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문제 해결에는 온 나라가 나서야 한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지금은 가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한다. 나라님도 어쩔 수 없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온 나라가 나서야 했다. 기후 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다. 정부만의 힘으론 벅차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움직이는 정부이니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부만 믿고 팔짱 끼고 뒤로 물러나 있을 순 없는 일이다. 정부가 기후정책을 제대로 만드는지, 실행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일상에서 직접 실천도 해야 한다. 기업이라고, 법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때 ‘신자유주의’가 범람하는 시기가 있었다. 자본에는 국적이 없고 무역에 국경도 의미 없다고 했다. 여의치 않으면 법인 소재지를 국외로 바꾸면 그만이라고도 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완전경쟁하는 이상적인 자본주의라고 추켜세워졌다. 병든 자본주의를 치료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제는 신자유주의가 능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자국의 내실을 기하지 않는 ‘글로벌화’는 모래 위에 성을 짓는 것과 같다. 국수주의로 회귀하자는 말은 아니다.
기후 대응은 전 세계 문제이고 지구 차원의 협력이 필수다. 다만 실효한 협력이 되려면 튼튼한 구심점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그런 구심점이 아쉽다. UN(국제연합)은 노회했고 국가 간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우선 개별 국가가 내실을 기해야 할 때다. 방향이 잡힌 길은 이렇다. 튼실한 국가 중에서 중심국(리더)이 나오든 UN이 자체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아님 UN을 대신하는 새로운 국제기구가 탄생하든 말이다.
기업은 영리추구를 본체로 한다. 이익을 내는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된다. 강한 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자라고 했다. 현재 자본주의에서 생존경쟁을 이겨 낸 기업은 강해지고 커졌다. 사회는 비중이 커진 기업에 다른 가치를 요구한다.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만이 기업이 갖는 유일한 가치가 아니다. 사회 공헌은 현대 사회가 기업에 요구하는 시대의 도덕이다. 기후위기라는 인류 공멸의 위험 상황에서 기업이 이기적인 목적에만 충실해서는 안 된다. 기업은 정부 못지않은 사회 버팀목이다.
이 대목에서 파타고니아의 경영 철학과 행적은 눈여겨볼 만하다. 파타고니아의 연간 매출은 10억달러이며 비상장 기업으로 기업 가치는 30억달러로 평가되고 있다. 2022년,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회사의 소유구조를 ‘공적 소유’로 바꾸었다. 무의결권 주식 98%는 환경 단체 ‘Holdfast Collective’에 있고, 의결권 주식 2%는 비영리법인 ‘Patagonia Purpose Trust’에 신탁되어 있다. 언뜻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생태보전과 이윤창출이라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이런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모든 기업이 파타고니아처럼 공적 소유 구조로 가리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엄연한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끊임없는 증식을 본질로 한다. 하지만 자본의 역사는 생물 진화에 비하면 극히 짧다. 우리 몸과 유전자는 진화 체계에 맞춰져 있다. 익숙한 탓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자본주의는 역사 발전의 한 단계일 뿐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은 진화의 산물이며 진화 과정에 붙들려 있는 존재다. 그러니 무엇이 더 중요한 지는 자명하다.
개인사업자나 조합이 아닌 기업에는 법인격이 있다. 회사 지분을 소유하는 주주와는 별개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인격권을 갖듯 법인도 설립되면서 갖는 법적 권리다. 자연인이 아닌데도 인격권을 부여한다는 생각은 사뭇 파격적이다. 그 출발은 경제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투자와 사업 확장을 촉진하기 위해서지만, 막상 법인이 만들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버젓한 사회 구성원이 된다. 기업이 이윤 창출 이외 기후, 환경, 노동 등 사회적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흔히 말하는 ‘기업 사회 공헌’이라는 단어는 오해 소지가 크다. 기업이 사회에 관심을 갖고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은 기부나 은혜가 아니다. 사회 주요 축에게 주어진 의무다. 법인이 아무리 독립적인 존재라고는 하나 자연인 없이, 사회 집단 없이는 무의미하다. 기후위기라는 지구 공멸의 위험 앞에서 기업들이 팔소매를 걷고 앞 다투어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설득할 일도 아니고 복잡한 설명도 필요 없다. 이렇게 지구가 망가지게 된 데에는 자연인 못지않게 법인의 잘못도 크다. 어쩌면 더 클지도 모른다.
인간은 상상하기 좋아하고 잘한다. 덕분에 만물의 영장이 되어 지구 생태계 먹이사슬 최정점에 올라와 있다. 또 그 탓에 지구 생태계는 어느 때보다 최악의 상황이다. 상상의 결과물인 훌륭한 발명 중 하나가 법인이다. 기업이 태어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예전에는 가늠할 수도 없는 소중한 선물을 인류에게 주었다. 기아와 가난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좀처럼 해답이 보이지 않는 지금, 이번에도 기업이 길을 터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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