



"말날에 담궈야 장이 잘 떠"


1년 내 어쩌면 그 이상 오랜 기간 두고두고 먹는 음식의 근본인 장을 담는 일이기에 장 담그는 날은 꼭 지키며 담았다. 할머니는 농협에서 나눠 준 달력을 보며 말날이 언제냐 확인하시고는 오래 묵힌 소금 포대를 챙기고 가을에 잘 띄워 고이 말려 둔 메주를 꺼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띄워 놓은 메주를 덩그러니 보다 말날을 찾아 할머니처럼 장을 담았다. 손 없는 날, 말날을 찾아 담았지만 왜 말날에 담는지는 할머니도 몰랐다.

“할머니! 근데 왜 말날에 담궈? 원숭이날도 있고, 뱀날도 있는데?!”

“몰라. 그전부터 그렇게 해 온 거신게. 말날에 담궈야 장이 잘 떠. 나쁜 것 없는 날을 잡아 담그는 것이여.”



계란 알이 옆으로 누워 동동 뜰 정도로 소금을 녹이다


음력 정월은 여전히 추워도 우수를 전후로 한낮의 볕은 바깥일을 할 만해서, 커다란 대소쿠리를 대야 위에 얹어 소금을 한껏 담아 물을 끼얹어 가며 아침 내내 소금을 녹였다. 계란이 옆으로 누워 동동 뜰 정도가 되게 물을 더하거나 이미 내린 물로 소금을 녹여가며 염도를 맞춰 장을 담는 전용 장독에 장을 담는다.

장독마다 맛이 다르게 나서 유독 장이 맛있는 귀한 장독이 따로 있어서 할머니는 보물단지 대하듯 닦고 단지를 돌리기도 하며 장독을 아꼈다. 똑같은 메주로 담아도 어느 자리에 둔 어느 특정 장독에 장맛이 좋은 건 그 장독이 자리한 곳에 함께 사는 미생물과 미기후 덕분이리라 생각하곤 했다. 1년의 농사는 결국 먹고 사는 일 그 자체로 정월달 장을 담는 일은 한해 먹을거리를 챙기는 중요한 농사일이었다.


호미와 낫을 챙기고, 방에서 씨앗 심는 때


우수가 지났으니 조금 이르게 수확할 몇몇 채소와 씨고구마도 싹을 기르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 얼지 않게 보관해 온 고구마 중에 덜 마르고 생기가 돌고, 물렁물렁하지 않은 큰 것으로 고구마를 고른다. 고구마는 줄기를 길러 심으니 이른 시기부터 싹을 기르면 고구마 심을 때 모를 많이 만들 수 있다. 아직 하우스 안도 더러 추워서 이맘때에는 작은 포대나 상자에 고구마를 묻어 방에서 기른다. 물을 많이 줄 것도, 볕을 많이 쬘 것도 없어 제법 지랄 때까지 방안에서 편히 싹을 기른다.




적은 양, 다양한 품종의 싹을 기르기는 에너지가 덜 드는 집안에서


예년에는 촉 틔운 고추 씨앗을 졸졸 흩어 뿌려 고추 어린 모를 키웠을 텐데 3년 전부터 부러 늦추고 있다. 게 중에 더 자랄 것도 흩어뿌리기보다는 작은 흙 블록을 만들어 하나씩 심어 좁은 공간이지만 방에서 일부 키워내고는 하고 있다. 비닐하우스에 내면 꼼짝없이 아침나절 저녁나절 여닫아 가며 밤사이 떨어진 기온에 얼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겹겹이 덮어야 하는데, 그 에너지를 쓰는 대신 적은 양은 방에서 얼마든지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은 양, 혹은 다양한 품종의 고추, 가지, 토마토의 싹을 기르기에는 소일블록이나 둘둘말아 씨앗을 심어 기르는 방식이 적합했다. 에너지를 덜 들이기도 하고 넓지 않은 집안에서 비교적 편히 키우기 때문이다.


하늘이 아닌 땅에서 비가 내린다


정월대보름 달집도 태우고, 더위도 팔며 여름을 1년을 맞이하듯이, 갈무리해 주었던 호미도 꺼내 돌보고 바쁘다 던져 두었던 삽과 선호미도 찬찬히 챙긴다. 정월대보름에 우리마을 김 영감님 제사를 지낸다. 자식 없이 돌아가셔서 그분의 땅은 이장님이나 땅 없는 사람이 농사를 짓고 대신에 성주신 상을 올릴 때 더러 여유 있게 챙겨서 당산에서 김 영감님 제사를 지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나눈다.

한해 함께 먹고사는 일이 시작된 것, 땅에서 내린 비로부터다.

게재 사진들_ 배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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