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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임승차’는 안 될 일이다

 

김용만 대표 편집인


‘인디펜던스데이’라는 영화가 있다. 1996년 상영되었던 SF 재난 영화다. 영화 초반, 체급이 다른 외계인의 침공에 지구인 군대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싱겁게 끝날 듯한 분위기는 가공할 ‘공공의 적’을 두고 지구인들이 일치단결하면서 바뀐다. 마침내 외계인의 침공을 막아내고 지구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지구생명체를 절멸시킬 수도 있는 위협은 픽션이 아니다. 현실에 엄연히 존재한다. ‘기후 위기’ 또는 ‘기후 재앙’이 그렇다. 영화와 다른 건 공공의 적 앞에 우리가 한 마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국의 안보를 명분 삼아 무한 군비 경쟁을 하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안위를 지키는 건 상식이고 미덕으로 여긴다. 그러는 사이 공공의 적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모르고 있다.


군사 활동은 엄청난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을 동반한다. 각국의 군사 활동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5~6%를 차지한다고 한다. 민간 분야의 항공기(1.9%), 해운(1.7%), 철도(0.4%), 파이프라인(0.3%)을 합한 것보다 많다. 군사 활동 과정에서 탄소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주요 무기와 장비가 대부분 화석연료로 가동되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연비가 매우 떨어진다. 연비가 낮을수록 사용하는 연료가 많아지고 그만큼 탄소배출도 늘어난다.


더욱 심각한 건 군사 활동이 탄소배출 규제망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군사 부문의 탄소배출 보고는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인 보고’이다. 보고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것인데 나서서 보고할 국가는 없다. 군사 활동은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대외비라는 논리는 좀처럼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는 군수산업체들의 이윤 창출을 보장하는 상업 논리인데도 말이다.


세계의 군비 경쟁은 격화되고 있다. 2023년 세계 군사비는 2조3000억달러였다. 냉전이 극고조에 달하던 1980년대 후반에 비해서도 7000억달러가 많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비 비중은 전체 52%에 달한다. 선진국 모임인 G20으로 확장하면 비중은 90%에 이른다. 세계 군사비는 매년 1000억달러씩 늘어나 2030년에는 3조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인류사회와 지구공동체를 노리는 공공의 적은 기후 위기다. 기후 위기 대응에 어떤 첨단 무기도 소용이 없다. 냉전시대 핵무기가 그랬듯이 신냉전시대 '기후 위기'를 ‘게임체인저’로 보자는 것이다. 핵심은 ‘군비 감축’이다. 군비 감축은 기후 위기 대처에 필요한 비용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다.


기후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매년 1조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가 공공의 적을 이겨낼 비책이다. 군비 감축을 통한 재원 마련은 전 세계 군사비의 90%를 차지하는 G20이 움직여야 한다. 탄소배출을 통해 경제 발전의 이익을 챙긴 것도 그들이 아닌가. 글로벌 사우스는 재원을 만들 여력이 없다. 글로벌 노스가 감당해야 한다. ‘무임승차’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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