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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후 리터러시’와 언론의 역할

 

김용만 대표 편집인


기후위기 시대, 어떤 저널리즘이 요구되는가?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 알아야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리터러시’는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디지털 환경을 알지 못하면 살아가기 어렵다는 취지로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말이 최근까지 유행했다. 이제는 ‘기후 리터러시’가 회자되고 있다. 기후위기가 인류가 직면한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기상 이변이나 재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장기적인 추세이고 예고된 파국이다. 그 속에서 인류와 지구 생명체들의 생존과 지속을 도모하는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언론은 피할 수 없는 숙제를 안고 있다. 언론 보도와 사회적 담론들은 정보 전달 차원을 넘어선다. 사고의 전환과 삶을 영위하는 방식의 변화를 동반하는 쟁점을 다루어야 한다.


기후변화국제협의체(IPCC) 보고서에도 “언론은 기후위기가 제기하는 도전에 인류가 맞서도록 돕는 중요한 기관”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이 마주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상업성의 유무로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관행은 기후보도를 주변부 기사로 머물게 한다. 매일의 사건, 사고와는 달리 기후문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아무래도 뉴스 편집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다. 그리고 기후보도 역량이 아직은 미흡하다. 전문성을 갖춘 기자들이 만족할 만큼 양성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기후문제에 갖는 의식의 분절과 모순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기후 이상 변화가 실제 벌어지는 일이고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데 갑론을박이 있었던 시절은 지났다고 봐야 한다. 최근 수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85% 이상이 기후위기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자신의 생활양식을 바꿀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위기 대응에 있어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데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심각성을 아는 것과 내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사이에 분명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 2023년 기후변화대응지수에서 대한민국은 총 60개국 가운데 60위를 차지했다.


우리는 여전히 텀블러를 사용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현재 생활의 질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과거 ‘환경오염방지’, ‘자연보호’와 같은 이슈들은 당파를 떠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용이했다. 하지만 지금의 기후문제는 인식 격차와 의견 불일치가 나타나고 있으며 해법 또한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이제 기후문제에 대한 이슈들은 과학적 인식과 규범적 접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제도적 전환 프로그램 형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후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다.


기후 리터러시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을 이해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변화의 원인, 영향과 해결책에 대해 학습하고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 과학적 지식과 비판적 사고가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 표출됨을 의미 한다. 그래서 기후 리터러시는 자생적이지 않다. 계획되고 의도되어야 한다. 개인의 순수 노력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계몽에 가까운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정당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언론은 핵심적인 기능을 해야 한다. 언론이 대중과 갖는 관계와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기후보도는 기후 리터러시 함양을 위한 훌륭한 교육이고 공론의 장이다.


2022년 9월 프랑스 언론인들은 ‘생태 비상사태 대응을 위한 저널리즘 헌장’을 공표했다. 환경전문기자, 환경전문매체, 전문가 그룹, 시민단체, 프랑스 주요 매체가 모였다. 이어 2023년 2월 프랑스 최대 지역 일간지 <우에스트 프랑스>가 자체 저널리즘 헌장을 발표했고, <르몽드>가 뒤를 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유럽 방송 연맹(EBU)>도 비슷한 내용으로 ‘환경서약’과 ‘보도 가이드북’을 내놓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널리즘의 방향과 원칙을 나름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여기에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기후 리터러시 증대를 위한 언론의 역할’이다.


국내에선 아직 이런 언론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쉬운 대목이다. 선언이 뭐 중요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고민하는 틀이 만들어지는 건 의미가 크다. 앞서 말했지만, 지금의 기후문제는 ‘무당파적’이지 않다. 지극히 정치적 이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불러오는 피해의 당사자인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지역사회가 참여하지 않는 해법은 작동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 언론이 갖는 현실 임무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후 리터러시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있다. 모든 재난이 그렇듯이 기후재난 역시 사회 내부의 취약한 곳에 피해가 집중되기 마련이다. 위기가 심화되면 ‘부정의’와 ‘불평등’은 쉽게 노출된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사회구조 변화를 동반하는데 이 과정에는 반드시 ‘정의로운 전환’이 고려되어야 한다. 과학적 지식, 비판적 사고, 행동으로 구성되는 기후 리터러시에 ‘정의’와 ‘평등’은 양보할 수 없는 요소이다. 언론도 이를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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