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독일 기후 공약 ③ | 독일 선거에서 기후 이슈가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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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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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0 이상호
이번 독일 연방의회 선거 과정에서 기후 이슈가 뒤로 물러났다. 경기 불황과 난민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기후 보호는 정치적 용기 부족과 정당의 지지층 상실 두려움으로 주변화되었다. 그러나 2050년까지 극심한 기상 이변으로 인한 피해액은 9000억 유로에 이른다고 한다. 4월 중순 출범할 기민련/기사련과 사민당의 연립정부는 기후 보호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호 박사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용노동부장관 정책보좌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 국회 정책보좌관, 민주노총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폴리텍Ⅱ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2024년 9월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산학협력단 부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3년 전 선거와 비교하여 이번 독일 연방선거에서 나타난 가장 뚜렷한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차이퉁(FAZ)을 비롯한 대부분 언론들은 기후변화 이슈가 이번 선거에서 거의 공론화되지 못한 것을 가장 큰 차이로 꼽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역사상 최고치 폭염 현상이 발생하고 극심한 홍수로 남동부 지역에서 재난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데, 각 정당의 선거 캠페인에서 기후위기는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고 매스미디어의 관심도 거의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선거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수많은 유권자들은 여전히 기후 위기를 차기 정부가 대응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1월 초 독일 방송매체 ARD가 조사한 독일 트렌드에 따르면, 기후와 환경 보호는 연방선거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4위에 올랐다. 독일 기후연합(Klimaallianz)이 실시한 최근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새로운 연방정부가 환경 보호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과연 차기 연방 정부는 기후 보호 이슈를 무시할 수 있을까?
경기 불황과 난민 문제에 묻혀 버린 기후위기 이슈
이번 연방선거에서 기후 문제가 간과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경기 침체와 난민 문제로 인해 기후위기 이슈가 가려져 버렸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독일 경제가 거의 제로 성장에 가까운 불황 국면에 들어서고, 난민을 비롯한 이민자 문제에 대해 여론이 집중되면서 기후 문제는 후순위, 아니 주변화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선거전에 임하는 정당의 선거 전술에 의해서 더욱 악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뮌헨 대학교 사회학 교수 아민 나세히(Amin Nassehi)는 선거 운동에서 정치인들은 가장 시급한 문제보다 유권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슈에 더 집중한다고 강조한다. 이주민의 범법 행위나 물가 폭등과 같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과 갈등을 초래하는 문제에 대해 일반 유권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장기적인 전망과 복잡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기후변화 문제는 대중들에게 어려운 주제이다. 사실 기후 보호를 달성할 수 있는 손쉬운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일에서 탄소중립사회의 실현은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초당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 사회는 기후변화 이슈에 이미 관성화되어 버렸고 이로 인해 기후위기 해결의 긴급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더 높이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 이슈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기후 보호 정책
그 다음으로 보수 정당은 물론, 많은 언론들이 독일 경제를 어렵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기후 정책을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포츠담 기후 영향 연구소 소장인 오트마 에덴호퍼(Ottmar Edenhofer)는 독일 경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기후 보호 정책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경제적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기후 보호 정책은 선거 캠페인에 있어서 상당한 부정적 영향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독일 경제의 어려움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고 나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선 세계 경제의 구조환경적 요인 등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게 올바른 접근 방식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언론과 보수 우익 정당을 중심으로 가스난방비 폭등과 전기 가격 인상의 이유를 과도한 기후 보호 정책과 너무 빠른 탄소중립 목표 설정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기후 보호가 더 높은 개인적 비용을 초래하고 사회적 번영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기후위기 자체가 경제시스템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예방적인 기후 보호 정책이 안정적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사회적 투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적 용기 부족과 지지층 상실에 대한 정당의 두려움
일반적으로 대중정당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잃어버릴까 봐 기후 보호 정책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를 꺼리는 게 사실이다. 이번 연방선거에서도 대부분의 정당들은 주요 공약에 기후 정책을 포함시키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구 사항 중 상당수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기민당/기사련은 한편으로 기후 보호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건물에너지관리법(소위 난방법)을 폐지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부분의 정당들이 재정적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기후 정책을 공식적으로 옹호하는 대신, 기후 보호가 고비용을 초래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을 설득하기는커녕,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 방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홍수, 폭염, 재난 등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 문제는 공론의 장에서 대체로 무시되고 있다.
이와 같이 기후 보호 정책은 정치인들의 용기 부족으로 인해 쟁점화되지 못하고 지지율 감소에 대한 정당의 두려움으로 인해 선거 이슈에서 주변화되었다.
그러나 기상 이변 등으로 인해 기후 보호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 커져
지구 온난화가 위험할 정도로 심각해지고, 대기 중으로 유입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북극의 영구 동토층 해빙과 같은 사태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폭증하고 기후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성도 더 커지고 있다.
극심한 기상 이변 현상은 기후 보호와 대책의 시급성을 보여 주고 있다. 작년 한 해만 해도 독일과 유럽은 홍수와 폭염으로 인해 심각한 농작물 피해를 겪었고 연이어 극심한 가뭄도 발생했다. 이러한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2050년까지 독일에서만 최대 9000억 유로로 추산된다. 독일 보험산업협회는 작년에 바덴뷔르템베르크주와 바이에른주에서 발생한 홍수로 인해 청구된 보험피해액을 20억 유로로 추산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기후 보호와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생태학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연방정부의 기후변화 전문가 위원회는 최근 독일의 이산화탄소(CO2) 감축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러한 추세 또한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에너지 부문은 석탄의 단계적 폐지를 통해 일정한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운송 및 건설 부문은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목표치를 밑돌고 있다. 독일이 2030년 국가목표치(NDC)와 2045년까지 유럽연합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새로운 연립정부도 기후 보호 관련 정책 기조를 유지할 듯
지난 연방선거의 결과로 볼 때 4월 중순 이후 출범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민당/기사련과 사민당 연립정부는 기후 보호 관련 정책 기조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국가목표치와 유럽연합의 탄소중립 목표를 변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대중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중도층에게 보다 매력적인 프로그램으로 리모델링되어야 하지만, 새로운 연립정부가 기후 보호 목표를 후퇴시키는 위험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기후 보호법은 모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12개월 이내에 즉각적인 기후 보호 프로그램을 시작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 보호법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수백만 유로에 달하는 소송비와 유럽연합 차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한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기후 보호법에 대한 판결에서 국가가 헌법상 기후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새로운 연립정부의 과제는 기후 보호와 국가 경쟁력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보여 주고,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공정한 기후 정책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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