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대표 편집인
22대 국회는 2024년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한다. 제6공화국 8번째 정부, 윤석열 정부의 임기 중후반을 같이 한다. 2027년 5월 10일 출범 예정인 9번째 정부의 임기 초반을 함께하기도 한다. 향후 4년은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대한민국에게는 존립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봐야 한다. 어느 국회든 중요하겠다. 그래도 이번 국회의 중요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22대 국회는 그만큼 많은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다. 헤쳐 나가야 할 과제도 수북하다.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저출산 위험은 ‘인구절벽’을 예고하고 있다. 고령화와 지역소멸에 대한 지적은 이미 만성이다. 소득 격차와 부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 안전망의 균열은 커지고 있다. 이 모든 지점에 ‘기후 위기’가 있다. 기후 문제는 에너지, 식량, 생태계, 거주, 안보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마주하는 문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문제의 성격이 질적으로 달라졌다. 과거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낙후’의 극복이었다. 소득 증대를 위해 경제를 어떻게든 성장시켜야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말이다. 성장의 열매를 일부 나누면서 ‘형평’을 맞춰 가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전문 엘리트 집단의 역할이 중요했고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존 행정 관료나 정치인만으로 당면한 난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시대의 소방수, ‘시민의회’를 고민하는 이유다.
시민의회는 선거엘리트의회에 대비되는 ‘추첨’ 시민의회다. 성별, 연령대별, 지역별, 소득층위별, 학력수준별, 정치성향별 추첨으로 만들어 낸 미니국민집단이다. 최대한 국민을 빼닮는 게 원칙이다. 시민의회에는 상이한 관점과 입장을 가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붙는다. 시민의원들은 충분히 학습하고 토론과 숙의를 거친다. 이렇게 학습하고 숙의한 시민의회는 논란이 많은 정책 현안에 종합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권고한다.
시민의회에 전문가들이 붙는 이유는 일반 시민은 생업에 바쁘고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업상 공적 문제에 학습과 토론이 일상인 정치인이나 전문가와 다르다. 시민의회는 미니국민집단을 만들어서 국민의사를 확인한다는 면에서 여론조사와 방법이 같다. 하지만 여론조사와는 달리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국민의사가 아니다. 집단 학습과 숙의 과정을 거쳐 집단지성으로 다듬어진 국민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민주주의가 소수 전문 엘리트가 아닌 다수 시민의 지배를 의미한다면 시민의회야말로 민주주의의 발현이다. 다만 복잡다단한 현재 사회가 선거에 의한 엘리트의회의 유용성을 현실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본질에 집중해 보자. 중대 정책 현안에 대해 깨어 있고 책임지는 국민의사가 무엇인지라는 질문 말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질문이다. 시민의회는 이를 위한 혁신적인 해법이다.
시민의회는 OECD국가들에서 이미 민주주의 혁신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까지 OECD 가입국가들에서 400회가 넘는 시민의회가 운영됐다. 시민의회는 전 유럽의 지자체 차원에서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대표기구이자 정책 현안의 해결 기구로 인정받고 있다. 선거의회가 민주주의의 20세기 표준이 되었다면, 시민의회는 21세기의 민주주의 새 표준이 되고 있다.
2023년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24개국 대상으로 ‘대의민주제 위기’를 주제로 여론조사를 했다. 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생각에 관심이 갖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74%를 차지했다. 미국 83%, 스페인 85%, 일본 72%, 한국 73%이었다. 정치 엘리트들이 시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정치 경제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봐야 한다. 징후를 무시하는 나라는 필망했다.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심지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협치에서 시민권력 시대로 전환되고 있음을 인정하자. 대의민주주의를 책임지고 있는 22대 국회는 ‘사즉생’의 각오로 현실을 직시해 주기 바란다. 시민의회가 내 살을 베어낸다는 편협한 논리에 빠져 있지 않길 바란다. 어차피 국회와 시민의회는 상호보완 관계이지 권력투쟁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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